'번역/대화의 반려들: 해러웨이와 울프의 대담'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9.03.05 반려종 위치부여
  2. 2019.02.08 [대화의 반려들] 해러웨이와 울프와의 대담-사이보그의 시작(2)
  3. 2019.01.22 사이보그의 시작

반려종 위치부여 

Donna Haraway & Carry Wolf, Companions in Conversation」, Minnesota University Press(2016)


번역: 최유미(수유너머104)

 




CW: 이야기를 바꿔서 반려종 선언(Companion Species Manifesto)에 관해서 잠깐 이야기합시다. 나중에 다시 두 선언으로 돌아와서 둘을 같이 놓고, 어떻게 그것들이 관련되지만 매우 다른 방식으로 지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중요한 것 , 생정치적 사유 으로 발전되었는지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걸 하기 전에, “반려종 선언과 관련해서, 그것의 구성의 정황들, 그 뒤에 있었던 동기들에 관한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이것에 관해서 분명하게 작품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 중 일부는 개인적인 것이었고, 일부는 정치적이고 제도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다시, 그것의 수용의 정황에 관한 질문도 하고 싶은데요. 왜냐하면, 페미니즘과 더 넓게는 학계, 문화 연구 분야, 등등에서 매우 다른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문화 동물 연구혹은 인간 동물 연구라고 부르는 것은 여전히 없었습니다.

 

DH: 혹은, “복수종 연구들.”

 

CW: 혹은 복수종 연구들, 잘 만들어지고 수선되고 있었지만, 그러나. .

 

DH: . . 아직 완전히 존재하지는 않았습니다.

 

CW: , 분명히 그렇지요

 

DH: 그러데, 사이보그 메니페스토처럼, 반려종 선언은 매우 개인적으로 그리고 동시에 개인적인 것 이상으로 훨씬 더 역사적 위기의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것은 재세계화(reworlding)의 일부입니다. SF 용어는 나에게 매우 중요하게 되었어요. 나에게 그것은, 사이언스 픽션으로 간주되는 것이 무엇이나 그것을 넘어서, 일상적인 생각을 하는 데 필요한 말입니다, 이 재세계화(reworlding)들이라는 것이요. 그래서 반려종 선언우리는 여기서 누구인가? 우리는 무엇인가? 인간이지만은 않은 우리는 누구이고 무엇인가? 이 역사적 위기에 반려종이라함은 무엇이고,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가? 누가 살고 누가 죽고, 어떻게,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가? 여기, 이 위기의 순간에?”라고 묻지 않고는 더 이상 쓰거나 생각할 수 없는 순간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반려종이란, 비록 반려 동물들이 그 속에 들어가지만, 결코 반려 동물만을 의미하지 않고, 오히려 그 이름은 적어도, 사이보그처럼, 확대될 수 있고, 짜여질 수 있습니다. 거미의 뱃속에서 나오는 실크, 다양하고 강한 비단실들처럼 밀이지요.

우리는 반려들입니다. 함께 음식을 놓고 식사 중이지요. 우리는 서로에게 위험이 되고, 서로의 살이고, 먹고 먹히고, 그리고 소화불량에 걸리고, Lynn Margulis의 의미로는, 지구 상에서 살고 죽는 공생발생적 국면에 있는 자들입니다. “사이보그 선언속에서처럼, 우리는 시스템들의 세계에 있지만, 심포이에틱(sympoietic )시스템에 더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건 조화 속에서 만들고, 함께 만들고, 결코 하나가 아니고, 언제나 다른 세계들과 함께 루핑을 하는 것이지, 자기를 만들기가 아니고 오토포이에틱이 아니에요.

 

그리고 종, 가차없이 모순어법적인 성질의 단어는 이상적 타입이고, 코인이고, 정금(正金)이고, 돈이고, 생물학적인 실체이고, 사이언스 픽션의 종이고 뭔가 다른 것의 한 종인 세부이죠. 종은 본질적으로 엄청나게 복잡한 말이예요; 도무지 조화되지 않는 다양한 의미들로 그냥 폭발해버리죠.

 

CW: 우리가 여기서 노만 오 브라운(Norman O. Brown) 연결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겠군요(웃음..).

 


DH: , 그런데, 내 말은..., 어떤 복수종 러브즈 바디(Love’s Body), 아이고 하늘이여 우릴 도우소서!(둘 다 웃음)

그래서, 종은 놀고 있는 나의 개와 나를 훨씬 넘는 것이고,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나의 개와 놀고 있는 나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원상태로 되돌려지고 그리고 다시 되고 있는 나입니다. 나는 불꽃같이 타오르는 재능 있는 이 다른 의 젊은이와 함께 한 달에 두 번 주말에 그리고 그 외에 매주 몇 시간씩의 훈련을 해요. 하필이면 다른 곳도 아닌, NASCAR(National Association for Stock Car Auto Racing, 미국 개조 자동차 경기 연맹) 경주와 기차길 트랙이 있는 행사장, 성인식 축제(quinceañera estas) 15세 된 라틴계 여성을 위한 파티들 와 그 행사장에서 말이죠. 이 젊은이는 캘리포니아의 운동 경기장을 격렬하게 누비는데 나는 그와 함께 있으면서 캘리포니아의 사회, 농업, 산업의 역사 속에 있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미 합중국의 확장의 역사의 한가운데서, 정복당한 영토를 가로질러 행진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 행사장보다 서로에게 위험이 되는 데 더 강력한 장소가 있으면 찾아보세요(웃음).

 

CW: 어떤 점으로 보아도 그렇군요. 하하 (둘 다 웃음)

 

DH: .정말요! 우리가 게임을 하면서, 나와 나의 개, 그리고 친구들과 그들의 개, 그리고 우리가 서로 함께 되는 이 우리는 누구인지를 이해하려고 하면서요. 정말, 우리는 누구지요? 그리고 동시에, 많은 에코페미니스트들과 진심 어린 생태 환경 관련자들 그리고 동물 권리 관련자들이 우리에 관해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순간입니다. 또한, “우리를 만드는 것도요. 그들은 정말 중요한 질문을 만들거나, 제안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 함께 있는 것인가 아닌가? 내 말은, “여기는 무엇이고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크리터들은 우리에게 문제이고 서로에게 문제인가? 라는 거지요. 그리고 그들은 동물산업복합체 속에서 위기에 처해 있는데, 이것은 사이보그 선언이 만들어질 무렵인, 1980년대 초부터의 Barbara Noske의 용어였습니다. 당신은 그걸 알지요, 왜냐하면, 그들의 얽힘 속에서의 인간과 비인간의 번영에 관한 물음들의 이 교차점, 혹은 내파(內破)의 시점에 아무튼, 적절한 비유가 뭘까요? 당신은 이미 연구를 하고 있었고, 몇 년간 해 왔기 때문에 당신은 그걸 알지요.

 

CW: , 그리고 그 시기에는, 적어도 제가 시작했을 때는, 그것은 대체로 중대하지 않은 문제로 여겨졌습니다.

 

DH: 그랬지요. 어쨌든 대학가에서는 아무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나는 2002년경 우리 대학내의 한 문화 연구 퀄로퀴움에서 반려종 선언의 초고를 강연으로 발표했습니다. 한 친구 이 친구는 계속 가까운 동료이자 친구 관계로 있는데요 가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그 강연 정말 좋았어요, 멋졌지만, “사이보그와는 달리, 이것은 뜨지는 못할 것 같아요.” 그런데(둘 다 웃음), 결과적으로 그 말이 매우 예언적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여전히 웃으면서.) 이 시대, 이 세계화(worlding), 혹은 우리가 그것을 뭐라고 부르는 것이든 동물 연구”, “복수종 연구,” “반려종 연구에서, 하나의 용어로서 반려종이라는 용어만큼은 그 자체로 뜨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모든 것 속에서의 인간/비인간 분리 그런데, 그것들이 단일한 분리들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분리들 에 관한 질문, 생명력과 죽을 운명을 공유하는 자들의, 죽을 운명의 창조물들인 우리들의 합치기와 분리에 관한 질문: 이것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떴습니다.

 

CW: , 그리고 그것은 사이보그 선언과는 다르게 반려종 선언에서는 근본적으로 다른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유한성의 의미, 필멸성의 의미가 있습니다. “사이보그 선언속에 있는 것과는 다른 기록부에 있는 삶과 죽음의 현존에 대한 뚜렷한 의미.

 

DH: 그것은 다른 register에 있죠. 글쓴이의 기조는 훨씬 더 개인적이고 취약합니다, “반려종 선언속의 이야기 목소리, 그 작업 속의 ”. . .

 

CW: , 많은 사람들이 사이보그 선언을 너무나 퍼포먼스 모드로 읽었고, 그것은 나중에 당신이 받은 의견과는 다릅니다.

 

DH: 그것은 다른 목소리이지요. “왜 당신은 당신의 페미니스트, 반인종주의, 그리고 사회주의 비판을 반려종 선언에 떨어뜨렸느냐?”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글쎄요, 그건 떨어뜨려진 것이 아닙니다. 그건 적어도 그만큼이나 절실하다는 것이지만, 그것은 매우 다르게 생산됩니다. 거기 어떤 의미가 있는데, 그 의미에서ㅍ『반려종 선언은 사랑의 행동으로부터 자란 부분이 많고, 사이보그 선언은 분노의 행동으로부터 자란 편이 큽니다.

 



CW: 저는 조금도 당신이 비판을 떨어뜨렸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리고 우리가 조금 있다가 이것에 관해 이야기 하겠지만 제 생각에, 실제로는, 당신의 친구가 사회주의자, 반인종주의자, 그리고 페미니스트에 대한 헌신들이라고 부른 것들은 유지가 되지만, 그것들은, 제가 더 철두철미하게 생정치적이라고 부르려고 하는 어떤 정황속에서, 개정됩니다.

 

DH: 그것이 사실이기를 바랍니다.

 

CW: 그리고 그것은 명령-통제-소통-정보와 군산 복합체, 그리고 당신이 사이보그 선언에서 나타내고 있는 노트들과는 매우 다른 맥락입니다. 그것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아니예요. 분명히. 하지만 . . .

 

DH:: . . . 그것들은 다르게 형성됩니다.

 

CW: 아마도 그것들은 다르게 분기하겠지요. 당신이 반려종 선언에서 그것을 나타낸 것처럼, 그것들은 다르게 육체로서 나타납니다. 하나의 접점은  그리고 이것은 두 선언들 사이의 깊은 지하의 연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당신과 카이엔(Cayenne) 사이의 혀로 하는 진한 키스로부터 이 선언이 시작되는지를, 주목하고, 축하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DH: 그 가벼운 포르노의 순간. (둘 다 웃음)

 

CW: 유명이든 악명이든 당신 뜻대로 부르세요. 내가 아는 사람은 모두 그것을 좋아하지만, 그건 내가 같이 시간을 보내는 무리들이지요(웃음 계속). . . . 그러나 있잖습니까, 사람들이 놓치는 중요한 것 그것은, 그런 순간의 한가운데서는, 말하자면, 놓치기 쉽습니다 은 이 메니페스토 역시 바로 면역 시스템으로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DH: , 그렇습니다.

 

CW: 그리고 그것은 인종에 관한 물음으로 사작합니다.

 

DH: 그리고 정복. 그것은 물론 토착성과 인종의 역사들을 이어받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Posted by 수유너머104

해러웨이와 울프와의 대담 -사이보그의 시작(2)

                                      (Manifestly Haraway, The University of Minnesota, 2016)

번역: 최유미





CW: 선언에 관해 제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그리고 이 이야기는 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 학문인생에서, 사이보그선언보다, 더 상이한 목적으로, 더 상이한 독자들(단지 학계 내부만 말해서도)에 의해, 더 다양하게, 그렇다고만 해 둡시다 (웃음), 받아들여진 문서가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그건 많은 점에서 반려종선언(Companion Species Manifesto)과는 다른 종류의 생명을 가진 문서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것은 그 작품이 출간되고 잘 알려진 대로 당신이 확인한 그 경계 파괴들을 추적하던 맞아요. 그 때 그 시대의 산물이기도 하지요.

 

DH: . . . .그리고 (그 시대의 )재구성들.

 

CW: 그리고 재구성들 입니다. 하지만 또한 나는 그것이, 당신이 이 모든 것을 그 당시 과학들 속의 놀라운 변형들 (당신이 말씀한 것처럼, 지금 선택적이 아닌것으로서 사이버네틱스의 관점에서 생물학적 실체들을 이해하기) 속에 박아 넣기 위해 어떻게 끊임없이 작품 속에서 되돌아가는지를 포함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때때로, 당신이 아마 그렇게 말할지도 모르는데..., 선언의 더 미래적인 전용의 일부로부터 떨어져 나옵니다.)

 

DH: 맞습니다.

  

 

CW: 그러나 당신은 또한, 이러한 판구조의 이동들을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신의 트릭(the God-trick)”과 같은 훨씬 더 긴 이야기들 속에서의 그 교과들과 문화연구와 페미니즘 속에도 또한 박아 넣었습니다.

 

DH: 그리고 많은 점에서, 사이보그 선언의 자매지는 상황에 놓인 지식들(Situated Knowledges)입니다.

 

CW: 그렇군요.



                                       <치카나 페미니스트 첼라 샌도벌>

                                       


DH: 그러나 사이보그 선언과 함께 하면서, 나는 그때 이걸 이런 식으로 이야기할 언어를 갖지는 못했지만, 비판은 결코 충분치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랑과 분노는 지금 그것을, 이 두꺼운 섬유질의 지금을 뭐라고 부르든 간에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있는 이 시간/공간의 왜곡 속에서 이 세계 속의 존재에 대한, 감응(affect)들이고, 나의 감응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우리 시대를 진정으로 사랑할 것인가, 그리고 또 어떻게 여기서 어떻게든 서로 잘 살고 죽을 것인가? 또한 그 선언은 유색 여성 페미니즘의 특정한 순간과, 그 시기의, “우리의많은 비전과 이해들에 관한 많은 진형들의 과도한 백인 페미니즘에 대해서 첼라 샌도벌(Chela Sandoval)과 다른 여러 사람들이 설명을 요구했고 그것을 통한 계속적인 루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사이보그 선언은 페미니즘 안팎의 인종주의자 진형(formation)들과 함께 살고 (설명의) 책임을 지려고 노력하고, 그리고 정식 마르크스주의자 분석 안팎에 있는 사회주의 깊은 트러블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요... 나는 어떤 정치 속의 존재 그리고 다른 것들이 아닌 어떤 세계만을 위한 존재)라는 단순치 않고 언제나 곤란한 느낌과 어떻게든 함께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CW: , 그리고 제 생각에, 그렇게 많은 상이한 독자들에게 사이보그 선언이 열어 논 것은 정말, 대단히 중요한 용어인 아이러니(irony)라는 말입니다.

 

DH: .

 

CW: 그리고 그건 또 1980년대 아주 초기 였죠.

 

DH: , 그리고 비자기동일성(non-self-identity). . .

 

CW: 그렇습니다. 그것 또한,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그 시기의 문학 비평의 역사에서 매우 특별하게 위치 지어진 용어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 이 모든 것들 사이, 다시 말해 당신이 바로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진심에서 우러나고 깊고 감동적인 헌신들과 사이보그의 모습에 관한 이런 종류의 아이러니한 입장을 취할 수 있다는 것 사이의 작품 속에서의 균형... .

 

DH: . . .그것이 중요했습니다.

 

CW: 그렇군요, 제 생각에, 그것이 한 일은, 페미니즘이나 마르크스주의, 생물학과는 실제로 별 관계가 없이 다른 종류의 전용을 하는 훨씬 폭넓은 독자들에게 『사이보그선언를 열어 준 것입니다.

 

DH: 틀림 없습니다. 그리고, 실천 공동체들에게도 오픈 해주게 되었고, 그래서 퍼포먼스 아티스트들과 기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생각도 못했습니다. 제 말은, 제가, 분명히 말해서, 의도적으로 그런 공동체들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온갖 종류의 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독자들을 염두에 두면서 그들과 함께 글을 씁니다. 아마도 오늘 나는 내가 하고 있었던 것을 아이러니라고 부르지 못할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 말이 이런 복잡한 역사를 가졌다는 것이 그 부분적인 이유입니다. 그러나 또한 구문론의 모든 행위는, 명백히 하고, 통제하고, 알고, 확인하려는 우리의 욕망에 대한 사나운 농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문장의 끝에 도달할 때쯤에는, 우리는 진실이 아니어서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적어도 여섯 개를 말했지만,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그 문장의 끝에 도달합니다. 우리는 의미하고자 하는 것을 단순히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언어가 작동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CW: , 그리고 아이러니는, 반려종 선언에서 당신이 사용하는 많은 모습들을 포함한 훨씬 더 철저한 어휘로서 당신이 개발할 것의 약칭이었습니다.

 

DH: , 물론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제가 사이보그 선언을 쓸 때, 산타 크루즈에 있는 켈리포니아 대학 의식사 프로그램의 신참 교직원이었습니다. 매우 흥미로운 진형이지요. 나는 거의 저에게는 새로운, 인문 과학(human science) 분야의 많은 현대 이론을 배우려고 여전히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지를 보기 위해 문장 속에 있는 단어들을 사용하면서, 마치 다시 초등학생이 된 것처럼 말이죠. . .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이보그 선언은 그 프로그램의 내 동료와 대학원생들로부터 얻은 지식들, 이전에는 내것이 아니었던 것들이죠.. 그 일부를 시험해 본 것이고, 그 지식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후기구조주의와 탈구축의 일부를 이루게 됩니다 야콥 폰 우엑스퀼과 롤랑 바르트 등의 몇몇 이론들. 그 논문은 나의 새로운 활동 무대에서 나 자신의 위치를 발견하기 위한 나의 접근법이기도 했습니다.

 

CW: . 일련의 새로운 담론들 속에서. . .

 

DH: 그리고 나는 많은 실수를 저질렀는데, 가끔씩은 행복한 실수가 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 중 일부는 일부러 저지른 실수였고요.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사용하는 그런 방식으로 그것들을 사용하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그리고 일부는 내가 진짜로 이해를 못해서 한 실수였는데, 결국은 재미있게 되었습니다.

 

CW: 모든 사람이, 물론 특히 당신 경력의 역사를 감안하면 모든 사람이 사이보그 선언을 페미니스트 사상의 전체 역사에서 하나의 핵심적인 문서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회주의자 사상에서는 덜 그렇습니다. 제 생각에, 그것은 당신이 쓰신 것과 관련되어 있기 보다는, 그 당시까지만 해도 여전히 매우, 매우 강건한 전통이었던 아카데미 속의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의 운명들을 실제로 바꾼 아카데미 안팎의 그 모든 과잉결정적인 수용력들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전에(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프레드릭 제임슨(Fred Jameson)은 저의 논문의 첫 번째 독자였고, 되돌아 보면 이제 제가 보기에 그리고 저는 이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어떤 점에서는, 그가, 아이러니컬하게도, 마지막 유럽 지성인인 것 같습니다.

 

DH: 아이러니하죠.

 

CW: 어떤 특정한 전통의 지성인

 

DH: 그런데, 나는 선언을 쓸 즈음에 정치적 무의식The Political Unconscious도 읽었습니다. 푸코는 그 당시 오래된 친구였지만, 제임슨은 아직 아니었습니다.

CW: , 그래서, 우리가 쓰는 이런 것들의 운명이, 어떻게 지성인의 진형들 만이 아니라, 이러한 훨씬 크고 상당히 제도적인 힘들에 달려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서

 

DH: 그러니까, 그게요, 동부 Socialist Review 집단은 사이보그 선언를 싫어했고, 버클리에 위치한 연안지역 Socialist Review[SR] 집단은 그것을 수용했는데, 주된 이유는 제프 에스코피어(Jeff Escoffier)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매우 정치적이었고 훌륭한 편집자였습니다. 선언은 SR에서 즉각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많은 종류의 페미니즘 내부에서도 즉각적인 논쟁을 야기했는데, 주된 이유는 그것이 반-과학과 반기술(anti-science-and technology)의 입장과 어휘를 단호히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나의 사이보그는 그런 건 아무 것도 없지만, 또한 기술에 취한 기술신봉자이기도 거부했습니다. 그것은 확실히 진지한 비판이 필요했던(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필요한) 방대한 것들에 대한 단순한 비판적 접근을 거부했습니다. 단순한 비판적 접근은 페미니즘과 신좌파 사회주의의 일부 핵심적인 영역에서 하나의 유혹이었죠. 사이보그 선언, 과학과 기술에 대한 그 관계에 면전에 대놓고 의도적으로 하는 NO였고, 그것은 처음부터 논란을 야기했습니다.

 

CW: ,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작품 속에 있는 아이러니의 형상으로 되돌아가게 하지만, 그것이 또한 그것이 가진 관련성이란 관점에서 사이보그 선언의 극도로 긴 생명을 설명합니다. 당신이 뒤흔들어 놓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그 이야기들 중 어떤 것이라도 따른 적이 있습니까, 사이보그 선언...,

 

DH: 그런 경우도 있었을 겁니다(안 그런 쪽이 많다는 의미임)

 

CW: 바로 말씀대로입니다. 괜찮은 에세이 같은 것이 있었을 테지요.

 

DH: 그렇지만 계속 혼란스럽습니다. 나에게는 계속 혼란으로 있어요.

 

CW:

 

 

Posted by 수유너머104

[코너소개] 이글은 2016년에 출판된Manifestly Haraway에 실린 것으로 캐리 울프(Cary Wolf)가 다나해러웨이를 인터뷰한 것이다캐리 울프는 미네소타 출판의 포스트휴머니티(Posthumanities) 시리즈의 편집자이고, 최근에는 동물연구, 생명윤리, 그리고 포스트휴머니티의 입장에서 중요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다나 해러웨이는 이 시리즈물에서 『When Species Meet』을 썼다. 이 인터뷰는 2014년 5월 11~13사흘간 다나 해러웨이와 그의 파트너 러스틴 호그니스의 산타크루즈의 집에서 이루어졌다이 인터뷰에는 다나 해러웨이의 중요한 선언들인 사이보그 선언과 반려종 선언을 둘러싼 이야기들과 뒤에 2016년에 발표된 “Staying with the trouble”에 실린 몇 편의 선언들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해러웨이 문제의식전반을 알 수 있는 인터뷰다.


대화의 반려들

Donna Haraway, 『Manifestly Haraway』, Minesota University Press (2016)




번역: 최유미/수유너머104



<Manifestly Haraway>





1. 사이보그의 시작

 

Cary Wolfe: 

두 가지 선언의 최초의 정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당신이 하시고 싶은 어떤 방식으로든 말입니다. (지식적인 면, 제도적인 면, 정치적인 면에서) 그리고 그것들이 어떻게 그 작품들 뒤에서 구성과 동기부여만이 아니라 그것들(두 선언들)의 수용까지도 형성했는지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분명히 1983(사이보그선언이 발표된 해) 이후 많은 것이 변했지만, “반려종선언(Companion Species Manifesto)” 이후에도 역시 많은 것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에, 그렇게 하는 것이 두 가지 작품의 미래를 탐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 작품들이 사람들이 지금하고 있는 일에 관계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 거기서 시작해 보시죠.


                         <사이보그선언 -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주의-페미니즘>


Donna Haraway:

 “사이보그선언(Cyborg Manifesto)”으로 시작합시다. (당시는 1980년대 초기였는데) 레이건 대통령 초기에 사회주의자-페미니스트, 맑시스트-페미니스트로서 그런 진형(陣形)들이 무엇을 의미했는지에 관한 이해는 상당히 폭넓은데 여러 가지 방식으로 견해를 같이 했던 몇몇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Socialist Review West Coast Collective로부터 요청을 받았습니다. 레이건-대처 시대로서 우리가 이후에 보게 되는 이 국면에서 무엇이 가능한지, 어디로 움직이는지, 지금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생각하는 글을 몇 페이지 써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1960년대는 완전히 끝났다는 것이고, 우리의 정치와 상상에 관한 커다란 희망은 심각한 트러블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자신의 운동 안에서, , 그리고 우리의 더 큰 역사적 순간 안에서 말이지요. 그것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생각했습니까? “Cyborg Manifesto”는 부분적으로는 그 초대에서 나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Socialist Review를 대표해서, 신좌파(new left)와 동유럽과 유로, 그리고 아메리카당의 포스트 신좌파들의 유고슬라비아 회의에 발표할 논문을 준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 회의에서 나는, 회의에서 참석하고 일하는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매우 흥미로운 다른 맑시스트-페미니스트들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누가 복사를 하고 있는지 그리고 누가 발언을 하는지에 관한 이슈들 결코 사라지지 않는 구식의 페미니스트 이슈들 같은 그런 종류의 것들 - 에 관해 즉각적인 유대관계를 경험했습니다.

 

이 선언은 이런 다양하고 직접적인 정황으로부터 나왔지만, 더 나아가서는, 스푸트니크(Sputnik; 1957년에 처음으로 발사한 소련의 인공 위성)에 의해 교육받은 머리로 성장하게 된 2차 대전의 어린이라는 점으로부터 나온 바가 매우 큽니다 - 다시 말해서, 미국이 소련과 우주 경쟁을 했던 사실, 그것이 낳은 결과로는 국방교육법(National Defense Education Act)과 과학교과서의 개정, 생물과학전반과 심지어 사회과학분야까지 교과서 개정들이 있었습니다.(내 친구 Susan Harding은 같은 사회적 국면으로부터 나왔던 중등학교 교과과정 개편, , MACOS(Man a Course of Study)에 관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1980년대 초에 나는 산타 크루즈(Santa Cruz)로 옮겼는데, 그전에는 존스홉킨스(Johns Hopkins)에서 그리고 그 이전에는 하와이대학(University of Hawaii)에서 가르쳤습니다. 홉킨스의 응용물리학실험실과 하와이에 있는 태평양 전략 사령부 덕분에 나는 엘리트 연구 기구 속에 그리고 실제 공간들 속에 구현되고 내장되어 있는 그대로 군사 산업 복합체들을 보았습니다. (Johns Hopkins에서 가르친 일이 나를 어떻게 형성시켰는지에 관해서는 할 말이 많은데, 예를 들면, 위생학교실과 공중보건의 역사에 관해 배운 것이 있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이들 복잡한 자본주의, 군사주의, 제국주의 기타 등등의 진형들의 내장되어 있는 제도화한 그리고 정치적인 기구들에 의해 형성되었습니다. 볼티모어(Baltimore)는 또한, 낸시 핫속(Nancy Hartsock)과 더불어 볼티모어 실험고등학교(Baltimore Experimental High School) 뿐만 아니라 활동적인 맑시스트-페미니스트 집단을 경험한 곳이고, 내가 사랑하고 후에 남편이 된 러스틴 호그니스(Rusten Hogness)가 가르쳤던 곳이고, 마지 피어시(Marge Piercy)의 아나키스트-페미니즘을 읽고 받아들이게 된 곳입니다.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나는 과학의 역사를 가르치고 배우고 있었고, 그것은 나에게 매우 중요한 것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 하와이지요. 예일 대학의 생물학 대학원생으로 하와이에 도착했습니다. 당시에 나는 생물학이 문화와 실천이고, 문화와 정치이고, 물질적 자연문화(material natureculture) 라는 점에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물질적 자연문화는, 그러니까, 이건 내가 나중에 만든 말들이지만 이미 깊이 연관된 접근방식들이었죠. 그리고 그때, 게이 남자 제이 밀러(Jaye Miller)와 결혼 했는데, 그의 전 생애 동안 그는 내 마음의 친구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결혼은 나쁜 생각이었습니다 우리가 뭘 했겠습니까? 나는 우리가 정말 순진한 형태의 근친상간에 종사하고 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나는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웃음). 우리는 그곳에 있었습니다, 예일에서 와서, 그러니까, 호놀룰루에, 뉴헤븐그린(New Haven Green, New Haven 중심부의 퓨리탄들이 개발한 사유私有 공원, 예일대학이 옆에 있음)처럼 보이는 곳에 상륙했고, 이곳이 처음부터 다시 예일-뉴헤븐그린(Yale-New Haven Green), 프로테스탄트들, 조합 교회주의자들, 선교사들, 사탕수수 가문들, 미국 프로테스탄트 헤게모니의 상업적이고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기구들의 후손임을 아실 겁니다. 우리는 거기 있었습니다: 하와이 주권 운동의 부활을 포함해서, 플렌테이션들, 식민주의들, 인종적 진형들, 베트남 전쟁 중의 태평양 전략 사령부, 섹슈얼과 친척과 젠더 실험, 활기찬 사회 운동들 그 모든 것, 그리고 물질적으로 그 땅에 구현되어 있는 그 모든 것.

 

사이보그선언, 이 크고 작은, 은밀하고 거대한 문제들로부터, 이 세계에서 현재의 내 모습으로, 내가 형성되었다는 이해가 모여진 것입니다. 그 문제들은 너무나 커서 이해할 수 없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우정과 정치와 연애 사건과 2차 대전 후 미국 패권, 기타 등등의 은밀한 조직(tissue)들 속에 살고 있죠. 특히 정보로 포화된 문화, 정보 과학으로 포화된 문화와 정치 속에서, C3I (Command Control Communication Intelligence) 속에서 권력이 취한 형식으로 살았습니다. C3I는 베트남 전쟁에서 맥나마라(McNamara)계획의 중심이었습니다 이건 전쟁에 대한 특별한 사이버네틱 합리화인데, 많은 부분이 하와이에서부터 수행되었습니다. 그 때는 하와이 원주민들의 주권 운동들, 페미니즘 및 생식과 성적인 자유를 위한 투쟁. 하와이든 아니든 땅과 노동 투쟁 운동들의 바로 그 시기였고, 하와이에서 철수하는 플렌테이션 농업의 뒤를 호텔 산업이 이었고 관광 산업이 팽창했던 시기입니다. 나는 이 모든 것들로부터 한 개인으로 형성되었습니다.

 

                                    <린 랜돌프의 회화작품: 사이보그>


그리고 나는 언제나 생물학, 크리터들, 앎의 방식들과 깊이 사랑에 빠졌고 계속 그렇게 지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시스템으로서 하나의 정보 시스템, 노동의 분할에 의해 나누어진 하나의 시스템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해, 나로 하여금 어떻게 우리가 우리 자신을 포함한 이 세계를 아는 방식이 앎을 위한 특정한 기구들 속에서 역사적으로 상황에 놓여 있는지에 관해 더욱더 의식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의 열기관으로 압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의 전화교환국으로 압니다. . . .이것들은 결코 단순한 비유가 아닙니다 우리는 정말 이러한 지식 실천들 속에서 역사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것들은 만들어질 수 있지만, 날조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사이보그 선언는 이 세계 속에서 존재하고 있음과 이 세계 속에서 책임 있음을 이해하는 이러한 수렴적인, 나아가서는 내파적인 방식들을 인정하려는 노력이었습니다. 나는 어떤 특정 역사적 순간에, 한 사람의 페미니스트로서,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생물학자로서, 선생으로서, 친구로서 기타 등등으로서 쓰고 있었습니다.

 

Posted by 수유너머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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