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의 유동하는 시점과 페르난두 페소아

 

 

 

 

 

 

 

 

김민경(문학세미나 회원. 설치미술 작가)

 

 

 

 

 

 

감각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 다양한 존재 만들어낸다. 가령, 오늘 같이 봄바람이 이마를 스칠 때 단순히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느끼는 게 아니라 리카르두 레이스라면 어떻게 느꼈을까, 꼽추 소녀라면 창가에 앉아 이 바람을 어떻게 감각하고 표현했을까 생각해본다. 감각을 내가느낀다고 생각하지 않고, 지독히 세밀하고 예민하게 느끼기 위해 존재를 쪼개고 시점을 대입해 그 순간을 관찰한다. 페소아가 글쓰기이자 예술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페소아의 창작물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어떤 이명은 위대한 예술가로 칭하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소녀와 같은 작고 연약한 존재를 창조하는 부분이었다. 꼽추 소녀가 나는 온통 눈물이에요라고 표현한 문장을 잊을 수 없는데, 감정을 이입하지 않고 나올 수 없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페소아의 이런 존재 창조를 통한 이성적인 감정 대입에서 1인칭 시점의 초월이 발생한다. 응시하는 대상을 향한 소실점 뒤바꾸기가 일어난다. 페소아는 응시하는 대상을 여러 방향에서 바라보는데 그 다시점은 회화에서 흔히 사용하는 선형원근법을 전복한다. 놀랍게도, 선형원근법의 위상을 처참히 몰락시키고 있는 동시대의 유동하는 이미지와 맞닿는 지점이다.

 

히토 슈타이얼 (Hito Steyerl) ,< 스크린의 추방자들 >

 

2017, 영국 아트리뷰 의 파워 미술인 100(The Power 100)’ 1위를 차지한 예술가이자 이론가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은 그의 저서 <스크린의 추방자들>에서 이렇게 말한다. “선형 원근법은 몰락했다.” 선형원근법이란 소실점이 한 개로 모이는 원근법으로 르네상스 시기 이후 회화의 기본 약속이자 법칙으로 작용한 투시법이다. 2차원 평면에 3차원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기하학적인 기초 위에서 과학적인 방법으로 시점을 체계화시킨 일종의 공식이다. “투시가 틀렸잖아.” 미술학원에서 정물화를 그릴 때,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지적인데 원근법은 관찰자를 한 지점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상정하기 때문에 확고한 소실점이 생긴다. 때문에 선의 방향이 조금만 틀려도 어색하게 느껴져 틀린시점인지 아닌지 바로 드러난다.

 

선형 원근법은 수학적이고 평평하고 무한하며 등질적인 공간을 산출하고 이를 현실이라 가정한다. 아래는 히토 슈타이얼이 그의 저서에서 선형원근법의 몰락을 설명한 부분이다. 선형 원근법은 마치 이미지의 평면이 실제세계로 열린 창인 것 마냥, ‘외부에 대한 유사-자연적 조망의 환영을 창조한다. 선형 원근법으로 설정된 공간은 계산, 항해, 예측이 가능한 공간이다. 그것은 미래의 위험을 계산하여 예측하고 따라서 관리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계산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우리는 안정된 바닥 위에 서서 편평하고도 사실 상당히 인공적인 지평선 상의 소실점을 주시하고 있는 관찰자를 상정할 수밖에 없다. 몇 백 년간 과학적 토대 위에서 권위를 지켜온 선형 원근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론에 기초하는 안정된 관찰자를 상정한다는 깊은 모순을 갖고 있다. 역동하는 동시대 이미지들은 이 예측 가능한-기하학적-시선을 가볍게 무너뜨린다.

 

동시대 실제 관찰자는 예측 불가능하다. 바닷가에 빨간 등대가 있고 그것을 바라본다고 가정해 보자. 현대 사회 관찰자는 이 붉은 등대를 넘실대는 배 위에서 바라볼 수도 있고, 흔들리는 케이블카 위에서 볼 수도 있으며, 달리는 차에서 목격했을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달리는 기차에서 영상으로 찍은 등대를 프랑스에 있는 친구에게 전송하여 그 친구가 저녁을 먹을 때 식탁에서 다시 꺼내볼 수도 있다. 빨간 등대는 액정 속 픽셀로 등장했다가 사라지고 복제되는 등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나타난다.

 

동시대 이미지는 고정된 캔버스가 아닌, 이 화면에서 저 화면을 떠다닌다. 작은 픽셀로 쪼개지고 폴더나 휴지통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등 불안한 매체로 재현된다. 페소아가 만들어내는 존재들은 언어로 탄생하고 사라지기도 하며, 한 시점에 안착하지 않는 흔들리고 불안한 상태로 사물을 바라본다. 그의 상상된존재와 상상하는시점이 현시대 이미지 재현과 들어맞는 지점이다. 페소아는 다양한 이명을 만들어 고정되고 안정된 시점을 전복하고 넘실대며 흔들리는 관찰자를 창조했다. 시각 이미지를 바라보는 데에 원근법이 더 이상 권위를 내세우지 못하는 이 시대에, 페소아적 접근방법- 즉 새로운 시점과 존재를 창조해 거기에서부터 바라보기-가 한 탈출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예측해 본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매체가 등장함에 따라 시공간이 뒤섞여 재현되는 이 때, 우리가 페소아를 들여다보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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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에 매혹되다

"나에게 힘을 주는 요가"

 

 

이봉순(수유너머 104*요가반 반장) 

그렇게 끙끙대며 아파할 거면 시간과 돈 들여서 요가는 왜 하니?”

 

1년 반 전쯤 내가 귀중한 1년간의 휴직 기간에 요가를 1주일에 거의 4번씩 하고 있을 때 주위 사람들이 또 나 스스로도 자주 했던 질문이다. 그럼에도 계속 지속했던 이유는 건강해져야겠다는 절박함, 요가를 통해서 내 몸이 조금씩 좋아질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요가 동작(아사나)에 이미 오래 전에 매혹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처음 요가를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 왼쪽 팔에서 시작된 통증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자고 일어나니 목이 뻐근했는데 그때부터 왼쪽 팔이 저리고 급기야 밤이면 등 쪽이 아파서 잠을 못 이루게 되어 결국 병가를 내고 아침에는 정형외과, 오후에는 한의원을 다니면서 한없이 우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왜 아픈 걸까? 고민하며 그렇게 시간을 들이고 치료를 받는데도 쉽게 없어지지 않는 통증을 이해하기 위해 집 근처 도서관에서 온갖 민간요법과 건강 관련 서적을 읽게 되었고 그 끝에 요가를 시작하게 되었다.

 

요가 관련 책을 보면서 사진으로 접한 숙련자의 동작들은 나의 눈길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몸이 이렇게 구부러지고 접히고 팔로 뒤집어 설 수 있는 것일까? 발레리나의 유려한 춤동작보다도 나에게는 요가동작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처음 요가를 했을 때 나는 요가에 매혹되었다. 호흡과 동작에 집중하는 고요한 그 시간이 끝나고 누워서 송장 아사나를 할 때 생각했다. ‘! 평생 요가나 하며 살았으면...’ 돌아보니 그때 다녔던 요가원도 지금 수유너머의 요가반에서 하는 하타 요가 스타일이었다(수유너머 요가반의 요가동작은 더 난이도가 높고 시간도 두 배^^). 인도의 요가철학과 동양의 전통사상을 함께 녹여내고자 했던 그 요가원의 원장이 쓴 저서들을 읽으면서 요가의 철학 그리고 수련 방법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통증이 사라지고 나니 또 절박함이 사라지고 바쁜 일상을 보내느라 오랫동안 요가를 못하다가 마음속에 품고 있던 요가를 드디어 다시 시작하게 된 지 이제 2년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요가를 하면 크고 작은 통증이 함께 오기도 한다. 그 통증은 더 단단해지기 위해 거쳐야 하는 몸의 반응인 것 같다. 몸은 굉장히 정직하다. 개인마다 재능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듯이 요가동작에 숙련되는 속도도 차이가 나지만 결국 시간과 노력이 축적되면서 몸은 자신의 속도에 맞게 분명히 변하기 때문이다. 전혀 가능해보이지 않던 동작을 하게 된 날의 성취감은 마음의 힘을 길러준다. 불과 2년 전의 내 모습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요가가 나에게 준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몸에 힘이 생기니 마음이 단단해지고 스트레스에 조금씩 강해졌다. 학교가 끝나면 집에 와서 침대에 누워 한참을 있다 일어나기도 하고 때로 그냥 잠들어버리는 때도 많았었는데 지금 수유너머에 나와서 세미나도 하고 또 요가도 꾸준히 할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이 나는 요가로 인한 신체의 변화 때문이었다고 믿는다. 매번 반복되는 동작을 조금씩 완성해나가면서 느끼는 작은 기쁨과 그 쌓이고 쌓인 시간 뒤에 오는 내 신체의 변화가 나의 몸과 마음에 힘을 주었다. 불과 1년 전의 나는 요가를 하고 나면 어질어질하고 가쁜 숨을 내쉬며 이렇게 힘든 것을 계속 해야 하나 되묻곤 했고, 제법 무거운 수유너머 요가반 매트 4장을 한꺼번에 드는 것은 생각도 못할 상태였다^^.

 

처음 요가를 시작하면 고수들의 고난이 동작을 보면서 좌절하거나 의기소침해지기도 하는데 욕심을 내서 무리를 하는 것이 제일 금해야 할 일이다. 요가를 할 때 남들과 경쟁하지 말아야 하지만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경쟁해서는 안 된다는 충고가 도움이 많이 되었다. 요가를 할 때 중요한 것은 오히려 호흡, 응시, 동작 순이라고 들었다.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고 각 동작마다 한 곳을 응시하면서 몸과 마음의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렇게 천천히 한계를 높여서 시간을 들이다보면 어느새 안 되던 동작이 완성되고 거기에 맞춰 신체가 변화한다. 신체가 변화하면 생활의 습관과 감각이 변하고 나아가 마음과 인식이 변화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요가를 아무리 긴 시간동안 했다 해도 또 아무리 쉬워 보이는 동작이라도 요가를 할 때마다 한 동작 한 동작을 온 힘을 다해 하면 매순간 어렵고 또 새롭다. 하루하루 반복되지만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삶의 순간순간처럼 요가도 매번 같은 동작을 하지만 그때마다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나에게 요가 하는 것은 평생 만날 어렵지만 매력적인 친구를 가진 것이다. 요가가 아니라도 다른 좋은 친구들도 많지만 이렇게 좋은 친구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소개시켜주고 싶기도 하고 또 함께 만나고 싶다. 수유너머 요가반에서 친구들과 함께 하는 요가 그리고 끝난 뒤 보이차와 함께 하는 차담이 있어서 요가와 더 깊이 사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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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세미나 후기


나를 발견하는 거울

-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와 『페소아와 페소아들





이재현/수유너머104. 문학세미나 회원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이라는 제목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 들었던 생각은 내 불안의 기원을 찾을 수 있을까, 싶었던 것과 동시에 “OO(여기엔 우울, 행복, 기쁨, 만족, 게으름 등이 해당한다.)/(적절한 조사 자리)/□□(여기엔 기원, 정복, 여정, 접속, 괜찮아 등이 해당한다.)”라는 제목을 가진 책 치고서 정말 멀쩡한 책이 있는가, 하는 의문도 함께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허나 시선을 조금 내려 배수아 작가가 이 책을 번역했고, 이후엔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에도 포함된 것을 확인한 뒤엔 기꺼이 서가에서 뽑아들 수 있었다.

그렇지만 불안의 책을 읽어나가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원래도 충분히 있는 내 불안을 더욱 증폭시키려는 듯이 두터운 산문집 속 수백 개의 산문들은 일련의 통일성과 흐름을 배반하면서 제각기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때로는 인류역사의 유구한 문제들에 대한 이성적 논증으로, 때로는 자연의 풍경이 불러일으키는 심상의 표현으로, 또 때로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존재들과의 일화로, 다시 때로는 꿈속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그리워하는 이들을 마주대하며 느끼는 소회로 이어지는 글들을 읽어나가다 보니 페소아가 펼쳐 보이는 소재와 감성의 다양성과 그 깊이에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단순히 한 화자의 내면의 넓이로서만 설명할 수도 없는 것이, 앞에서 말한 것들을 뒤에서 다시 반박하는 순간까지 마주치게 되면 과연 이 책을 믿고 따라가도 되는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불안의 서.jpg

페르난두 페소아,불안의 서』(배수아 역, 봄날의책, 2014)

페루난두 페소아,『불안의 책』(오진영 역, 문학동네, 2015) 

 

난 존재하지 않는 패거리를 만들어냈어. 이 모든 걸 실제 세계의 틀들에 맞췄지. 서로 주고받는 영향들에 눈금을 매기고, 우정 관계들을 구체화시키고, 내 안에서, 다양한 관점들과 토론들을 경청했고, 이 모든 것으로 봐서는, 그들 모두를 창조한 사람 그러니까 나는, 가장 거기에 없던 사람이었어.”

 

페소아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직접 자신의 창작과 이명과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는데, 이만큼 페소아의 문학세계를 명약관화하게 드러내는 구절도 없을 것이다. 페소아는 독특하게도 수십 가지의 이명을 내세워 글을 썼다. 그런데 페소아의 이명은 본명을 가리기 위한 한두 가지 필명의 수준이 아니라 각자의 개성적인 자아를 가진 수십 명의 인물들의 목록이었다. 불안의 책또한 페소아 본명이 아닌 베르나르두 소아레스가 화자이며, 심지어 페소아와 페소아들알베르투 카에이루와의 인터뷰내 스승 카에이루를 기억하는 노트들에선 각각의 이명들이 함께 등장해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논쟁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책의 원제는 ‘Livro do desassossego’입니다. ‘desassossego’는 조용함과 평정의 반대말로 포르투갈에서는 흔히 쓰이지 않는 문어적 표현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책 자체가 불안한 것입니다. <불안의 책>은 애초에 완성될 수 없는 책이었습니다.”

 

불안의 책은 제목과는 달리 불안의 감정들만 수록되어 있지는 않다. 그 안에는 현대인의 신앙과 종교(특히 기독교와 이교), 비관주의와 신비주의, 예술과 부조리, 도시와 시골, 우정과 사랑, 행동과 관조, 권태와 슬픔 등 한 인간이 자신의 전 생애에서 만들어내고 느낄 수 있는, 아니 어쩌면 하나의 자아만으로는 결코 가닿을 수 없는, 가능한 모든 감상과 의식의 총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불안의 책인가?


일본 웹에서 불안의 책을 검색하면 不穏”, 즉 불온의 서로 번역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네이버 포르투갈어사전에서도 ‘desassossego’불안, 걱정, 근심과 함께 ‘(사회적) 불온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하니 산문집 안에서 현실과 꿈을 막론하고 온 세계로 뻗어나가며 위태롭게 흔들리는 불온한 감정들을 이해할 수 있을 듯싶다. 안온한(듯 보이는) 세계와 불화하는 개인 내면의 불온한 감정들은 불온하지 않은 방식으로 나타날 수는 없을 것이다. 불안의 책은 분명 소아레스라는 1인 화자의 진술이지만 페소아의 모든 이명들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데, 이는 동시대와 다른 감수성을 지닌 개인이 단독자로서 홀로 서 있기 어려운 현실의 맥락을 감안할 때 일관성의 부족이 아니라 필연적인 다양성의 촉발로 이해될 것이다.


백년 전 포르투갈의 어떤 시인이 다양한 화자들을 내세워 서술한 불온한 감정들은 지금의 나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왔는가.


페소아는 내가 말하지 못한 나를 발견하게 하는 거울이다. 불안의 책에서 페소아는 거울을 발명한 자는 인간의 영혼에게 독약을 준 것이다.(466)”라고 했다. 페소아에 따르면 인간이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그 자신에게 그보다 더 끔찍할 수 없는 일이며, 거울 이전에는 수치스럽게 허리를 굽혀야만 겨우 가능했던 일이다. 여기에서 페소아가 말하는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는 행동은 나에겐 내 내면의 깊은 곳을 바라보는 행위로 다가왔다. 인간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외면하고픈 못난 본능과 추악한 욕구, 역겨운 호승심과 비루한 자아의 덩어리를 확인하는 일이다. 그런 혐오스런 혼합물을 직면하는 것은 달갑지 않으나 바로 내 것이기에 자꾸만 확인하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페소아는 내가 미처, 또는 애써 언어화하지 못했던 나를 언어화해 보여주었고, 때때로 그것은 영혼의 내벽을 긁어대는 언어로 된 사포이기도 했으나, 하릴없이 주변으로 헛도는 내 고개를 나 자신을 직시하도록 붙들어 주었다.


동시에 페소아는 내가 그토록 찾아다녔던 동지들과 마주치게 하는 도라도레스 거리이기도 했다. 비록 현실의 거리에서 페소아는 그와 함께 동행할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지만, 그러한 현실에 굴하지 않고 그는 자신 안에 있는 이명들과 함께 글을 쓰며 꿈꾸었다. 페소아와 같이 나도 나와 다른, 그러면서 동시에 같은 사람들과 함께 읽었기에 두 달이 넘는 긴 시간동안 천천히 페소아를 따라갈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페이스메이커였을 뿐만 아니라 맥루한이 미디어는 인간의 감각을 확장한다고 말한 것처럼 우리들은 각자가 미디어로서 서로의 옆에 있었다. 각자가 홀로 살아왔기 때문에 알 수 없었던 분야의 지식들, 삶의 결과 감정들을 우리는 페소아를 가교로 하여 나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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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두 페소아,『페소아와 페소아들』(김한민 역, 워크룸프레스, 2014)


불안의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들어오는 단장의 번호를 적다보면 어느샌가 숫자세기 놀이가 돼서 이게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했는데 책장을 표기하기 위해 붙여둔 스티커들로 두꺼워진 다른 사람들의 책들을 보며 모두 같은 심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다만 그중에서도 꼭 몇 개만 꼽자면 역시 자신 주변의 가깝고 작은 친구들에 대한 동지애를 드러낼 때였다. 반 정도 남긴 포도주로 손님의 좋지 않은 컨디션을 알아차리고 인사말을 건넨 종업원의 동지애(24), 고향으로 떠나는 사무실 사환 아이를 보며 사무실 사환 아이가 떠났다.”라고 감정을 자제하려 하나 비통하게 되뇌고 마는 그의 모습(279)은 타자에게 냉정하려고 애쓰지만 결코 감추지 못하는 페소아의 인간을 향한 따뜻한 동지애를 드러낸다. 인간의 경지가 아닌 것들을 이야기하다 그에 가닿을 수 없는 스스로를 인지하며 생기는 인간적인 간극(특히 오마르 하이얌, 446~448)도 페소아라는 이름을 기억에 오래 남겼다.


우리는 페소아에 이어서 프랑스 초현실주의 문학을 읽어가기로 했다. 언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글에게서 진정한 행복을 찾는 이들의 글을 읽는 것은 나에게도 가장 큰 행복이다. 매번 마주치는 행운에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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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나스&화이트헤드 읽기 세미나]




영진(수유너머104 세미나회원)




애초에 호기롭게 달려들었던 세미나 였지만 평일 빡빡한 일정에 지레 겁을 먹고 하차할 뻔 했으나 종헌 반장님의 아량과 넝구쌤의 한결같은 환대와 유혹 속에 드디어 세미나에 첫 참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앞서 <타인의 얼굴> 책 표지 속에 희미하게 웃고 있는 대빵 만한 레비나스 선생님의 미소를 차마 외면할 수가 없어 몰래 야금야금 읽으며 5장에서 6장을 읽어나가는 찰나에 이건 반드시 제대로 읽고 나누어야 돼! 하는 생각이 섬광처럼 번뜩 였더랬죠! 덕분에 이 명저의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게 될 수 있어서 매우 기쁜 마음입니다

 

간략하게 함께 공부했던 내용을 나누자면, 5장에서는 책임과 대속의 주체에 대하여, 그리고 6장 에서는 고통과 윤리에 대하여, 7장에서는 레비나스 철학에 대한 종합과 철학사에서의 의의를 정리하는 내용 이었어요! 

 

5장은 넝구샘 께서 발제를 맡아주셨어요! 책임과 대속적 주체에 관한 레비나스의 혁명적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장 이었는데요, 각 장의 핵심 내용을 마치 아이들을 가르치듯 쉽고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해주셔서 머릿속에 쏙쏙 내용이 들어와 제대로 복습이 되었습니다. 장의 말미에 샘이 만나신 작품들과 일상에서 경험했던 생각들을 덧붙여 주셔서 더욱 재미있었습니다.

 

6장은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하신 종헌샘이 발제문 으로나마 자리를 함께 해 주셨는데요, 전반부에서는 고통과 윤리에 대한 내용을 역시나 체계적이게 잘 설명해 주셔서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후반부에는 이에 대한 종합과 레비나스 철학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주변 사건과 경험을 통해 구체적으로 전해주셨습니다. 글 속에 샘의 목소리가 생생히 전달되었어요. (종헌샘의 영혼의 동지 재중샘이 여러 번 심장 어택을 당하셨다는...)

 

7장은 쫑샘께서 발제를 맡아 주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철학에 대한 공부가 짦은 지라 7장에서 레비나스 사상과 서양철학의 주류체계를 비교하고 언급하는 부분이 많아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고 정리가 잘 안되었었는데, 차이점의 핵심을 잘 정리해 주셔서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여전히 어렵지만 발제문을 곁에 두고 복습하고 있습니다. 감사해요! :)

 

이어진 나누기 에서는, 각자의 경험 속에서 레비나스 철학을 만나게 된 일화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넝구샘은 다르덴 형제의 ‘자전거 탄 소년’ 속 시릴과 사만다의 이야기를 통해, 쫑샘은 암투병중인 친구와의 일화에서 겪었던 아픔을 통해, 재중샘은 톨스토이의 작품 속 성지순례 과정 중 두 노인의 상반된 행보를 통해, 모현샘은 동양 철학 중 묵가 사상과의 유사점을 통해, 그리고 종헌샘은 소수자 그룹에서 지내면서 깨닫게 된 사랑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어요. 저는 지하철에서 종종 도움을 간청하는 사람들을 외면해 왔던 기억이 떠올랐는데요. 헐벗고 굶주린 모습으로 나에게 간청하는 타자를 그저 내 생각으로 재단하며 피해왔었던 경험을 통해 타인을 대신해 고통을 받고 기꺼이 내어주는 행위가 나에게 얼마나 어려운 것들 이었는가 하는 생각을 하며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게 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윤리학을 제 1철학으로 보려했던 레비나스 선생님의 의도가 성공적 인 것 같습니다.)

 

이어서 기억에 남는 담론은 마지막에 재중샘이 던져 주셨던 의문 속 오갔던 이야기들 이었습니다. 타인에 대한 책임과 대속의 의미에서, 타인의 일깨움에 의한 책임이 윤리적 불면과 나를 고귀한 영적 존재로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결국 내가 스스로 주체됨과 혼동하여 잘못 이해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것, 대속의 의미가 모호하게 이해된다는 의문을 던져 주셨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어요.

 

타자에 의해 책임적 존재로 지정받은 내가 타자를 위한 책임적 존재로 세워지는 모습은, 자리바꿔 세움 받음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넝구샘 께서 말씀해 주신 고난 받고 부활하는 예수의 모습(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며 좌절의 목소리를 내던 예수가 인류의 죄를 대신 받고 죽음에 이르고 부활하는 과정)을 책임과 대속의 과정으로 이해 할 수 있고 그 외 쫑샘이 말씀해주신 ‘미쓰백’ 작품 속 인물들과의 연대나 아가페적인 사랑, 레비나스가 말한 모성성 같은 것들로 이해한다면 좀 더 피부로 와 닿을 수 있겠지요?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을 나누었음에도 불구하고 오갔던 이야기들이 너무 풍부하고, 또 삶에서 겪은 진솔한 이야기를 이름조차 생소하고 어려웠던 철학자의 생각을 통해 거리낌 없이 서로 나눌 수 있었다는 것이 참 기적처럼 느껴지는 군요, 돌아오는 먼 길을 심심하지 않도록 열심히 단톡방 에서 수다를 떤 탓에 150개가 육박하는 채팅창의 대화가 여운을 더 해 준 하루였습니다.

 

벌써 첫 번째 책을 끝내고! 다음주부터는 드디어 레비나스 선생님의 본저에 돌입합니다!

<후설 현상학에서의 직관이론> 인데요! 서론과 1장은 솔님께서, 2장과 3장은 모현님께서 발제를 맡아 주시고 간단한 뒷풀이도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우리 다음시간에도 즐겁게 공부해보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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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철학 수업>의 '삶과 자유', '만남과 자유' 후기




알라(수유너머104 세미나회원)





안녕하세요.

A조의 2주차 후기를 맡은 안라영입니다.

2주차는 책 '삶을 위한 철학 수업'의 '삶과 자유', '만남과 자유'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1. 삶과 자유

 영진님의 발제문을 읽는 것으로 세미나를 시작했습니다. 각 장의 핵심이 되는 내용을 꼼꼼하게 정리해주셨고, 인상적이었던 건 책에서 활용된 사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영화나 신화의 내용을 잘 모르는 게 많았는데, 발제문을 통해 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감사합니다!!)  또한 생각해볼 만한 질문을 곳곳에서 제시해주셔서, 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계속 나누었습니다.

질문을 공유해보자면, 

1. 당신에게 일생일대의 사건은 어떤 것이었나요?    

2. 에이허브와 오디세우스 중 어떤 삶이 더 자유로운 삶이라 생각하나요?

      - 에이허브: 매혹 혹은 증오에 온 몸을 던지는 삶

      - 오디세우스: 매혹에서 벗어나 기존의 목적지로 가려는 방어기제

3. 내가 생각하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

4. 힘든데도 애써 웃으려고 하는 것보다 원래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이 더 자유롭지 않을까요?

5. 나는 현재 어딘가에 갇혀 있을까?

6. 내가 시도해보고 싶은 새로운 것은? 나를 넘어서 꿈꿀 수 있는 시도는 어떤 것인가요?



 이 중에서 서로의 일생일대 '사건'을 나누었습니다. 기억에 남았던 건, 충한 튜터님께서 지금 2-30대 세대에 '사건'이라고 할만한 일은 보통 개인적인 일(ex. 물리선생님을 만난 일)인 경우가 많은데, 작가님처럼 '사회주의 붕괴', 즉 사회적 사건이 인생의 사건인 것이 오히려 부러울 때도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저는 역사를 배울 때마다 격동의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에 오히려 감사했었던 적이 많아서 조금.. 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대통령 탄핵이 있고나서 탄핵심판권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우리는 지금 너희들 자녀들이 역사책에서 배울만한 사건과 마주해있어!!" 라고 얘기했던 기억이 나면서 지금도 거대 담론을 인생의 사건으로 삼을 수 있는 기회는 남아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충한 튜터님께도 아직 기회가 있을거란 말이죠..!!)   

 그리고 에이허브와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꽤 오래 나누었습니다. 몸 바쳐 매혹당할 수 있는 것이 더 자유로운 삶일까, 매혹 속에서도 가야할 길을 가는 것이 더 자유로운 삶일까. 저는 에이허브의 삶에 대한 동경이 있었는데, 의견이 많이 갈렸어요. 그러다가 매혹당해야하는 순간과 가야할 길을 가는 순간을 조화시킬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자유가 아니겠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절충안이긴 했지만, 공감이 많이 됐습니다. 매혹당해야 하는 순간에 매혹당하기 위해 노력해봐야겠다 싶기도 했구요!

 



2. 만남과 자유

 만남과 자유의 발제문은 제가 작성했습니다. 함께 읽은 뒤 이야기 나눴던 내용은 사랑의 '수동성'과 '능동성'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내 범주 안으로 상대를 들여오는 사랑과 상대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에이허브와 오디세우스 얘기와 유사한 듯 하여 패스하겠습니다ㅎㅎ...

 



3. 자유와 행복

 자유롭다는 건 결과와 상관없이 그 순간에 행복을 느끼는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자유로울 때 행복하다는 의견에 대해 자유가 오히려 불행(?), 순화하자면 불편을 야기하는 순간도 있지 않냐고 질문 했습니다. 정해진 대로 살던 고등학생에서, 여러모로 자유를 얻는 대학생 또는 성인이 되면 불안해하는 순간처럼 말이죠. 주어지지 않았던 '자유'가 주어진 순간, 불편을 느꼈던 경험은 몇몇 분들께서도 있었다고 얘기하셨지만, 주어진 자유에 충분히 익숙해지고 누릴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되면 구속과 억압보다 자유가 행복을 주는 것 같다는데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인상깊었던 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시간과 제도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제가 고민해봐야할 거리가 하나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오랜만에 청인지 세미나에 참여했는데, 새로운 분들과 다양한 의견을 나눌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A조에는 개성 강한 분들이 많은 듯하여 앞으로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기대되네요ㅎㅎ


청년인문지능게시판 ->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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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세미나_기록과 현장]문학세미나를 소개합니다.





 송승환/시인. 문학평론가





안녕하세요?

 

수유너머104 문학세미나를 소개합니다.

수유너머104 문학세미나는 지난 2018528() 첫 세미나를 시작했습니다.

문학세미나는 [2018 수유너머104 여름강좌] ‘다른 삶들은 있는가-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마주침에서 촉발되어 첫 세미나의 책으로 선정된 작가는 에드가 앨런 포였습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문학세미나에서 읽은 책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에드가 앨런 포, 단편전집 우울과 몽상, 하늘연못

2. 에드가 앨런 포, 포 시선, 지식을만드는지식

3. 알프레드 쟈리, 위비 왕, 연극과인간

4. 앙토넹 아르토, 잔혹연극론, 현대미학사

5. 앙토넹 아르토, 첸치 일가, 연극과인간

6. 앙토넹 아르토, 사회가 자살시킨 사람, 반 고흐,

7. 기욤 아폴리네르티레시아스의 유방』, 연극과인간

8. 로제 비트락, 빅토르 혹은 권좌의 아이들

9.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 -연극, 연극과인간

11.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 유령소나타, 지식을만드는지식

11. 러시아 여성시인 시선집 레퀴엠, 고려대출판부

12. 마야코프스키, 마야코프스키 선집, 열린책들

13. 폴 클로델, 마리아에게 고함, 연극과인간

14. 로베르트 무질, 특성없는 남자 1, 2, 북인더갭

15. 로베르트 무질, 생전유고/어리석음에 대하여, 워크룸프레스

16. 알렉상드르 블로끄, 블로끄 선집, 지식을만드는지식

17. 페르난두 페소아, 시는 홀로 내가 있는 방식, 민음사

18. 페르난두 페소아, 초컬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 민음사

19. 페르난두 페소아,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문학과지성사

 

현재 읽고 있는 책은

1.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배수아 옮김, 봄날의책

2. 러시아시선 삶은 시작도 끝도 없다, 창비

2. 마야코프스키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 책세상

 

앞으로 읽을 예정인 책은

1. 페르난두 페소아, 산문선-페소아와 페소아들, 워크룸프레스

 

수유너머104_문학세미나는 매주 월요일 저녁 730분에 시작합니다. 많은 양을 빠르게 읽기 보다는 적은 양을 천천히 읽고 다양한 의견을 서로 나누는 세미나입니다.

http://www.nomadist.org/s104/SeminarBB1/105678

언제든지 새로운 분들의 참여를 기다리며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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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세미나-세미나후기] 잡편 33.천하편





조정현(장자세미나 회원)





장자는 도(道)를 이야기 한다.
장자가 말하는 도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무엇을 가리키는가 아니면 개별적이고 특수한 무엇을 가리키는가.
어떤 대상이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것인지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인지 구별하기 위해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살펴보는 것이 유용하다.

다음은 논어 선진편의 한 대목이다.

子路問 聞斯行諸. 子曰 有父兄在 如之何其聞斯行之.
자로가 여쭈었다. 들으면 곧 실천하리까? 선생님 말씀하시다. 부형이 살아 계신데 어찌 들은 대로 실천하겠느냐?
冉有問 聞斯行諸. 子曰 聞斯行之.
염유가 여쭈었다. 들으면 곧 실천하리까? 선생님 말씀하시다. 들으면 곧 실천해야지!

"들으면 곧 실천해야 한다"는 명제가 있다.
공자에게 이 명제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명제가 아니다.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이 명제는 옳을 수도 그를 수도 있다. 선진편의 대목은 개별적이고 특수한 명제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럼, 도(道) 역시 일반적이고 보편적이기 보다 개별적인 것일까?
도가 일반적이라면, 너의 도와 나의 도가 동일할 것이다.
도가 개별적이라만 나의 도가 있고 너의 도가 있으며, 이 도는 서로 다를 것이다.

논어 이인편에 나오는 대목이다.
吾道,  一以貫之 (나의 도는 하나로 꿰뚫는다)

여기서 공자는 '도'에 나(吾)라는 수식어를 붙여 '나의 도'라 이야기 하였다. 
'나의 도'라고 이야기 했을 떄, 너와 내가 그리고 다른사람이 동일한 '도'를 공유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다른 이와 다른 나만의 개별적인 '도'가 있다는 말이다.  

공자는 자기가 가진 개별적인 '도'를 진리로 봤을까?
진리로 봤다면, 도는 당위의 문제를 즉 마땅히 그래야 함에 대한 이야기이다.
있는것을 이야기 하는 게 아니라,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을 이야기 하고,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을 이야기 할 것이다.

논어 위령공편에 나오는 대목이다.
人能弘道 (사람이 도를 넓힌다.)

'도'가 진리라면 사람은 '도'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 '도'가 규범이 된다.
사람이 도를 넓힌다라고 말하였다면 '도'는 마땅히 지켜야할 규범이고, 진리가 아니다.
도는 꾸준히 넓히고 확장해야할 대상이다. 

공자가 가진 도에 대한 관점은 장자와 동일하다. 공자와 장자가 갈리는 부분은 '도'가 아니라 '명(名)' 이다.

천하편에서 장자는 '도'를 일반적이고, 보편적으로 설정한 다른 사람들을 비난한다.
'도'는 개별적인 데, '도'를 일반화하고 보편화하여 사람을 억압하는 예가 나온다. (노래를 부르지 말게 하는 묵가 등등)
그리고 '명'에 옭아매져 있는 사람을 비난한다.

道可道, 非常道
도덕경에 나오는 대목이다.
간략히 의역해 본다.
도가 도가 되려면, 상도(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도)가 아니어야 한다. 장자가 가닌 '도'는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보편성은 없다.

장자에게 '도'는 개인마다 다르고, 상황마다 다른 개별적이고 특수한 대상이다.
그럼 개개인이 가진 '도' 사이에는 우열성이 있는가?
내가 추구하는 '도'가 다른 사람이 추구하는 '도'보다 우월할 수 있는가?
장자는 개별적인 '도' 사이에 우열성은 없다고 본다. 개별적인 '도'가 시대를 초월하고 공간을 초월한다고 보지 않는다.

장자가 가진 관점을 야구선수로 비유해 본다.
빠른 직구에 유리한 스윙을 하는 선수 A가 있다.
변화구에 유리한 스윙을 하는 선수 B가 있다.

A선수가 추구하는 '도'는 강속구를 떄려 안타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
B선수가 추구하는 '도'는 변화구를 때려 안타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

A선수는 강속구에는 강하지만, 변화구에는 약하다.
B선수는 변화구에는 강하지만, 강속구에는 약하다.

C라는 선수가 나와서 새로운 '도'를 추구한다.
'난 강속구에도 강하고, 변화구에도 강한 스윙을 연습할 것이다.'
C 선수는 번트 전문 선수가 된다.

A선수, B선수, C선수는 야구 타격에 있어서 자기 다름대로의 도를 추구한다.
A선수와 B선수가 추구하는 '도'는 다르다. 그리고 어느 선수가 추구하는 '도'가 우수한지 판별하기 힘들다.
여기서, 진정한 야구선수는 어때야 하는 지 생각해 보자.

진정한 야구선수는 변화구가 왔을 떄, 변화구에 맞는 스윙을 하고, 강속구가 왔을 떄 강속구에 맞는 스윙을 하는 선수다.
경우에 따라 번트를 댈 경우에는 정확히 번트를 대는 선수이다.

진정한 야구선수는 '도'를 추구하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도'를 바꾸어 버린다.
그래서 진정한 야구선수이고, 장자는 이를 진인이라 불렀다.  

자기만의 '도'가 있어야 하지만, '도'에 목숨걸지 말아라.. 장자가 하고 싶은 말이 이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Posted by 수유너머104

[장자세미나-세미나후기] 인간세편




조정현(장자 세미나회원)





인간세 편은 공자와 공자의 제자 안회사이에 대화로 시작한다.
안회가 위나라로 가려고 마음을 먹고, 스승에게 이야기를 하는 중 다음 이야기가 나온다.

回嘗聞之夫子曰 : 저는 일찍이 선생님께서, 이르기를
治國去之 : '잘 다스려지는 나라는 떠나고
亂國就之 : 어지러운 나라로 들어가라,

"잘 다스려지는 나라는 떠나고, 어지러운 나라로 들어가라. "
이 대목은 논어의 내용과 상충이 된다

논어 태백편에서 공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였다. 
危邦不入 亂邦不居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말고 어지로운 나라에 머물지 마라.

장자 인간세에 나오는 공자의 이야기와 논어 태백편에 나오는 공자의 이야기는 서로 모순된다.
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

장자가 공자의 말을 잘 못 옮긴 것일까? 아니면 장자는 공자를 일부러 풍자한 것인가?
난 장자가 공자를 풍자한 것으로 본다. 다음 부분에서도 공자에 대한 풍자가 보인다.

논어 자로에 나오는 부분이다.
子路曰 衛君 待子而爲政 子將奚先.
자로가 말하기를 “위나라 임금(出公 輒)이 선생님을 기다려서 정사를 다스린다면 선생님께서는 무엇을 먼저 행하시겠습니까?”
子曰 必也正名乎。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반드시 명(名)을 바로잡을 것이다.”
子路曰 有是哉 子之迂也 奚其正
자로가 말하기를 “이러한 일도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세상 물정을 모르십니다. 어떻게 명을 바로잡겠습니까?”

공자는 명(名)을 바로잡겠다고 하고, 자로는 이를 비판한다. 공자는 세상을 모른다고 하면서...
공자는 이러한 자로에게 야(野) 하다고 말하고, 자신의 논리를 편다. 명은 정말로 중요하다라고...

논어에서 공자는 명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장자 인간세에서 공자는 명(名)에 집착함을 비난한다.  

德蕩乎名 : 덕은 명에서 녹아없어진다. 
名也者 : 명이란
相軋也 : 서로 해를 끼치는 것이다. 
공자는 뒤이어 명을 흉기로 까지 비유한다.

논어 자로편을 읽고 장자 인간세를 보면, 공자는 인간세에서 제자 안회에게 자기 부정을 한다.
논어에서는 명을 바로잡아야 한다 하면서, 인간세에서는 명은 흉기라고 말한다.
공자에 대한 풍자이다.

도(道)라는 관점에서 공자와 장자는 공통된 면이 있다. 일반성, 보편성 보다는 개별성, 특수성에 관심을 두었다는 점에서 도에 대한 관점은 비슷하다.
그러나, 명에 이르면 공자와 장자는 전혀 다른 관점을 보인다. 공자는 명에 집착하였고, 장자는 명에 집착함을 위험하다 말한다. 

장자가 가진 명에 대한 입장은 노자 도덕경에서 확인할 수 있다.
名可名 非常名
常名에 대한 입장차이가 공자와 노자 사이에 뚜렷하다.

안동림번역에서 명을 명예로 번역하였다. 난 이 번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장자에 젖어들어 살면서 체득한 바로는 명은 추상 개념을 말한다. 이 해석이 학술적으로 맞는 지는 관심이 없다. 내 체험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는 언어로 생각한다. 언어로 생각한다는 것은 기존에 이미 익힌 추상 개념으로 사물을 분류하고, 추상 개념으로 사물을 의식한다는 것.
우리는 추상개념이 보편성이 있고, 그래서 추상개념 자체를 부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학교 교육은 추상 개념을 가르치는 과정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개념을 배우지, 직접 체험하지 않는다.

우리는 달다는 추상개념을 익히고, 이후에 꿀은 달다는 정보를 배운다. 반대일 수도 있다. 꿀은 달다라는 정보로 부터 달다라는 추상개념을 익힐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추상개념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꿀이 달다라는 정보만을 배울때,  실제로 꿀을 먹는 체험을 하지는 않는다.    
추상개념으로 아는 정보와 체험으로 깨닫는 지식은 많이 다르다. 우리는 이를 경험으로 안다.

실제 꿀을 먹으면, 꿀은 달지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체험한다.  단맛도 있지만 쓴맛(인삼이 들어있다면)도 있다. 
미끌거리고, 끈적거리는 오묘한 맛이 섞여 있는 게  꿀맛이다.
이런 관점에서 장자는 명에 집착함을 경계한다. 꿀에 달다라는 추상 개념을 자동적으로 연관시키는 행위를 경계한다.

추상개념을 경계하면,  의식한다라는 것, 생각한다는 것도 경계하게된다. 
만약, 추상개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어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언어가 없다면, 의식도 없어진다. 이 경지가 망아(忘我)의 경지이고 이 경지에 이른 사람이 진짜 사람(眞人)이다.

장자가 떠나고자 한 것은 현실세계가 아니라, 언어에 속박된 세계다.
장자는 개념에 묶여 사는 것을 떠나고자 했지, 현실을 떠나고자 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장자는 자신으로 살고, 세계를 있는 그대로 살려고 했다.
나에 대한 개념을 세우고(예를 들어, 나는 군자다. 나는 대인이다), 이런 추상개념(군자,대인)을 나다움으로 규정하고 규정에 얽어매어져 살지 말고, 그냥 나를 살자고 말한 것이다. 이렇게 살때 인간은 창의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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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어세미나> 일본노래,일본드라마로 살아있는 일본어를 배우자




엄선희(수유너머104 세미나회원)




어김없이 또 새해가 밝았습니다. 부디 여러분들의 새로운 한 해가 소원하는만큼 희망차기를 빌어봅니다. 늘 묵은 해를 떠나보내기 한 두달 전이 되어서야 문득 올해 내가 도대체 뭔가 하긴했나 하는 초조함이 밀려오곤 했었습니다. 2018년도 별반 다르진 않았지만 그래도 일본어 세미나 하나만은 즐겁게 열심히 했다는 것을 위안삼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회원님들은 일본어 외에도 여러 강좌까지 열심히 참가하셨지만요.)  


다들 쉴새없이 생겨나는 다른 일들로 인해 아무리 예습 복습의 의지가 강해도 실천하기가 힘들다고 한목소리로 말합니다. 우리 세미나 동료들도 그렇구요.  하지만 예복습 부족에도 불구하고 반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저를 비롯한 동료들의 실력이 느리지만 향상되고 있다는 걸 수업 중에 늘 기쁘게 확인하게 됩니다.  어떻게 이런 다행스런 결과가 나왔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선 젊은 피 충한샘 (반장)의 부드러우면서도 수업에 집중케 하는 능력과 첨단 IT 기술(?) 제공.. 그리고  세미나 동료들의 적극적인 공부방법 제안과 제시. 이 두 가지 요인에 더해,  다양한 자료들을 화상을 통해 살아 있는 수업으로 활기차고 재미있게 했던 게 유효했던 듯 합니다




일반 어학원은 같은 레벨 회원들로 반을 만들어 수업을 진행하고, 대개는 가르치는 선생님께 전적으로 의존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수유너머의 세미나는 다양한 실력차의 동료들이 개개인 모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수업 방식으로 늘 세미나시간이 즐겁고 활기찹니다.  (단, 강독 수업은 난이도상  일본어 강의샘에게 많이 의존합니다.)


 따라서 초보인 분들도 두려워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레벨이 어느정도 되는 분들도 낮은 레벨 동료를 끌어올려 주면서 동시에  스스로는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 설 수 있는 기회가 될  수유너머의 일본어 세미나로 초대합니다.


언어 공부는 재미없으면 집중도 안되고 중도에 포기하기 쉽습니다. 이 점에 역점을 두고 이번 봄학기 세미나는 지난 반 년 동안 시도해 본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어느 정도는 성과가 검증이 된 프로그램으로 준비했습니다.


수유너머의 일본어 세미나 과목을 설명하자면..


1. 강독..

일본어 책과 잡지 강독시간은 난이도가 꽤 있어서 실력자 윤봉샘께서 친절하게 강의해 주십니다. 다양한 분야에 걸쳐 일본의 소리를 심도있게 공부합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아래의 잡지.


주간 아사히 시사잡지 'AERA'



2-1.일본어 노래.. 

노래 가사를 공부하고 따라 부르다 보면 단어와 문장이 절로 외워집니다.  쉬운 노래라고 가사마저 우습게 보면 안되더라구요.  노래 한 곡에 담긴 단어만 외워도 어휘력 급등!





2-2.일본드라마 구간반복

재밌는 내용의 드라마를 반복하여 들어 숙지할 단어를 공부하고, 대화내용을  반복하여 읽고 연습합니다.  글로 배우는 회화가 아닌 살아있는 대화로.. 그것도 반복해서 입과 귀에 굳혀주기!



3-1.일본어한자

일본어는 한자공부가 기본이죠.  일본어를 공부하다가 덤으로 한자상식도 저절로 늘게되니 나중에 중국어 할때도 도움이 되겠죠^^  


3-2. 일본어 독해

체계적인 독해능력 향상을 위해 "일본어뱅크 일본어독해" 책을 교재로 채택했습니다.  새로운 단어를 공부하고 돌아가며  본문을 읽고 해석합니다.  


강독 이외의 과목은 배운 단어와 문장을 반복해서 외웁니다.  새로운 진도를 나가기 전에 전 주에 익혔던 것들을 다시 한 번 외우고 진행합니다.  서두르진 않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갑니다, 수유너머의 일본어 세미나!  가다보면 저 높은 곳에 어느덧 가있겠죠!


우리와 함께 걸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천천히 그러나 쉬지않고 게다가 즐겁게~~  




Posted by 수유너머104

[니체세미나] 정오에는 니체를 읽으세요



 류 재 숙 / 니체세미나 튜터




오전12시 한낮의 정오에는 니체를 읽으세요 

태양이 우리의 머리 위를 비추는 오전12시 정오. 니체는 인간의 그림자가 가장 짧아지는 순간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그림자는 인간이 만들어낸 오류인 신의 존재를 말하는데, 이때 신은 새로운 종교일 수도 있고, 국가권력, 자본, 화폐, 이념, 심지어 과학의 형상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초월적인 어떤 것을 위해 우리의 삶을 희생하게 하는 것은 모두 신의 다른 이름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위버멘쉬의 시간, 정오에는 니체를 읽으세요.

 

우리 삶의 정오에는 니체를 읽으세요 

새벽부터 하루를 출발한 사람도, 늦은 아침을 시작한 사람도, 이제 우리 삶은 오전에서 오후로 넘어가고 있어요. 태양은 우리가 떠나온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만듭니다.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분기점에 서있는 누구라도, 그렇습니다. 삶의 정오에 서 있습니다. "내 삶은 이미 정해져버린 게 아닐까? 이번 생에는 틀렸어!" 니체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이 무슨 문제인가. 얼마나 많은 것이 아직도 가능한가!” 삶이 날카로워지는 정오에는 니체를 읽으세요.

 

별과 함께 춤추는 정오에는 니체를 읽으세요 

우리의 삶을 무겁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를 아래로 아래로 끌어내리는 중력의 신, 난쟁이는 어디에 있나? 서울 명문대를 목표로 초등학교부터 공부하는 아이들, 대기업공무원을 목표로 청춘을 희생하는 청년세대, 평균적 삶을 목표로 자기를 포기하고 사는 사람들. 니체는 말합니다. “춤추는 별 하나를 잉태하려면, 사람은 자기 안에 카오스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삶이 무거운 누구라도 별과 함께 춤추고 싶다면, 우리 삶을 혼돈 속에 빠뜨리는 니체를 읽으세요.

 

[니체전집읽기] 세미나에서 앞으로 읽을 책들

[니체전집읽기] 세미나는 니체가 생전에 출판한 책들을 읽는 세미나입니다.

니체를 읽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니체를 우리의 삶으로 해석하려고 합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8_읽음서광》 1881. 즐거운 학문1882.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 선악의 저편1886. 도덕의 계보,

안티 그리스도, 바그너의 경우, 우상의 황혼, 이 사람을 보라, 디오니소스 찬가1888.

Posted by 수유너머104

'의미의 논리' 읽기







쁠라또(수유너머104 회원)





 G. Deleuze, The Logic of Sense, trans. Mark. Lester, Columbia University Press







본 세미나는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또는 여전히 가장 hot한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저작을 강독하는 공부 모임입니다.


들뢰즈는 아시다시피 수십 권에 달하는 많은 저작을 남긴 철학자인데,본 세미나는 그 중에서 박사학위논문으로 제출한 솔로 시절의 대표작인 <차이와 반복>과 필생의 친우인 펠릭스 가타리와 함께 쓴 다른 듀엣 시절의 대표작인 <안티 오이디푸스> 사이에 위치한, 그리하여 그의 두 대표작과 두 시기를 이어줄 교량 역할을 할 수 있는 또 다른 대표작인 <의미의 논리(Logique du sens)>를 읽고 있습니다.


교재는 영역본인 <The Logic of Sense>이며, 진도는 강독 형식의 세미나인 만큼 한 주에 2~3쪽 가량 나가고 있습니다. 들뢰즈는 가장 hot한 프랑스 철학자이지만 또한 가장 난해한 프랑스 철학자이기도 하기에, 이렇게 천천히 읽어가는 것이 오히려 그의 사상의 정수에 접근하는 빠른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어려운 도전이지만 또 분명히 땀 흘린 만큼 보상을 주는 들뢰즈의 <'의미의 논리' 읽기>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아래의 내용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명칭 : <'의미의 논리' 읽기>

- 목표 : 질 들뢰즈의 <의미의 논리>를 꼼꼼히 읽고 이해하기

- 교재 : G. Deleuze, The Logic of Sense, trans. Mark. Lester, Columbia University Press

          (인터넷서점에서 쉽게 구하실 수 있습니다.)

- 방식 : 영어 문장을 독해하고 내용을 분석하고 토론하는 강독 형식

- 일시 : 매주 토요일 오후 3시 30분 ~ 6시 00분 (2시간 30분)

- 장소 : 수유너머 104 2층 소강의실

- 문의 : 010-7799-0181 (김민우) 또는 plateaux1000@hanmail.net

Posted by 수유너머104

[청년인문지능] 소개




 박 소 라(수유너머104 회원)





[청년인문지능]은 인문학을 처음 공부하는 데 좋은 가이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세미나입니다. 특히 20,30대 청년들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함께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현실의 문제로부터 탈출하여 힐링을 찾는 인문학이 아니라, 우리 앞의 문제들을 고민하면서 그것들을 대면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새로운 사유의 장으로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 세미나에는 튜터들이 있습니다. 튜터들은 지식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아니라, 더 건강한 토론이 진행되도록 먼저 고민해보는 사람들입니다.

 

세미나는 약 12주를 한 시즌으로 하여 진행됩니다. 세미나원들이 스스로 책을 읽어와 요약을 하고 질문을 던지며 토론하는 방식입니다. 매 시즌마다 마지막 시간에는 12주 동안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각자 에세이를 작성하여 발표하고 토론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여러 개념과 지식들을 스스로 익히고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새롭게 구성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8년에는 두 번의 시즌이 진행되었습니다.

시즌1의 주제는 인간을 이해하는 9가지 키워드였고, 시즌2의 주제는 우리가 정말로 세계를 알 수 있을까?” 였습니다. 두 번의 시즌에서는 중요한 개념들을 중심으로 철학자들의 생각을 공부하고 비교해보며 토론했습니다.


시즌1 : http://www.nomadist.org/s104/index.php?mid=intellect&page=4&document_srl=49367

시즌2 : http://www.nomadist.org/s104/index.php?mid=intellect&page=2&document_srl=75411

 

2019년에는 세 번의 시즌이 기획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시즌은 12주 정도 진행될 예정입니다.

시즌1(1~3)

시즌2(5~7)

시즌3(9~11)

철학

문학, 역사

과학, 수학

 

* 세미나 시간 : 매주 토요일 오후 3

* 시즌 1 기간 : 15~ 323(12)

* 시즌 1 교재 : ‘삶을 위한 철학 수업’, ‘철학과 굴뚝청소부

 


 


Posted by 수유너머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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