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동 수상자의 걸음

마르셀 뒤샹과 이상

 

 

 

 

 

                                                                                          금은돌(수유너머 회원)

 

 

 

 

 

1. 정지,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는 일

 

 

 

마르셀 뒤샹의 존재 방식은 운동이다. 뒤샹이라는 텍스트는 걷고 달리고 생각한다. 사유의 운동이자 작동이다. 그는 존재하는 것만으로 미술 운동을 주도하였다. 길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술이 저곳에 있다고 말할 때, 그는 기존의 프레임을 무너뜨린다. 수직적 방식으로 예술이 작동할 때, 그는 옆으로 문을 연다.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예술이 아닌가? 그의 뇌는 작동한다. 이분법을 가로지른다. 정지하고, 운동하며, 재배치한다. 이질적인 오브제를 결합하여, 사고를 확장하고, 그곳에서 생각하라고 (은근히) 명령한다. 뒤샹이 가지고 있는 질문은 21세기 지금-여기에도 작동 중인 화두이다.

 

기존 프레임에 갇힌 사유구조를 깨뜨리고 싶을 때, 예술가는 질문할 권리를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지? 어떻게 전복시킬까?

뒤샹은 계단에서 걷는다.

정지하고, 운동한다.

 

 

2.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크로노포토그래피(Chronophotography)

 

운동성에 반응한 작품이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1912)이다. 뒤샹은 이 작품에서 기존 관습에서 벗어난다. 추상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움직이는 육체의 형태를 완성한다. 여기서 육체는 기계적으로 작동한다. 이 작품은 프랑스 생리학자 에티엔-쥘 마레의 크로노포토그래피(Chronophotography)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한 프레임 안에서 피사체의 연속 움직임을 촬영 할 수 있는 카메라가 발명된 것이다. 연속 사진(motion picture)이다. 뒤샹은 인물의 육체를 기계처럼 구조화시킨다. 그리고 연속 동작을 멈추며, 위치 이동을 한다. 상체의 움직임과 다리의 운동성을 극대화함으로써 피사체 내부에 작동하는 세부 기관의 기계적 원리에 주목한다. 그렇기에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는 누드화였지만, 여성도 아니고 남성도 아닌 것으로 바라보게 된다. 젠더 구분을 탈피하면서, 인간의 육체를 기하학적인 운동성으로 사유하게 된다. 인간에 대한 관음적 시선과 젠더적 구별 등, 누드라고 하는 프레임에 갇혔을 때 발생하는 사회적 통념이 흔들린다.

 

 

생각해 보면, 인간은 그곳을 스쳐지나가는 순간의 흔적이자 평면적인 얇은 파편이었을 뿐이다. 인간의 몸은 원통과 실과 철사로 이어진 기계장치일 뿐이다. 역동성은 선과 선의 겹침과 반복으로 나타나고, 결과적으로 인간은 사라진다. 계단을 내려가는 기계의 동작만 남는다. 중력이 이끄는 대로 이행하는 물리적인 역동성이 남는다.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는 움직이고 있는 순간을 주목하기 위해, 정지시킨다. 정지함으로써 뒤샹은 움직임의 추상적인 선을 돋보이게 한다. “나는 움직임의 정적인 이미지를 창출해 내고 싶었다. 움직임은 일종의 추상이며, 실제 계단을 내려오는 사람이나 실제 계단인지 아는 것과는 상관없이 그림의 내부에서 진술된 추론이다.”[각주:1] 화가는 시간을 세부적으로 분할하고, 쪼개지는 시간 속에 정지된 화면을 반복적으로 배치한다. 사실은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이 운동성 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정지의 장면들을 연속적으로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움직임을 만든 것은 결국 그림에 편입된 관찰자의 눈이다.”[각주:2] 그림에 나열된 선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개입에 의해 역동성이 완성된다.

 

관찰자가 등장하는 순간, 그 시선에 의해 정형화된 흐름이 없는 파동이 입자로 형태를 띠기 시작한다. “전통적인 양자역학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관측을 시도하는 순간, 즉 측정이 이루어지는 순간 확률파동이 순간적으로 급격하게 변하면서 모든 가능성이 하나의 값으로 직결된다. 이것을 확률파동의 붕괴(the probability wave collapse)’ 현상이라고 한다. 이 붕괴란 양자가 파동으로서 그 어느 곳에서도 우리의 시각장 안에 고착화되지 않은 채 잠재 에너지로서 흐르던 것이 어느 순간 관찰자의 시선에 의해 그 파동을 버리고 입자를[각주:3] 택한다. 그림의 움직임과 역동성을 완성하는 것은 관람자의 시선이 개입한 결과이다. 화가의 표현이 완성되는 것 역시 관람자의 개입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20세기 전반은 세계대전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이 시기에 미술은 과거와 단절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결정론적 사고에 굳어버린 19세기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1905년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한다. 양자역학과 불확정성의 원리가 발견된다. 크로노포토그래피(Chronophotography)는 인간과 동물의 운동성에 대한 실질적인 사유의 폭을 넓혀 놓았다. 20세기 초 과학의 발달은 정치 사회 문화 등에 영향력을 발휘한다. 리스본에서는 페르난두 페소아가 수많은 이명을 만들어내며 글을 쓰고 있었고, 다른 쪽에서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마르크스와 레닌으로 이어지는 사회주의 혁명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미술계에서는 미래주의, 구축주의, 큐비즘,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가 혼재되어 나타나고 있었다. 기존의 결정론적인 사고방식을 뒤집고 자본주의적 질서를 전복하려는 시도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쇤베르크와 에릭 사티의 음악이 연주되고 있었고, 피카소와 기욤 아폴리네르는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무의미 시가 낭송되고 있었고 이 세상을 전복하려는 예술가, 특히 문학과 예술가의 화가의 결합이 공교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3. 이상(李箱), 올라가지아니한위에서내려오지아니한사람

 

2019년 뒤샹 전시[각주:4]에서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를 직접 보고 온 이후, 번뜩, 떠오른 사람이 있다. 1930년대 모던 보이 이상(李箱)이다. 시인 이상을 알아보았던 김기림은 "파리 가서 3년간 공부하고 오자. 파리에 있는 슈르 리얼리스트들하고 싸워서 누가 이기나 내기하자"고 제안한다. 뒤샹 역시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운동과 더불어 활동했던 화가였던지라, 그 연장선상에서, 건축기사이자 화가이자 시인이자 소설가인 그를 떠올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각주:5]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앞에서 시인 이상의 건축무한육면각체AU MAGASIN DE NOUVEAUTES작품을 오버랩해 본다. 이 작품의 한글 제목은 새로운 기계이다.

 

           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

        의사각형.

사각이난원운동의사각이난원운동의사각이난원.

비누가통과하는혈관의비눗내를투시하는사람.

지구를모형으로만들어진지구의를모형으로만들어진지구.

거세된양말.(그여인의이름워어즈였다)

빈혈면포.당신의얼굴빛깔도참새다리같습네다.

평행사변형대각선방향을추진하는막대한중량.

마르세이유의봄을해람한코티향수를맞이한동양의가을.

쾌청의하늘에붕유하는Z백호.회충양약이라고쓰여져있다.

옥상정원. 원후를흉내내고있는마드무아젤.

만곡된직선을직선으로질주하는낙체공식.

시계문자반에ⅩⅡ에내리워진두개의젖은황혼.

도아의내부의도아의내부의조롱의내부의카나리아의내부의감살문호의내부의인사.

식당의문간에방금도착한자웅과같은붕우가헤어진다.

검정잉크가엎질러진각설탕이삼륜차에실린다.

명함을짓밟는군용장화.가구를질구하는조화금련.

위에서내려오고밑에서올라가고위에서내려오고밑에서올라간사람은밑에서올라가지아니한위에서내려오지아니한밑에서올라가지아니한위에서내려오지아니한사람.

여자의하반은저남자의상반에흡사하다.(나는애처로운해후에애처로워하는나)

사각이난가걷기시작한다.(소름끼치는일이다)

라디에의근방에서승천하는꾿빠이.

바깥은비. 발광어류의군집이동.

― 「AU MAGASIN DE NOUVEAUTES전문(1932)

 

이 시를 뒤샹의 시선으로 음미해 보자. 당시 경성에 고급백화점이 들어섰다. 백화점은 낯선 이방인의 침입과 같았고, 근대문명의 배달 창고였으며, 소비를 부추기는 욕망의 장소였다. 1930년대의 낯선 문명을 재빨리 받아들이던, 문화의 최첨단 아이콘들은 백화점 옥상 정원에서 자유연애를 즐기며, 멋을 부렸다. 판탈롱 바지, 에나멜 구두, 마드모아젤, 중절모, 스타킹, 코티향수, 비누, 엘리베이터, 가배차(·커피) 등 새로운 것을 익히고 쓰고 향유하였다. 백화점 옥상정원(屋上庭園)에서 그들은 자본주의 감각과 속도를 즐겼다. 거리에는 전차와 자동차가 있었다. 하늘에는 붕유하는 Z백호가 떠 있다. 이상은 비 오는 날 헤드라이트를 킨 자동차를 보고, '발광어류(發光魚類)의 군집이동(群集移動)'이라고 표현한다. 이 모든 것들을 낯설게 바라본다. 자기 나름의 언어로, 새롭게 명명한다. 그리고 추상화했한.

 

 

이것은 사물과 사물의 열거와 배치의 방식이다. 기하학적으로 표현된 언어의 기술과 반복의 효과이다.[각주:6] 사각형 건물 안에 사물과 인간이 움직인다. 반복되고 반복되는 도시의 일상과 그곳에 몰려드는 사람들의 분주함은 기하학적인 도형의 반복을 통해 나타난다. “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카메라를 줌인(zoom in)하거나 줌아웃(zoom out)하면서, 혹은 롱테이크(long take)로 백화점이라는 공간을 평행으로, 사선으로 길게 보여주는 관찰법으로 선택할만하다. 건물의 외부 윤곽인 사각형을 ‘over view’ 위치에서 보여주고, 그 건물 안으로 한 단계씩 진입해 보는 것이다. 그 안에 회전문이 작동한다. 회전문의 원과 사각형이 사각이난원운동을 하는 문의 작동이 반복하며, 추상화된다. 그 다음에 콜라주 방식으로, 백화점에 진열된 상품들이 열거된다. 비누, 지구본, 스타킹, 코티향수, 의약품 광고, 하늘에 떠 있는 비행선, 상품 광고 등이 보인다.

뒤샹이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에서 정지한 순간을 교차하며, 반복적으로 겹쳐 그리는 방식으로 인간-기계의 운동성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처럼, 시인 이상 역시 반복과 겹쳐 그리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시적 주체 는 전면에 등장하지 않지만, 주체는 1층에서 옥상정원으로 이동한다. 계단이 있고, 하늘이 있다. 일제 강점기 당시 가장 높은 건물에서 바라본 시대 풍경은 어떠했는가? “명함을짓밟는군용장화가 있다. 그것이 보인다. 일제 강점기 당시 숱한 이름이 짓밟혔다. 감시와 억압과 처벌을 당했던, 1930년대 강제와 폭력과 억압의 현실이 있었다. 군용장화 아래, 제국주의와 식민 정책이 진행되는 가운데, 인간-기계가 작동한다. 그 사이에 다시 인간-기계의 운동성이 극대화된다.

 

위에서내려오고밑에서올라가고위에서내려오고밑에서올라간사람은밑에서올라가지아니한위에서내려오지아니한밑에서올라가지아니한위에서내려오지아니한사람.

 

 

이 구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계단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사람과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사람들은 상행이거나 하행이라는 운동을 하고 있지만, 그들을 크로노포토그래피(Chronophotography) 의 장면으로 분할하여 바라볼 필요가 있다. 계단 위에 있는 그들은 인간-기계이고, 움직임/정지 상태가 반복된다. 밑에서도 올라가지 아니한 사람이고, 위에서도 내려가지 아니한 사람이 된다.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따라 결과 값이 달라진다. 시인 이상은 카메라 위치를 고정하지 않는다. 어디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문장이 달라진다. 시간을 세분화하고 분할함으로써, 계단에 서 있는 존재자는 성 정체성마저 뒤섞인다.

   

여자의하반은저남자의상반에흡사하다.

 

그것이 여성인가() 아닙니다. 그럼 남성인가? 아닙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난 하번도 그것이 여성인지 남성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왜 내가 그것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까? 내 그림은 대상이 아닌 추상에 관한 것입니다.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는 움직임의 추상화입니다.”[각주:7] 뒤샹의 말처럼, 인간-기계의 움직임을 극대화하여 연동시켰을 때, 젠더 구분이 사라지면서, 남성도 여성도 아닌 상태에 다다르게 된다. 일종의 자웅동체의 몸을 구성하는 것이다.

 

 

 

엘리베이터의 상하 운동을 수평 운동(걷기)으로 치환함으로써, 다른 지평을 열어버린다. “사각이난가걷기시작한다.(소름끼치는일이다)” 대상이 낯설게 환기된다. 작용 가운데 정지. 상식적인 운동이 진행되는 가운데, 방향 바꾸기. 이 지점에서 환상이 펼쳐진다.

 

시인 이상은 언어로, 시적 추상화 작업을 거치면서, 삶과 현실의 문제, 여성과 남성의 이분법의 문제, 결정론적인 사고방식 등을 전복한다. 이 지점이 소름끼친다. 백화점 건물 구조와 상품이 콜라주 방식으로 배치되며 독자의 시선이 따라 움직이는 동선 역시 가변적이다. 그 사각형 공간 속으로 드나드는 인간 역시 새로운 기계(시 제목처럼)였던 셈이다. 마지막 부분, 수직 운동을 수평운동으로 전화하는 지점. 이곳에서 일시 정지하며, “사각이난가 걷기 시작할 때, 지극히 소름끼친다. 이 지점에서 시인 이상의 이상한 우월함이 있다.

 

 

4. 콜라주, 다리와는 닮지 않은 바퀴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필연적인 인과법칙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던 시기, 앞으로의 미술사 100년을 좌지우지할 거대한 회오리의 ’, 자전거 바퀴가 움직이고 있었다. 의자 위에 자전거 바퀴로, 카오스를 포함한 코스모스의 세계로, 사고의 전환을 위한 자양분이 만들어 지고 있었다. 뒤샹은 작품 안에 우연의 문제를 받아들인다. 실험의 방식으로 사고하고, 텍스트를 다루는 방식으로 변화 발전한다. 뒤샹은 다른 차원의 운동을 꿈꾸었다. 평면적인 2차원에서 3차원, 4차원으로 도약하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 움직여야 했다. 운동과 정지, 사물과 사물의 관계를 고려해야 했다.

 

 

콜라주, 관계, 운동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작품이 뒤샹의 <자전거 바퀴>(1913)이다. 이 작품은 바로 언급하기 전에, 뒤샹과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각주:8] 1912년 가을, 뮌헨에서 파리로 돌아온 뒤샹. 그는 뮌헨에서 돌아온 이후 줄곧, 자신의 작업을 바꾸겠다고 굳게 다짐한다. 그해 10월 말 아폴리네르 등 몇몇 친구와 함께 프랑스 동부 쥐라 지방으로 자동차 여행을 떠난다. 뒤샹은 친구들과 기계와 인간의 유사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각주:9]

 

뒤샹은 아폴리네르의 이 문장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일까. 뒤샹의 작품이 아폴리네르의 문장에 영향을 준 것일까. ‘초현실주의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게 된 문장이 있다. “인간은 발걸음을 모방하려 했을 때, 다리와는 닮지 않은 바퀴를 창안했다. 인간은 이렇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초현실주의를 실천한 것이다.” 기욤 아폴리네르의 전위 연극 티레시아스의 유방(1916) 서문이다. 초현실주의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했던 아폴리네르와 두터운 교류를 유지해 왔던 뒤샹을 생각하면, 서로가 각자의 작업에 영향을 끼쳤을 수 있겠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뒤샹의 <자전거 바퀴>는 기계적이고 기능적이고, 산업적이고 핵심만 남은 물건을 좋아하는 뒤샹의 취향, 화려한 장식에 대한 깊은 혐오, 가정 내 물건은 절대적으로 단순한 것을 추구하는 그의 애호와 맞아 떨어진 작품이었다.[각주:10]예술적이지 않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격인, 첫 번째 작품이었다. 결과적으로 뒤샹은 미술을 포기함으로써 미술을 얻는다.[각주:11] 예술가와 예술가의 만남, 사물과 사물의 만남. 그리고 문장과 문장의 만남. 이 모든 것들은 관계에 의해 작동한 것이다. 오브제는 반란의 도구가 되고, 일상의 맥락을 뒤집는 착란의 도구, 사유의 도구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사물과 사물의 결합이 중요해지면서, 무의식적인 연동과 우연성이 끼어들면서, 비결정론적 사고를 전복시킬 시대적 운동이 시작되고 있었다.

 

 

5. 둘이면서 하나, 절름발이 운동

 

  내키는커서다리는길고왼다리아프고안해키는적어서다리짧고바른

다리가아프니내바른다리와안해왼다리와성한다리끼리한사람처럼걸

어가면아아이부부는부축할수없는절름발이가되어버린다무사한세상

이병원이고꼭치료를기다리는무병이끝끝내있다

                                               ―「지비전문(1935)

 

 

 

이상의 시에서 이질적인 사물과 사물의 콜라주를 시도하고 있는 작품으로, 지비를 꼽고 싶다. 아내와 의 결합하기 어려운 걸음이 하나로 배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의 키는 크고 왼쪽 다리가 아프다. 콜라주는 어울리지 않을 만한 조합을 가지고 있다. ‘아내의 키는 작고 오른쪽 다리가 아프다. 이 두 사람이 이상한 환자처럼, 걷는다. 이인삼각경기를 하듯이, 절룩이며, 걷는다. 아프다는 것은 정지했다는 것이다. 정지할 수만은 없기에, 타자에게 기댄다. 옆 사람에게 기댄다. 나는 아내에게 의지하고, 아내는 나에게 의지한다. 절름발이. 두 사람이 하나의 호흡으로 걷는, 기괴한 걸음걸이가 탄생한다. 절름발이가 되어, 두 사람이 한사람인 것처럼, 이상한 운동성을 가진 콜라주의 효과가 발생한다.

 

절름발이의 운동성. 이것이 식민주의 시대에 최신의 모던함을 쟁취하고자 했던 지식인의 병든 내면 운동일 것이다. 종이비석, 지비(紙碑)인 셈이다. 부부의 걸음은 종이 위에서 정지한다. 아내와 나의 괴이한 걸음 콜라주는, 두 사람의 이질성을 하나의 아픔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이들은 이 세상을 진단하는 주체로 거듭난다. 둘이면서 하나인 주체는 여자의하반은저남자의상반에흡사한 몸을 구성하며, 이 시대를 견디는 자가 된다.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새로운 주체는 불연속적으로 운동하고, 연속적으로 정지한다. 환자이면서 의사라는 자격으로, 종이(텍스트) 위에서 자신의 시대를 진단하는 주체로 변화한다. 이 새로운 주체는 무사한 세상이 곧 병이었음을 자각한다.

 

 

 

 

6. 이상 & 에로즈 셀라비

 

이상(李箱)의 본명은 은 김해경(金海卿)이다. 김해경의 필명은 하나가 아니다. 이상(李箱)으로 자신의 이름을 바꾼 것은 1928년 경성고등학교 졸업기념 사진첩에서 발견된다.

이상은 여러 이름을 갖고 싶어했다. 1932비구(比久)’라는 필명으로 조선에 단편소설 지도의 암실을 발표하고, ‘보산(甫山)’이라는 필명으로 휴업과 사정을 발표한다. 1934하융(河戎)’이라는 필명으로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 삽화를 연재한다.[각주:12] 페르난두 페소아처럼 수십 개의 이명을 만들어, 각각의 이름으로 다른 스타일의 시를 쓰고 산문을 쓰듯, 시인 이상은 이상이라는 필명 이외에 다른 이름들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김해경은 전근대적인 사회에서 그에게 주어진 이름이었다. 따라서 김해경이라는 이름은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의무와 책임이 부여받는다. 예술가로서 거듭나기 위해 김해경은 가부장적이고 전근대적인 프레임을 벗어던져야 했다. 이런 운동성의 연장선상에서 이상이라는 필명이 필요했다. 전근대적인 사유방식과 관습에서 탈주하고 새로운 주체의 탄생을 염원하는 이름을 스스로 호명한 것이다. 선을 넘은 것이다. 이상한 가역반응이상이 나타날지라도, 이상(李箱)은 상자() 속에(마치 뒤샹의 녹색 상자[각주:13]처럼) 낯선 이상(異相)과 기존의 사유방식을 뛰어넘는 이상(理想)과 기하학적인 이미지의 운동성을 보여주는 이상(異常)을 담는다. 시인 이상(李箱)은 그 모든 것들을 뛰어넘는 이상(以上)이 되어야 했다. 이 필명의 언어 놀이를 통해, 시인은 자기 자신을 지우며, 삼차각설계도, 건축무한육면각체, 조감도, 오감도 등의 작품을 내놓는다.

 

 

 

 

이 지점에서 특이한 사진이 보인다. 그는 단지 낯선 이명으로 자신의 이름을 호명함으로써, 존재자에서 존재가 탈출하고, 다시 존재자의 몸 안으로 귀환하는 운동성에 머무르지 않는다. 1928년 경성고등학교 졸업 앨범을 살펴보면, 김해경이 이상한 옷을 입고 있다. 김해경이 이상으로 자신의 이름을 변경하면서, 저고리에 치마를 입은 것이다. 수많은 이름을 갖는 것 역시, 원심력과 구심력의 운동성을 극대화 하는 방법인데, 그는 젠더적 이분법마저 지워내려고 한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이상이 살아있었다면, 뒤샹의 에로즈 셀라비처럼, 적극적인 캐릭터를 부여했을까?

 

 

1920년대 뒤샹에게는 에로즈 셀라비(Rrose Sếlavy)라는 존재자가 있었다.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만 레이(Man Ray)와의 협업을 통해 적극적으로 그 형체가 구성된다. 에로즈 셀라비는 뒤샹의 또 다른 분신으로 그의 작품 세계에 영향을 끼친다. 에로즈 셀라비는 책을 출판하고, 작품에 그녀의 사인을 한다. ‘에로즈 셀라비로부터 혹은 에로즈 셀라비에 의한작품 활동이 시작된다. 원래 텍스트적인 실험과 언어 놀이를 좋아했던 뒤샹은 에로즈 셀라비를 통해 적극적인 역할 놀이를 한다. 여인을 구성하고, 그 여인에게 맞는 캐릭터를 부여하는 실험을 한다. 페르난두 페소아가 베르나르두 소아레스, 알베르투 카에이루, 알바르 두 캄푸스 등 수많은 이명을 만들어 내어, 그 이명으로 출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뒤샹 역시 자신의 페르소나를 만들어, 작품 활동을 한다.

 

 

 

 

고정된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과정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적 의미를 갖는다. 기존의 정체성을 뛰어넘어, 위계적인 권력과 질서를 전복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남성이기도 하고 여성이기도 한, 수행적 과정에 놓여있는, 이상한 운동을 하는 육체를 만든다. 그 가운데 우연적인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지금-현재의 운동성을 수용한다. 수행과 과정으로서의, 새로운 주체는 언제나 새롭게 구성되며, 실험된다. 순간적인 운동과 정지 가운데, 시대적인 규정성에서 탈피하는 것이다. 미규정적인 상태로 미끄러지는 일이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이상한 상태, 그렇기에, 아무 것도 아닌 상태이기에, 그 무엇이 될 수 있다.

정체성은 순간마다 새롭게 구성될 수 있다. 다른 지점으로 위치이동 할 수 있고, 낯선 입자이자 파동으로써, 해석될 수 있다. 미규정적인 상태로, 경계를 지우는 일. 이것이 중요하다. 정치, 젠더, 지역, 민족 등 다양한 분야로 행위하고 수행하는 열린 주체로서 미지의 영토 위에 존재 가능하다. 레디메이드를 통해,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지우려고 했던 것처럼, 뒤샹은 에로즈 셀라비라는 캐릭터를 등장시켜, 남성 중심의 사회 질서에 대한 웃음과 조롱을 던진다. 언어게임과 언어 놀이를 일삼았던, 셀라비는 작품에 사인을 하고, 향수병 라벨로 등장하면서, 미규정적으로 작동한다.

 

 

 

 

7. 옥상정원, 아무 것도 없다

 

일층우에있는이층우에있는삼층우에있는옥상정원에올라서남쪽을

보아도아무것도없고북쪽을보아도아무것도없고해서옥상정원밑에있

  는삼층밑에있는이층밑에있는일층으로내려간즉동쪽에서솟아오른태

 양이서쪽에떨어지고동쪽에서솟아올라서쪽에떨어지고동쪽에서솟아

 올라서쪽에떨어지고동쪽에서솟아올라하늘한복판에와있기때문에시

계를꺼내본즉서기는했으나시간은맞는것이지만시계는나보다도젊지

않으냐하는것보다는나는시계보다는늙지아니하였다고아무리해도믿

어지는것은필시그런것임에틀림없는고로나는시계를내동댕이쳐버리

고말았다.

                                        ―「운동전문(1931)

 

이 시는 시적 주체의 상승과 하강의 반복 운동이 나타난다.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힘겹게 계단을 오르내리는 시적 주체의 운동이 펼쳐진다. 옥상정원까지 올라간 시적 주체는 옥상정원에서 그 무엇을 찾지 못하였기에, 1층으로 허무하게 내려온다. 이 과정에서 시적 주체는 욕망하는 그 무엇을 가진 상태였다. 그 최고의 지점인 옥상정원에 가 보니, 아무것도 없다.

 

  시적 주체의 운동이 옥상정원이라는 곳을 올라가는 것은 의 상승 욕망이 작용했음이다. 하강운동은 실패하거나 절망하면서, 지상으로 복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지상으로 내려와서도 자연의 운동은 꿋꿋하게 지속된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는 태양의 운동이다. 사흘이 흐른다. 인간-기계가 (그것이 욕망의 추동일지라도) 한번 상승하고 하강하는 운동을 할 동안, 자연의 운동은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동쪽하늘과 서쪽 하늘을 오고간다. 지상에 두 발을 딛고, 생활을 지탱해야 하는 생활의 시간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나흘째 되는 날, 시적 주체는 하늘 한복판을 바라본다. 그곳에서 시적 주체가 하는 일은 태양과 시계를 동시에 콜라주 하는 것이다. 정오의 순간, 지상의 시간성을 인정하면서도 시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시계는나보다도젊지않으냐하는것보다는나는시계보다는늙지아니하였다고아무리해도믿어지는것이다.

 

24시간 속에서 시적 주체의 위치를 규정하고자 하지만, 그 어느 것도 규정될 수 없다. 다만 믿어지는것이다. 옥상정원에서 찾고자 했던 것이 무()였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위치를 규정할 수 없음을 재확인한다. 지상의 시간은 맞지만, 시계의 시간에, 시적 주체의 그 어느 것에도 자리할 수 없고, 아무 것도 아니었다. 12이라는 숫자를 가진 시계의 규정 속에서 시적 주체를 바라볼 것인가, 24라는 하루의 숫자를 기준으로 시적 주체의 주치를 설정할 것인가. 이것은 관찰자의 개입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양자역학의 원리와 같다. 결국 주체의 입장과 위치, 시선에 따라 결과 값이 달라진다. 그리하여 시적 주체는 시계를내동댕이쳐버린다.

 

 

 

시인은 규정가능한 것과 완결된 규정 속에 예속되지 않는다. 시계를 버림으로써, 탈주하고자 한다. 옥상정원에 올라가는, 욕망의 최상위 것을 향해 지향하는 일은 지상에서 무화되어 버린다. 인간-기계의 영역조차, 규정적인 것을 넘어서, 미규정적인 수준까지 끌어올린다. 모든 운동성 안에서 시적 주체는 미규정적 가능성에 그 자신을 열어놓는다. ‘추상기계가 되는 것이다. , 아무 것도 없다. 아무 것도 아니다. 운동이라는 것은 욕망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다.

 

무의미하고, 텅 빈 상태. 지극한 무()의 회전 운동. 시인은 지극한 미규정성 속에서 단지 운동할 뿐이다. 운동과 정지의 관점에서 이 지구를, 이 우주를 사유하다보면, 모든 것은 운동의 충돌과 그로 인한 효과들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사물도 사물 나름의 법칙을 가지고 운동을 하고 있고, 자연도 자연의 흐름에 따라 피고 진다. 모든 것들이 운동하는 가운데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 지워진다. 주체의 고정성 역시 무너진다. 무한 그 자체의 작동 원리를 존중하는 것이다. 우주가 그 자체의 힘으로 존재를 유지하려는 힘, 코나투스(conatus)가 존중된다. 코나투스에 대한 굳건한 믿음, 시인 이상은 그 힘에 대한, 자신의 믿음이 굳건하였다.

 

 

 

 

8. 거동 수상자, 자네는 할 수 있겠나

 

 

뒤샹은 이렇게 말한다. “회화는 이제 끝났어. 저 프로펠러보다 더 나은 것을 누가 만들 수 있겠어? 말해보게, 자네는 할 수 있겠나?”[각주:14]

 

그는 움직이는 사물들에서 강력한 오브제를 발견한다. 여기서 오브제는 초현실주의자들이 말하는 일상용품들이 평범한 부르주아의 일상적 관습적 맥락을 깨드리는 반란의 도구가 된다. 아폴리네르는 입체파 화가들에서 테크놀로지의 아름다움을 감지하는 화가의 감수성이 그의 예술 세계의 핵심적 특징이라고강조한다. “어쩌면 예술과 대중을 화해시키는 일은 미학적 고민에서 자유롭고 에너지에 관심을 갖는 마르셀 뒤샹 같은 예술가에게 달려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뒤샹을 칭찬한다. 아폴리네르는 현대의 스타일은 기계적 인공물의 세계, 특히 자동차나 오토바이나 비행기 같은 빠른 운송기계에 기반 해야 한다는 확고한 믿음[각주:15]을 드러낸다.

운송기계에 대한 감각은 오브제의 감각으로 이어진다. 사물은 곧 오브제가 되어 회화의 영역을 깨드린다. 굳이 붓을 들지 않아도 된다. 개성이 작품에 표현되지 않아도 된다. 주체 가 아니어도 우연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사물과 사물의 만남으로, 예술적 효과가 발생한다.[각주:16] 작가는 다만 발명하고 선택하면 될 일이다. 어떤 사물과 사물을, 거리가 먼 사물을 접붙일 것인가? 콜라주할 것인가? 이런 조화와 배치가 중요해진다. 이 과정에서 예술이라는 무게와 권위가 무너져 내린다. 뒤샹은 기하학과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오가면서, 원근법을 이용하고 때로는 원근법을 벗어나는 실험하고 재구성한다. 캔버스 대신 유리를 캔버스 삼아 작업하고 주체 역시 생각하는 사물로 객관화한다.

 

 

 

생각하는 사물, ‘는 곧 명명하는 자로 변화한다. 사인(sign)하는 자로 만든다. 뒤샹은 원본이 사라지게 함으로써, 다수의 복제본을 만들어, 예술 작품의 가격을 조정한다. 오브제의 일상적 반란을 도모한다. 서명하는 자는 자유자재로 판단하고 활자를 적는다. 이때 무엇을 예술로 볼 것인가? 라는 질문이 발생한다. 예술을 사건으로 만드는 자리에 뒤샹이 존재한다. 이것은 예술적이지 않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라고 질문의 확장이다. 장르를 어떻게 뛰어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1915년 뒤샹은 <자전거 바퀴>를 프랑스에 두고 뉴욕으로 떠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술가는 영혼으로 자신을 표현해야 하며, 예술 작품은 그 영혼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 이후 1917년 뉴욕 독립미술가협회에 <>이 출품된다. 뒤샹은 사건을 일으키고, 사람들의 습관적인 사고를 전복시키는 사건의 주인공이었다.

 

  벌판한복판에 꽃나무하나가있소 근처에는 꽃나무가하나도없소 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를 열심으로생각하는것처럼 열심으로꽃을피워가지고섰소. 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에게갈수없소 나는막달아났소 한꽃나무를위하여 그러는것처럼 나는참그런이상스러운흉내를내었소.

                                      ―「꽃나무전문 (1933)

 

 

  여기에 또 다른 거동이 수상한 자가 있었다. 이상은 옥상정원의 이상을 보기 위해 193610월 일본으로 떠났다. 뒤샹은 뉴욕으로 떠난 뒤, 미술사적으로 조명을 받는 거장이 된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당시 김해경은 거동 수상자로 지목되어 19372월 사상 혐의로 검거된다. 동경은 이상이 꿈꾸던 옥상정원이 아니었다. 서구세계를 모조한 도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 이상은 서울로 귀국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한다.[각주:17] 그는 열심히 꽃을 피웠다. 참으로 이상한 방식으로, 달아나고 운동하던 꽃나무를 만나고자 하였다. 영매와 같은 꽃나무를 위해서, 그는 기성적 권위를 거부하고, 새로운 양식과 기법으로, 새로운 시, 거꾸로 가는 시, 전위로 가는 시, 이상한 시를 완성하였다. 이상은 자신을 믿으며[각주:18], 운동하였던 것이다. “한꽃나무를위하여참으로 이상한 운동을 진행하였던 것이다.

 

 

  * 굵은 글씨는 필자

 

 

금은돌 : 발로 공부하는 사람이다. 2008년 『애지』에 평론을, 2013년 『현대시학』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하다. 연구서 『거울 밖으로 나온 기형도』를 비롯하여 평론집 『한 칸의 시선』『그는 왜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까』가 있다. 2008년 교통사고 당시 살아있는 것은 바라보는 일이다라는 문장이 스치고 지나가다. 그 이후 눈동자를 그리기 시작하여, 다섯 번의 개인전(<눈에 대한 낭만적 독해>)과 네 번의 단체전을 갖다. 2017년 여름 리좀 국제예술인 레지던스 작가로 참여하여, 프랑스 화가 Sylvie Deparis을 주제로 전시를 열다. 1인 잡지 MOOK 발행인이다.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기형도의 비가 2)라는 믿음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현재 '수유너머 104'에서 공부하고 있다 

  • <그림이 있는 글>은 그림과 시, 예술 작품과 문학 작품을 연결하여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하는 공간입니다. 가끔은 제가 직접 그린 그림과 글을 올리기도 하고, 에세이류의 글을 올릴 계획입니다.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 『시와 사람』, <예술산책>, 2019년 여름호 발표 



 

  1. 김정현, 「뒤샹의 작품과 그의 일상에 나타난 우연의 문제」, 『현대미술사연구』, 2013, 114쪽. 뒤샹의 말 재인용. [본문으로]
  2. 김정현, 같은 글, 114쪽. [본문으로]
  3. 김정현, 같은 글, 115쪽. [본문으로]
  4. 마르셀 뒤샹展 2018.12.22(토) ~ 2019.04.07.(일) 장소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2전시실 [본문으로]
  5. 시인 이상은 경성고등공업학교에서 건축을 배우며 수학, 설계, 숫자, 선에 대한 기본 사유 방식을 익힌다. 조감도를 그리고 청사진을 찍고, 건축 설계를 하고, 계획하는 자의 시선으로 건축물을 투시하는 눈을 획득한다. 화가로서 그림을 그리며, 서구의 미술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이상은 보성고보 고희동 미술교사로부터 입체파와 미래파의 특성을, 선명학교 재학 중에 만난 화가 구본웅으로부터 역원근법과 큐비즘적 공간에 대한 해석 등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다. 이재복, 「李箱 시에 나타난 다다이즘적 특성에 관한 연구」, 『한국언어문화』 제18집, 305~306쪽. [본문으로]
  6. 이지연, 「이상(李箱)과 러시아 아방가르드」, 『한국현대문학회 학술발표회 자료집』, 2010, 87쪽. 연구자 이지연은 “이 때 ‘사각이 난 원’ 이라는 표현은 사각형을 빨리 돌렸을 때 만들어지는 원을 연상시키며 이것은 하름스가 「원에 관하여」에서 언급한 직선들의 무한한 꺾임을 통한 원의 형성과정과 유사하다. 즉, 사각의 원은 무한은 아니지만 무한에 다가가는 하름스의 cisfinitum의 논리를 반복하면서 이상의 텍스트 속 평 면 세계가 무한성을 얻게 되는 원칙을 설명해 준다. 즉, 「건축무한육면각체」의 첫 번째 시는 사각 형들의 무한한 중첩과 펼쳐짐을 통해 무한히 펼쳐지는 내부를 지니는 백화점이라는 공간의 풍경을 담는다.”고 말한다. [본문으로]
  7. 매슈 애프런 외, 『마르셀 뒤샹』, 현실문화연구, 2019, 35쪽. [본문으로]
  8. 뒤샹에게는 기욤 아폴리네르라는 시인이 있었다. 아폴리네르는 그의 뇌를 자극하는 도끼와 같았다. 뒤샹은 텍스트, 종이의 세계에 이끌린다. 책은 움직이는 지식 상자였고, 이동하는 전시관(녹색상자)이었고, 활자화 된 그림이었다. 뒤샹은 1912년 11월 고문서 학교의 사서 훈련 교육을 받는다. 1915년 뉴욕으로 떠나기 전에는 생트-주느비에브 도서관에서 자원봉사자로 근무를 한다. 도서관은 뒤샹에게 미술계에서 도망칠 수 있는 일종의 도피처였다. 하지만 사실 그것 이상이었다. 뒤샹의 작품과 글, 인터뷰 등을 통해 우리는 그가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며 고대 철학을 비롯해 원근법과 광학에 대한 르네상스 논문을 광범위하게 읽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뒤샹은 메모광이기도 했다. 노트에 자신의 예술 활동과 창작 아이디어를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리고 언어 실험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뒤샹은 그의 애인이었던 레이놀즈와 ‘책 프로젝트’를 하기도 한다. 알프레드 자리(Alfred Jarry)의 1921년판 『위비 왕』의 장정 작업을 한다. 그 이후에도 텍스트와 연계된 잡지 작업 등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아폴리네르를 위한 작품을 만들기도 하였다. <에나멜을 칠한 아폴리네르> 그림이다. 산업용 페인트를 홍보하는 기존의 양철 광고판에 브랜드 이름을 가리고 기욤 아폴리네르의 성과 동음이의어를 만들어 그에 대한 존경을 표하였다. ‘마르셀 뒤샹(으로부터)라고 서명해 (’마르셀 뒤샹에 의한‘이라고 하지 않고) 자신이 공예로서의 회화에서 멀어졌음을 강조했다. 매슈 애프런, 『마르셀 뒤샹』, 현실문화연구, 2019, 46~89쪽. [본문으로]
  9. 아폴리네르가 죽은 뒤 뒤샹은 초현실주의 운동을 주도했던 앙드레 브르통을 만나 뉴욕의 초현실주의 운동의 핵심 인물로 활동한다. 초현실주의 잡지 『VVV』를 만들기도 한다. 매슈 애프런 외, 『마르셀 뒤샹』, 현실문화연구, 2019, 45쪽. [본문으로]
  10. 매슈 애프런 외, 『마르셀 뒤샹』, 현실문화연구, 2019, 65쪽. [본문으로]
  11.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위해, 미술을 업으로 삼지 않는다. “그림이 직업이 되는 순간 화가는 자신의 작품을 시장의 요구에 맞출 수밖에 없게 되므로 예술은 죽는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질문을 던지는 자가 되기 위해, 미술을 직업으로 삼지 않는다. 거리 두기를 시도한다. 미술과 존재. 예술과 생계. 이 모든 것들이 점점 멀어질수록 그는 잘 보이기 시작했다. 우물 안에서는 우물의 크기의 하늘이 보일 뿐이다. 뒤샹은 우물 밖으로 벗어났기에 다른 위치에서 거리를 두었기에, 아이러니하게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눈치 보지 않을 수 있었다. 거리를 두는 일, 그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앞에서, 예술이라는 직업에 얽매였을 때 발생하는 피곤과 눈치를 거부하기 위함이었다. [본문으로]
  12. 졸업앨범에 그는 “보고도 모르는 것을 폭로시켜라! 그것은 발명보다도 발견! 거기에도 노력은 필요하다”라는 이상의 친필이 담겨 있다. 권영민 엮음, 『이상 전집』, 뿔, 2011, 391~394쪽. [본문으로]
  13. 뒤샹은 예술가는 단독자이고, 노마드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행 속에서, 뒤샹의 <여행 가방 속 상자>는 그의 주요 작품들 이 복제의 형식으로 ‘여행용 가방’처럼 이동할 수 있도록 제작하였다. 필자는 21세기 녹색 상자는 곧 스마트폰, 노트북이라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14. 매슈 애프런 외, 『마르셀 뒤샹』, 현실문화연구, 2019, 43쪽. [본문으로]
  15. 매슈 애프런 외, 같은 책, 43쪽. [본문으로]
  16. 이런 의미에서 주체의 문제가 등장한다. 자기 고유의 정체성을 무너뜨리고 여성으로, 타자로 자신을 만듦으로써, 주체는 운동성을 갖는다. 로트레아몽 『말도로르의 노래』의 네 번째 노래에 보면, “네 번째 노래를 이제 시작하려는 자는 사람이거나 돌이거나 나무이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발화하는 자는 한 명이 아니다. 발화하는 주체는 세계와 자연 속에 잠재해 있는 어떤 보편적인 어떤 목소리를 받아 적는다. 사물은 더 이상 고정되어 있는 그 무엇이 아니다. 무엇이 주체이고 무엇이 대상인지 그 경계가 모호해진다. [본문으로]
  17. 뒤샹과 이상을 하나의 선상에 놓고 단순 비교할 수 없다.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받아서, 일방적으로 예속되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상상을 멈추고 싶지는 않다. 일제강점기가 아니었다면, 이상은 어떻게 살았을까, 어떤 작품을 썼을까. 다만 꿈 꿔 볼 뿐이다. [본문으로]
  18. 뒤샹 역시 이런 말을 남긴다. “대개 사람들이 ‘나는 알아’라고 말할 때 그들은 사실 아는 게 아니라, 믿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자신이 진정한 개인임을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활동의 형태가 예술이라고 믿습니다. 오직 예술에서만 인간은 동물적 상태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예술은 시공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 영역들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이기 때문입니다. 산다는 것은 믿는 것입니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믿습니다.”매슈 애프런 외, 「제임스 존슨 스위니와의 인터뷰」, 『마르셀 뒤샹』, 현실문화연구, 2019, 178쪽. [본문으로]
Posted by 수유너머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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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서로(미술비평가, 수유너머104 세미나 회원)





. 쇤베르크와 벽암록

 

인생은 여행이다. 우리는 모두 지구라는 별에서 태어나 어디론가 떠난다. 그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면서 떠나는 사람도 있고 모르면서 떠나는 사람도 있다. 길을 따라 걷는 사람도 있고 길을 만들면서 가는 사람도 있다. 여기 어느 여행자의 기록이 있다. 그가 걸었던 길 이전과 이후를 확연히 구분시켜 주는 어떤 흔적이 기호가 되어 우리에게 새로운 감각과 사유를 던져주는 경우가 있는데 백남준이 그러하다. 백남준은 우리에게 우연한 마주침으로 다가와 어쩔수 없는 쌩뚱함으로 세상을 보게 만든다.


우리에게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로 알려진 백남준의 여정은 음악에서 시작되었다. 쇤베르크라는 작곡가에 의해 영감을 받아 떠난 여행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여행을 위한 지도 한 장쯤은 필요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지도가 벽암록이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벽암록은 백남준이 50년대 말 독일유학 시기에 탐독했던 책으로 알려졌다. 20대의 백남준을 사로잡은 건 쇤베르크와 함께 벽암록이 보여주는 선()의 세계였다. 그가 독일에서 보였던 <존 케이지에게 보내는 경의>(1959) <머리를 위한 선>(1962)에는 선승들의 행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존 케이지에게 보내는 경의>에서 그는 피아노의 음악적 소리와 비음악적 소리가 지닌 모든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해체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피아노라는 통념을 뒤흔든다. 그에게 음악은 청각적일수도 있지만 시각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청각이 시각적인 것으로 변환되면 그것은 사유를 강요한다.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감각적 경험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들며 이미 전제된 지성이 무능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것은 서구 문명의 이성중심주의에 대한 내밀한 비판으로도 볼 수 있는데, <피아노포르테 소곡>(1959)에서 그는 스승 케이지의 넥타이까지 자르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이렇게 격렬한 행위 예술은 음악의 지배적 질서와 무대 공간에 대한 권위를 무너뜨린다. 이는 마치 목불을 태우고 불상에 올라타는 선승 단하(丹霞)를 닮았다.


백남준에게 예술은 개념을 통해서가 아니라 감각을 통해 사유되는 것이었고, 미리 전제된 관습화된 틀을 깨고 나오는 것이었다. 백남준에게 창조는 새로운 감각의 생성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백남준의 행위예술은 고정된 기본 화음으로부터 소리를 해방시키고 예술 세계의 관습적인 규칙들로부터 행위를 자유롭게 했다. 독일시기에 백남준이 했던 다양한 액션들’, 가령 피아노를 부수거나 관객에게 물을 끼얹거나 바이올린을 내려치는 것, 혹은 넥타이를 자르거나 머리를 감기는 행위들은 새로운 감각만이 하나의 사건으로, 우리의 삶을 변환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에게 예술은 뭔가 고상한 것이 아닌 일상의 새로운 발견이었을 것이다. 그가 텔레비전을 예술의 영역에 끌어들인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1963 3, 파르나스 갤러리에서 백남준은 13대의 텔레비전을 가지고 전시회를 연다. 이때 그는 연극대본처럼 아름다운 글 한편을 쓴다. 그 글이 실험TV 전시회의 후주곡이다. 이 한편의 글에는 백남준이 그 이후에 펼쳤던 예술 세계가 모두 담겨있다. 마치 그가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한 예언처럼.



.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혜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혜가: 스승님, 저는 마음이 항상 불안합니다. 저의 마음을 안심시켜 주십시오.
달마: 너의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오너라. 그대를 위해 마음을 안심시켜 주겠다.
혜가: 마음을 도저히 찾지 못하겠습니다.
달마: 내가 그대를 위해 이미 그대의 마음을 안심시켰다.


선불교는 이 두 사람의 대화로부터 시작되었다. 달마의 대사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후대 사람들은 이를 안심법문이라 불렀다. 바깥 경계로 향해 있는 마음을 안으로 돌이켜 비추는 것을 반조(返照)라 하는데 반조에 의한 안심(安心)의 체득이라 하여 이렇게 이름 붙여진 것이다. 인류의 마음은 달마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진다. 그 이전까지 누구도 마음을 안으로 비출 줄 몰랐다. 단지 돌이켜 비추면 되는 것인데 마음 안을 비춘다는 것은 과연 달마쿠스(Dalmacus)의 전환이라 할 만한 획기적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혜가는 마음을 안으로 향해 무엇을 얻었는가? “찾지 못하겠습니다라는 깨달음이다. 결국 없는 걸 없다고 알기까지 달마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온 만큼의 거리가 인류에게 필요했던 것이다. 다행히 혜가에게도 제자가 있었다. 그가 승찬이다. 승찬은 나병환자였다. 승찬이 혜가에게 부탁한다. “스승님, 저는 과거에 지은 죄가 많아서 병을 앓고 있습니다. 어떻게 참회를 하면 병이 낫겠습니까? 저를 참회시켜주십시오.” 알다시피 혜가는 달마의 제자다. “너의 죄를 가지고 오너라. 그러면 내가 그 죄를 참회시켜주겠다.” 승찬은 (너무나 당연히) 죄를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찾아도 죄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그대의 죄를 이미 모두 참회시켰다.”


불교는 깨달음의 가르침이라 한다.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 성품이 공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혜가의 제자 승찬이 쓴 신심명의 첫 구절은 이러하다.


至道無難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唯嫌揀擇 오직 분별함을 싫어할 뿐이다.

但莫憎愛 다만 미워하고 사랑하지 아니하면

洞然明白 환하게 명백하리라.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게 변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변하기 때문”(345)[각주:1]이라고 말하는 백남준은 승찬의 제자다.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분별[揀擇]이다. 아름답지 않다는 것과 짝을 이루어 사물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구분을 짓는 짓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의 핵심은 자연의 무한한 양이 질이라는 범주를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질의 범주는 두 가지 의미가 섞여서 혼란스러워진 채, 무의식으로 사용된다.”(345) 질의 두 가지 의미는 특성과 가치다. 그런데 백남준은 실험TV에서 이라는 용어는 가치가 아니라 단지 특성을 의미할 뿐이다.”(346)라고 말한다. 가치가 개입이 되면 우리는 분별을 하게 된다. 그러나 단지 특성만을 보게 되면 그것은 양과 마찬가지로 있는 그대로의 실상(實相)을 지칭할 뿐이다. 여기서 백남준은 을 가치로부터 분리시킨다. 우리가 질을 가치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백남준에게 남는 것은 특성으로서 차이. 각 개별자들의 특성을 무화시키지 않으면서도 그것들에 대한 사회적 관습을 벗겨내는 방식은 다른 것을 그냥 다르게 보는 것이다. 그래서 백남준은 말한다. “A B는 다르다. 그러나 그것이 A B보다 우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가끔 나는 빨간 사과가 필요하다. 가끔 나는 빨간 입술도 필요하다.”(346) 빨간 사과와 빨간 입술은 다를 뿐이다. 빨간 사과가 빨간 입술보다 혹은 빨간 입술이 빨간 사과보다 더 좋거나 아름다운 것이 될 수는 없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무의식적인 혼란을 극복하는 방법은 차이를 차이로 남겨놓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이 지극한 도(至道).



. 개성의 표현이 아닌 물리적 음악

 

백남준은 실험TV 완전범죄를 가능하게 하는 최초의 예술(?)형식”(346)이기를 꿈꾼다. 무엇이 완전범죄인가? 가치의 영역인 아름다움의 추구라는 예술행위를 완전히 배반하면서도 배반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하는 것이 완전범죄. 우리는 아름다움의 추구가 예술의 이념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예술이 아름다움의 추구라고 한다면 그것은 사회적 규범이나 양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든 삶의 공간에서 특정한 양상으로 반복하여 행동하게 만드는 요소들을 통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생산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반복을 통한 훈련은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마저 길들인다. 예술이 어떤 개념으로 규정되는 것도 이런 훈련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백남준은 이런 사회적 훈육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예술을 하고자 한다.


“나의 TV가 내 개성의 표현이 아니라 단지 “물리적 음악”일 뿐이라는 것을”(346)

 


완전범죄를 꿈꾸는 범죄자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리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때는 신분(identity)뿐만 아니라 개성(personality)도 감춘다. 나타난 것은 물리적인 현상(phemomenon)인데, 백남준은 이 현상을 음악이라고 표현한다. 그의 실험TV는 물론이고 그 이후에 하게 된 비디오 아트도 알고 보면 음악이다.


백남준의 비디오 작업의 바탕에는 음악이 결부되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백남준의 예술이 지닌 새로운 존재론적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백남준은 이미 <존 케이지에게 보내는 경의>에서 음악적 소리와 비음악적 소리의 위계를 무너뜨렸고, 비디오 작업을 통해서는 인간/기계, 예술/일상의 경계를 지워나갔다. 사이버네틱스 예술라는 글에서는 노버트 위너의 말을 인용하여 정보를 전달하는 신호는 정보를 전달하지 않은 신호와 동일하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선언으로서 백색소음”(노버트 위너와 마셜 매클루언)의 존재론을 예고했다. 사이버네틱스에서 백색소음은 전달될 확률이 극히 낮은 메시지를 의미하기 때문에 오히려 최대치의 정보를 담고 있다. 그래서 전달하지 않은 신호가 동일하게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비디오 아트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디오 신디사이저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신디사이저는 주파수를 종합하는 기계로서 전자음악을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소리를 변형하여 종합하면 녹음한 소리를 다른 소리로 변형하거나 인위적으로 합성할 수 있는데 신디사이저는 이런 작업을 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듯 청각적인 모든 소리가 주파수라는 현상으로 요약할 수 있다면 음악처럼 미술 역시 가시광선을 종합하고 변조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창작 방법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백남준은 본다는 것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을 했다. 우리는 TV를 단지 보기 위해 보지만, 백남준은 청각상의 주파수 변조를 시각상에 대해 주파수 변조라는 작업을 통해 시각의 무한한 변조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비디오 아트란 음악사에서 쇤베르크가 했던 것 이상의 근본적인 의미의 변환을 시각예술 안에서 한 것이 되는데도, 현대음악의 역사를 모르는 채 비디오를 설치물로 끼워넣는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아직도 백남준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각주:2].

 

 

. 예술은 아이디어다

 

그래도 남는 것은 행복이다. “이전의 어떤 작업에서도 이러한 TV실험 작업만큼 내가 너무도 행복하게 일한 적은 없었다.”(347) 왜 행복했는가? 이데아(IDEA)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이때 이데아의 사용방법은 플라톤에서 비롯된다. 총체성으로서의 예술이나 통일성으로서의 예술은 이데아의 적절한 사용의 결과로 나타난 개념들이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본질이나 통일성을 말하는 자 누구인가? 백남준은 아방가르드의 선두주자답게 일찍이 이러한 개념들로부터 자신의 작품을 자유롭게 해방시켰다. 자유롭기 때문에 백남준은 행복할 수 있었다. 이 자유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는가? 아마도 예술 작품의 형식적 구조[각주:3]일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백남준은 자신의 실험TV 예술(?)형식으로 소개했다. 형식적 구조가 TV라는 것이고 그 내용에는 진리나 영원 따위와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백남준의 작업은 과정일 뿐이지 계획도 아니고 결과도 아니다. 무엇인가를 그려본다는 그런 능력이란 애당초 자신에게 없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나는 대체로 작업하기 전에 완성된 작품을 머릿속에서 미리 그려보지도 않고, 또 그렇게 할 능력도 없다.”)(347) 게다가 그는 솔직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공개적으로 말할 만큼 솔직하다. 알고 보면 이데아는 포기해도 좋은 그 무엇이다. 왜냐하면 이데아가 진리, 영원, 완성의 의미와는 별 관련이 없기(348) 때문이다. ‘예술은 이데아의 출현이다라는 헤겔의 말은 결국 예술이 진리나, 영원, 완성과는 상관없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과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아이디어의 페티시즘의 일종일 뿐이다. 그리스 예술에서 비롯한 고귀함이 그랬던 것처럼, 현대에서는 미국의 광고 회사들이 써먹는 상용수단으로서의 아이디어(idea)가 예술에서 말하는 이데아(IDEA).

 

 


. 일상과 황홀의 경계는 어디인가?

 

“비결정성과 변동성이 지난 10년동안 음악에서는 중점과제였지만, 시각예술에서는 매우 저개발된 매개변수이다(문학과 시각예술과는 반대로 음악에서 섹스라는 매개변수가 매우 저개발된 것처럼)”(348)

 

백남준이 명시적으로 말하고 있듯이, 지난 10년동안 음악이 비결정성과 변동성을 중점과제로 부각시킨 것과 대조적으로 시각예술에 있어서 비결정성과 변동성은 매우 저개발된 채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이 백남준으로 하여금 TV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TV는 변동성의 차원으로 보았을 때 많은 신비주의자들이 영원이나 일방향적인 시간으로부터 단숨에 벗어나듯, 평행적인 움직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매체였다. 더구나 책이든 신체든 단 하나의 평행적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들로만 채워져야 하는 문제를 13대의 독립적인 TV는 해결할 수 있었다. 게다가 13대의 TV를 넘어서는 것은 백남준이 보기에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황홀ECSTACY”(350)이다. 백남준은 이 황홀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 다양하게 나열하고 있다. 우선 이 단어는 시적인 영감의 광란, 또는 신성한 것에 대한 명상으로 인한 정신적 변화나 희열”(350)을 의미하고 이어서 완전한 충일의 순간, 영원한 현재의 현존, 무의식 또는 초의식, 극도의 집중, 나는 나 자신으로 일체화되다, 세상이 3분 동안 멈춘다!!! 기타 등등...”(350-351) 그러나 이러한 나열된 의미들을 볼 때 우리가 보통 황홀을 경험하는 순간은 언제일까? 백남준이 보기에는 (약물에 의존하지 않는 방법이라면 흔히) 섹스가 그런 순간일 것이다. 인류가 시작된 이래 자연스럽게 주어져서 포기되지 못했던 황홀의 경지는 섹스일 것이다. 그래서 백남준은 비결정성과 변동성을 말하면서 섹스를 빼놓지 않았다. 그렇다면 음악에서 저개발된 매개변수인 섹스는 어떻게 극복되었나? 이러한 극복도 백남준에 의해 시도되었다. 잘 알다시피 <오페라 섹스트로니크>(1967)가 그러한 실험이다. (그 당시로는 매우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졌고, 첼로 연주자 샬럿 무어만은 유죄판결을 받기까지 했다.)


우리가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이러한 황홀이 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다. 그리고 이 황홀의 작동은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일상적이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내가 아닌 것으로 존재하고, 나는 항상 나인 것으로 존재하지 않”(351)기 때문이다. 백남준의 실험TV는 우리가 원래 자유롭다는 것을, 도달할 수 없는 황홀의 예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이는 임제선사가 우리는 본래 깨달은 존재라고 말한 의도와 비슷하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내가 어디에 있든 주인이 되면, 그곳이 바로 진리의 자리다. 우리는 원래 나인 것으로 존재하지 않기에 자유롭도록 운명지워진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이미 깨달은 존재라는 것을 의심하듯 우리가 자유롭다는 사실을 의심한다. 우리의 의식이 통상적인 특성인 황홀경을 거부할 때 일어나는 현상은 임제선사 때나 백남준 때나 어김없이 일어나고 있다. 결국 백남준이 실험TV이상을 황홀이 보여준다고 했을 때, 실험TV보다 위에 있는 것은 곧 일상의 모습이라는 의미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평소에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잘 모른다) 우리가 말하고, 걷고, 밥 먹고, 잠자고.. 등등 일상적인 활동에서 오는 일들은 사실 놀라운 것이다. (이러한 행위들이 놀랍다는 것은 몸이 아파봐야 안다.) 그래서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로 남을 수 있다. “신비주의적 훈련을 거의 받지 않은 보통의 신체(우리는 단 하나의 심장, 단 하나의 숨결, 단 하나의 시선이 초점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로 가능할지 어떨지 모르지만, 아마도 13대의 독립적인 TV에서 평행적인 흐름들을 동시에 감지하는 것이 신비주의자들의 오랜 꿈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350) 그러나 만약 이런 훈련을 잘 받은 사람은...“예술의 가장 행복한 자살이며...이전에 존재한 적이 없었던 가장 어려운 반()예술이다.”(350) 알다시피 우리들은 이런 훈련을 잘 받은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예술이 필요하다. 예술이 추구하는 바가 만약 황홀이라면 사실 일상과 따로 구분하여 해야 할 바는 아니지만 우리는 모두 그것을 잘 해내지 못하기에 예술을 요구한다. 그래서 예술은 유한으로부터 무한으로의, 그리고 영토로부터 탈영토화로의 이행[각주:4]이다.

 





. 불모의 영점

 

백남준의 작업은 시작도 끝도 없다. 그냥 중간만 존재하는 과정이며 흐름이다. 영원의 접점이나 불모의 영점, 이런 건 없다. 항상 상대적이고, 붕 떠 있으며, 평이하고, 흔하며, 유동적이며, 가변적이며, 허공에 걸려 있다.”(352) 그래서 아주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면 아주 불만족스럽지도 않은 것이다... 마치 항상 재미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항상 재미없지도 않은 나의 실험 TV처럼...”(352) 애초 분별을 여위면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게 된다. 백남준은 자신의 작업이 무엇을 하고 있다고,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백남준의 작업은 그냥 자연일 뿐이다.


그러나 백남준이 실험TV 작업에서 드러내는 것은 오히려 사물들로 하여금 본래의 기능으로부터 벗어나 주변 조건에 맞는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은 특정한 양상으로 반복하여 행동하게 만드는 조건들에 의해 이미 존재하는 양식화된 패턴을 반복하는 반면 예술은 이러한 지배적인 삶의 방식을 교란시키고 해체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한 역할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새로운 예술적 실천이라기보다 새로운 존재론적 의미의 창조다. 새로운 감각은 예측하지 못한 불확실성을 지닌 어떤 존재와 우연히 마주쳤을 때 생겨난다. 그 마주침이 만족스럽지 못할 수도 있고, 재미있지 않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유동적이며 가변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며 흐름으로 존재자를 파악할 때, 우리는 새로운 존재론을 창조할 수 있다. 이때 새로운 존재론의 핵심은 존재자들의 평등성이다. 근대는 인간중심적인 사고방식만을 고집한 나머지 인간 이외의 모든 존재자들을 사물로 격하시키고 소외시켜 버렸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웃한 다른 항과 결합하여 어떤 흐름을 절단하고 채취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모든 것을 기계라 불렀다. 기계로 작동이 된다면 이때는 유기체과 무기체의 구분이 무의미해진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사이버네틱스도 이와 유사하게 유기물과 무기물, 생명체와 기계가 어떤 공통성을 갖는다고 본다. 동물과 기계가 작동방식이 아주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 둘은 하나의 연속성 위에서 차별화되지 않는 하나의 평면으로 존재한다. 우리는 근대라는 시대 이후에 우리를 둘러싼 존재자와의 관계에서 너무나 인간중심적인 관점으로만 살아왔다. 이런 관점에서 인간의 사물화라는 부정적 어법이 차라리 사물의 인간화보다는 더 맞는 표현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유기물이든 무기물이든 모든 것이 기계라는 말은 이제 모든 것이 자연의 일부라는 말과 같아진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면 인간이 만들어 내는 예술작품도 마찬가지로 자연의 일부가 되고, 인간과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게 된다. 더구나 우리의 신체와 연결된 백남준의 작품은 이러한 영향 관계를 더 뚜렷이 보여준다. 예를 들어 <TV 첼로>, <TV 브라>, <TV 안경>, <TV 페니스>(1972)는 나의 다른 신체의 일부와 다르지 않다. 사이버네틱스는 우리의 감각이 기계와 연결될 때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원래 감각이란 그리스어로 아이스테시스(Aisthesis). 감각론과 미학은 서로 동일한 것이기에 백남준의 작품처럼 신체와 기계의 만남으로 감각이 달라진다는 것은 한편으론 미적 감각능력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술은 개념을 만들어내기보다 새로운 감각을 불러내고 이렇게 불러낸 새로운 감각은 기존의 감각을 바꾼다. 이는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게 하고 들리지 않았던 것을 들리게 한다. 이렇게 사이버네틱스는 신체를 바꾼다. 신체가 달라지면 감각이 달라진다. 즉 사이버네틱스는 새로운 신체를 통해 전에 없던 새로운 감각을 불러내는 장치가 될 수 있다.


백남준이 신디사이저와 비디오를 통해 하고자 했던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이런 것들을 통해 그는 우리의 시각적 감각을 바꾸고 미적인 감각을 바꾸려 했던 것이다. 백남준의 실험TV에서 미리 선보였듯이 그의 13대의 TV는 서로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각각 TV의 개별성은 훼손되지 않으면서도 하나의 공동성을 지닐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백남준이 설치한 TV도 어떤 의미에서는 모나드다. 그러나 이때의 모나드는 서로 소통을 거부하는 모나드가 아니라 창문이 활짝 열린 모나드라고 보아야 한다. 원래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는 원래 자신이 가진 필름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펼쳐 보이며 진행하고, 다른 모나드와의 소통이란 신의 예정조화로서 성립하지만, 백남준의 실험TV는 이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자라 할 수 있다. TV의 상태나 놓여지는 위치도 우연이 많이 개입되었을 뿐더러 백남준 자신도 자신의 작품들에게 의 역할을 떠맡지 않았다. 오히려 관객과의 우연적 만남을 통해 매순간 다른 분위기가 연출되도록 놓아두었다. 이러한 시도는 이후의 백남준 비디오 작업에서도 기계를 통해 확장되는 새로운 감각들로서 기계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게 된다. 아마 백남준은 새로운 기술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존재의 세계를 만들어 보여주려고 한 것 같다. 그것은 공동체성이 사라진 개별화된, 혹은 파편화된 자본주의 세계 안에서조차 소통의 가능성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 카타르시스는 없다

 

삼계무법 하처구심(三界無法 何處求心). 백남준이 독일유학시절에 마리 바우어마이스터의 자녀에게 직접 필사하여 선물했다는 벽암록 삼십칠칙(三十七則) 중 한 구절이다. “삼계가 다 텅 비어 있으니 어디서 마음을 찾으랴.” 백남준은 마음의 공성(空性)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거 같다. 그럼에도 그는 선()을 행위로 보여줄지언정 언어로 설명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선은 말하는 순간 선이 아닌게 되어 버리는 당착어법에 속한다. 그래서 선의 자기선전은 선의 어리석은 자살행위이다.”(352) 지금까지 하고 있는 행위가 다 선인데 이걸 선이라고 말하는 순간, 선이 아닌 게 되어 버리는 이상한 현상마저 발생한다. 왜냐하면 선은 두 가지 부정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먼저, “절대적인 것이 상대적이라는 것 이것은 누구나 아는 것이다. 젊음은 영원하지 않다. 다음은 상대적인 것이 절대적인 것이다.”(353) 이것은 좀 어렵다. 왜냐하면 내게 있는 전 재산 만원이 누구의 것보다 많거나 적거나 할 수 없는 것인데, 사람들은 이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원래 그렇게, 있을 만하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는 걸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혹은 믿으려 하지 않는다. “현재가 유토피아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10분의 현재 역시 유토피아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20시간의 현재 역시 유토피아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30개월의 현재 역시 유토피아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4천만 년의 현재 역시 유토피아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353) 백남준이 이렇듯 반복해서 말하는 바, 현재가 유토피아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가 <교향곡 제5>(1965) 악보 제일 앞에 두 문장으로 적어놓았듯이 우리가 연주하는 순간은 우리가 연주하는 작품만큼 중요하다.” “영원성에 대한 숭배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질병이다.” 우리는 현재를 무시한다. 그래서 선의 핵심인 두 번째 부정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353) 좌절은 좌절로서 남을 뿐이고 카타르시스는 없는 것인데도 영속적인 불만족인 백남준의 실험TV에서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기대하려 한다. 그래서 백남준은 말한다: 나의 TV에서 기대하지 마라.(354)


그러거나 말거나 순간이 순간으로 남고 영원이 영원으로 버려질 때, “흰구름 머흘머흘 머리 위를 덮고, 흐르는 물 오묘한 거문고 가락을 타건만, 한 가락 두 가락 아는 이 없어도 가을밤 비에 불은 물은 둑에 넘칠[각주:5] 것이다.

 

 

 


 

 

 

 

 

 

 

 

 

 

 

 

 

  1. 괄호안의 숫자는 「실험TV 전시회의 후주곡」이 실린 『백남준: 말에서 크리스토까지』 (백남준아트센터, 2010)의 쪽수이다. 이하 「실험TV 전시회의 후주곡」에 대한 인용은 괄호안의 쪽수로 대신한다. 인용문의 굵은 글씨는 백남준이 강조한 것이다. [본문으로]
  2. 이진경, 「사이버네틱스와 사이보그: 사이버네틱스의 철학적 질문들」, 백남준아트센터 국제학술심포지엄, 2017. [본문으로]
  3. 질 들뢰즈, 『프루스트와 기호들』, 서동욱·이충민 옮김, 민음사, 2004, 260쪽. [본문으로]
  4. 질 들뢰즈, 『철학이란 무엇인가』, 이정임·윤정임 옮김, 현대미학사, 1995, 260쪽. [본문으로]
  5. “白雲爲蓋 流泉作琴 一曲兩曲無人會 雨過夜搪秋水深”, 『碧巖錄』 三十七則. 번역은 백남준 총서2 『백남준의 귀환』, (백남준아트센터, 2009). 226쪽을 따랐다. [본문으로]
Posted by 수유너머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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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요나킴 2019.05.08 13: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문장 한문장이 제 가슴에 스며들어 점점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읽었습니다 예술에 대한 생각을 고쳐하는 순간입니다 이런 글을 읽고 있는 아침이 유토피아입니다~♡

*수유너머 여행후기


미얀마 여행 후기





글:이준형(수유너머104 회원)

사진:김충한(수유너머104 회원)





이주민방송(MWTV)에서 활동하면서 수유너머와 인연을 맺은 미얀마인 아웅틴툰의 초대로 수유너머 회원 8명은 2019년 2월 25일부터 28일까지 미얀마 중서부 지방을 여행했다. 


미얀마 연방공화국은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반도의 서북쪽에 위치한 국가로 면적 676,578㎢, 인구 5천 5백만명 정도(통계가 부정확함)이고, 수도는 네피도(왕이 사는 곳이라는 의미), 종교는 불교 89%, 기독교 6.2%, 이슬람교 4.3%이며, 버마족 68%, 샨족 9%, 카렌족 7%, 라카인족 4%, 몬족 2%, 기타 10%(기타 소수민족으로 130여개의 종족이 있으나 정확한 자료는 없음)정도인 다민족 국가다. 원래 국호는 버마(Burma)였으나, 1989년 국호를 미얀마(Myanmar)로 변경했고, 소수민족 통합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샨족 등은 여전히 민족 독립국가를 요구하면서 무기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우리는 건기인 2월 25일 새벽 설레는 마음으로 만달레이 국제공항에 도착해서 아웅틴툰과 운전기사를 만났고, 비용절약을 위해 바로 소형버스를 타고 수천 개의 사원과 탑이 있는 old 바간(Bagan)으로 가서 몇 개의 불교 사원을 본 후 어느 멋진 탑에 올라가 붉은 일출을 기다렸다. 그런데 사원들 너머 먼 곳에서 열기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일출과 함께 열기구들이 바람을 타고 우리가 있는 곳으로 날아왔다. 아웅틴툰이 보낸 사진을 볼 때는 그림인지 의심했던 장면이었는데, 직접 눈으로 보니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



이런 탑들이 바간에만 2000개가 넘게 있다고 한다



바간지역은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일출을 보기 위해 올라갈 수 있도록 허가된 탑에 올라왔다.


해가 떴다!



첫날 바간에서 십여개의 사원과 탑을 보면서 감탄했는데, 그 중 아난다 사원의 불상 4개 중 남쪽 불상은 가까이서 보면 엄하고 무서운 얼굴이지만 멀리서 보면 부드럽고 인자한 얼굴을 갖고 있었다. 불상 가까이 앉아 기도하는 높은 계급에게는 무서운 얼굴로, 멀리서 기도하는 낮은 계급에게는 인자한 얼굴로 보이도록 만든 것이다.


신기하게도 멀리서 보면 인자한 모습, 가까이 가면 무서운 모습으로 바뀐다.



 아난다 사원의 외양.


탓빈뉴(Thatbyinnyu Pagoda)사원 앞에서.모든 사원들마다 물건을 사고 파는 조그만 시장들이 형성되어 있었다



모든 사원에는 신발과 양말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처음엔 발이 아프지만 곧 적응된다^^




꽃과 붉은 벽돌이 어울렸던, 이름을 까먹은 사원1. 아직 준공중이었다.



화사한 꽃과 족히 몇 십년 됐을 법한 나무들이 사방에 펼쳐져 있었다



사원안의 정원


종 치는 법을 설명해주고 계신 아웅틴툰씨. 3번 치는 거예요~




사원에서 밖을 바라본 모습



사원 내부에는 곳곳에 정교한 나무 장식이 있다



권력자에게 미움을 받아 고립된 귀족이 '갑갑한 마음'을 불상으로 표현한 사원. 일부러 불상이 꽉 끼게 지었다능..


역시 붉은 벽돌이 잘 어울렸던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사원2


 



황금색의 아난다, 쉐지곤 사원의 신비와 규모에 놀랐고,

이것이 다 금이요!



 쉐산도(Shwesandaw Pagoda) 사원의 운치와 멋에 감탄했다.

쉐산도 사원은 사진이 없어 구글 이미지로 대신


쉐지곤(Shwezigon Paya) 사원에서 우리는 13세의 예쁜 소녀를 만났는데, 아웅틴툰에게 자신이 사원을 안내하고 우리 일행으로부터 돈을 받아 반씩 나누자고 제안한 후 사원의 역사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당돌한 소녀의 제안이 재미있어 2달러를 건네고 설명을 들었고 어린 소녀의 진지한 표정과 열정에 감동해서 함께 사진도 찍었다. 그냥 헤어지는 것이 아쉬웠다.

5:5 어때요? 당돌한 거래를 제안을 했던 소녀. 이 친구의 설명 덕에 쉐지곤 사원과 관련한 재밌는 설화들을 들을 수 있었다



쉐지곤 사원에서. 금색인 것은 모두 진짜 금! 이게 다 금이요.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미얀마어는 이렇게 생겼어요. 예쁘죠?





바간은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부강했던 왕국이었고, 상좌부(上座部)불교가 융성해서 당대 최고의 불교 연구 도시였으나, 몽골의 공납 요구를 거부하다가 1287년 쿠빌라이 칸에게 정복당한 후 왕국이 멸망했고, 왕이 바간을 버리고 떠나자 승려들도 모두 떠나서 버려진 도시가 되었으나, 남겨진 불교 유적으로 인해 관광지로 개발 중인 곳이다.


우리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계속 바간의 사원과 탑을 구경하다가 근처 화려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미얀마 일정 중 가장 좋은 숙소인 Royal Bagan 호텔에 짐을 풀고 공항에서 산 맛있는 중국 술을 마셨다.

면세점에서 산 중국술과 함께한 저녁 식사.연구실에서도 중국술, 미얀마에서도 중국술. 중국술의 일관성!



26일 아침 우리는 호텔 앞에서 어린아이들이 승려가 되는 축제행렬을 만났는데, 미얀마 불교도는 평생 동안 여러 번 승려가 되어 수행을 해야 하고, 그 중 첫 번째 승려가 되는 아이들을 위해 화려한 축제를 연다고 한다. 아이들이 머리를 깎고 승려복을 입고 코끼리나 말의 등에 타고 승려가 되기 위한 축제 행렬에서 긴장한 표정을 하고 있었고, 행렬들 중 일부는 춤을 추기도 했다.


코끼리를 탄 아이



축하 행렬1



축하 행렬2



축하행렬3




음향 장치. 전통 타악기와 SOUNDCRAFT 콘솔의 결합!



한국에서 시위할 때 이런 걸 도입하면 좋을 듯 ^^



승려가 되는 아이들에게 전달될 물품들. 승려가 되는 것은 이곳에서 마을 사람들 모두가 함께하는 큰 행사라고 한다.




우리는 아침식사 후, 불편한 소형버스를 타고 아웅틴툰의 고향인 친주 민닷(Mindat)으로 가는 길에 현지인을 만나 야자수액을 발효한 스카이 비어도 마셨다.

이것이 스카이 비어. 야자수액에 뿌리를 넣어놓으면 자연 발효가 된다. 막걸리와 비슷한 색깔의 술. 요거트와 비슷한 맛. 맛있어서 계속 먹다보면 어느새 취한다



스카이비어를 가져오려면 꽤 높은 곳까지 올라가야 한다



원샷!




상점에서 미얀마 옷도 산 후, Taung Pu Lu Monastery 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수도원에 도착했다. 



사원에서 내려다 본 모습. 고도가 1000미터 좀 넘었다



해가 넘어갑니다



다음 해에 봅시다



같이 공놀이도 하고


화려한 개인기를 자랑했던 우리의 운전기사님.



수도원은 색이 멋있어서 일몰을 볼 때까지 그 곳에서 시간을 보냈고, 일몰 후 아웅틴툰의 고향마을에 도착해 여행객을 위한 간이 숙소에 짐을 푼 후 마을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아웅 틴툰씨의 사촌이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풍성한 환대를 받았다. 맛있었던 미얀마 맥주.


농담으로 우리는 한국에서 온 영화배우라고 소개했는데, 마을사람들은 우리의 외모를 보고 영화배우라고 믿는 듯 사진을 찍었고,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저녁에서 작은 개울가에서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대나무에 밥을 넣어서 구워 먹었고,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면서 밤하늘을 수놓고 있는 많은 별과 은하수를 관찰했다.


아웅틴툰씨의 요청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와준 마을 청년들. 중독성 있는 미얀마 노래를 불러줬다. 밍글라바 오 밍글라바~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과 모닥불과 대나무 밥, 스카이비어, 기타 소리,,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준 아웅틴툰씨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여'지역 가수 떠다지 씨.


대나무 밥. 구우면 대나무 안의 수액이 나와 굳으면서 밥을 감싼다. 한국은 까만 김에 밥을 싸먹지만 미얀마에서는 하얀 김에도 밥을 싸먹을 수도 있다



이렇게 생겼다



27일 아침에는 인근 마을에서 계몽 운동을 하는 승려가 사는 곳에 가서 식사하면서 마을 이야기를 들었다.



 근처 야자수 나무에 오르고, 작은 강에서 대나무를 엮은 배를 타면서 술을 마시고, 길을 걷다가 어떤 집에 들어가 차를 얻어 마시면서 시골의 정서에 취했다.


한적한 미얀마 시골 풍경. 아웅틴툰씨가 어렸을 때 놀면서 있었던 에피스드들을 얘기해줬다.



마을 근처 물이 흐르는 곳에 만들어 놓은 뗏목. 역시나 여기에서도 스카이 비어를 마셨다





노를 젓다 발을 잘 못 디디면 물속에 빠진다



똇목 옆에서 마을 사람들이 직접 만든 수력 발전기+양수기가 있다. 휠이 꽤 빠른 속도로 돌아가고 있었다.



옆 마을로 넘어가는 다리. 사람도 다니고 오토바이도 다닌다. 걸을때 약간 흔들흔들 거린다




다리 아래 물이 흐르는 개울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씻고, 빨래한다. 평화로운 모습.



개울 옆에는 이런 물소가 풀을 뜯고 있었다



닭도 있다



해질녁 아웅틴툰의 고향마을 우물가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28일 새벽에는 시장을 구경한 후,


시장. 현재 시각 새벽 5시. 시장은 새벽 4시 30~오전 7시까지 한다.


아침에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인도의 '난' 같은 음식을 팔고 계시다



아웅틴툰씨의 고향마을 근처의 자우투 (Kyaukhtu)에서 해가 떠오르는 모습.



틴툰씨 고향마을의 집들은 개성있고 예쁜 텍스쳐의 목조 건물이었다. 한 집이 예뻐서 기웃거리고 있으니 주인이 나와 들어와 보시라 하고, 이렇게 다과도 차려주셨다. 알고보니 아웅틴툰씨의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다.




 다시 소형버스를 장시간 타고 만달레이로 갔고, 만달레이 궁전을 지나서 세상에서 가장 큰 책이 있다는 Kuthodaw Pagoda와 만달레이 산에 있는 사원을 구경했다.


탑 안에 불경이 적힌 돌판이 들어 있다

     

이런 식으로.




쿠토도 파야의 대리석판과 산다무니 파야의 대리석판에는 삼장법사의 경전에 대한 해설이 돌에 새겨져 보관되어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큰 책이라고 한다.

만달레이 산에 있는 사원에서 만달레이 궁전을 구경했는데,궁전의 규모가 너무 커서 놀랐다.


갈색 벽돌들 주위로 둘러싸인 숲같은 부분이 만달레이 궁전이다. 너무 커서 카메라에 다 담기지 않는다. 한쪽 변이 몇 키로가 된다.




 

만달레이에서 봤던 사원. 아래기둥 부분에서는 거칠게 시작해서 올라갈수록 섬세하고 정교해지는 느낌.





만달레이에 있는 쇼핑센터에서 지름신을 만나 신기한 물건들을 잔뜩 산 후, 미얀마 마지막 숙소인 문라이트 호텔방에서 마지막 파티를 즐겼다. 육체적으로 힘든 일정이었지만 함께 감당하고 즐긴 동료들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끼면서 귀국했다.



Posted by 수유너머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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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M.C.에셔 (2)

- 스무 살, 미발표작을 중심으로

 

 

  금은돌 (시인, 화가)




 


 

6. M. C. 에셔의 변형

        

M. C.에셔[각주:1]의 그림을 떠올려 본다. 『거울 밖으로 나온 기형도』에서 M.C. 에셔의 그림으로 기형도 시의 시적 주체의 특이점, 흐르는 주체를 설명한 적이 있다.

 

아래 그림 제목은 Metamorphosis이다. 변형 혹은 변이이다. 그림의 출발은 활자이다. 제목 그대로 Metamorphosis이다. 활자는 사각형이 되고, 사각형은 도마뱀이 된다. 도마뱀은 육각형으로 변이되고, 벌집이 되고, 벌집에서 벌이 날아가고, 벌은 물고기가 되고, 물고기는 새가 되고, 새는 점차 사각형이 되고, 체스 판이 되고, 체스 판은 Metamorphosis 활자가 된다. 왼쪽으로 시작하건, 오른쪽에서 출발하여 그림을 보건, 시작과 끝은 같다. 변이 과정에 숱한 이미지들이 놓여있지만, 변주 대상에 리듬이 가해지면서, 이미지는 곡선처럼 흐른다. 정주하는 것 같지만, 운동한다. 노래하며 몸을 바꾼다. 주어의 자리를 타자에게 내어 주는 방식과 같다. 동시간대에 공존하는 생명이다.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다른 형태를 띠지만, 그들은 흐르며 호흡한다. 다른 인칭을 가졌을 뿐, 하나의 존재로 작동한다.

 

이 과정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도록, 그림을 두 부분으로 잘라 보았다. 그 사이에 그 다른 무엇이 들어와도 상관없다. M.C. 에셔는 바흐의 음악을 틀어놓고 작업을 했다고 한다.[각주:2] 그는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변주를 시킨다. 그 대표적인 동물이 도마뱀이다. 그리고 사각형과 육각형의 변주가 그 안에서 음악과 함께 흐른다. 하나의 형태가 형태를 바꾸어, 다른 모습을 가진 물체로 변화한다. 새는 물고기로 변하고, 물고기는 개구리로 변하고, 개구리는 새로 변화한다.

 

 

 Metamorphosis II 1940 Woodcut in black, green and brown, printed from 20 blocks on 3 combined sheets. 3895mm x 192mm.

 

이 변형의 과정은 다름 아닌되기의 과정이다. 활자 - 되기이고, 동물 - 되기이고, 사물 -되기이고 아무 것도 아닌 것 되기이다. 처음으로 - 되기이다. 변주를 거쳐, 상이한 주체, 다양한 주어의 자리에 선다는 것은 시인의 능력을 배가시킨다. 시인이라는 존재가 허름하고 나약하고 연약한 것 같지만, 실은 다양한 능력을 갖추었음이다. 물의 유동적인 상상력으로, 시인은 자유를 획득할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변주의 자유로움을 생성할 때, 시인에게 해방 공간이 열린다. 이것이 시인의 능력이다. 타자들과 공존하는, 블록을 만드는 힘이다.

 

 

 Metamorphosis II 1940 Woodcut in black, green and brown, printed from 20 blocks on 3 combined sheets. 3895mm x 192mm.

 

시인은 다양한 되기의 능력을 가진 존재자이다. ‘되기의 능력을 통해, 현재 자기 자신이 가진 장소를 벗어난다. 다른 곳으로 위치 이동하면서, 또 다른 존재의 목소리를 불러들인다. 이것이 시인이 그 시대에 해야 할 역할이다. 따라서 시인은 새로움을 향해 나간다.

 

M.C. 에셔의 그림은 활자에서 시작하여 활자로 돌아온다. 리듬과 변주가 있는 형태 변형을 마치고, 고요히, 자기 자리로 돌아온다. 이 모든 과정은 일정한 축적 위에서 이루어진다. 축적이 필요하다. 사각형의 축적, 새의 축적, 도마뱀의 축적 위에서, 형태를 조금씩 변화하면서, 다른 지점으로 가 닿는다. 위상적으로 다른, 처음의 위치이다. 이곳은 처음이 아니지만 처음이다. 다른 곳으로 성숙을 한 위치, 나선형의 어느 다른 지점이다.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하지만, 차이를 가진, 어느 일정한 같은 자리이다. 한계를 극복한 처음이고,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는 처음이다. 질적으로 다른, 변형의 자리에 시인이 서 있다.

 

에셔의 그림은 이러한 사유 구조를 보여준다. 먼 여행을 떠났다가 귀국하는 과정을 말이다.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담담하게. 아름답게. 역동적으로 정지하듯이.

 

 

7. 다양한 껍질, ‘

 

 

空中으로 솟구친 길은

그늘을 끼고 돌아왔고

아무것 알지 못하는 그는

한줌 가슴을 버리고

떠났다.

 

車窓 안쪽에 비쳐오는

낯선 거리엔

大理石보다 차가운

幻影이 떠오른다

아무것 알려 하지 않는 그는

미련 없이 머리를 깎았다.

 

그는 나보다 앞선 歲月을 살았고

나와 同甲이었다.

 

감싸안은 두 발이

천장을 디디고 휘청거리는데

단단히 굳어버린 鋪道엔 바람이 일고

이 밤은 여느 때마냥 춥다

            -껍질전문(1978. 3)

 

 

이 시는 기형도 시인이 고등학교 3학년 시절, 18살에 쓴 시이다. 기형도는 한국 현대시에서 3인칭 를 가장 잘 활용한 시인이 아닐까, 한다. 기형도 시의 특이점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는 누구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는 시인의 껍질이다. 제목 그대로 유추해 보면 그러하다. 시인의 분신이자 나의 시적 분화(分化) 결과이다.

 

그는 떠난 자이다. 동시에 먼 여행을 하고 돌아온 자이다. 그의 여행은 험난했다. “공중으로 솟구친 길은 그늘진 어둠을 동반하고, 정처 없는, 목적을 상실한, 그는 뜨거운 가슴을 버렸다 

그는 결연한 결심을 하였는지, 머리를 깎았다. 시인의 눈에 그는 幻影일지 모른다. 그것이 환영일지 모르는 가능성은 다음 문장에서 나타난다.

 

감싸안은 두 발이

천장을 디디고 휘청거리는데

 

그는 어디에 서 있는가? 시적 주체인 나는 어디에 위치하는가?

 

 

                                Relativity 1953 Lithograph. 294mm x 282mm.

 

 

 

그는 시적 주체와 동갑이나 시간적으로 나보다 두터운 시간을 경험한 존재자이다. 같은 시간 선상에 살고 있지만, 다른 층위의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자이다. 동시간대를 살지만 다른 질감을 가진, 두터운 시간의 경험을 가진, 그런 존재자이다. 그와 나는 서로를 냉정하고 차갑게 대한다. 공기가 차갑다. 그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아무것도 알려하지 않는다. 앞선 세월을 살았지만, 그와 나는 연결되어 있다. 그가 정상인가? 내가 정상인가? 분명한 것은 시적 주체의 위치이다. 시적 주체가 두 발을 천장에 디디고 있다. 박쥐처럼.

 

천장에 자리한다.

 

이 부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이 문장의 정확한 주어가 누구인지, 분명치 않다. 그일 수도 있고, 나 일수도 있다. 사실, 나의 위치가 천장이라고 상정해 놓았을 때, 그가 오히려 땅 위에 존재할 수 있다. (기형도 시의 특이점 중의 하나는 발이다. 그는 발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는다. 그의 무의식에서 발은 사라진 형태로 진술된다. 이 시에서도 발은 무엇엔가 감싸 안겨 있다. 왜 그럴까?)

 

시의 첫 행이 공중으로 솟구친 길인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M.C.에셔의 그림처럼, 그와 나의 위치가 역상이었던 것이다. 좌우의 역상이 아니라, 상하의 역상이었던 것이다. 그가 천장에 있건, 내가 천장에 있건, 중요하지 않다. 상대적이다. 어디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가 냉정하다는 말은 다시 말해 내가 냉정하다는 뜻의 발화이다. 그가 떠났다는 구절은 내가 떠났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상대적인 위치에 따라, 바라보는 지점이 바뀔 뿐이다. “=이다. 이들은 같은 껍질을 공유한 존재자이다. 같은 진동과 진자의 파동을 공유하고 있는 존재이다. 침묵으로도 탯줄이 연결되어 있는, 텔레파시로 서로를 호명하는 존재자들이다. 그렇기에 기형도 시에서 3인칭 는 유령처럼, 홀연히, 호출된다. 빈번하게 그의 목소리가 솟아난다. 느닷없이 등장하고, 그를 알아챌 즈음, 사라진다.

 

 

8. 반토막 영혼을 뒤틀어 눈을 뜨면

 

 

내 얼굴이 한 폭 낯선 풍경화로 보이기

시작한 이후, 나는 主語를 잃고 헤매이는

가지 잘린 늙은 나무가 되었다

 

가끔씩 숨이 턱턱 막히는 어둠에 체해

반토막 영혼을 뒤틀어 눈을 뜨면

잔인하게 죽어간 붉은 세월이 곱게 접혀 있는

단단한 몸통 위에,

사람아, 사람아 단풍든다.

아아, 노랗게 단풍든다.

            -전문 (1979.10)

 

 

 이 시는 기형도가 열아홉에 쓴 시이다. 생전 미발표작이지만, 『잎 속의 검은 입』에 수록되어 있다. 앞서 소개한 껍질이라는 시가 78년 작품이라는 감안하였을 때, 그 연장선상에서 해석할만한 하다.

시적 주체인 나는 主語를 잃고 헤매이는 가지 잘린 늙은 나무이다. 접붙이기가 가능한, 그러나 이미 많은 세월을 살아버린, 시간을 선취한, 흐르는 주체이다. 나무의 중심 뿌리를 지향하지 않는다. 리좀이다. 중간의 어느 지점에서 접붙이기를 시도해도 된다. 시적 주체는 내가 자신이 낯설어 보일 때, “한 폭 낯선 풍경화로 보이기 시작할 때, 일차원적인, 크로노스적인 시간에서 벗어난다. 낯선 감각이 온몸에 돋아날 때, 단선적인 시간을 초월할 때, 미래의 시간이 접붙이기 된다. 다른 차원의 시간을 살았던 가 동갑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가능한 이유는 영혼이 눈을 뜨기 때문이다. “눈을 뜨면평범한 일상이 뒤틀어진다. 눈을 뜨는 순간, 사건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현상을 해석하는 위치가 달라질 수 있다. 전개가 뒤집어지는 변곡점이 달라질 수 있다. 눈을 뜨는 순간, 차원이 열리고, 눈을 뜨는 순간, 병이 병이 아니게 된다. 눈을 뜨면, 병은 함께 더불어 가야할 친구가 된다. 눈을 뜨는 순간, 시가 다가온다.

 

시적 주체는 아픔과 병을 단선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병을 오히려 미적 가치를 지닌 대상으로 승화한다. 늙어간다는 것은 단풍드는 일이다. 병을 짊어지고 사는 것은 몸에 대한 예민한 감각으로, 마음을 모시는 일이 된다. 지극히 몸을 돌보는 일이다. 미래의 시간을 선취하는 감각을 보였던 기형도에게, 스무 살이지만, 저 멀리서 시간을 내려다보는 듯한 시인에게, 이런 인식과 표현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사람아, 사람아 단풍든다.” 이러한 인식 덕분에, 병은 아름다워진다. “아아, 노랗게 단풍든다.” 기꺼이 미학적으로 물들어, 스스로 죽음을 맞이한다. 해방이 된다이것은 나를 지우는 일이고, 아상(我相)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Liberation 1955 Lithograph. 199mm x 434mm. Order Prints

 

 

 

 

내가 거듭 변하지 않는 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거듭 변하기 위해 나는 지금의 나를 없애야 한다. 그것이 구원이다.[각주:3]

 

 

기형도에게 빈 주어의 자리는 구원으로 가는 한 방편이었을까? 타자에 이르는 길이었을까? 열아홉의 기형도가 스물 아홉의 기형도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스물 한 살의 기형도는 15,16살의 기형도에게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을까? 왜 이리 조숙했을까? 왜 이리 출발점이 달랐을까? 스무 살의 기형도에게 묻고 싶다. 세 편의 시를 통해서, 에셔의 그림을 함께 보며, 그의 다양한 들을 불러내어, 중얼거려 보고 싶다. 당신의 시가 내 운명을 바꾸었다고. 내가 잠시 당신의 집에 머물다 흘러나왔다고. 발표 연대를 알 수 없는 미발표작 희망을 소환하여, 당신에게 낭독해 주고 싶다. 나 역시 그러했다고. 스무 살의 기형도에게

 

 

이젠 아무런 일도 일어날 수 없으리라

언제부턴가 너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흐른다

이젠 아무런 일도 일어날 수 없으리라

 

그러나

언제부턴가 아무 때나 나는 눈물 흘리지 않는다

                           -희망(발표연대 알 수 없음)

 

 

               Day and Night 1938 Woodcut in black and grey, printed from 2 blocks. 677mm x 391mm.

 

 

 

 

 

 

 

 

 

 

 

 

 

금은돌 : 발로 공부하는 사람이다. 2008년 『애지』에 평론을, 2013년 『현대시학』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하다. 연구서 『거울 밖으로 나온 기형도』를 비롯하여 평론집 『한 칸의 시선』이 있다. 2008년 교통사고 당시 살아있는 것은 바라보는 일이다라는 문장이 스치고 지나가다. 그 이후 눈동자를 그리기 시작하여, 다섯 번의 개인전(<눈에 대한 낭만적 독해>)과 네 번의 단체전을 갖다. 2017년 여름 리좀 국제예술인 레지던스 작가로 참여하여, 프랑스 화가 Sylvie Deparis을 주제로 전시를 열다. 1인 잡지 MOOK 발행인이다.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기형도의 비가 2)라는 믿음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현재 '수유너머 104'에서 공부하고 있다 

  • 해당 글을 음성 파일로 만들어 올려 놓았습니다. 화면으로 글을 읽기 힘든 분들, 음성으로 들으셔도 좋습니다. 1인 잡지 무크 <돌>을 펴냈던 지난 작업을 이어, 1인 잡지를 이어 나갈 계획입니다. 

  • <그림이 있는 글>은 그림과 시, 예술 작품과 문학 작품을 연결하여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하는 공간입니다. 가끔은 제가 직접 그린 그림과 글을 올리기도 하고, 에세이류의 글을 올릴 계획입니다.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  2018년 가을호 『시와 사람』, <예술산책> 발표


 


  1. 모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1898~1972)는 네덜란드 판화가이다. 동물, 새, 물고기 들을 반복적으로 대칭 배열하면서 일정 단위로 반복되는 전체적인 패턴을 구성하였다. 이때 형상과 배경, 평면적인 패턴과 명확한 3차원적 후퇴감 사이의 모호함을 이용한 시각적 환영을 정교하게 사용했다. 1944년경부터 그의 작품은 시각적 비현실성을 보여주는 초현실주의적 색채를 띠었다. 이러한 작품들에서는 3차원적 구성을 2차원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시각적 환영, 사실과 상징, 시각과 개념 사이의 관계 등을 다루면서 실제 경험상으로는 모순된 것에 합리적인 느낌을 부여했다. 책의 해설을 맡고 있는 얀 W. 베르뮐레는 에셔의 그림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에셔의 이미지는 현대를 사는 인간의 고립과 소외의 경험을 표현한다. (중략) 에셔의 작품은 이 세상이 보이는 것 그대로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현실은 긍정되는 동시에 부정되고 있으며, 객관화되는 동시에 상대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그의 세계는 차가운 분위기와 팽팽하게 긴장된 생소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세계에 대해 거리를 두면서도 감정적으로는 몰입하게 된다. M. C. 에셔, 이유경 옮김, 『M.C. 에셔, 무한의 공간』, 다빈치, 2004, 162쪽. [본문으로]
  2. 에셔는 독일 음악가 요한 세바스찬 바흐(1685~1750)의 작품에서도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흐의 음악은 내 작품에 대해 몇 마디 언급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같다. 내가 시각적 이미지를 복제하는 것과 유사하게 바로크 시대 작곡가들 또한 소리의 복제를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내게 무척 인상적인 일이다." [본문으로]
  3. 기형도 전집 편찬위원회 엮음, 「무등에 가기 위하여」, 『기형도 전집 』, 문학과지성사, 2011, 302쪽. [본문으로]
Posted by 수유너머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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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 <문학의 바깥, 삶의 바깥> 강의 후기 




남승화(수유너머104 세미나 회원)




7시 16분. 버스 안이었다. 지나는 곳은 합정. 홍대입구역을 지나고 동교동을 지나야 수유너머가 나온다. 도로는 퇴근으로 분주하니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없다. 버스 손잡이를 쥐기도 하고, 놓기도 했다. 홍대입구역에서 내렸다. 뛰기 시작했다. 시를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 뵙고 싶던 분이셨는데 늦을 수는 없다. 이때 아니면 아마 뵙기는 힘들것 같으니까. 28분에 도착했다. 나는 이 강좌에 있다는 것을 어제 알게 되었다. 부분 수강료인 이만원을 빠르게 냈고 물 한 컵과 강의 자료를 가져왔다. 강의가 시작되었다.

 


강의는 통상적인 의미로서의 삶과 문학을 나누고(강의이기 때문이다.) '어떤 삶에서 문학이라는 행위가 이루어지는가'에 대해 심리학적 접근을 한다. 또한 고통이 문학을 통하여 즐거움으로 변환되는 과정을 보이면서, 여기서 파생되는 문학적 탁월함에 대한 고찰한다. 탁월함에 대한 반대급부의 예시로서‘패터슨’이 동원되고 롤랑 바르트의 ‘아마추어 활동’, 과 장자로 논의가 뒷받침된다. 강의록에 아주 조그마한 오타가 하나 있다. 잠깐 언급된 커트 보거네트는 커트 보니것(Kurt Vonnegut)일 것이다.

 


서두에서 ‘작가의 내부에서 생겨나는 부단한 자기 실험의 욕구나 작가에게 부여되는 예술가적 소명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고’ 에서 슬펐다. 듣고 싶었던 것은 이것이었다. 질문 시간에 요새 진은영님의 문학의 공간은 어떠신지 여쭤볼까 싶었지만, 내가 저런 질문을 받게 되면 쓸데없이 곤혹스러울 것 같고, 또한 진은영님의 신작시를 읽는 것이 이 질문에 대한 훨씬 더 정확한 답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질문을 드리지 않는 편을 택했다.

 


강의 부분 부분마다 인용문들이 재미를 더했다. 오스카 와일드의 인용문은 다시 한번 숙고할 만하다. 수강을 안 하신 분들을 위해 먼저 해당 텍스트를 옮긴다.




 


위험한 정치인


옛적에 청동으로만 생각할 수 있는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그에게 어떤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즐거움, 한순간 머무르는 즐거움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말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더 이상 한 조각의 청동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인간들이 모두 써 버렸기 때문이지요. 남자는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 같았습니다. 그는 자기 아내의 무덤 위에 있는 한 덩어리의 청동을 떠올렸습니다. 그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자인 아내의 무덤을 장식하기 위해 직접 만든 조각상이었습니다. 그것은 슬픔의 조각상이었습니다. 영원히 지속되는 슬픔의 조각상이었죠. 남자는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 같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 슬픔의 조각상, 영원히 지속되는 슬픔의 조각상을 가져와 부서뜨려 불에 녹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한순간만 머무르는 즐거움의 조각상을 만들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 『와일드가 말하는 오스카』, 박명숙 옮김, 민음사, 2016, 156면)



 

오스카 와일드의 우화는 전형적인 애도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 우화가 아주 재미있는 것은 애도의 대상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바뀐다는 것이다. 청동으로만 생각할 수 있는 ‘그’에게 애도의 대상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아내이고, 다른 하나는 청동이다.(*이 세상에는 더 이상 한 조각의 청동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애도의 대상을 아내로 놓으면, 그는 아내를 위한 슬픔의 조각상을 만들었다. 이것은 애도 행위 중에 하나이지만, 그러나, 이것으로 애도가 완료된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 문득 한순간 머무르는 즐거움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고 그는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미쳐 버릴 지경이다. 왜 이렇게 미쳐버릴 지경이 되었을까? 아내의 부재는 슬픔의 조각상으로 굳건함에도 그는 조각상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애도가 완료 되었다고 착각한다. 그렇게 잊혀져버린 것이다. 그러다 그에게 문득 떠오른 생각이 저토록 강력하게 나타나는 것은 애도를 제대로 완료지어야 한다는 내면이 요동친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슬픔의 조각상을 한순간만 머무르는 즐거움의 조각상으로 만들었고 그의 애도는 완료된다.

 


하지만 애도의 대상이 청동이라면 그에게는 ‘그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자’의 조각상마저도 청동의 애도를 위한 재료에 불과하다. 그것은 잘 가공된 청동일 뿐이다. 그러하다면 그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것은 청동이다. 이번에는 아내에 대한 사랑이 착각이다. 그는 청동을 위해 한순간만 머무르는 즐거움의 조각상을 만들고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것은 청동을 위한 애도 행위 중에 하나인 것은 확실하지만, 그의 애도가 완료 되었는지, 완료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다. 문득 그에게 또 다시 자신의 어떤 생각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 같은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어떤 종류의 애도는 절대로 완성될 수 없을지도.

 


인용문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만 더 하겠다. 바가바드 기타 인용문이 인상 깊다. 진은영님은 해당 인용문을 읽으시곤, 한 개 두 개 (……) 여타 등등.’이라는 농을 하셨다.‘여타 등등.’ 이라는 말에서 진은영님이라는 실존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만든 환이겠지만, 그것이 참 좋았다. 나는 이 말을 듣기 위해 여기에 왔다.

 


강의와 나와의 생각이 다른 부분을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예술가가 하얀 종이나 물감통에 자신을 감금하는 것을 세상과의 완전한 유폐, 단절이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찬란한 예술적 행위를 통하여 자기상실, 세계상실에 이르러도,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행위하고 있는 것은 ‘자기’다. 또한 그 ‘세계’ 속의 ‘자기’다. 완벽한 이분화라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모든 시인이 쓰는 언어마저도 세계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고한 상실상태라면 어째서 언어는 상실되지 않았을까?

 


'순수/참여, 깊이/넓이' 라는 논의는 헛되다. 예술가는 작품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통하여 그것의 수용자에게 어떤 행위를 자극시킨다. 앞선 문장이 훨씬 더 중요하지만, 간략하게 쓴다면, 예술가는 사회운동가가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다. 사회문제에 직접적으로 뛰어들면 그것은 사회 운동이다. 예술가가 개입하는 영역은 작품이다. 그러니 예술가에 있어서 넓이란 종이 한 장, 물감통의 지름이면 충분하다. 예술가는 보이지 않는 넓이를 담당한다.

 


예술가를 사회적 참여도로 판단하고 싶다면, 눈에 보이는 넓이, 참여 정도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작품이 가진 넓이의 위력에 대해서 판단하는 것이 합당하다. 예술가들이 사회적 문제에 직접적인 ‘참여’를 해야 하는 급박한 순간이 온다면, 당연스럽게도, 그것은 예술가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의 참여다.

 


강의는 ‘눈 내린 평원처럼 세상의 끝으로 이어지는 종이들, 바이칼 호수처럼 푸른 거대한 물감통을 들고서.’로 끝을 맺었다. 강의록 맨 앞의 릴케의 요청에 대한 진은영의 대답이다. 나는 신작시를 찾아 읽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강의는 동굴 안을 비추는 맑은 샘처럼 느껴졌다. 빛 없이도 비춰지는.

 


강의 내용을 아우르기도 하고 이 수강 후기와도 연관되는 시가 있어 소개하고 마무리하겠다. 수유너머에 좋은 배움이 있기를.

 



시의 아마추어

 

 

내 진정한 생각을 문득 들여다보게 될 경우, 나는 인칭도 태생도 없는 이 내면의 말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사실에 쉬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다. 이 하루살이 같은 형상들을, 자신의 편의로 중단되며 또 그러면서도 무엇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서로를 탈바꿈시키는 이 무한의 시도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 이처럼 겉보기와는 달리 일관이라곤 없으며, 우발적으로 발생하여 순간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생각에, 애당초 양식이란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내게는 매일 꼭 필요한 몇몇의 존재들에게 집중할 힘도, 지긋지긋한 도망 대신 시작과 충일과 결말의 모습을 갖추는 정신적 장애들을 가장할 힘도 없다.

 

한 편의 시란 하나의 지속으로, 독자인 나는 그것을 읽는 내내 앞서 마련된 하나의 법칙을 호흡한다. 내 숨을, 내 목소리에서 비롯된 장치들을, 아니면 침묵과 양립할 수 있는 이들의 힘을 내밀 따름이다.

 

나는 근사한 걸음걸이로 빠져들어 단어들이 이끄는 곳을 읽고, 산다. 단어들의 발현은 기록되어 있다. 그 울림은 계획되고 그 진동은 앞서 행한 관조에 따라 구성되어 있다. 그리하여 단어들은 절묘하거나 순수한 무리를 지어 공명으로 몸을 던지리라. 감탄마저도 당연하다. 왜냐하면 감탄이란 미리 숨겨놓은, 이미 셈에 들어 있는 것이기에.

 

숙명적인 문체에 이끌린 나는, 언제나 미래일 운율이 영영 내 기억을 얽매기만 한다면, 말 하나하나를, 내가 무한히 기다렸던 그 온전한 힘 속에서 느낄 수 있다. 나를 실어 나르기도, 또 내가 색칠하기도 하는 이 운율은 나를 진짜와 가짜로부터 지켜준다. 의혹이 나를 분열시키지도, 이성이 나를 다듬지도 않는다. 결코 우연이란 없으니, -오직 하나의 비상한 기회가 견고해질 따름이다. 아무런 노력도 않고서 이 행복의 언어를 발견하게 되니, 나는 기교를 통해 생각을 생각한다. 온전히 확실한 경이로울 정도로 앞을 내다보는, -빈틈마저 계산된, 본의 아닌 막연이라고는 없는, 움직임이 내게 명하고 그 분량이 나를 채워주는, 기이하게도 완성된 하나의 생각을.

(폴 발레리, 『가장 아름다운 괴물이 저 자신을 괴롭힌다』, 최성웅 옮김, 읻다, 2018, p.32-33)

 

Posted by 수유너머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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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M.C.에셔 (1)

- 스무 살, 미발표작을 중심으로

 

  금은돌 (시인, 화가)

 

 

 

 

 

1. 스무 살의 기형도

 

시인 기형도의 스무 살은 어떠했을까? 그는 어떤 청춘을 보내고 있었을까? 그의 스무 살이 궁금하다. 기형도는 등단 이후, 4~5년 간 문예지에 시를 발표하다가 급작스러운 죽음(198937)을 맞이했다. 알려진 대로 기형도 시인은 중학교 3학년 때 손위 누이 기순도 씨의 죽음을 겪은 뒤, 시를 쓰기 시작했다. 사춘기 무렵이다. 여기서 가정법을 가동시켜보자. 그가 습작 기간 내내 시를 썼다는 가정이다. 1985년에 <동아일보> 등단까지 그는 10여년의 시간이 있었다. 무리한 설정으로 여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필자는 기형도 시인은 등단 이후의 시기보다, 습작기, 문청 시절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세대학교에 입학 후, 연세문학회 활동을 하면서 본격적인 습작 시기를 갖는다. 방위병 시절 수리시 동인 활동을 할 때 발표했던 사강리나 연세대학교 윤동주 문학상 수상작인 식목제의 경우,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에 실린 시와 별반 다르지 않다. 포도밭 묘지역시 1986년에 발표하였지만, 이 작품은 1982년에 거의 완성되었다. 기형도는 한 편의 시를 거의 외울 정도가 되어서야, 깔끔하게 정서된 문서로 보관하였다. 퇴고 과정에서도 펜으로 끊임없이 고쳐 썼다. 시를 완성했을 때에는 정확한 날짜를 기입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등단한 이후에도 문예지에 발표한 시를 복사하거나 정서한 상태로 보관하였다. 시집을 구성할 때도 직접 시의 배열도를 작성했다. 각 시편들에 일정한 점수를 매기며, 시집 배열 구성에 온 정성을 기울였다.[각주:1]

 

 

등단제도를 제거하고 보았을 때 사실, 그는 이미 시인이었다. 등단 여부와 상관없이, 시인이었다. 시적인 몸을 만들고, 시를 노래하고, 시를 향유하며, 시로 숨쉬고, 시로 살고 죽었다. 주변 친구들에게 자신의 시를 읽어주기를 좋아했고, 자신의 시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도 엄격하고 냉정했다. 새로운 시선을 갖기 위해 제3의 길을 가기 위해 유행에 편승하지 않았다. 거리에서, 시를 품고 살았고, 시를 쓰지 못하면, 몸과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어떤 다른 이름보다 시인이라 불리기를 원하였다. 파고다 극장에서 갑작스런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그의 자리엔 시집 원고가 든 가방이 있었다. 그 가방 속엔 제3의 길이 있었다.

 

 

2. 3의 길을 선택하는 방식

 

지금의 나는 참여시(혹은 민중시), 순수시라는 작위적 이분법이 소재주의에 불과한 것이라 믿는다. 이러한 믿음은 당대를 살아가는 詩人의 가치지향성에 위배되는 허약함이라 비난받을 수 있겠으나, 나는 모든 사물과 그것들이 빚어내는 구조 및 현상에 대한 끝없는 탐구를 통하여 예술적 美學과 현실적 가치체계(혹은 理想型으로서의 질서공간) 모두에 접근하고 싶다. 전자의 구체적 이미지와 후자의 상관주의(칼 만하임의 의미에서)가 서로 만나고 부딪히는 詩世界는 나에게 다양성을 제공해 주는 무수한 時流적 갈등을 강요할 것이다.[각주:2]

 

 

 

                 기형도문학관 시벽,  1985년 당시 기형도의 필체가 담긴 미발표 자료

 

 

기형도는 갈등하고 있었다. 고민하고 있었다. 참여시와 순수시라는 이분법에 그 자신이 길들여지지 않으려고 했다. 이분법을 가로지르는 방법을 모색하고 선택하려 했다. 바둑을 둘 때, 포석을 깔듯이, 자신의 집을 지으려고 했다. 참여시와 순수시 사이를 가로지르는 제3의 길을 찾고자 했다.

 

등단하기 전부터 이런 고민과 모색이 있었기에, 그는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필자는 그가 어떤 방식으로 출발하고자 했는지, 그 출발선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의 시적 태도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보는 일이다. 스무 살로 돌아가는 일이이다. 1979~1980년으로 돌아가 보는 일이다. 스무 살에 썼던, 등단 이전의 시라고 얕보지 말자. 당시 문예지에 발표하지 못한 미발표작이라고 비평의 대상에서 제외시키지 말자.

 

 

3. 시의 , 그리고 시인

 

기형도 시인은 꼼꼼하고, 섬세하고, 집착도 있고, 완벽주의적 성향도 있고, 자신의 글에 대한 자부심도 높은 편이었다. 신문기자 생활을 할 때, 데스크 결재 때문에 자신의 글이 고쳐지는 것을 그 무엇보다도 싫어했다. 현실적이면서 비현실적이고 지상에 두 발을 디디고 있으면서도 환상적이었다. 신문사 재직 시절, 시를 쓰는 마음으로 기사를 작성하였다고 한다. 밤새 기사를 수정하고 다듬었다. 심지어, 데스크 편집장의 결재가 떨어진 기사조차 자신의 맘에 들지 않으면, 다시 수정하였다.(직장 내에서 한 번 결재 난 원고를 다시 수정하는 일은 드물다고 할 수 있다. 편집장의 결재가 떨어진 신문기사를 말단 기자가 수정하여 신문에 내는 일은 징계이다.) 그는 남의 말을 잘 듣는 것 같지만, 타자의 말에 흔들리는 편은 아니었다. 경청하지만, 무엇을 결정할 때, 신중했다. 조심스러웠다. 심사숙고 기간이 긴 편이었다. 한 편의 시를 퇴고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예민하고 또 신중했다. 한 편의 시는 이미지와 사유의 축적 결과이다. 자신의 길을 가야한다는 생각이 확고했기에, 조숙했다. 미래의 시간을 선취하여, 미리 시 속에서 늙어버렸다. 그의 이러한 기질은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스무 살 때부터 나타난다. 19802월에 집필한 시 시인 1을 살펴보자.

 

 

              나의 主人 없는 바다에서 一萬 갈래

             물살로 흘렀다. 一千 갈래는 고기떼로 표류

하였다 그 중 너덧 마리는 그물에 걸리었다.

 

한 마리는 뭍에 오르자 곧 물새가 되어 날아갔다.

부리가 흰 물새는 한번도 울지 못하고 죽었다.

그는 하늘에 올라가 구름이 되었다. 물새의

九萬里 공중을 날다가 비가 되었다. 내릴 데

없는 물 같은 비가 되었다.

                                          -시인 1전문 (1980. 2)

 

 

 

이 시는 기형도 시인이 대학 2학년 시기에 쓴 시이다. 의미심장하게도 시인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시인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투절하게 반영되어 있다. 그가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인은 어떠한 존재일까?

 

 

                             기형도 시인이 사용하던 타자기

 

 

 

4. ‘~이다가 아니라 ‘~되다

 

시를 쓰는 일은 혼()의 영역에서 작동한다. 비가시적 영역의 존재자가 등장하는 것이다. 귀신의 영역이다. 실재하는 에너지이다. 에너지는 형태를 바꾼다. 시는 “~ ~이다가 아니라 “~~되다의 문장 구조를 가진다. 시인은 되다의 주어 격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그 주어 역시 불확정성의 대상일 뿐이다. 구체적인 유일무이한 존재자가 없다. “主人 없는 바다라는 구절이 그것을 뒷받침해 준다. 주인 없는 바다에서 一萬 갈래 물살로 흩어지는 것이 시혼의 출발 방식이다. 시인의 영혼은 一千 갈래 고기떼와 같다. 그 물고기는 뭍에 닿자마자, 물새가 되어 날아간다. 작품으로 완성되는 것은 한 마리의 물고기일 뿐이다. “부리가 흰 물새는 한번도 울지 못하고 죽는다.” 시인의 글쓰기는 비인칭적 죽음을 동반한다. 텍스트 위에서의 죽음이고, 글 쓰는 자의 죽음이다. 울음 한 번 크게 내뱉지 못한 자의 죽음이다. 시는 배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빈 텍스트 위에서 시인은 자신의 시론(詩論)을 만들어 간다.

 

물새가 된다. “그는 하늘에 올라가 구름이된다. “물새의 혼은 구만리를 떠돈 뒤, “가 되어, “물같은 비가 되어 흐른다. 주인 없는 바다에 도착했을 것이다. 이 과정을 도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순환의 과정이 담긴 “~되기라고. 액체의 유동적 상상력이다.

 

 

     나의 一萬 갈래 물살(주인 없는 바다) 一千 갈래 고기떼

    한 마리 물고기() 물새(하늘) 구름(물새의 ) (물 같은 비)

 

 

 

 

 

5. 흐르는 주체가 되어

 

기형도 시인의 시적 주체의 특성은 물의 물질적 특성을 흐르는 주체라 명명한 적이 있다. 물의 변화 과정처럼, 기형도 시의 시적 주체는 순환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그 주어의 자리는 비어 있다. 이 말은 바꿔 말하면, 주어의 자리에 그 무엇이 와도 된다는 뜻이다. 주어의 자리에 그 자신의 몸을 내어준다는 뜻이다. 그의 시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의 첫 구절로 유명한 정거장에서의 충고를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모든 길들이 흘러나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시인의 몸은 빈집과 같다. 그러니, 그 어떠한 혼이 머물렀다가 떠나도 된다. 혼의 집이다. 몸에서 혼이 새어나가는 길, 몸에서 새어나가는 시. 액체 성질로 흐르는 길. 모든 것들이 정처 없이 빠져나간다. 흐르는 길 위에 서성이는 시적 주체 역시 흐르는성질을 지닌다. 그 물결 위에 어느 누가 와서 발을 적셔도 된다. 기형도 시의 공간은, 시의 육체는, 주어 자리는 비어있다.

 

비어있기에 “~되기가 가능하다. 그 자리에 주어 / / 가 인칭이 자유롭게, 도착할 수 있다. “이고 가 될 수 있다. 비어있는 장소에 어느 누가 와도 상관없다. 그의 유고작품이라 알려져 있는 빈집역시 이러한 맥락 위에 있다. 그의 시는, 아니 그의 시집은 전체는 하나의 구멍으로 연결되어 있다. 각 시편에서 발견되는 구멍이 하나의 구멍으로 이어진다. 비어있음 덕분에, 시집 전체적으로 건축적 구조를 갖는다. 시집 전체가 하나의 건축 구조물처럼 바람이 통한다. 배관 파이프가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기형도 시집의 특이성을 찾기 위해서는 주어의 비어 있음뿐만 아니라, 공간의 비어있음을 살펴야 한다. 비어있음 덕분에, “주어의 자리에서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 주어의 변주가 결과적으로 서술어의 운동성을 강화한다. 시 전체적인 움직임을, 활동적으로, 틈과 틈 사이를 벌려 놓는 작용을 한다. 슬픔과 결핍과 회한과 안타까움의 구멍을 열어놓는다. 감정과 사건과 바라봄의 시선이 시집 전체에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하나의 흐름으로 완성된다.

 

 

 

 

                                 기형도 시인이 연주하던 기타

 

 

 

5. 공존의 블록

 

모든 되기는 공존의 블록이다[각주:3]공존하기 위한 시적 장치이다. 변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공존하기 위한 것이다. “되기를 시행하는 것은 나의 자리에 타자를 모시기 위함이다. 불어, 함께, 따로, 같이 호흡하기 위함이다. 말로만 비어있음을 말하지 않고, 시적 실천을 하기 위한 것이다. 할 수 없는 가운데 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한, 생성과 변화를 위한 출구를 모색하는 길이다.

 

비가 2-붉은 달에서 보면,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였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우리라고 하는 공동체성과 혼자라고 하는 개별성이 공존하는 문장이다. 개별적인 혼자는 모두 위대하다. “위대한이라는 부사어가 특별히 꾸미는 것은 혼자라는 개별성이다. 각기 위대한 개별자들이 모여, “우리를 형성한다. 그런 다음 기형도는 주문을 건다.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 죽은 영혼이건, 낯선 타자의 목소리건, 이 시대의 암울함과 고단함을 버티고 견디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어떻게 살아있어야 할 것인가? 몸 안에 다양한 혼이 들어왔다가 나가는 것은 영매가 하는 일이다. 영매는 다른 존재의 목소리를 담아 두는 그릇이다. 영매의 몸은 감각적인 스위치로 작동한다. 타자가 몸 안에 들어서는 순간, ON. 나의 목소리에 압도되지 않고, 타자의 목소리가 시인의 몸 안에서, 시적 주체의 허름한 육체에서 새어나간다.

오후 4시의 희망을 비롯한 여타 시에서 나오는 낯선 목소리들의 실체는 이러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의 목소리가 들리고, 소리 1에서 보이는, 낯선 목소리가 새어나간다. 유령과 같은 신비로운 존재가 감지된다. 시적 주체는 자신의 자리를 내어줌으로써, 타자의 목소리를 듣는 자가 된다. 허공에 떠도는 존재들이 기꺼이 존재자의 몸에 담기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