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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_철학.사회

민주주의가 스스로 독재를 원하는 순간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파시즘의 대중심리 서평>

민주주의가 스스로 독재를 원하는 순간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빌헬름 라이히, 『파시즘의 대중심리』(황선길 역, 그린비)

 

 

 

장 희 국/수유너머N 회원

 

 

 

 

민주주의제도는 스스로 자신을 부정하고 독재를 선택할 수 있는 모순적인 지점이 있습니다. 투표와 같은 민주적인 과정을 통해 독재를 승인할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의외로 그러한 사건은 자주 일어납니다. 나치를 선출했던 독일에서부터, 박근혜정권의 집권까지, 직․간접적으로 독재가 승인됩니다. 문제는 그것이 절차적인 정당성을 갖추고 있고, 특별히 어디서부터 조치를 취해야 할 지 알 수 없는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독재보다 민주주의가 우선하는 가치라고 할 때, 이러한 투표는 막아야 할 흐름이지만 그 경우 민주주의는 자유로운 민주적 결정이라는 본질을 잃고 말 것이니까요.

민주주의와 독재의 관계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져있던 제가 빌헬름 라이히의 『파시즘의 대중심리』에 끌리는 것은 당연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나치 집권기를 직접 겪으면서 이와 같은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한 사람이며,『파시즘의 대중심리』는 바로 그 고민을 담은 흔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합리적 판단보다 우선하는 특별한 결정요인

1932년 독일은 민주적 선거를 통해 나치의 집권을 승인합니다. 맑시즘에 기반하여 정치활동을 추구하던 라이히에게 이 선거결과가 주는 충격은 대단했을 겁니다.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주체가 되어야 할 사람들이 공산주의가 아니라 나치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였으니까요. 이 당혹스러운 상황 앞에서 그는 스스로 독일의 위기라 부르는 1930-1933년간의 현상을 면밀히 분석합니다.

라이히가 보기에 나치의 인종정책은 ‘근친상간’의 개념을 잘못 사용하고, 게르만족의 생물학적 차이를 입증하는 방식으로 콧평수를 재는 등(사진 참조) 눈에 띄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이론적 오류가 많다는 것이죠.

 

 

하지만 문제는 대중들이 오류투성이 인종이론을 지지한다는 것입니다. 즉, 논리적으로 판단하기 이전에 작용하는 어떤 결정요인이 이미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파시즘의 대중심리』에서는 이 결정요인이 개인의 심리적 영역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 결정요인은 사회적 조건과 변동에 의해서 변형된 인간의 성격구조에서 비롯됩니다. 이것은 소위 ‘이데올로기’ 라고 부르는 효과로 우리의 눈앞에 나타나게 되죠. 그가 말하는 이 이데올로기적 효과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파시즘에 호응하는 심리를 형성한다는 것이며, 더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스스로 권위에 복속되기를 욕망한다는 효과를 말합니다. 대중을 구성하는 개인은 이성적 판단을 하기 이전에 이미 복종하려는 욕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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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독재의 이면에는 분명 대중의 자발적 지지가 있었다)

 

이제 우리의 질문은 ‘욕망’에서 시작해야 한다

『파시즘의 대중심리』의 이러한 주장은 저에게 개인과 사회를 바라보는 틀을 전환시켜 주었습니다. 민주적 결정으로 독재를 승인하는 것처럼 어떠한 납득하지 못할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사실 관계’를 몰라서가 아니었습니다. 그 이면에는 ‘사실 관계’를 잘 알 지 못하게 하는 어떤 ‘왜곡된 욕망’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왜곡된 욕망’에 대해 잘 모를 때에는 저도 많은 우를 범했습니다. 저와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과 대화를 할 때 의견의 충돌이 일어나면 저는 상대를 설득하겠다고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을 늘어놓으며 악다구니를 썼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끝에서 마주치는 것은 주로 감정싸움이었습니다. 상대를 설득하는데 중요한 것은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그 이전에 그들의 욕망을 이해하는 것인데 말입니다.

이렇게 질문을 전환시켜 새롭게 사유한다는 점에서 저는 라이히가 쓴『파시즘의 대중심리』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드러나는 사실관계 이면에 있는 성향과 욕망을 이해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라이히는 그러한 시도를 그의 책에서 잘 보여주고 있는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라이히에게 매력을 느낀 이후로 푸코나 들뢰즈가 그의 이름을 언급하면 그를 알고있다는 기쁨은 몇 배가 되기도 합니다. 그의 논의가 지금 세대에까지 확실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증거이니까요. 지금『파시즘의 대중심리』에서 대중의 감추어진 ‘욕망’을 함께 찾아보지 않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