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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_번역작업

[대화의 반려들] 해러웨이와 울프의 대담 - 반려종 위치부여

반려종 위치부여 

Donna Haraway & Carry Wolf, Companions in Conversation」, Minnesota University Press(2016)


번역: 최유미(수유너머104)

 




CW: 이야기를 바꿔서 반려종 선언(Companion Species Manifesto)에 관해서 잠깐 이야기합시다. 나중에 다시 두 선언으로 돌아와서 둘을 같이 놓고, 어떻게 그것들이 관련되지만 매우 다른 방식으로 지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중요한 것 , 생정치적 사유 으로 발전되었는지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걸 하기 전에, “반려종 선언과 관련해서, 그것의 구성의 정황들, 그 뒤에 있었던 동기들에 관한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이것에 관해서 분명하게 작품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 중 일부는 개인적인 것이었고, 일부는 정치적이고 제도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다시, 그것의 수용의 정황에 관한 질문도 하고 싶은데요. 왜냐하면, 페미니즘과 더 넓게는 학계, 문화 연구 분야, 등등에서 매우 다른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문화 동물 연구혹은 인간 동물 연구라고 부르는 것은 여전히 없었습니다.

 

DH: 혹은, “복수종 연구들.”

 

CW: 혹은 복수종 연구들, 잘 만들어지고 수선되고 있었지만, 그러나. .

 

DH: . . 아직 완전히 존재하지는 않았습니다.

 

CW: , 분명히 그렇지요

 

DH: 그러데, 사이보그 메니페스토처럼, 반려종 선언은 매우 개인적으로 그리고 동시에 개인적인 것 이상으로 훨씬 더 역사적 위기의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것은 재세계화(reworlding)의 일부입니다. SF 용어는 나에게 매우 중요하게 되었어요. 나에게 그것은, 사이언스 픽션으로 간주되는 것이 무엇이나 그것을 넘어서, 일상적인 생각을 하는 데 필요한 말입니다, 이 재세계화(reworlding)들이라는 것이요. 그래서 반려종 선언우리는 여기서 누구인가? 우리는 무엇인가? 인간이지만은 않은 우리는 누구이고 무엇인가? 이 역사적 위기에 반려종이라함은 무엇이고,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가? 누가 살고 누가 죽고, 어떻게,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가? 여기, 이 위기의 순간에?”라고 묻지 않고는 더 이상 쓰거나 생각할 수 없는 순간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반려종이란, 비록 반려 동물들이 그 속에 들어가지만, 결코 반려 동물만을 의미하지 않고, 오히려 그 이름은 적어도, 사이보그처럼, 확대될 수 있고, 짜여질 수 있습니다. 거미의 뱃속에서 나오는 실크, 다양하고 강한 비단실들처럼 밀이지요.

우리는 반려들입니다. 함께 음식을 놓고 식사 중이지요. 우리는 서로에게 위험이 되고, 서로의 살이고, 먹고 먹히고, 그리고 소화불량에 걸리고, Lynn Margulis의 의미로는, 지구 상에서 살고 죽는 공생발생적 국면에 있는 자들입니다. “사이보그 선언속에서처럼, 우리는 시스템들의 세계에 있지만, 심포이에틱(sympoietic )시스템에 더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건 조화 속에서 만들고, 함께 만들고, 결코 하나가 아니고, 언제나 다른 세계들과 함께 루핑을 하는 것이지, 자기를 만들기가 아니고 오토포이에틱이 아니에요.

 

그리고 종, 가차없이 모순어법적인 성질의 단어는 이상적 타입이고, 코인이고, 정금(正金)이고, 돈이고, 생물학적인 실체이고, 사이언스 픽션의 종이고 뭔가 다른 것의 한 종인 세부이죠. 종은 본질적으로 엄청나게 복잡한 말이예요; 도무지 조화되지 않는 다양한 의미들로 그냥 폭발해버리죠.

 

CW: 우리가 여기서 노만 오 브라운(Norman O. Brown) 연결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겠군요(웃음..).

 


DH: , 그런데, 내 말은..., 어떤 복수종 러브즈 바디(Love’s Body), 아이고 하늘이여 우릴 도우소서!(둘 다 웃음)

그래서, 종은 놀고 있는 나의 개와 나를 훨씬 넘는 것이고,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나의 개와 놀고 있는 나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원상태로 되돌려지고 그리고 다시 되고 있는 나입니다. 나는 불꽃같이 타오르는 재능 있는 이 다른 의 젊은이와 함께 한 달에 두 번 주말에 그리고 그 외에 매주 몇 시간씩의 훈련을 해요. 하필이면 다른 곳도 아닌, NASCAR(National Association for Stock Car Auto Racing, 미국 개조 자동차 경기 연맹) 경주와 기차길 트랙이 있는 행사장, 성인식 축제(quinceañera estas) 15세 된 라틴계 여성을 위한 파티들 와 그 행사장에서 말이죠. 이 젊은이는 캘리포니아의 운동 경기장을 격렬하게 누비는데 나는 그와 함께 있으면서 캘리포니아의 사회, 농업, 산업의 역사 속에 있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미 합중국의 확장의 역사의 한가운데서, 정복당한 영토를 가로질러 행진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 행사장보다 서로에게 위험이 되는 데 더 강력한 장소가 있으면 찾아보세요(웃음).

 

CW: 어떤 점으로 보아도 그렇군요. 하하 (둘 다 웃음)

 

DH: .정말요! 우리가 게임을 하면서, 나와 나의 개, 그리고 친구들과 그들의 개, 그리고 우리가 서로 함께 되는 이 우리는 누구인지를 이해하려고 하면서요. 정말, 우리는 누구지요? 그리고 동시에, 많은 에코페미니스트들과 진심 어린 생태 환경 관련자들 그리고 동물 권리 관련자들이 우리에 관해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순간입니다. 또한, “우리를 만드는 것도요. 그들은 정말 중요한 질문을 만들거나, 제안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 함께 있는 것인가 아닌가? 내 말은, “여기는 무엇이고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크리터들은 우리에게 문제이고 서로에게 문제인가? 라는 거지요. 그리고 그들은 동물산업복합체 속에서 위기에 처해 있는데, 이것은 사이보그 선언이 만들어질 무렵인, 1980년대 초부터의 Barbara Noske의 용어였습니다. 당신은 그걸 알지요, 왜냐하면, 그들의 얽힘 속에서의 인간과 비인간의 번영에 관한 물음들의 이 교차점, 혹은 내파(內破)의 시점에 아무튼, 적절한 비유가 뭘까요? 당신은 이미 연구를 하고 있었고, 몇 년간 해 왔기 때문에 당신은 그걸 알지요.

 

CW: , 그리고 그 시기에는, 적어도 제가 시작했을 때는, 그것은 대체로 중대하지 않은 문제로 여겨졌습니다.

 

DH: 그랬지요. 어쨌든 대학가에서는 아무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나는 2002년경 우리 대학내의 한 문화 연구 퀄로퀴움에서 반려종 선언의 초고를 강연으로 발표했습니다. 한 친구 이 친구는 계속 가까운 동료이자 친구 관계로 있는데요 가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그 강연 정말 좋았어요, 멋졌지만, “사이보그와는 달리, 이것은 뜨지는 못할 것 같아요.” 그런데(둘 다 웃음), 결과적으로 그 말이 매우 예언적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여전히 웃으면서.) 이 시대, 이 세계화(worlding), 혹은 우리가 그것을 뭐라고 부르는 것이든 동물 연구”, “복수종 연구,” “반려종 연구에서, 하나의 용어로서 반려종이라는 용어만큼은 그 자체로 뜨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모든 것 속에서의 인간/비인간 분리 그런데, 그것들이 단일한 분리들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분리들 에 관한 질문, 생명력과 죽을 운명을 공유하는 자들의, 죽을 운명의 창조물들인 우리들의 합치기와 분리에 관한 질문: 이것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떴습니다.

 

CW: , 그리고 그것은 사이보그 선언과는 다르게 반려종 선언에서는 근본적으로 다른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유한성의 의미, 필멸성의 의미가 있습니다. “사이보그 선언속에 있는 것과는 다른 기록부에 있는 삶과 죽음의 현존에 대한 뚜렷한 의미.

 

DH: 그것은 다른 register에 있죠. 글쓴이의 기조는 훨씬 더 개인적이고 취약합니다, “반려종 선언속의 이야기 목소리, 그 작업 속의 ”. . .

 

CW: , 많은 사람들이 사이보그 선언을 너무나 퍼포먼스 모드로 읽었고, 그것은 나중에 당신이 받은 의견과는 다릅니다.

 

DH: 그것은 다른 목소리이지요. “왜 당신은 당신의 페미니스트, 반인종주의, 그리고 사회주의 비판을 반려종 선언에 떨어뜨렸느냐?”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글쎄요, 그건 떨어뜨려진 것이 아닙니다. 그건 적어도 그만큼이나 절실하다는 것이지만, 그것은 매우 다르게 생산됩니다. 거기 어떤 의미가 있는데, 그 의미에서ㅍ『반려종 선언은 사랑의 행동으로부터 자란 부분이 많고, 사이보그 선언은 분노의 행동으로부터 자란 편이 큽니다.

 



CW: 저는 조금도 당신이 비판을 떨어뜨렸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리고 우리가 조금 있다가 이것에 관해 이야기 하겠지만 제 생각에, 실제로는, 당신의 친구가 사회주의자, 반인종주의자, 그리고 페미니스트에 대한 헌신들이라고 부른 것들은 유지가 되지만, 그것들은, 제가 더 철두철미하게 생정치적이라고 부르려고 하는 어떤 정황속에서, 개정됩니다.

 

DH: 그것이 사실이기를 바랍니다.

 

CW: 그리고 그것은 명령-통제-소통-정보와 군산 복합체, 그리고 당신이 사이보그 선언에서 나타내고 있는 노트들과는 매우 다른 맥락입니다. 그것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아니예요. 분명히. 하지만 . . .

 

DH:: . . . 그것들은 다르게 형성됩니다.

 

CW: 아마도 그것들은 다르게 분기하겠지요. 당신이 반려종 선언에서 그것을 나타낸 것처럼, 그것들은 다르게 육체로서 나타납니다. 하나의 접점은  그리고 이것은 두 선언들 사이의 깊은 지하의 연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당신과 카이엔(Cayenne) 사이의 혀로 하는 진한 키스로부터 이 선언이 시작되는지를, 주목하고, 축하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DH: 그 가벼운 포르노의 순간. (둘 다 웃음)

 

CW: 유명이든 악명이든 당신 뜻대로 부르세요. 내가 아는 사람은 모두 그것을 좋아하지만, 그건 내가 같이 시간을 보내는 무리들이지요(웃음 계속). . . . 그러나 있잖습니까, 사람들이 놓치는 중요한 것 그것은, 그런 순간의 한가운데서는, 말하자면, 놓치기 쉽습니다 은 이 메니페스토 역시 바로 면역 시스템으로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DH: , 그렇습니다.

 

CW: 그리고 그것은 인종에 관한 물음으로 사작합니다.

 

DH: 그리고 정복. 그것은 물론 토착성과 인종의 역사들을 이어받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