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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_철학.사회

[과학기술리뷰] 21세기에 현상학을 한다는 것 [현대 기술미디어 철학의 갈래들]

21세기에 현상학을 한다는 것?

-이광석 외, [현대 기술 미디어 철학의 갈래들], 그린비, 2016.



김충한/수유너머N 회원 









[현대 기술 미디어 철학의 갈래들]은 그동안 산만하게 분산되어있던 기술, 미디어에 관한 철학자들의 담론을 보기 좋게 정리하고 소개하는 책이다. 다루고 있는 이는 질베르 시몽동, 발터 벤야민, 빌렘 플루서, 마셜 매클루언, 베르나르 스티글레르, 브뤼노 라투르, 도나 해러웨이, 주디 와이즈먼, 앤드루 핀버그 이다. 이중 상대적으로 생소한 베르나르 스티글레르를 다룬 "5장: 시간, 기억, 기술 : 베르나르 스티글레르의 기술철학(이재현)"을 살펴보자. 


베르나르 스티글레르



                                            베르나르 스티글레르(1952~)


 스티글레르는 이력이 흥미롭다. 1952년생인 그는 학생운동의 일환으로 은행을 털다가(?) 5년간 옥살이를 했다. 복역 기간에 그는 철학 책을 탐독하며 데리다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고 한다. 출옥 후 데리다의 제자가 되어 1992년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 현재는 퐁피두센터 산하의 연구혁신센터의 소장을 맡고 있고 동시에 시골마을에 철학학교를 세워 비판적 사고 능력, 리터러시 교육도 병행하고 있다. 주저로는 [기술과 시간] 3부작이 있고 이외에도 30권의 저서가 있다. 아직 국내에 번역된 책은 없다.




에피메테우스의 실수


  그가 전유하는 철학자는 크게 칸트, 후설, 하이데거, 시몽동, 데리다다. 분야로 말하자면 현상학이 되겠다. [기술과 시간] 3부작중 1권의 부제는 ‘에피메테우스의 실수’인데 에피메테우스는 프로메테우스의 쌍둥이 동생이다.


                                     [기술과 시간 1], 부제가 '에피메테우스의 실수'이다.




 ‘먼저pro 생각하는자 metheus’란 의미의 프로메테우스와 달리 ‘나중에epi  생각하는 자’인 에피메테우스는 인간에게 줄 능력을 따로 남겨놓지 않고 모두 동물들에게 주고 만다. 이 실수로 짐승들의 위협에 처한 인간에게 형인 프로메테우스는 헤파이스토스 대장간에서 기술과 이를 만들 수 있는 불을 인간에게 가져다준다. 

 이 신화를 통해서 스티글레르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결핍된 존재이고 그래서 이를 메우기 위해 보철이 필요한 존재라고 해석한다. 데리다 식으로는 결핍의 ‘대리보충‘을 위해 기술이 필요하다. 이 기술을 통해 인간은 생물학적 진화가 아닌 다른 계통의 진화를 겪는다. 즉 진잔트로피언에서 네안트로피언에 이르기까지는 대뇌가 발달하는 생물학적 진화를 따르다가 어느 정도 단계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의 대뇌상의 변화는 없고, 대신 기술 계통으로의 진화가 발생한다. 인간은 외재하는 인공적 기억에 의거해 진화를 이어 왔다. 이것을 ’후천계통발생‘이라고 일컫는다. 



                         -생물학적 진화가 안정기에 도달하면, 기술 계통의 진화가 시작된다-




[ 이제 우리는 인간의 대뇌 피질 진화의 종료가 삶의 일반 역사의 관점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질문해야 하며, 따라서 최초의 뗀돌조각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기술의 역사이자 인간의 역사에서 근간이 되는 ‘생명 이외의 다른 수단에 의한 삶의 진하 추구’, 이 표현은 ‘후천계통발생’이라는 독특한 개념으로 우리를 이끈다] [기술과 시간 1권], 본문에서 재인용




외재적 기억의 3가지 종류.


그는 기억이 크게 3가지 외재적 지원을 받는다고 한다. DNA, 신체, 기술이다.  DNA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던 유전적 기억이라면 신체는 살아가면서 획득하게 되는 경험과 관련한 기억이다. 기술은 기억을 외화 시켜 영속화할 수 있게 해준다. 이 기술을 통해 인간은 기억을 DNA 말고도 후대로 전할 수 있게 됨으로써 후천계통발생적으로 진화해왔다. 그래서 스티글레르에게 기술은 인간에게 원초적인 그 무엇이다.



시간성


책 이름이 [기술과 시간]인 만큼 기술성을 시간성과 관련되는데, 그는 하이데거의 개념을 전유한다. 하이데거에게 인간은 세계-내-존재로서 지평을 갖게 되며, ‘이미 그곳’이 주어진 존재다. ‘이미 그곳‘이란 선재하는 것으로, 세대를 거쳐 전승되는 유산이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과거가 나의 과거가 된다. 스티글레르에게 이 과거란 바로 '외화된 기억들'로 바뀐다. 예를 들어 ’책‘ 같은.. 


                                



또한 하이데거에게 인간은 죽음을 향한 존재로, 죽음을 향해 미리 달려가 봄을 통해 자신의 실존론적 가능성을 깨닫는다. 이것이 스티글레르에게는 기억의 문제로 바뀐다. “죽는다는 것은 곧 모든 기억이 없어진다는 것을 뜻하므로” 죽음에 미리 달라가 본 인간은 자신의 기억을 외화하기 시작한다.(가령 책을 쓴다.) 

            -죽기 전 얼른 얼른 씁시다. -



정리해보면 ’이미 그곳‘에 있는 선재는 외화를 통해 물려받은 것이며, 이 외화는 제3기억(기술)을 통해 실현된다.(가령 펜, 종이, 타자기, 그리고 요즘은 컴퓨터). 한 마디로 스티글레르에게 현존재는 기억을 물려받고 기억을 기술을 통해 남기는 존재인 셈이다. 그에게 있어 기술은 모두 기억기술(mnemotechincs)이다. 




기억의 산업화: 개체화의 상실


 기술은 의식에는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가? 그는 후설의 개념을 빌려온다. 음악의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음을 하나하나 분절해서 듣지 않고 선율로서, 곡의 진행으로서 듣는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제1파지(primary retention)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곡이 어떤 곡인지 기억해낸다. 이것이 제2파지(secondary retention), 기억, 후설의 ‘시간의식‘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점이 간과되고 있다고 스티글레르는 지적한다.


-"후설의 제1파지와 제2파지 사이에 중요한 점이 간과되고 있단 말이오.."-



 기억의 3가지 형태 즉 DNA, 신체, 기술 중 3번째 기억인 기술이 제1파지와 제2파지를 접합시킨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축음기라는 기술이 멜로디를 반복적으로 재생했기 때문에 제2파지 즉 기억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우리의 의식은 지금 현재 내가 지각하고 있는 것, 내가 회상하는 것, 그리고 외화된 기억, 이 세 가지의 접합을 통해 이루어진다. p.169






-스티글레르의 제1,2,3파지가 어떤 관계인지 설명하는 도식-



 문제는 3번째 기억인 기술이 산업화되면서 발생한다. 내가 지각하고 있는 것, 내가 회상하는 것, 외화된 기억의 상호변환적 관계로서 의식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외화된 기억이 나머지 둘을 압도하기 시작한다. ‘기억의 초-산업화’는 넘치는 속도로 인간 의식에 자극을 가하며 오히려 인간 정신을 빈곤하게 만든다. 오직 현재의 말초적 자극 속에서 인간은 과거, 현재, 미래의 감각을 상실하고 동시에 공간감도 잃게 된다. 그는 ‘시공간적 오리엔테이션 상실’이라고 지칭한다.  왜 그가 시골에 철학학교를 세워 비판적 사고 능력의 훈련, 리터러시 교육이라는, 다분히 계몽주의적 운동에 힘쓰는지 이해되는 대목이다.


스티글레르의 입장에 동의하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전통적 철학의 개념을 기술성의 맥락에서 변용시키고, 이를 통해 현대 사회에 대한 관점을 만들어 가는 작업이 흥미롭다. 스티글레르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 소개되는 대다수 학자들이 작업이 그러하다. 기존의 철학 개념을 숙지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이를 통해 지금의 기술, 매체를 사유하고자 하는 이 그리고 기술, 매체 철학 전반에 대한 개략적인 상을 그리고자 하는 이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