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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_번역작업

[시몽동x번역기계] 시몽동과 빅데이터

[시몽동X번역기계]

코너소개:   질베르 시몽동에 관한 최신의 연구들을 번역합니다. 우선 Journal of Media and Communication vol. 6, "Simondon: Media and Technics" 에 있는 논문들이 주 대상이 될 것입니다. 이 저널의 장점은 신진 학자들이 시몽동의 개체화 이론, 발명의 개념등을  다양한 영역에서 작동시키는 논문들을 싣고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요즘 핫한 이슈인 빅데이터에 대한 논문부터 시작합니다. 이 저널 외에도 시몽동 관련해서 흥미 있는 읽을 거리가 발견되면 계속 번역을 해볼 작정입니다. 첫번째 글은 Simon Mills(De Montfort University), Simondon and Big Data 입니다.

 

 

 

시몽동과 빅 데이터

Simon Mills(De Montfort University), Simondon and Big Data, Journal of Media and Communication vol. 6, "Simondon: Media and Technics"  

 

 

 

 

 번역:최유미/수유너머N 회원

 

 

 

 

 

이 글은 빅데이터가 사회를 이해하고 관리하기 위한 보편적 방법을 제공한다는 주장들의 몇 가지 한계들을 고찰하고자 한다. 특히 알렉스 펜트랜드 (Alex Pentland)의 작업에서 주장되는 것들이다. 우리는 질베르 시몽동의 작업에 비추어서 펜트랜드의 사회물리학(social physics)을 분석하는 방법을 사용할 것이다. 이 글에서 우리는 펜트랜드의 사회 이론이 근본적으로 사이버네틱스적이고, 그 이해의 도식은 시몽동의 비판을 받게 됨을 논증할 것이다. 추가적으로 이 글은 사회물리학이 과잉 목적적 사회 구조의 개발에 이르게 되는 방식을 질문한다; 발명의 이론화, 목적론과 오픈 시스템들에 대한 목적론의 능력 결여, 그리고 그것이 개발한 사회 존재론을 의문시한다. 시몽동이 수정한 정보개념은 결정론과 비결정론의 사이에 처해 있다. 그래서 그는, “우리는 곧 인간사회(human society)를 갖는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재발명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는 펜트랜드의 주장에 동의할지 모른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에서 이 주장의 성질을 이해할 것이다. 우리는 펜트랜드의 작업이 또 다른 통제혁명의 국면으로 향하는 지점에서 비결정성(indeterminacy)을 이론화하는 방법과 하나의 양태로서 관개체성(transindividual)에 관한 고려를 어떻게 누락하는지에 관한 더욱 중요한 질문을 놓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노버트위너의 사이버네틱스

 

 

정보사회의 등장은 인간사회와 사회행동의 모든 측면에서 정보처리,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제어를 노출시켰는데, 그것에 상응하는 공식적인 정보이론의 개발보다도 더한 것이었다. 우리 사회과학자들이 사회적 구조와 과정에 관해, 급증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 비체계적인 지식을 환원시키려고 희망할 곳은 이들 기본적인 정보개념들이라고 나는 믿는다.”(Beniger, 1986, p. 436) 제임스 베니거(James Beniger)는 사회적 제어를 위한 정보역할의 개발에 대해 폭넓은 역사적인 분석을 통해서 이렇게 결론짓는다. 이러한 결론과 더불어 그는 사회에 대해서 광범위하게 사이버네틱한 이해를 갖는 사회학의 중요성을 재확인한다. 그가 비록 1차 사이버네틱스가 프로그래밍 보다는 오히려 제어행위에 초점을 맞춘 것을 문제시 할지라도, 그의 견해에서 사이버네틱스의 3C (명령command, 제어control, 소통communication)가 사회적 복잡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유망한 접근법을 제공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우리는 오늘날, 최근의 빅 데이터의 발전과 함께 그러한 기획의 진전을 목격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 우리는 철학자 질베르 시몽동의 작업 렌즈를 통해서 빅 데이터를 위한 사회학적인 주장들에 관해서 몇 가지 제한점들을 탐구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또한 시몽동의 작업과의 계속되는 유관성을 입증하기를 바란다. 특히 우리는 사회물리학(Alex Pentland, 2014)에 관한 알렉스 펜트랜드의 작업에 초점을 맞출 것인데, 그것은 빅 데이터를 사회의 이해에 적용하는데 있어서 현재까지 생산된 가장 철저하게 개발된 이론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목표는 빅 데이터를, 그리고 특히 사회물리학을 사이버네틱스의 계보 내에 위치시키는 것이다. 시몽동 작업의 두드러진 성취 중 하나는 그가 사이버네틱스의 주된 신조를 문제시했다는 점이다. 이는 사이버네틱스가 광범위한 적용을 획득하기 이전에, 그리고 시몽동 자신이 사이버네틱스에 관한 작업을 전개하는 중에 이루어진 것이다.

 

 

<팬트랜드 와 시몽동>

 

 

먼저, 사회의 도메인과 관련해서 빅 데이터를 위해 만들어지고 있는 몇 가지 주장들이 무엇인지에 관해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킷친(Kitchin) (Kitchin, 2013)에 따르면, 빅 데이터의 새로운 점은 사용 가능한 막대한 데이터의 양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원천들 (다양성)으로부터의 수집과 분배가 거의 실시간 속도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네트워크로 연결된 디지털기기들의 광범위한 사용 때문이다. 전체적인 목표는 표적 모집단에 관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모델링과 예측에 대한 빅 데이터의 능력에 관한 초기의 주장들은 비지니스, 마케팅, 과학 그리고 경제학과 관련하여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점차 헬스케어, 운송, 하우징과 같은 타 분야에서의 솔루션 제공, 그리고 더 일반적으로는 광범위한 사회학적 방법을 제공하는 것으로서 과대 선전되고 있다. 그러한 야심은 또한 사물 인터넷, 웹스퀘어드(Web²) 와 퍼스웨이시브 기술과 같은 현상의 전개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빅 데이터가 적용되어 온 많은 응용 분야들은 비교적 닫힌 시스템들을 포함하는데, 거기서는 특정 문제들을 조사하기 위해서 데이터가 수집된다. 예를 들면 교통 흐름을 통제하는 시스템은, 미리 프로그램된 상태로 실시간 데이터를 이끌기 위해서, 모델들과 관련된 알고리즘으로 실시간 데이터가 분석된다.

 

 

 

 

이 접근법에 있어서의 중요한 이슈는 개입된 시스템들의 인과적 작동에 관한 이해를 얻는 것이다. 문서에 의해 입증된 대로 정량적 데이터(quantitative data)의 사용은, 귀납의 문제에 의해서, 상관관계를 이끌어 내는 능력에 이르게 되지만, 반드시 인과성이 있다는 것을 이끌어내지는 않는다.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 2008, no page)의 악명 높은 주장 하나는, 빅데이터는 정량적 분석에서 순전히 규모를 통해서 이 문제를 해소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 속에서 막대한 양의 데이터와 응용 수학이 모든 다른 도구를 대체하는 세계이다. 언어학에서 사회학까지, 인간행위에 관한 모든 이론을 쫓아내라. 분류학, 존재론 그리고 심리학을 잊어라우리는 세상에서 지금껏 본 가장 큰 컴퓨팅 클러스터들 속으로 숫자들을 던져 넣고 그리고 통계알고리즘들로 하여금 과학으로는 불가능한 패턴들을 찾아내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빅 데이터에 관한 강한 주장은 다음과 같다. 모든 종류의 시스템들에 관한 우리의 이해는 데이터 그 자체에 대해서 작업하는 데서 비롯될 것이며, 해석에 관한 지저분한 고투들은 없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킷친(Kitchin, 2013, p.130)은 이것을 경험론의 재출현으로 보는데, 그 속에서 모델은 먼저 수집하고 나중에 질문 한다.”(Croll as quoted in Kitchin 2013)

 

비교적 닫혀있고 제한적인 시스템들이나 네트워크들 (예를 들면, 전기 그리드, 교통 통제, 구매 행위들)을 조절하기 위해서 빅 데이터를 사용하는 것에 제기된 몇 가지의 주장들에 대해서 긍정적일 적절한 이유가 있을지라도, 우리는 전체로서의 사회를 조절하기 위해 만들어진 더 야심 찬 주장들에 대단한 주의를 기울여서 다루었었는가? 예를 들면, 우리는 빅 데이터의 지도적 옹호자인 알렉스 펜트랜드(Alex Pentland)를 얼마나 심각하게 봐야 할 것인가? 그가 다음과 같이 말할 때 말이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와 칼 막스(Karl Marx)는 틀렸거나, 적어도 단지 반쪽짜리 해답을 가졌다. 왜냐고? 그들은 시장과 계급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그것들은 총계들이다. 그것들은 평균들이다이것은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서 충분히 볼 능력을 가진 인간의 역사에서 최초의 시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가졌던 시스템들보다 질적으로 더 잘 작동하는 사회 시스템들을 실제적으로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괄목할만한 변화다. 그것은 쓰기가 개발되었을 때 혹은 어디서나 교육을 받을 수 있을 때, 혹은 인터넷을 통해 서로 연결되기 시작했을 때 일어났던 상전이와 아마도 같은 것이다. ( Pentland, 2012)

 

 

<팬트랜드의 책, 사회물리학>

 

 

 

 

이러한 언설로 보아, 펜트랜드가 노리는 것은 사회적 추상에 관한 전통적인 이론의 토대를 약화시키고 그 자신의 작동적인 추상을 전개하는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 과학적 자격이 사회 물리학의 이름으로 지지되는, 전적으로 정량적이고 경험론자적 기초를 가지고 말이다. 하지만 사회물리학이 계급에 기초를 둔 이론들을 기각하는 것뿐만 아니라, 단지 환원주의자의 이론이 될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펜트랜드는 분명하다. 몇몇 근래의 경제학 이론들에서 발견되는 것처럼, 집합적 행동들이 어떤 창발적 평형에 이르는 합리적 행위자들로서의 개인들 말이다. 펜트랜드(2014, p. 4)사회적 효과가 존재함을 주장했다. 그는 사이버네틱스에서 행해지는 설명을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정보와 사고의 흐름을 통해서 그것이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사회물리학은, 한편으로는 정보와 사고의 흐름과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행위와의 사이에 신뢰 가능하고, 수학적인 연관들을 서술하는 정량적인 사회 과학이다. 사회물리학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회적 학습의 메커니즘을 통해서 사고가 어떻게 흐르는지와 이 사고의 흐름이 어떻게 우리 기업들, 도시들, 그리고 사회들의 규범과 생산성 그리고 창의적 산출물을 형성하는지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사회물리학은 인간의 욕망과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관한 그들의 결정이 종종 사회 네트워크 효과에 의해서 지배 받는다라는 점을 입증한다. 그래서 그것은 개인들이 그들의 목적과 행위를 합리적으로 결정한다고 보는 합리적 경제행위자 접근법과는 구별된다. (Pentland, 2014, p. 59). 그 자체로서 사회물리학은 초점을 행위자로서의 개인으로부터 개인들이 살고 있는 정보와 사고의 흐름으로 이동시킨다: “사고의 흐름이 공동체와 문화의 진짜 이야기이다. 그 나머지는 단지 외관이며 환상일 뿐이다” (Pentland, 2014, p. 44).

 

펜트랜드(Pentland, 2014, p. 20)의 사고에 관한 정의는 도구적 행위를 위한 하나의 전략이고 정보는 사고에 통합될 수 있는 관찰이다. 펜트랜드가 비록 개인적 목적과 동기를 고려하지만, 개인적인 것들은 사회 네트워크 전반에 걸친 전체적인 사고의 흐름 속으로 포함된다.

 

사회물리학의 약속은 이러한 정보와 사고의 흐름에 의해 생기는 패턴의 지도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들이 단지 평균하여 사회를 이해하는 고전적 방식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Pentland, 2014, p. 10) 더욱 미세한 마이크로 패턴의 수준에서 사회행위를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펜트랜드는 더 나아가서 정량적이고 정성적인 전통적 사회학적 방법론들은 미래 행위의 예측 모델을 개발할 수 있는 상태에 접근하기에는 수집하는 데이터의 양이 불충분하다고 주장한다.

 

 

 

빅데이터의 약속?

 

 

 

 

이것이 빅 데이터가 전경화 되는 지점이다. 그것은 사회물리학으로 하여금 정확히 사회 네트워크의 지도를 작성할 수 있도록 하고 어떻게 사고들이 행위와 행동으로 바뀌는지를 볼 수 있도록하는 엄청난 양의 디지털 부스러기들을 수집하고, 저장하고 분석하기 하기 위해 동시대의 디지털 기술을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나 물론 그러한 기획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단지 사회의 운영을 찾아내어 보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위너(Weiner)와 비어(Beer)에 의해 개발된 것과 같은 사회학적인-사이버네틱스의 전통 속에서, 명령과 통제를 위한 전략을 개발하는 것이기도 하다. 펜트랜드(Pentland, 2014, p. 171)의 텍스트 자체는 사회물리학을 도시에 적용하는 것에 관해서 토의를 할 때와 같은 리얼리티 마이닝reality mining”의 긍정적 잠재력에 관한 주장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우리는 개척과 개입을 향상시키기 위해 환경을 가공하기를 원한다; 혹은 사회 네트워크들은 유용한 사회 규범의 개발과 시행을 위해 더 효과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다. 우리는 현재의 경제시스템, 정부시스템, 그리고 업무시스템을 재발명하기 위해서 이 교훈들을 적용하기 시작할 필요가 있다”(Pentland, 2014, p. 208).

 

펜트랜드(Pentland, 2014, p. 180)에 관한 한, 이 프로젝트가 유토피아적 잠재력을 만족시키는 것을 방해하는 주된 이슈는 프라이버시이다. 혹은 그의 작업을 떠받치는 암묵적인 자유주의적 정치를 다소 넌지시 비치는 용어를 사용한다면, 우리가 서비스의 대가로 회사나 정부에게 제공하는 개인데이터를 귀중한 개인 자산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그것의 소유권을 정의하는 것이다.

 

이하에서 나는 질베르 시몽동의 작업을 통해 빅 데이터를 위해 만들어진 사회학적 주장들에 대해서 고찰해 보고자 한다. 사회물리학은 현대의 기술적 발전을 반영하기 위해서 업데이트된 사이버네틱한 세계 상황으로부터 나타났다는 것이 나의 논지이다. 시몽동의 작업은 그자체로 특별히 유관하다. 그것은 그의 작업이 기술과 사회의 본성 둘 다에 관한 어떤 독창적인 관점을 개발함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사이버네틱스의 관점들을 프랑스 인식론의 전통과 결합함에 있어서의 그것의 독특한 위치에 기인한다. 빅 데이터에 관해서 그리고 사회물리학에 관해서 고안된 주장들은 이러한 같은 도메인들을 횡단하고, 그 자체로 그것들 사이의 대화는 적절해 보인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