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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_철학.사회

[이슈] 표현의 자유를 위해 혐오표현을 규제하라

표현의 자유를 위해 혐오표현을 규제하라[각주:1].

 

 



박기형/수유너머N 세미나 회원

 

 

 


표현의 자유와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라는 딜레마

 

표현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그리고 언제나 허용되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권리인가? 일베를 둘러싼 규제 논란은 우리에게 이상의 질문을 제기한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는 반드시 지켜져야 할 가치로 인식되었다. 그렇기에 사회적,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하고 확대되어야 하는 권리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일베 논란으로부터 촉발된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 담론은 이러한 기존의 인식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였다. 다시 말해 전라디언, 김치녀, 노알라 등을 비롯해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어묵 비하 발언까지 다양한 형태로 표출된 표현들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 이른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약이 필요하지 않은가라는 물음이 제기된 것이다.

 

하지만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와 관련하여 가장 큰 문제는 혐오표현에 대한 주류적 논의들은 이를 규제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라는 질문의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러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피상적 논의로 인해 일베 논란에 대한 적절한 규제를 달성하기보다는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대폭 축소 및 제한할 수 있는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표현의 자유를 옹호했던 주체들이 표현의 자유를 제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논리가 자기모순에 빠져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현재 일베에 대해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반적인 의견은 도덕적 기준과 심리적 차원, 뉘앙스와 같은 표현의 정도 차원에서 규제의 정당성을 찾고자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일베를 비롯한 혐오표현을 양산하는 자들의 논리를, 다시 말해 자신들 또한 표현의 자유라는 권리가 있다는 주장을 효과적으로 반박하지 못한다는 약점을 갖는다. 예컨대, ‘노알라쥐박이라는 표현에 대한 규제 문제를 놓고 볼 때, 이명박은 나쁜 대통령이니까 희화화해도 되고, 노무현은 착한 대통령이니까 희화화해서는 안 된다는 식의 진영 논리는 민주화 운동 세력의 도덕적 우월감에 대한 반감을 표시하는 일베들의 좋은 먹잇감이 될 뿐이며, 오히려 일베들이 똑같은 논리로 자신들의 혐오표현을 방어하는 기제로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할 뿐이다.

 



 

 

혐오표현의 규제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논의의 출발점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보아야 할 지점이 있다. 바로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는 주체가 뒤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앞서 표현의 자유를 주창했던 주체들은 군부독재에 맞서 민주화를 요구하던 세력이나 기존의 권력집단 또는 기성 담론에 맞서 새로운 것들을 주장하는 집단들이었다. 독재와 기존 논의에 맞서는 대항 및 문제 제기 수단 그리고 새로운 사유를 촉발하는 단초를 제공하는 수단으로써 표현의 자유가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베 논란을 기점으로 오히려 이들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이렇듯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는 자들과 표현의 자유를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서로 뒤바뀐 사실에 주목 해야 한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 논의의 출발점을 마련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주체들이 바뀐 사실이 표현의 자유와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가 갖는 딜레마를 해결하는데 단초를 제공하는가? 일베에 대한 적극적인 규제를 요구하는 세력들이 과거에는 표현의 자유를 주창했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그동안 숱하게 표현의 자유를 외쳤지만 정작 그것의 실질적인 의미와 기준에 대해서는 깊은 고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해주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표현의 자유가 갖는 경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도외시 한 채, 자신의 논리를 도덕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내용이 텅 빈 미사어구로써만 표현의 자유를 끌어다 붙이는데 그쳤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일베의 혐오표현으로 말미암은 현재의 논란은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위험을 불러일으켰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표현의 자유의 경계를 논의함으로써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고 보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이러한 변화와 충격으로 인해서 비로소 우리는 표현의 자유의 경계는 어디이며, 혐오표현이란 정확히 무엇인지, 둘 사이의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한 기준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무엇보다도 그러한 논의에서 출발할 때에야 표현의 자유가 급격히 위축되지 않으면서도 혐오표현에 대한 제대로 된 규제를 시행할 수 있는, 이른바 공정한 룰이 작동하는 공간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표현의자유를위한연대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주최, <차별의 표현, 표현의 차별 : 혐오에 대한 규제와 표현의 자유> 토론회의 한 장면-

 

 

 

혐오표현이 갖는 위험성과 그에 대한 규제가 갖는 정당성

 

 

이렇듯 표현의 자유의 경계를 논의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남는 숙제는 혐오표현, 특히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차별적인 발언이 표현의 자유의 영역에 해당할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왜냐하면, 일베 논란과 관련하여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논란이 바로 혐오표현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차별적인 혐오표현은 개인의 선호라는 기본적 의미의 혐오를 넘어서 사회적인 의미를 가지므로 표현의 자유 영역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논란이 된다. 달리 표현하면, 혐오표현은 인종과 성별과 같은 선택가능하지 않은 요소들에 대한 부정적 낙인과 차별 및 배제와 관련이 있으며,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선호가 아닌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대원칙에도 불구하고, 혐오표현에 대한 국가차원의 제도적, 법적 규제가 요청되어야 하는가의 문제가 남는 것이다.

 

물론 이와 관련하여 명백/현존 위험의 법칙해악의 원칙이라는 두 가지 기준이 있다.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위험과 해악이 없다면, 국가가 규제를 할 수 없다는 원칙인데, 이는 오래전부터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기준으로써 사용되었다. 하지만 혐오표현에서 나타나는, 혹은 혐오표현으로 조장되는, 혐오의 감정이 표현에서 그치지 않고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쓰이거나,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으로 이어지는 사례들이 많으며, 현재 한국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위협과 공포뿐만 아니라 나아가 직접적인 폭력의 실현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편으로는 이렇게 여성, 이주노동자, 장애인, 전라도 등 집단들에 대한 혐오표현이 갖는 위험성이 증대하는 상황에서 그리고 이러한 위험성이 역사·사회적으로 형성된 차별요소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상의 원칙들에 따라서 혐오범죄에만 국가 차원의 규제를 허용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무엇보다도 혐오표현과 관련하여, 소수자와 약자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양산함으로써 그들이 표현의 자유가 작동하는 민주주의의 공간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다는 점 또한 중요하다. 만약 왜 차별을 받는 집단들에 대해서만 우대를 해주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가 자유와 평등의 가치에 바탕을 두고 있는 체제라고 했을 때, 자유로운 개인들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평등이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다시 말해 상대적으로 약한 위치에 있는 자들에게는 보다 많은 혜택과 보장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제기한 최초의 질문으로 되돌아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다. 단적으로 말해, 표현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언제나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고. 궁극적으로 표현의 자유는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상처 입은 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기 위해 필요하기에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로서 선언되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정신에 어긋나는 혐오표현에 대해서 표현의 자유라고 명명할 수 있는 것인가? 사회적 약자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자들에게도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주어야 하는 것인가? 그 대답은 아니요이다.

 


 

 

딜레마에 대한 해결책: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점으로의 전환

 

요컨대, 일베 논란으로부터 촉발된 표현의 자유와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라는 딜레마는 우리에게 표현의 자유에 대한 본질적인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표현의 자유란 무엇이며, 혐오표현이란 무엇인지 나아가 그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인 기준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의 장을 통해 표현의 자유가 갖는 경계를 끊임없이 사유할 가능성을 찾은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 속에서 우리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핵심적인 전제사항이 있다. 바로 혐오표현은 표현의 자유가 지켜져야 할 민주주의의 공간을 축소시킬 위험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혐오범죄로 이어져 민주주의의 질서를 위협하든 또는 사회적 차별과 배제를 통해 소수자와 약자의 실질적 권리 보장을 저해하든 말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논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표현의 자유와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는 충돌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당연히 혐오표현이 규제되어야 한다는 관점으로의 변화 말이다. 이러한 관점의 변화를 통할 때야 비로소 우리는 다음과 같이 선언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지켜져야만 하는 표현의 자유가 보다 확대되고 실질적으로 보장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그리고 이 문제와 관련하여서는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가 반드시 요청된다고. 물론 그 규제에 대한 구체적인 방식이나 정도와 관련하여서는 앞서 지적한 표현의 자유와 혐오표현에 대한 개념적 규정과 제도 설계와 관련한 이론적 논의가 뒷받침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1. 이 글의 전반적인 내용은 홍성수, “표현의 자유의 한계: 혐오표현 규제의 정당성과 방법”, 대법원·법무부·국제인권법연구회 공동학술대회 발표문(2013)과 김민정, 일베식 “욕”의 법적 규제에 대하여: 온라인상에서의 혐오표현에 대한 개념적 고찰, 「언론과법」 제13권 제2호(2014)를 참고하여 작성되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