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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문학세미나_나를 발견하는 거울 -페르난두 페소아 *문학 세미나 후기 나를 발견하는 거울-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와 『페소아와 페소아들』 이재현/수유너머104. 문학세미나 회원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이라는 제목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 들었던 생각은 내 불안의 기원을 찾을 수 있을까, 싶었던 것과 동시에 “OO(여기엔 우울, 행복, 기쁨, 만족, 게으름 등이 해당한다.)/의(적절한 조사 자리)/□□(여기엔 기원, 정복, 여정, 접속, 괜찮아 등이 해당한다.)”라는 제목을 가진 책 치고서 정말 멀쩡한 책이 있는가, 하는 의문도 함께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허나 시선을 조금 내려 배수아 작가가 이 책을 번역했고, 이후엔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에도 포함된 것을 확인한 뒤엔 기꺼이 서가에서 뽑아들 수 있었다. 그렇지만 『불안의 책』을 읽어나가는 것.. 더보기
[바깥의 문학] 재현의 정치성에서 상상의 정치성으로― 김시종과 김혜순의 시 재현의 정치성에서 상상의 정치성으로― 김시종과 김혜순의 시 너는 말도, 추측도 할 수 없다, 너는 다만 부서진 이미지들 더미만 알기 때문에……이 파편들로 나는 나의 폐허를 지탱해왔다― T.S. 엘리엇, 「황무지」 부분 송승환_시인. 문학평론가 1. 기억하기 위해서는 상상해야 한다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1958)는 폴란드 모노비츠 마을에 소재한 아우슈비츠 제3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생환한 그의 처참한 체험을 기록한 증언 ‘문학’이다. 이탈리아 화학자인 프리모 레비는 1943년 12월 3일 파시스트 민병대에 체포되어 1945년 1월 27일까지 갇혀있던 수용소의 삶을 기록하였는데, 그는 「작가의 말」에서 책을 쓴 의도를 이렇게 밝힌다. 내 책은 죽음의 수용소라는 당혹스러운 주제로 전 세계의 독자들에.. 더보기
[바깥의 문학] 주소 없는 편지― 2018년 신인들의 시적 감응에 대하여 주소 없는 편지*― 2018년 신인들의 시적 감응에 대하여 최진석_문학평론가. 수유너머104 회원 1. 리듬과 감응, 유물론의 시학 유물론적 미학의 선구자로 알려진 게오르기 플레하노프(Georgii Plekhanov)는 예술의 오래된 기원 중 하나로 리듬에 대한 감각을 꼽은 적이 있다. 그의 예술론을 모아놓은 『주소 없는 편지』(Pis’ma bez adresa, 1899)에 따르면, 원시사회에서 노동이란 파편화된 각자의 힘을 단일한 집합성으로 끌어모으는 과정이고, 그 최초이자 가장 중요한 동인(動因)은 다수의 인간을 하나로 엮어내는 몸의 감각 즉 리듬이라는 것이다. 플레하노프가 유물론적 혁명가이자 정치철학자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주장이 새롭거나 놀라워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이채롭게 보아야 .. 더보기
[바깥의 문학] 염려하는 주체와 언어의 형식―김복희와 안태운의 시 염려하는 주체와 언어의 형식―2010년대 한국시의 경향과 특이점: 김복희와 안태운의 시 돌들은 땅 위에 깔려 있다,물 한 방울 짜낼 수 없는 돌들,목덜미를 연상시키는 보통 돌들,보통 돌들, ―비문 없는 돌들.―이오시프 브로드스키 송승환_시인. 문학평론가 1. 새로운 언어 없이 새로운 세계는 없다 지난 2016년 10월 29일부터 시작된 촛불집회는 2017년 3월 11일 20차 촛불집회까지 매주 토요일, 서울 광화문 광장을 비롯한 전국의 광장에서 열렸다. 헌법에 기초하지 않은 소수의 권력 남용과 부정부패에 대한 문제제기로서 촉발된 촛불집회는 시민들의 평화적이며 지속적인 참여로 직접민주주의를 실천하였다. 특히, 19차 촛불집회까지 세대와 성별을 가르지 않고 참여한 시민들의 최종 누적 연인원은 1,500여만 .. 더보기
바깥의 목소리를 듣다. -황정은 소설을 읽고 메모 하나. 어느 밤에 나는 먹으려고 평소보다 멀리 나갔다. 계란 껍질과 말라 비틀어진 사과 심을 발견해 먹고 달을 바라보며 그늘 속으로 걸었다. 목이 말랐다. 길 가장자리에 고인 물 냄새를 맡았다. 그때 뒤쪽에서 무슨 일인가 벌어졌다. 순식간에 몸이 들려 자루에 담겼다. 빗물에 젖은 털 냄새가 나는 차에 실려 어딘가로 옮겨졌다. 나처럼 방심한 틈에 잡혀온 짐승들이 울어대고 있었다. 귀 모양도 제대로 잡히지 않은 어린 녀석부터 늙은 녀석까지 이 몸 십여 개체가 넘는 동족들과 같이 각종의 분비물로 덮인 철창에 갇혔다. 미지근하게 끓는 듯 좋지 않은 냄새가 났다. 안색 나쁜 인간 두 명이 침침한 불빛 아래서 우리를 들여다보았다. ... 꼼짝하지 못하도록 그들이 이 몸을 약품으로 처리했다. 배가 위쪽을 향하도록 몸을 뒤집.. 더보기
러시아와 들뢰즈, 혹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사유 * 러시아어판 최근 러시아를 다녀온 선배의 블로그를 통해 들뢰즈와 가타리의 (Tysyacha plato : kapitalizm i shizophreniya)이 작년 말 러시아어로 완역되었음을 알게 되었다(Yakov Svirsky 옮김, U-Faktoriya, 2010). 코뮨에서 생활하며 부딪혔던 사유와 삶이라는 문제 외에도, 박사 학위 논문을 제출할 때 들뢰즈와 가타리는 중요한 인용 전거 중 하나였다. 그때 “혹시나 이제라도 러시아어로 번역된다면 직접 번역하는 수고를 덜 수 있을 텐데...”하며 기다렸는데, 늦었지만 반가운 감이 들었다. 이제 이 러시아어로 출판됨으로써, 들뢰즈의 거의 모든 저술들을 러시아 도서관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된 듯하다(* 만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들뢰즈와 러시아는 대체.. 더보기
이 시대의 리얼리즘 - 편혜영의 <아오이가든> “썩은 돼지 사체가 퍽 소리와 함께 땅 위로 솟았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며칠 전 컴퓨터를 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기사 제목이다. 만약 몇 년 전쯤 이 기사 제목을 봤다면 어땠을까. SF영화나 장르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나 이 문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안다. ‘구제역으로 파묻은 돼지 사체가 따뜻한 날씨에 부패하면서 가스가 차 매몰지에서 솟아올랐다’는 설명을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말이다. 2월의 마지막 일요일인 지금은 하루 종일 비가 오고 있다. 이 비에 매몰지가 붕괴할지 모른다는 우려들이 쏟아지고 있고 어디선가 침출수로 의심되는 폐수가 쏟아졌다는 소문도 들린다. 연구실에서는 매주 월요일 문학 세미나가 열린다. 이 세미나에서는 주로 ‘.. 더보기
다케우치 요시미와 루쉰의 만남 다케우치 요시미의 “루쉰"을 읽고 작년 중순부터 노들 현장인문학에 합류했다. 내가 합류하기 전에 맑스의 자본을 읽었다고 했고, 내가 결합할 즈음에는 푸코의 저작을 열심히 읽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고 나서 작년 말경부터 '루쉰'의 소설과 잡감을 비롯해서 그의 전기를 읽고 있다. 물론 노들의 활동가분들과, 노들 야학학생들, 그리고 수유너머가 함께 세미나를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사실 루쉰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이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소개 받은 책이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사람의 평론집이었다. 그런데 이 분이 말하는 '루쉰'이라는 사람이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작년에 연구실에서 하는 “국제워크숍”에서 다니가와 간이라는 노동운동가이자 시인을 공부했었는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