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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_철학.사회

기품 있는 요실금 - 필립 로스 『유령퇴장』(박범수 옮김, 2014, 문학동네)

기품 있는 요실금

- 필립 로스 『유령퇴장』(박범수 옮김, 2014, 문학동네) -

 

 

 

 

 이 종 현 / 수유너머N 회원

 

 

 

 

2014년 여름, 『문학동네』社에서 나온 필립 로스의 소설 『유령 퇴장』의 책 모양을 살펴보자. 흰 바탕의 표지에 검버섯 같은 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검은색 제목 유령 퇴장이 한 가운데 적혀 있고 어딘가로 가고 있는 남자의 다리 한 쪽만 보인다. 그의 다리 아래 쪽에는 검은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펼쳐진다. 아마 유령이라는 말 때문에 표지를 스산하게 만들었나 보다. 표지는 70대 소설가인 주인공 네이선 주커먼의 늙은 얼굴 가죽을 보여주는 듯 하다. 그런데 뒷표지에는 우리 육신의 무자비한 노쇠에 대한 기품 있는 폭로라는 소설가 나딘 고디머의 한마디가 적혀있다.

 

네이선 주커먼은 역시 70대에 이른 미국의 소설가 필립 로스가 9편의 소설에 걸쳐 등장시킨 주인공이다. 로스의 작품에 주커먼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74년작 『남자로서의 나의 삶(My Life As a Man)』이다. 여기서 그는 로스의 주인공 피터 타노폴이 쓴 소설의 주인공이었다. 이후 주커먼은 『유령작가(The Ghost Writer)(1979), 『주커먼 언바운드(Zuckerman Unbound)(1981), 『해부학 강의(The Anatomy Lesson)(1983), 『프라하의 난잡한 잔치(The Prague Orgy)(1985), 『카운터라이프(The Counterlife)(1986),  『미국의 목가(American Pastoral)(1997),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I Married a Communist)(1998), 『휴먼 스테인(The Humans Stain)(2000) 등에 주인공으로 나온다. 작가 스스로도 이 작품들을 주커먼 시리즈라고 부른다. 주커먼 시리즈의 완결판이 바로 『유령퇴장(Exit Ghost)(2007)이다.

 

 

 

                           

 

 

『유령퇴장』에서 나오는 주커먼은 저명한 유대인 소설가다. 그는 반유대주의적 살해 협박을 피해 뉴욕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에 들어가 11년 간 두문불출하고 글만 써왔다. 그렇게 은둔의 노년을 보내던 그가 9.11사건 이후의 뉴욕으로 돌아온다. 신비로운 노년과 함께 찾아온 요실금을 치료하기 위해서다. 그는 요실금 때문에 발기부전이라는 수모까지 겪고 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수영팬티에서 노란 물이 새 나갈 것을 두려워해 그토록 좋아하던 대학 수영장에도 가지 못한다.

 

그는 늘씬하고 탄탄한 젊은이들 사이에서 보란 듯이 수영팬티를 입는 대신 요실금 기저귀를 차고 있다. 요실금 치료 시술은 신통치 못해서 기저귀는 항상 젖어 있다. 주커먼은 뉴욕의 아파트와 시골집을 일 년 정도 바꿔 살기를 바란다는 작가 부부의 신문 광고를 보고 그들에게 전화를 건다. 뉴욕에 머물며 요실금을 일년 가량 치료하려는 주커먼은 계약을 위해 부부의 집을 찾아갔다가 야심만만한 이십대 후반의 미녀 작가 제이미 로건에게 반한다. 한편, 그는 제이미의 대학동창이자 정부(情婦)로 추정되는 문학잡지 기자 리차드 클리먼의 전화를 받는다. 리차드는 주커먼이 존경하던 단편소설 작가 로노프의 전기를 쓰려고 한다. 그 전기는 로노프가 이복 누이와 근친상간을 벌였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그가 완성하지 못했던 마지막 장편소설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한 것이다. 리차드는 뇌종양으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로노프의 정부 에이미 벨레트에게서 거의 뺏다시피 한 장편소설 초고를 갖고 있다. 에이미는 젊은 시절 자신보다 스무살 이상 많은 로노프를 이혼하게 한 장본인이자 거의 사십 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죽은 로노프의 유령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이렇게 복잡하다. 로스는 이런 기본적인 이야기판을 짜놓고 인물과 인물이 얽히게 한다. 로노프의 전기를 두고 리차드, 에이미, 로노프, 주커먼이 얽힌다. 에이미는 이미 로노프의 초고를 리차드에게 주어 놓고는 리차드가 전기를 쓸 수 없도록 막아달라고 주커먼에게 부탁한다. 주커먼은 근친상간이라는 전기적 사실로 로노프의 작품을 틀 지어버리려는 리차드의 오만하고 자신만만한 태도를 경멸한다. 한편, 주커먼은 자신의 전기적 사실, 그러니까 젊은 작가 제이미 로건을 향한 욕망으로 『그와 그녀』라는 희곡을 쓴다. 그 욕망은 자신보다 스무살 이상 어린 제이미를 갖고 싶다는 것, 그녀에게 손도 대지 못하면서 그녀를 글 속에서나마 자신 옆에 두고 싶다는 것이다. 로노프의 개인적 욕망으로 그의 소설을 해독하려는 리차드의 시도를 막으려는 주커먼 역시 자신의 비집고 나오는 욕망을 드라마로 변형시킨다.

 

그러나 이 소설의 대략 25%를 차지하는 소설 속 희곡 『그와 그녀』는 주커먼의 뇌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는 그 욕망을 실현할 육체적 조건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는 시도 때도 없이 오줌(정액이 아니라!)을 흘리는 축 처진 페니스를 달고 있다. 건장하고 정력이 넘치는 전형적인 아메리칸남자 리차드는 공격적으로 로노프의 전기 작업에 착수하고 이를 반대하는 주커먼에게 당신에게선 죽음의 냄새가 나.”라고 욕하고는 계속 뛰어간다. 마치 주커먼의 비밀인 요실금을 눈치 채기라도 했듯 말이다.

 

 

                       

 

 

요실금 기저귀 중에 디펜드 팬티라는 것이 있다. 말 그대로 줄줄 새는 오줌을 방어하겠다는 것이다. 주커먼에게는 방어해야 할 몇 가지가 있다. 가랑비처럼 젖게 하는 오줌과 제이미를 향한 밀물 같은 욕망, 그리고 리차드의 로노프 전기 작업 등. 오는 세월은 가시몽둥이로도 못 막는다는데 주커먼은 어떻게 이 세 가지 억센 흐름들을 막을 것인가? 요실금 치료를 포기한 주커먼은 결국 방어에 실패한다. 아니 방어가 실패했는지 성공했는지 알기 전에 퇴장한다. 필립 로스가 쓰는 소설은 다음과 같이 끝난다.

 

 

"비록 뉴욕의 그 모든 사람들이 시야에서 사라진 이 안전한 피난처에서, 눈이 흩뿌려진 도로 건너편의, 바람이 수면에 물결을 일으키고 솜털 같던 꽃이 다 떨어져나가 앙상한 줄기들이 쓰러져 누운 갈대밭 가장자리를 따라 이미 살얼음이 낀 고요한 습지가 11월 아침의 잿빛 햇살 사이로 내다보이는 창문가 책상에 앉아 -점점 감퇴하는 내 기억력이 완전히 희미해져 버리기 전에- 『그와 그녀』의 마지막 장면을 쓰기 전까지는 죽지 않겠지만."(365)

 

 

그리고 주커먼의 희곡 『그와 그녀』의 마지막 장면이 나온다. 이 희곡에서 주커먼의 분신인 그녀그러니까 제이미를 꼬셔내 자신과 함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자며 자신의 숙소로 부른다. 그녀가 오고 있는 동안 그는 짐을 싸서 그녀 모르게 영영 가버린다.’ 늙음은 젊음에게 얼토당토 않은 분탕질을 치고 맘대로 퇴장해 버린다.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등지고 떠나는 늙은 남자의 다리로 되돌아오자. 이 다리는 노년의 절망에 빠져 다시 토굴 같은 보금자리로 도망치려는 디펜더의 다리인가? 아니면 자신의 신체적 무너짐과 그에 반작용하는 욕망을 끝까지 수컷다운 본성으로 장악하고 분석하려다가 역시나 수컷답게 요실금으로 영역표시를 하고 떠나는 다리인가?

 

 

                               

 

 

많은 언론들에서는 필립 로스의 이 마지막 소설에 대한 기사에서 다음과 같은 표제를 달았다. “늙었는가? 그럼 다 포기해라”(뉴시스, 2014.8.18), “분신 주커먼의 서글프고 적나라한 노쇠, 그리고 퇴장”(한국일보, 2014.8.15) 로스가 『유령작가』라는 소설로 주커먼 시리즈를 시작 했으니 『유령 퇴장』이라는 소설로 한 세계를 마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젊음과 남성의 품위를 되찾으려 뉴욕에 왔다가 자신의 영역을 문닫는 늙은 남자의 태도다.

 

퇴장한다고 해서 모두가 고분고분한 것은 아니다. 소설의 시작을 장식하는 제사는 웨일스 출신의 시인 딜런 토머스의 시 「뼈에서 살점 찾기(Find Meat On Bones)」의 마지막 구절에서 가져온 것이다. “죽음이 너를 취하기 전에, 오 이것을 되찾으라.(Before death takes you, O take back this.)어떤 지인은 로스의 소설을 읽으면 잔근육에 뼈가 굵은 늙은 남자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한다. 그 남자는 닥쳐오는 죽음 앞에서 제 뼈에 남은 얼마 안 되는 근육들을 옹골차게 만든다. 그리고 세상이 그에게 죽음을 내놓기 전에 자신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글쓰기 속으로 들어가 그 퇴장의 결과도 알지 못하게 한다. 그는 법적으로 죽지 않았으며 영원히 행방불명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