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와 노동의 불편한 동거
-김도현, “장애인은 대한민국의 시민인가”, <창작과 비평>, 171호, 2016년 봄호-
박 임 당 / 수유너머N 회원
지난 해, 우리는 지탄받아 마땅한 두 장소를 방문했었다. 서울대학교병원 그리고 삼성. 이름만 들어도 대단한, 이 두 곳에 면담서를 들고 찾아갔었다. 장애인의무고용률(이하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서울대병원은 공공기관 의무고용률 3%를 지키지 않아 2014년 20억에 가까운 고용부담금을 냈고, 삼성은 장애인 고용률이 재작년 기준 1.89%로 민간기업 의무고용률인 2.7%에 미치지 못한 데다가 가장 의무고용률을 안 지킨 민간기업 1위를 차지하기까지했다. 우리의 요구사항을 전달하기 위해 면담 요청서를 내밀었지만, 서울대병원 원장은 해외 출장 중이었고, 삼성은 인사과장 대신 경호실 사람들을 잔뜩 내보내 문과 귀를 틀어막았다. 삼성의 2014년 고용부담금은 185억, 듣기만 해도 입이 떡 벌어지는 액수에 ‘저걸 내느니 사람을 쓰는 게 덜 아깝지.’하는 순진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다가 ‘유연성’이라는 단어가 퍼뜩 떠오르면서 잡생각들을 압도했다. ‘효율’! 못지않게 압도적인 단어다. 이들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자신들은 법적 의무를 다 했다는 것.' 그건 사실이었다.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않았으니 그에 합당한 부담금(사실은 부담금이라는 말도 기만적이다.)을 낸 것이다. 이들의 이런 태도 뒤에 무슨 뜻이 숨어있는지 우리는 안다. 사회적 책임을 직접 지기보다는 돈으로 해결하려는 사태, 이러한 태도들의 기저에 유연성과 효율성의 파도가 너울거리고 있다. 1
비(非)시민으로서의 장애인
이 두 곳만 문제인 것은 아니다. 재계 서열 30대 기업의 평균 의무고용률은 1.93%선에 그치기 때문이다. 그들이 2015년 낸 부담금만 해도 천억이 넘는다. 이제 확실히 알겠다. 그들은 장애인을 고용할 생각이 별로 없다. 물론 30대 기업이 우리나라 기업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이들이 기업활동의 선두에서 규범을 형성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상당히 중요한 국면을 형성하는 주체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100인 이하 사업장에서는 의무고용률을 지킬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이것이 바로 장애인 노동의 척박한 현실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 않을까?
사진출처 : 비마이너
김도현은 장애와 노동을 붙이려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에 대해 ‘장애’개념의 형성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노동할 수 있는 사람과 노동할 수 없는 사람의 구분.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장애의 개념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인간이 시민으로서 존재하는 세계, 즉 문명화된(civilized)세계에서 장애인이란 정확히 시민권(citizenship)―시민의 자격 내지 신분―으로부터 배제된 자들”(426)로 인격(personhood)의 존재 여부를 통해 형성된 범주인 것이다. 이들은 온전한 인간으로서 대접받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 이하의 존재, 즉 “을 이하의 인간”으로 필자는 이름 붙인다. 그런데 여기서 이들을 ‘인간의 자격’으로부터 분리하는 기준은 바로 노동이다.
“우리는 흔히 인간의 본질은 ‘노동’이며, 인간은 ‘이성(理性)’적인 동물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 그리하여 일정한 연령이 되어서도 노동을 하지 않는 자는, 그리고 비이성적인 존재로 간주되는 자는 인간/시민 대접을 받지 못한다. 현대 사회는 시민권 자체가 노동하는 자를 근간으로 구축되어 왔을 뿐 아니라, 사회계약론적 전통에서 이성적 사고능력을 지니지 못한 자들은 ‘계약-권리-정의’의 주체에서 원천적으로 삭제되어 왔다.”(427)
이러한 구분은 자본주의 형성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소위 본원적 축적 이후시기에 대거 양산된 부랑자들 속에서 임노동의 관계 안으로 사람들을 포획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이 불가능한 사람과 노동이 가능하면서 태만한 사람들을 구별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때 전자의 사람들을 일컫는 ‘장애인(disabled people)’이라는 개념이 발명되었다. 필자는 이 장애라는 범주 형성의 과정이 당시 ‘노동’의 개념이 정치·경제적으로 새롭게 구성되는 것과 맞물려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그는 노동에 대해 물음표를 붙인다. 노동을 재구성함으로써 장애인을 시민화 하는 일이 필요하며, 이는 노동이 생산하는 가치 또한 재구성될 때에야 가능하다고 말이다. 어떤 가치인가? 또 어떤 노동인가?
노동연계복지의 좌파적 전유
2007년 같은 저자의 책,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의 2부에서 장애인의 노동권을 다룬다. 여기서 ‘고용할당제도’와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검토한 김도현은 미래를 위한 어떤 단절의 지점이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며 해당 챕터를 마무리 짓는다. ‘고용할당제도’는 정부 차원의 재원이 마련되지 않고 기업의 차원에서 부담하도록 되어 있어 지속성이 담보되기 어려우며, 실제로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을 경우 부담하게 되는 부담금이 장애인 한명을 고용하는 것 보다 ‘싸게 먹히기’ 때문에 제재의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어떤가? 2015년 시행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2은 장애인의 고용에 관한 적극적인 규제나 시정명령을 구사하기 어렵다.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고용에 있어서 대놓고 ‘장애인은 제외’라고 공고를 내는 기업은 드물다. ‘대졸자’, 면접, 공인영어시험성적 등 공정해 보이는 장치와 갖은 분할선을 통해 자연스럽게 ‘저들’이 걸러지도록 덫을 놓을 뿐이다.
책의 말미에서 신자유주의적 노동연계복지workfare를 비판하던 김도현은 이 논문에서 해당 개념의 좌파적 전유를 시도한다. 그 대안으로 제시된 형태는 바로 ‘공공시민노동’이라는 개념이다. 기존의 노동연계복지가 가지는 한계는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지 못할 수준의 대가와 국가가 제시하는 활동들로 국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에 생긴다. ‘공공시민노동’은 헌법이 보장하는 시민으로서 노동할 권리와 의무에 기반 하여 공적인 개입을 끌어내야 한다. 그 원칙은 급여의 수준을 전체 상용노동자의 평균임금 50% 선(2014년 기준 약 165만원)에서 정하고, 어떠한 활동을 정할 것인지는 시민사회와 개인으로부터 신청 받고, ‘공공시민노동위원회’에서 일자리를 심의하도록 함으로써 말이다. 이러한 대안은 기존의 노동 혹은 일자리가 규정되는 방식 자체를 의문에 붙이며, 노동이 생산해내는 가치 개념 또한 새롭게 정립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둔다. 그리고 이는 궁극적으로 시민권을 새로운 지평에서 재구성해낼 수 있는 시도라고 저자는 기대한다.
시종일관 저자는 노동이라는 개념, 가치라는 개념이 역사적 형성물임을 강조한다. 아마포가 화폐로 전화하는 눈부신 마법의 순간이 우리를 자본주의적 교환이 지배하는 삶으로 인도하였듯, 그 반대의 전화 또한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임금이 동일하게 고정되고, 새로운 가치들이 마구 펼쳐지는 사태 말이다. 그를 위해서는 어떤 운동이 구성되어야 하나? 한편 수급권을 가지고 있는 한 장애인이 활동가 자리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일해서 버는 만큼 수급비가 깎이는 정확한 계산 때문이다. 이것은 한 개인이 자신의 의지로 노동자 혹은 수급자의 자리 중 선택하는 일로 볼 수 있는가? 노동의지를 잘라내는 장치들이 현재적 노동이라는 개념 곳곳에 진을 치고 있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장애인과 노동권에 관해 고려해야 하는 지점은 생각보다 더 복잡할지도 모른다. 다른 노동을 통해 다른 가치를 생산하는 일,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노동 하는 일이 가치 있게 느껴지는 삶에 관한 것일 거다. 그러한 대안은 있을까? 그러한 대안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더이상 노동이라고 칭할 필요가 남아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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