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의 비행


우 림 / 수유너머104 세미나회원

 

 

정보화시대 인터넷에는 가짜뉴스, 댓글부대, 증거를 은폐한 살인자의 거짓말 등이 범람한다. 진실을 왜곡, 은폐, 날조하는 글들에 노출된 사람들은 혼란스럽다. 니체는 "오랫동안 친절은 친절을 위장함으로써 가장 많이 발전되어왔다. (...) 위장을 지속적으로 연습함으로써 마침내 위장에서 자연적인 본성이 생겨난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진실을 거짓으로 우기는 행태가 니체가 말한 의미는 아닐 것이다. 일본에는 "100번 우기면 진실이 된다"는 속담이 있다. 중국에는 "삼인성호 - 세 사람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는 사자성어가 있다. 이것이 니체가 말한 위장에서 생겨난 자연적인 본성이 뜻하는 바는 아닐 것이다.

 


1. 우리들 거미



자신의 입장에 유리한 언론플레이로 여론몰이하는 사람들은 진실을 왜곡해서 거짓말을 일삼는 자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니체는 '진실이나 진리'는 없고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른 해석'만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하나의 사건을 놓고 다른 해석을 보이며 서로 자신의 말이 옳다며 우기고 싸운다.

 

우리의 감각기관이 갖는 습관으로 인해 우리는 감각의 거짓과 기만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이 감각기관들이 다시 우리의 모든 판단과 인식의 기초가 된다. 이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실제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뒷길도 샛길도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그물 안에 갇혀 있다. 우리들 거미는 이 그물 안에서 무엇을 붙잡든 바로 우리의 그물 안에 걸리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잡을 수 없다. [아침놀 #118 도대체 이웃이란 무엇인가!]

 

최근에 위안부 소재의 다큐멘터리 주전장」 「김복동이 개봉했다. 주전장은 위안부를 놓고 성노예냐, 매춘부냐 한국과 일본 각자의 입장을 다루고 있다. 제국주의시절 일본이 위안부를 만들었다는 역사적 사건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은 해석하는 입장에 따라 다르다.


김복동속 김복동은 위안부 피해자로서 일본에게 정식사과와 법적 보상을 요구하는 활동을 한다. 원치 않게 전쟁에 동원되어 일본군에게 자유를 속박당한 어린소녀였고 지금은 할머니가 된 김복동의 입장. 그리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자발적인 사람들로 위안부가 구성되었다고 주장하는 일본극우의 입장. 그물 안에 걸리는 것만 붙잡을 수 있는 거미처럼, 그들도 당연히 그들이 처한 상황과 입장에 따라 위안부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2. 거미줄을 찢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자신이 감각할 수 있는 것밖에 감각하지 못한다. 거미줄 안 거미는 거미줄 안에 걸리는 것만 감각할 수밖에 없고, 우물 안 개구리는 우물 안 세상 밖에 볼 수 없다. 하지만 니체는 독실한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증언에 무게를 가지려면, 기독교를 떠나 방랑을 한 뒤 엄격한 판단과 함께 돌아와야 그들의 증언에 무게를 갖는다고 말한다.

 

정직한 열정을 품고 기독교와 대립된 삶 안에서 견뎌내고 몇 년 동안 기독교 없이 생활한 뒤가 아니면, 기독교를 떠나 방랑을 한 뒤가 아니면, 그대들의 증언은 무게를 갖지 못한다. 향수 때문이 아니라 엄격한 비교에 바탕을 둔 판단에 의해 되돌아올 경우에만 그대들의 귀향은 중요하다! [아침놀 #61 필요한 희생]

 

기독교인에게 기독교, 거미에게 거미줄이 있다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는 위안부라는 사회적 낙인이 있다. 자신들은 우월하므로 동양을 침략해 식민지화해도 된다는 서양의 담론에 따른 일본의 침략제국주의. 그들은 침략은 인정해도 위안부 강제착취는 부정하였고, 지키지 못함과 약함을 드러내기 싫어 대한광복회 독립운동가들조차 위안부를 외면했다. 심지어 위안부 할머니들은 가족들에게조차 위안부였다는 사실 때문에 부정당하는 아픔까지 가지고 있다. 스스로 심어놓은 아프고 추악한 각인도 있다. 이 때문에 자살한 위안부 할머니들이 수없이 많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둘러싼 거미줄이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거미줄이 아닐까.


김복동을 비롯한 위안부 할머니들은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고 싶지도 않고 그 경험에서 떠나고 싶어했을 것이다. 자신이 위안부 피해자라고 공개적인 발언을 하기 전까지는 잊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당연히 위안부 피해자였던 것보다 보통 여자이길 바랬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보통 여자의 삶을 살려고 수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들은 과거 기억에서 떠나고 싶어도 떠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의 무게감보다 더 무거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거미가 거미줄을 떠나는 것, 기독교인이 기독교를 떠나 보는 것, 개구리가 우물 안을 떠나는 것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고되고 숭고한 행위다. 반면 일본극우는 어떠한가. 위안부에 동원된 소녀들은 자발적이었고 자신들은 가해자가 아니라는 입장을 견고하게 관철시킨다. 게다가 위안부를 일본 역사 교과서에서 빼버린다. 이것은 은폐일 뿐 자신들의 관점을 한 발짝도 떠나지 않는 것이다.

 


3. 촘촘한 거미줄


 

주전장은 위안부에 대한 일본극우의 인터뷰를 다루었다. 그리고 그들의 발언에 반대되는 근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도 다루었다. 일본극우의 위안부에 대한 입장을 요약하자면, 역사수정주의자로서 90년대 일본 교과서에 나오는 위안부라는 단어를 젊은이들에게 밝은 것만 보여줘야 된다는 이유로 2000년대 와서 빼버린다. 위안부는 매춘부였다는 증거를 대기 위해 위안부모집 광고지, 위안부가 돈을 받은 것을 기록한 문서를 내보인다. (물론 구체적인 근거로 반박 당한다.) 일본 기술을 질투한 중국과 한국이 위안부를 빌미로 일본 전자제품 불매운동을 하기 위함이라는 주장. 미국에 설치된 소녀상을 반대하며 한국과 중국의 로비로 설치된 것이며 이것이 설치되어 한국인이 미국에 사는 일본 아이들을 괴롭힌다는 거짓말. (물론 구체적인 근거로 반박 당한다.) 문서 맥락을 무시하고 부분만 고의적으로 발췌해 일본군에 끌려간 소녀를 자발적인 위안부로 왜곡. 일본극우의 논리에 맞는 기사를 쓰는 서양인 기자에게 로비활동을 하는 등. 전쟁 가해자라는 이미지를 지우기 위한 목적을 두고 휘황찬란한 활동을 벌인다.

 

그대들은 비판, 학문, 이성을 증오하기까지 한다! 그대들은 역사가 그대들을 위해 증언하도록 역사를 왜곡해야만 한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우상과 이상을 그늘에 두지 않기 위해 덕을 부인해야 한다! 합리적인 논거가 필요한 곳에서 다채로운 그림! 열렬하고 힘찬 표현들! 은빛 안개! 감미로운 밤! 그대들은 비추고 어둡게 할 줄 알며 빛으로 어둡게 할 줄 안다! 그리고 실로, 그대들의 열정이 미쳐 날뛸 경우 그대들이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순간이 다가온다. 이제 나는 떳떳한 양심을 획득했다. 이제 나는 고상하며 용감하고 극기하며 관대하며 정직하다. 이제 나는 정직하다! [아침놀 #543 정열을 진리의 논거로 삼지 말라!]

 

자신들의 우상과 이상 (일본극우의 힘, 제국주의와 당시 전쟁의 정당성, 일본에 대한 세계의 평판 등)을 위해 합리적인 논거가 필요한 곳, 위안부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곳에서 다채로운 그림, 열렬하고 힘찬 표현들, 은빛 안개, 감미로운 밤을 휘황찬란하게 만들어내어 거짓을 쌓아간다. 이러한 활동의 절정은 2015년 박근혜 정부에게 10억엔을 주고 '한일 위안부 합의'를 통해 만든 화해치유재단이다. 일본 정부는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양국이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不可逆)적 해결을 확인했다." 는 이유로 이 재단 설립을 통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이 모두 끝났다." 며 위안부에 대한 논쟁을 끝낸다. 강제 입막음으로 그들은 떳떳한 양심을 획득했고 고상하고 용감하며 관대하고 정직하게 되었다. 강도는 내가 당했는데 강도와 박근혜 둘이서 합의를...? 이런 날강도들.


자신의 학설 앞에서 정지했으며 그것 안에 자신의 경계석을, 여기까지이고 더 이상은 안 된다고 의미하는 경계석을 세웠다는 것은 거미줄을 더 촘촘히 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김복동 할머니가 전 세계를 순회하며 위안부 발언을 하는 것은 어떻게 볼 것인가. 위안부 피해자라는 거미줄을 더 촘촘히 하는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4. 바다를 향하는 힘


 


김복동은 위안부 할머니들 중 가장 또렷한 기억을 가지고 있고 위안부의 실상을 알리는 활동을 할 수 있는 건강과 의지를 가지신 분이다. 그래서 그의 활동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었을 것이다. 노쇠한 몸으로 이렇게까지 활동할 수 있는 건 처음부터 가능했던 일이 아니다. 숨기고 싶었고, 잊고 싶었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되살려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 자신의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을 세세히 되풀이하고 발언해야 하는 것. 바다를 건너가 전세계에 알리는 것. 이것이 김복동의 반복된 위장이다.

 

오랫동안 친절은 친절을 위장함으로써 가장 많이 발전되어왔다. 커다란 힘이 존재하는 곳 어디서나 이렇게 위장할 필요성이 인정되었다. 위장은 안심과 신뢰를 불어넣고 물리적 힘의 실제적인 총량을 백 배 증대시킨다. (...) 위장을 지속적으로 연습함으로써 마침내 위장에서 자연적인 본성이 생겨난다. 마지막에 위장은 스스로를 지양한다. 그리고 기관과 본능은, 기도하지도 않았는데 위선의 정원에 열린 열매다. [아침놀 #248 의무로서의 위장]

 

친절이라는 커다란 힘은 친절을 지속적으로 연습한 결과이다. 당당하고 즐거운 위안부 활동가 김복동의 시작은 피해자의 요구가 그렇듯 약하고 초라했을 것이다. 지속적으로 반복하면서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김복동의 또렷하고 생기 있는 모습으로 되었다. 영상에서의 모습은 피해자의 모습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커다란 힘 그 자체였다. 자신의 가장 맨 민바닥의 추함을 가리지 않고 제대로 본다.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일본에게 요구할 것을 요구한다. 이것들을 반복함으로써 김복동은 단순히 위안부 피해자였던 할머니가 아니라 일본에게 자신의 부당함을 내뿜고 요구할 수 있는 그 존재 자체로서 힘이 되었다. 위장은 스스로를 지양한다. 과거 피해자로서 김복동, 위안부 경험을 지우고 싶었던 김복동은 찾아볼 수 없다.


반면 일본극우의 모습은 어떠한가. 위안부를 매춘부라고 본 그들의 입장이 힘을 가지려면 김복동처럼 그에 대한 행동을 반복해야 한다. 그런데 왜 위안부가 자발적인 소녀들에 의해 구성되었다는 발언을 자신 있게 하는 힘의 운동을 왜 하지 않는가! 위안부 소녀상이 아니라 위안부 매춘부상을 세계 곳곳에 세우지 않는가! 쪽팔리더라도 그들의 입장이 힘을 가지려면 이러한 위장과 지양을 반복해야 하는 것이 맞다. 왜 일본이라는 큰 나라가 가진 힘으로 위안부 은폐에 더 집중하는가. 반대로 독일처럼 위장과 지양을 하는 경우도 있다. 공식사과의 반복으로 과거 전범국이라는 이미지를 지양하고 점점 더 나은 이미지로 거듭난다. 나치와 현재 독일국민은 전혀 다른 인물이다.


김복동은 자신의 추악함을 인식한다. 독일도 그렇다. 그리고 인식들은 위장의 반복으로 힘이 되었다. 일본은 인식에 대한 시작도 못했다. 자신들의 가장 맨 밑바닥을 보는 게 고통스러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피해자의 자발성으로 돌린다. 여기에 무슨 힘이 존재할 수 있을까. 힘의 크기는 차이날 수밖에 없다. 일본 극우와 위안부 할머니 힘은 정반대다. 위장의 반복으로 가상의 깊이를 가진 김복동 힘, 가상의 깊이는커녕 한 장의 가상도 가지지 못한 일본극우.

 

현실에서 이탈하고 가상의 깊이로 도약하는 것에서 환희를 느끼는 것에 길들어 있는 그 모든 사람들 (...) 이들은 현실이 추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가장 추악한 현실에 대한 인식이 아름답다는 것과, 자주 많은 것을 인식하는 사람이 현실에 대한 인식을 통해 항상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현실 전체를 전혀 추악한 것으로 느끼지 않는다. (...) 도대체 그 자체로 선한것이 존재하는가? 인식하는 사람의 행복은 세계의 아름다움을 증대시키며 존재하는 모든 것을 보다 밝게 만든다. 인식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사물 주위에 펼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사물들 안에 자신의 아름다움을 투입한다. [아침놀 #550 인식과 아름다움]

 

김복동에 우리나라 최초로 위안부임을 밝힌 김학순 할머니의 인터뷰가 나온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가장 높은 정상에서 바라본다. 그가 받아들이기 힘든, 자신의 가장 추악한 기억을 되살리며 말하는 모습을 보면 그 아픔이 전해진다. 그리고 그 아픔을 제대로 인식하며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는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목소리, 표정, 눈물 하나하나 생생하다. 가장 깊고 험난한 동굴을 뚫고 나온 자의 모습. 그 과정을 거친 할머니들은 그 과거가 더 이상 추악하지 않다. 가장 깊은 추악함에도 까무러쳐 죽지 않은 자의 위대함. 그저 차분히 바라볼 수 있는 힘.


김복동은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즐거워보였다. 자주 많은 것을 인식하는 사람이 현실에 대한 인식을 통해 항상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어서일까. 아픈 과거는 현재의 그에게 아무런 상처가 되지 못한다. 그는 즐겁다. 아플 때 활력적이고, 건강할 때 오만하지 않다. 수술을 한지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일정을 소화해내고 싶어 하며 소화해낸다. 그에게 억지나 의무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능동적이고 긍정적으로 하고 싶어 하는 모습만 보였다. 강한 힘을 가져서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식하면 그것으로 이미 강한 힘이다! 이 힘이 즐거움이고 아름다움이 아닐까.

 


5. 우리, 정신의 비행사들!


 

김복동이 위안부활동을 할 수 있는 힘이 가능했던 이유는 주위 사람들 덕분이다. 할머니들의 편의를 돌봐주는 활동가부터 평화의 소녀상 강제철거를 막기 위해 옆에서 릴레이 농성을 하는 대학생들, 위안부 졸속합의에 대항하는 어린 친구들 . 모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인다. 커다란 힘에는 무리가 생기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 것 같다. 그들은 같이 힘을 낸다. 큰 힘에는 작은 힘이 붙는다. 그래서 더 힘이 넘친다. 단순히 동정심이나 연민 때문이 아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아니다.

 

멀리, 가장 먼 곳까지 날아가는 이 모든 대담한 새들, 분명히 그것들은 더 이상 날아갈 수 없게 되어 돛이나 황량한 절벽에 내려앉을 것이다! (...) 그러나 그것이 나와 그대에게 무슨 상관이 있는가! 다른 새들은 더 멀리 날 것이다! 우리의 이러한 통찰과 믿음은 그것들과 경쟁하면서 멀리 그리고 높이 날아가고 곧바로 우리의 머리와 그것의 무력함을 넘어 높은 곳으로 올라 그곳에서 먼 곳을 내다보고 우리보다 훨씬 더 강력한 새들의 군단을 본다. 이 새들은 우리가 추구했던 곳, 온통 바다, 바다, 바다인 곳을 향해 날고 있다! [아침놀 #575 우리, 정신의 비행사들!]

 

김복동의 힘은 다른 힘들을 생성한다. 김복동의 힘을 위한 양분이자, 사건을 창조하고 상황을 열어가는 또 다른 힘들이다. 김복동 할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슬프지 않다. 위안부활동은 더 활력적으로 굴러간다. 평화의 소녀상은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일본의 역사왜곡과 방사능이 싫어서 일본극우에 대한 글을 쓰려고 했던, 처음부터 이 글을 쓸 생각이 없었던 나조차도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글로 방향이 바뀌었다. 힘의 끌림인가. 어떻게 이렇게 멋진 할머니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있겠는가. 반면 일본극우들은 로비활동을 통해, 또는 자신의 평판 때문에 위안부 발언을 근근이 이어나가는 모습이다.

 


6. 거미줄 뭉치


다큐 [주전장]에 출연한 일본우파 논객들. 왼쪽부터 역사수정주의의 대표학자 후지오카 노부카츠, 스기타 미오 자민당 중의원, 미국변호사이자 일본방송인 켄트 길버트, 후지키 슌이치 매니저와 그가 맡고 있는 친일미국인 유튜버 토니 마라노.


주전장마지막쯤에서 일본극우의 실체를 다룬다. 일본극우의 어이없는 발언에도 조용했던 극장은 "한국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푸근하고 익살스러워 보이는 할아버지의 발언으로 들썩거렸다. "곧 중국이 약해지면 한국은 일본에 의존해서 친일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귀여운 나라다. 귀여운 어린아이가 떼쓴다. 왜 사람들이 위안부에 열을 올리는가. 아무래도 위안부에 포르노적인 면이 있어서인가."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떼쓰는 미취학 아동의 우김 아닌가? 일본극우의 중심에 있다는 그는 일본 역사 교과서를 수정하는 가짜 역사학자인데 자신이 쓴 책 밖에 읽지 않았다고 당당히 말한다. 일본에서 위안부 관련 권위자임에도 불구하고 반대 입장에서 쓴 책이나 심지어 자신과 같은 입장에서 쓴 책조차 읽지 않았다.

 

그대는 그를 혐오하며 이렇게 혐오하게 된 근거들을 풍부하게 제시한다. 그러나 나는 그대의 혐오만 믿을 뿐, 그대가 제시하는 근거들은 믿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생기는 것을 하나의 이성적인 추론인 양 자신과 상대방에게 제시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미화하는 것이다. [아침놀 #358 근거들과 그것들의 무근거성]


이 할아버지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자신의 망상 속에서 산다. 그가 가진 권력으로 일본 역사교과서를 자신의 입맛대로 수정하며 그것을 사람들에게 강제로 주입한다. 마치 오직 신만을 믿는 열광적인 신도처럼. 자신이 믿는 것을 미화하고 자신을 미화한다. 실제로 일본극우는 일본의 특정 종교와 관련되어 있다.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법을 고치려는 아베를 비롯해 제국주의에 대한 향수를 가진, 일본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집단이자 종교집단일 뿐이다. 니체적으로 보면 매우 약한 자들이다. 전혀 인식하지 않고 자신들의 소망에 대한 믿음만 갖고 있다. 부패한 권력으로 그것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가는 자들이다.


제국주의 정신은 계승하고 싶고 세계사회 눈치는 봐야 해서 위안부 착취를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거미줄을 똘똘 뭉쳐나가는 일본극우 단체. 위안부라는 사회적 낙인과 죽음보다 깊은 개인의 상처라는 거미줄. 그것을 찢고 나와 위장을 지속적으로 연습함으로써 마침내 위안부 활동가라는 자연적인 본성으로 만든 가장 숭고한 자기극복. 어떠한 상황도 개의치 않는 가벼운 몸으로 자유롭게 비행하며 위안부활동을 하는 할머니 개인. 누가 강자이고 누가 약자인가.

Posted by 수유너머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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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의 철학, 정신의 비행사

쟈 스 민 / 수유너머104 세미나회원



1. 여성과 인간



니체를 공부하다보면 섬뜩할 때가 종종 있다. 여성에 대한 글을 접할 때도 그랬다. ‘그의 문체에 쉽게 휩쓸리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지만 나를 이루고 있는 주요가면 중 하나인 여성이 공격받는다고 느껴지면, 쉽게 실패한다. 여성은 전부가 아닌 나의 일부일 뿐이고, 내가 모든 여성을 대변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참 이상한 일.

 

세미나는 이 이상함에 주목했다. 니체가 말하는 여성은 누구이고, 그가 여성을 언급한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먼저 여성이 누구인가는 고병권의 언더그라운드 니체와 자크 데리다의 에쁘롱을 참고할 수 있다. 둘은 같은 맥락에서 말한다. “거세된 여성, 거세하는 여성, 긍정의 여성이라는 유형은 꾸준히 강조되었던 니체의 삼단변신과 비슷하다. 낙타와 사자가 기존(시대성)의 틀에서 산다면, 어린아이는 시대가 포착하지 못하는 곳에서 논다. 여성 역시도 거세’, 즉 기존의 남성권력이 주시하는 장에서 여성을 말한다면 기존 담론에서 벗어날 수 없다. 때문에 필요한 것은 탈주, 그곳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행정상 분류되는 female로서 긍정의 여성이 되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세미나에서는 여성의 여성되기’, 생성으로서의 삶을 말했다. 계몽에서 벗어난 무구한 삶을, 그 편린을 창조하는 자, 타고난 예술가로서의 여성. ‘당연히 ~해야지라는 생각에 균열을 내는 여성들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내가 갖고 있는 가면 중 여성이 너무 접착력이 강한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다른 가면을 더 오래, 더 많이 써보면 여성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은 내가 개인으로서 여성분류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이다.

 

다른 세상, 다른 사람과 소통해야 할 때는 또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상대가 갖고 있는 시대적인, ‘여성에 대한 퍼스펙티브에 맞추어/맞서서 내가 갖고 있는 퍼스펙티브를 어떻게 주장할까. 이 부분이 고민되는 이유는 연대의식 때문이다. 거창한 운동을 하거나 거대한 집회를 만들고 싶은 야망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어쩔 수 없이 생각나버리는 내 주위의 여성들과 그 너머의 여성들이 자꾸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것도 계몽일까


분류하기 쉬운 이분법, -녀 대립구도에서 벗어나는 것이 참 어렵다. 나 혼자만 걸린 게 아니기에 더욱.

 

다시 세미나로 돌아와서, 니체가 여성을 언급한 이유-‘여성을 소재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가에 대한 부분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이것 역시도 다중적일 것이다. 파악한 바는 첫째로 말 그대로 생물학적, 사회적 의미의 여성에 대한 이해와 비판이고 두 번째는 엇결님이 말한 인간에 대한 스토리이다. 배우와 여성을 함께 읽으면 여성은 인간으로 바꿀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가면을 쓴 연기자, 배우이기 때문이다. 여성은 경직된 남성에 비해 자유자재로 자신의 가면을 바꿔 낀다. 이런 특성을 빌려 니체는 인간을 말하고자 했다고 읽을 수 있다. 본질과 가상의 경계를 허문-얼굴과 가면의 경계를 허문 여성(인간).

 

긍정의 여성이 필요에 따라 시대가 요구하는 가면을 연기하며 힘의 감정, 힘의 고양을 느낀다. 도덕적인 그래야 한다에 맞추지 않고 마치 놀이처럼 자신이 갖고 있는 수많은 가면들 중 하나를 잠시 꺼낸 것이다사고의 김이 위로 뻗는다. 여성에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 어느 순간에는 를 넘어선 무언가로. 다만 명심해야 할 것은 이것이 순차적이지도 단계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편의에 따른 순서도일 뿐, 나는 여성이고 인간이고 이다. 여성이라는, 시대의 퍼스펙티브가 강요하는 약점을 나의 새로운 힘으로,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연민을 우리의 새로운 힘으로, ‘가 가지고 있는 시대에 맞지 않는 오류를 비시대로 향하는 키로-

 

2. 가면과 연기


 

나는 충분히 교활하지 못했다. 그래서 솔직해졌다. 정확히는 솔직한 척했다. 그리고 그것이 나라고 믿었다. 자신이 만들어낸 역할을 라고 착각해버린 어리석은 배우였다. 하나의 극이 끝나면 역할의 가면은 벗어야 한다. 이제 그는 일상으로 돌아와 새로운 극을 준비해야 하므로, 벗지 못한 가면은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다만 삶은 딱딱 정해진 극이 아니라서 우리는 동시다발적으로, 강제적으로, 자발적으로 여러 극에 선다. 정신없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보면 내가 쓴 가면이 이쪽이었는지 저쪽이었는지 잊게 된다. 이는 기억력과 순발력의 문제이다. 바꿔 끼기 귀찮다고 솔직한 척 하나의 가면만 고수하면 그는 진부한 캐릭터가 되어버린다.

 

때문에 중요한 것은 이동성, 멈추지 않는 것이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생성하는 것이 살아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죽은 상태-멈춘 사람을 재미없게 여기고 피하고 어울리지 않는다. 대신 그의 역량만큼 존재하는 사람과 즐겁게 어울린다. 때로는 서로 자극하여 더 많은 힘을 얻고자하기도 한다. 이게 좋은 동료가 아닐까?

 

3. 예술과 범죄



예술이 말했다. “삶은 무구하다

 

세미나는 예술 너머의 메시지를 자꾸만 분석하고 해석하려는 태도, 작품을 만들어낸 작가를 우상화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대신 그 무엇이든 먼저 ‘-되기를 해보라고, 다양한 가면을 만들어보고 위부터 아래까지 거침없이 걸어가라고 했다. ‘너무 막 살라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 위험한 말. 이 말과 삶이 무구하다는 메시지의 의도는 무엇일까?

 

어떤 산을 보고자 할 때 사진과 그림 중 무엇이 더 그것과 일치하는가? 아니, 무엇이 더 그것에 가까운가? 사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당신은 속은 것이다. 사진기의 렌즈가 보여주는 빛의 굴절에 말이다. 애초에 하나의 사물에는 다양한 모습이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그 모습 외에도, 그림이 보여주는 그것의 특징적인 모습-예를 들어 뾰족함의 강조, 무성한 나무의 강조, 마을과의 조화를 강조 등 말이다. 이것을 보여주었을 때 그 사물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진이 찍어내린 그 순간만이 그 사물인가?

 

멀리서 본 것, 가까이 본 것, 추상화 한 것, 사실적으로 그린 것, 모든 것이 그것(itself)이었다.

 

예술의 문제로 돌아오면, 예술은 무엇일까? 뒷골목 낙서로 취급받던 그라피티가 예술이 되고 전시장에 몰래 걸은 무명의 그림이 예술이라 말할 때, 소변기가 예술품이 되고 찰나의 행위가 예술이라 칭해질 때 예술이라는 말은 흐릿해진다. 클래식하고 권위있는 것이 고급 예술의 범주에 속한다고 하고 영화를 대중 예술이라고 한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의 이미지는 기존을 전복하는 혁명이고 시대에 대한 불편함 혹은 조롱이기도 하며 순수에 대한 열망, 반대로 다양성에 대한 시도, 감상하는 자와 만든 자가 벌이는 해석의 줄다리기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어떤 정의에 갇히지 않고 그 무엇으로도 가면을 바꿔 낄 수 있다. 창녀를 그릴 수도 있고 성녀를 그려내기도 하며 인간의 렌즈를 끼기도 하고 3차원 렌즈를 쓰기도 한다.

 

예술은 모든 것이 되어보려고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니체에게도 예술이 중요한 소재였겠지.

 

예술은 위장하거나 은폐한다기보다 변형시킨다. 어떤 결점이 있을 때 예술가의 역량은 그것을 가리고 속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자신의 힘과 덕으로 인도하는 통로로서 그것을 변형시키는 데 있다.”

 

솔직히, 사람들은 지루한 도덕보다 나와 다른 존재로 되기를 좋아한다. 범죄가 나쁘기에 범죄자를 잡는 것이 아니라 지적인 쾌락 때문에 범죄자를 쫓는 셜록은 매력적이다. 신데렐라 스토리와 재벌에 대한 권선징악을 늘어놓는 한국 드라마보다 찢어 죽이고 뒤엉키고 타락하는 왕좌의 게임이 더 재미있다.

 

삶이 무구하다는 것은 삶에 모든 것-약한 것, 강한 것, 나쁜 것, 좋은 것-이 섞여있다는 말이고 강/, 좋음/나쁨에 대한 기준은 있다이후의 것이며 그것을 설정하는 것은 세상-타인, 혹은 나-세상이라는 것이다. 도덕을 세우는 것은 좋다. 다만 그 도덕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그저 편하니까 쉽게 생각하고 무작정 복종하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더 즐겁게 다른 내가 되기 위해서, 그 이후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서. 도덕으로 심판하는 내가 아니라 그가 되어봄으로써 다가가 손을 잡는 내가 되기 위해서.

 

4. 진리와 오류


 

여기서는 두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 하나는 자신에 대한 오독, 하나는 진리들에 대해서.

 

자아감정이 우리가 소유하고 있다고 믿는 모든 것이고 그것이 자아의 한계라면, 너무 좁고 퀴퀴한 냄새가 난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갖고 있어도 그게 골방에 있는 것들이라면 그것들에 사람이 짓눌리는 것처럼 우리가 소유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 나의 제약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이상은 없을까? ‘가 내가 갖고 있는 것으로만 설명된다면 얼마나 허무한지 모르겠다.

 

이게 전부라고? 이게 다야?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새로운 오독, 상상력이다. 나는 이상이며 변신할 수 있다는 믿음과 힘! 이전의 허물을 벗고 골방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이다. 영원히 치는 파도를 삶으로서 받아들이고 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고, 기대하는 나. 그 변화가 외적으로 거대할 수도 혹은 고요할 수도 있다. 남들이 바라보고 평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힘의 감정을 누릴 수 있느냐를 예민하게 살피자.

 

또다른 오독은 형편없는 나를 우상처럼 생각하거나 면죄부를 줄 때의 일이다. 나의 잠재성은 대단하지만 지금의 나를 정확하게 살폈을 때, 내가 끄덕일 수 있을 만큼 대단한가? “고독한 사람들에게-우리가 다른 인간들의 명예를 공적인 장소에서 존중하는 것처럼 자신과 대화하는 경우에 존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례한 자들이다.” 그래서 거리를 두고 내가 나를 보았을 때, 너무 쉽게 당황하고 너무 쉽게 나에게 상처를 준다. 내 마음은 저 멀리 가있는데 현실의 나는 콩알만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여기밖에 오지 못한 내 자신을 학대하는 것이다. 이는 성장하고자 하는 열망을 꺾어버리는 위험한 오독이다. 나는 충분히 잘해왔고, 그럼에도 부족한 점은 있다. 당연하지, 내가 목표로 하는 곳은 저 멀리 있으니까. 그래도 나는-우리 스스로는 위대한 점이 꽤 있다. 그것을 잊지 말기.

 

진리와 오류, 진리들에 대한 생각으로 넘어오면 여기도 재밌다. 오답이 없기에 정답이 없다. 진리는 진리들이 되고 오류는 그것대로의 힘을 갖는다. 오라클님의 진행에서 좋은 문장을 찾았다. 어떤 옳은 진리가 있다고 해도 생의 활력을 위한 그것을 부정하고 비진리를 말하는 것. 무도덕이나 무정부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진리 밖에서의 다른 도덕과 다른 정치의 가능성을 보는 것이다. 그것들이 틀린가? 틀리다라고 말하는 자는 시대이다.

 

더불어 생동감을 위한 적의 존재도 상상해보았다. 과거 공부를 할 때 라이벌이 있어서 더 배우고 싶었고 내가 갖고 있는 것을 가지고 부딪치는 즐거움이 있었다. 몇 개 더 맞았는지, 누가 더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 정도의 문제였지만 그럼에도 재밌었다. 내 인생의 신념과 내가 갈고닦은 역량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정말 좋겠다. 이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타인의 문제. 다만 내가 계속 세상에 있으면 언젠가 끌리듯이 누군가 말을 걸 수도 있겠지. 친구만큼 중요한 적.

 

5. 떠남과 기다림


 

떠남은 곧 기다림이다. 언젠가 도착할 나를 기다리는 나, 그를 향해 떠나는 나.

 

이 부분은 이전에 먼저 읽었던 책, ‘다이너마이트 니체와 계속 연결되었다. ‘언더그라운드 니체가 떠남의 대상을 시간, 장소, 나로 지목했다면 다이너마이트는 좀 더 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번 세미나의 책은 시대성과 비시대성에 대해 고민하게 했고 다른 책은 기다림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

 

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는 순간, 나는 함부로 살 수 없게 되었기에. 마치 영원회귀의 감동처럼, 저 높은 곳에서 멈추지 않고 나를 지켜보고 있는 자가 있다. 그자는 신이 아니며 또다른 절대자도 아닌, 그저 나. 내가 가능한 최고의 나이다. 그가 무엇을 하는지, 모습은, 나이는 무엇인지 그 무엇도 알지 못하지만 단 하나, 그가 라는 것은 안다.

 

정직한 기다림. 그 어떤 술수도 통하지 않는 과정 속에서 나는 묵묵히 산을 올라야 한다. 나를 기다리는 그를 만나기 위해. 생의 실험을 통해 다양한 나를 만나보면서 최고의 나를 향해 간다.

 

이를 위해선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한다. 다시 시대성의 문제로. 그 속에서는 진부한 나만 반복하기 때문에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없다. 시대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경험? 교육? 시행착오? 그리고 이 시대가 아닌 다른 시대, 비시대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애초에 나 스스로도 아직 시대성과 비시대성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막연하게 니체적 맥락에서 파악하고 있을 뿐이지. 시대성은 다수의 논리인가? 감정인가? 비합리성? 애초에 시대를 나누는 기준은?

 

한병철의 책을 참고하면 지금을 우울의 시대, 과잉의 시대로 말할 수 있지. 너무나 자유로운 할 수 있음에 절망하는 인간들, 마치 SF를 보는 것처럼 새로운 기술에 대한 새로운 희망이 그려지고 있는 오늘날, 서로 적대하는 명확한 진영 대신 모호한 갈등만 커지고 있는 세계,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고 개인이 개인을 책임져야 하는, 가벼운 척 하는 무거운 세상.

 

혹은 AI로 인해 생겨난 새로운 불안, 인간의 쓸모없음에 대한 노동 관점의 생각도 시대성의 일부일까? 도태될까봐, 아무 일도 할 수 있는 게 없을까봐 두려워하는 사람들과 나의 일부.

 

그럼 여기서, 시대 속 비시대는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같이 얘기해보고 싶은 지점이다. 요즘 불거지고 있는 자본의 흐름이나 운동처럼 정치적 올바름, 임팩트 투자 등 사회적 영향력을 염두에 둔 콘텐츠 기획, 사업 투자, 사회 운동, 제품/서비스 선택 같은 것? 하지만 이미 우리 시대가 이것을 포착하고 있는데, 그럼 이것은 반시대성이라고 말해야 하나.

 

비시대, 여기는 어디일까. “네가 아직도 적대받는 한 너는 너의 시대를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너의 시대가 너를 전혀 알아볼 수 없어야 한다.”

 

번외) 좋았던 아포리즘


철학은 부드러운 태양과 밝고 생동하는 대기, 바다의 숨결, 가벼운 식사, 따뜻한 음료, 조용한 산책, 신중한 독서, 청결하고 질박하며 거의 군인 같은 생활습관의 정신적 번역이라고.”

 

이렇게만 다시 살고 싶다. 다시 살 것이다. 정말 아름답고 따뜻한 글이다. 발음할 때부터 리듬을 타며 톡톡 자극하는 단어들이 아름답고, 신체의 번역을 철학이라는 말에 감동했다. 내가 먹는 것, 감정을 토해내는 것/쌓는 것, 내가 갖고 있는 생활습관 등이 모두 나의 철학의 일부구나.

Posted by 수유너머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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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학문』'정신의 농민혁명'에 대한 고찰

                                                                                                                이 규 상 / 수유너머104 세미나회원



[Ⅰ]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해 가장 오래된 지배적인 관념은 다음과 같은 생각이라 할 수 있다. "젊은 헤라클라스가 망치와 못을 움켜쥔다. 그는 몇 번의 망치질로 한 교회의 문에 논제들이 적힌 큰 종이판을 단단히 박는다. 그리고는 인류를 근대의 개인적 신앙으로 이끄는 해방자가 된다." (Ulinka Rublack) 이 망치질은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의 궁정교회 문에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한 역사적 사건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루터의 이 망치질이 굳게 잠긴 근대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종교개혁에 대한 지배적인 관념에 니체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니체의 저작 내에서 발견되는 혹은 인식되기도 하는 여러 모순적으로 보이는 표현들로 인해 그의 종교개혁에 대한 평가는 때로는 부정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긍정적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신의 농민혁명"의 전체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면 니체는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하여 매우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니체가 바라보는 루터의 종교개혁은 아래와 같은 몇가지 입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루터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그런 면에서 그는 그 모든 것에서 아무런 죄가 없다. 둘째, 루터는 로마 교회가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 놓은 위대한 결과물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없었고 치명적으로 단견적이고 피상적이며 부주의했으며, 민중 출신으로서 로마 교회에 대한 원한에만 사로잡혀, 단지 오직 부패만을 보았다. 셋째, 루터의 종교개혁은 유럽 문명의 변방, 게르만적 요소가 짙게 남아 있는 북부 유럽에서 주로 성공을 거두었다. 이는 유럽 정신의 피상화, 혹은 유럽 정신의 선량화를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게 하였다. 네째, 루터는 신과 인간을 중재하는 존재로서의 성직자, 성자, 성체 등 기존 카톨릭의 중보자들, 성직자들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함으로써 신앙을 내면화하고 개인화하며 이를 통해 교회와 국가의 관계 변화의 기초를 제공했다.


크게 네가지로 정리한 루터 종교개혁에 대한 니체의 입장을 상술해 보겠다.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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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입장은 루터의 무지이다. 이는 루터의 행위의 의도와 그 결과의 불일치 문제이다. 루터는 최초의 근대인이 아니라 마지막 중세인이었다. 루터는 자신이 근대적 운동의 선도적 기능을 한다는 자각이 없었다. 아니 그에게는 근대라는 관념이 전혀 없었다. 그는 단지 종교개혁 신학이라는 새로운 신학적 패러다임에 입각해 자신의 시대가 안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와 씨름하는 과정에서 중세적인 답이 아니라 근대적인 답을 얻었을 뿐이다. 이에 대해 니체는 이렇게 표현한다. "그는 그 모든 것에 아무런 죄가 없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루터는 카톨릭의 부패에 직면하여, 사도 바울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원시 기독교로의 복귀를 강력히 희망하였다. 그는 과거로의 복귀를 원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초래된 것은 근대라는 미래로의 첫걸음이었다.


둘째 입장은 첫째 입장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니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모든 '국가'에 대립하는 것으로서의 교회가 무엇인가를 잊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보다 정신적인 인간들에게 최고의 지위를 보장하고, 스스로에게 모든 거친 강제수단을 금지하기 위해 정신의 권력을 믿는 지배체제이다. 오로지 이 점에서만 교회는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보다 더 고귀한 제도인 것이다." 고대 로마 이후 중세 말, 근대 초기까지도 종교 더 정확히는 교회는 국가의 일부분이 아니었다. 전근대사회에서는 말 그대로 종교가 사회의 전 영역을 하나로 묶는 사회적 통합의 끈이었다. 종교가 단순히 사회의 다양한 부분체제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사적 및 공적 삶의 모든 영역에 대한 총체적 책임'을 지고 있었다. 너무나도 중세적이고, 전형적인 중세인이었던 루터는 이러한 자기 시대 종교의 성격에 전혀 무지했다. 


니체에 의하면 민중 출신인 루터는 권력의 본질, 권력의 외양, 권력의 작동 방식에 대하여 무지했으며 단지 카톨릭 권력의 부패에만 분노하였을 뿐이다. 루터는 관용적이지 못했고 권력과 종교의 작동 방식과 원리에 무지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니체는 루터가 민중 출신의 어리석음과 분노에 근거하여 "늙은 거미(카톨릭교회)가 오랜 세월에 걸쳐 그토록 세심하게 짠 것을 진지한 원한에 사로잡혀 갈가리 풀어헤치고 찢어버렸다"고 말한다. 이는 매우 중요한데 루터 당시 독일을 중심으로 거세게 일어났던 농민반란과 루터가 교획 내에서 일으킨 종교개혁의 결과적 유사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강제 부역문제로 1524년 6월 슈바르츠발트에서 시작된 농민반란은 슈바벤, 남부 독일, 알자스, 튀링겐, 그리고 작센 지방으로 확대되었고, 농민들은 사회적인 요구와 종교적인 요구가 담긴 12개 조항을 제시했다. 그 가운데 마지막 조항은 '농민들이 따르고자 하는 유일한 기준은 성서'라고 주장하며 루터와 비슷한 생각을 언급했다. 이에 고무된 루터는 우선 <평화에 대한 권고>라는 글을 통해 화해를 모색하려 했다. 하지만 튀링겐에서 일어난 농민반란은 과격한 토마스 뭔처의 영향을 받고 있었으며, 도를 지나친 폭력에 대한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결국 루터는 탄압자 편에 가담해 제후와 귀족들에게 '베고, 참살하라'고 지시함으로써 농민반란이 마침내 1525년에 이르러 유혈진압되도록 했다. 농민반란에서 언급되는 소위 유일한 기준은 성서였지 교회가 아니었다. 이제 농민의 신앙은 교회에 근거하고 지도되는 것이 아니라 성서에 근거하고 지도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는 현실에서의 농민반란과 교회 내에서의 루터의 종교개혁이 가지는 상호유사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세번째 입장은 종교개혁이 가지는 피상성, 주변성과 관계되는 문제이다. 종교개혁은 니체에 의하면 그리스도교 교회에 그 위대한 기념비를 세운 남유럽의 정신에 맞서 북유럽에서 일어난 농민혁명과 관계된 '근대의 이념'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종교개혁운동은 인쇄술의 발달과 인문주의 정신의 고취하는 두 개의 축을 근거로 하여 전유럽으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이 확산과정은 결코 순탄하게 진행된 것이 아니었다. 종교개혁운동은 카톨릭의 격렬한 반동과 내부 혁신을 동반하였으며 이는 지역적으로 그 성취에 있어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었다. 그리고 카톨릭과의 충돌은 종교전쟁과 1563년 성 바르톨로메오의 대학살을 거쳐 1598년 신앙의 자유를 선언한 낭트칙령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유혈의 시기를 통과하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이탈리아와 에스파냐등 남부유럽에서는 카톨릭에 의하 개신교의 탄압과 카톨릭 내부의 혁신운동 등이 북유럽과는 달리 별 다른 저항 없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반면 루터파와 츠빙글리 및 칼뱅 등에 의한 종교개혁운동의 성과는 북유럽을 중심으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이를 니체는 고대 로마와 그리스도교의 중심지였던 남부 유럽에 비해 독일적 혹은 게르만적 요소를 다수 가지고 있던 유럽의 변방인 북유럽에서 종교개혁운동이 성공을 거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핵심은 쉽게 붕괴되지 않으며 변화의 시작과 진행은 변방에서 시작되지 않는가!


넷째 입장은 루터의 신학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루터 신학의 핵심 교리 중 하나를 니체는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의 성직자이다." 루터 신학에 의하면 인간이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또한 이러한 구원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따라서 이 입장에 서면 성모 마리아, 성자, 성체, 성직자 등은 인간의 구원에 어떠한 역할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루터에 의하면"모든 신자들은 사실상 성직자인 것이다. 따라서 그들간에는 어떠한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오직 세례, 복음, 그리고 믿음을 통해서 누구에게나 성직자의 신분이 주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신학적인 문제의 제기는 성직자들과 신자와 하느님의 관계를 변화시킬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중보자로서의 역할, 구원 과정에의 역할이 사라진 성직자들의 권한 박탈은 이에 대한 댓가를 필요로 하였다.  니체에 의하면 이 박탈된 성직자에 대해 주어진 댓가가 아내와의 성적 교합이었다. 그리고 이 "성적 교합의 허용은 성직자에게서 고해를 듣는 자격을 박탈해야만 했다. 이것은 현실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정당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성스러운 귀, 침묵의 샘, 비밀의 무덤이라는 점에 가장 심오한 유용성을 지니고 있던 그리스도교의 성직자는 근본적으로 철폐되었다." 이러한 성직자의 철폐는 인간과 하느님과의 직접적인 만남, 신앙의 개인화 및 내면화와 직결되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와 동시에 이는 머릿수만큼이나 많은 교파의 탄생과 신앙고백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이제 과거의 영화와 지위를 잃어버린 성직자와 검증되지 않은 집단의 발호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정치권력의 개입을 허용하는 것 외에는 없었다. 이렇게 하여 루터 시대에 제후들이 성직자의 재산을 회수할 수 있고, 종교적인 사안에 개입할 수 있게 됨으로써 종교개혁운동은 정치권력의 후원하에 더욱 급속히 퍼져나갈 수 있었다. 이것은 동시에 종교가 혹은 교회가 국가에 대등하거나 우월한 존재가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며, 종교나 교회가 전 사회를 연결하는 끈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다른 사회 체제와 마찬가지로 국가의 하부구조의 일부가 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또한 이는 돈과 무기로 무장한 정치권력에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서의 교회, 무장을 포기한 거대하고 우월한 정신적 권위의 체제로서의 교회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Ⅲ]

루터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니체가 바라보는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한 입장은 매우 복합적이다. 니체는 종교개혁의 결과는 결코 루터가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고 못박고 있다. 니체가 보기에 중세적인 너무나 중세적인 인간이었던 루터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사도 바울에 대한 연구 등을 거쳐 발견한 원시 기독교로의 귀환이었다. 이를 통하여 루터는 그 당시 그가 보기에 너무나 부패했던 카톨릭의 개혁을 통하여 여느 중세인과 다름없이 종교적 구원을 얻고자 하였다. 그리고 전형적이고 뼛속까지 중세인이었던 루터는 당연히도 너무나 중세적인 방식으로 이러한 종교적인 구원의 길을 찾았으며, 그 결과 중세의 스콜라적 카톨릭 신학과 근본적으로 다른 신학적 사상을 구축하였다. 이 새로운 신학적 사상은 기독교를 통한 전 사회적 통합의 끈을 복원시키고자 하는 본래의 중세적 의도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근대의 시원을 여는 가장 중요한 시발점이 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근대는 개인화, 탈주술화, 세속화, 분화라는 주요한 지표들로 특징지워질 수 있다. 니체가 보기에 루터는 위의 네 가지 중 어느 것도 의도하지 않았다. 루터는 카톨릭 교회의 부패와 성체, 성물 등을 통한 주술화, 미신화 경향에 대항했을 뿐이며, 교황과 그 부하들에 의해 왜곡되어 진다고 판단되는 기독교의 본령을 찾기 위해 성서를 유일한 신앙의 근거로 규정하였다. 이는 루터의 입장에서는 기독교의 순수성을 찾는 것이었으나 신앙을 개인에게 귀속하는 것이며 문헌학자들에게 위탁하는 것이며 결국 신앙의 민주주의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카톨릭의 부패에 대항하여 성서의 권위를 확고히 하고 유일한 중보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치시키는 것은 원시 기독교의 순수성을 되찾고자 하는 욕망에 근거한 것이었으나, 이는 결과적으로 성직자의 사도적 전통과 교회의 중보자로서의 역할을 박탈하는 것이었고 이는 또한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은 신학적 입장이 되어 버렸다.


그런 면에서 니체가 보기에 루터는 교회의 이상이 타락하는 것을 혐오하여 이에 맞서 싸우는 듯이 보였지만, 결국에는 자신이 도달할 수 없었던 그 이상을 파괴해 버렸다. 실제로 이 열정적이지만 실패한 수도사이자 재능 있는 신학자이며 즉흥적이고 불안한 종교개혁자인 동시에 신중하고 사려 깊은 정치가였던 루터는 종교적 인간의 지배와 충돌했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시민사회의 질서을 위하여, 그가 그토록 옹졸하게 공격했던 '농민혁명'을 교회 내부에서 일으킨 것이었다.


또한 니체가 보기에 루터의 종교개혁은 유럽 정신의 피상화, 정신의 동요와 불안, 독립성과 자유에의 갈증을 자아내어 근대로의 이행을 예비하고 촉진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는 동시에 근대인 혹은 근대 학자들이 보이는 외경심과 수치심과 깊이의 결여, 지극히 순진한 성실성과 인식에 있어서의 우직함, 한마디로 근대 정신의 천민주의적 경향에도 종교개혁은 그 심대한 책임이 있다.


이상과 같은 니체의 루터에 대한 입장에 대해서는 호불호의 판단이 가능할 것이다. 니체가 보이는 근대 유럽 민주주의의 천박함, 깊이가 결여된 근대 학문, 위대함을 상실해버린 기독교 등 많은 비판적 언급 등은 각자의 관점에 따라 여러 다른 판단이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다만 그 동안 주로 진보와 발전, 개혁이라는 관점에서 주로 긍정적으로 언급되던 루터의 종교개혁이 가지는 근본적인 성격,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숨어있는 이면의 모습, 의도와 결과의 불일치, 성직자의 근본적인 철페 등과 같은 여러 견해는 두고두고 곰씹어볼 만한 것으로 보인다.



※ 참고문헌

『즐거운 학문』 제5부, 니체, 책세상

종교개혁, 루터와 칼뱅, 프로테스탄트의 탄생, 올리비에 크리스텡, 시공사

루터와 종교개혁, 김덕영, 도서출판 길

Posted by 수유너머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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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엇을 보았을까?


# 나는 추구하는 것에 지치게 된 이후로 발견하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 [즐거운 학문] p37 


누구나 그렇듯이. 그저 열심히 크게 앞서지도 뒤쳐지지도 않게 남들과 속도를 맞춰가며 살다보면 내 인생도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평안해질거라 믿으며 살고 있었다. 커리어가 중요하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지 모른 채, 고민만 하다가, 그것도 어느 순간 잊혀지고 - 누구나 그렇듯이 -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면 다 잘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30대를 그렇게 보내고 있었다. 크게 보면 불안한 삶이었으나, 하루하루를 분명 나는 ‘웃고’ 있었다.


그 말은 옳았다. ’니체의 위험한 책‘ 고병권씨는 니체를 그렇게 불렀다. 2015년 우연히 만난 니체로 인해 나를 지탱해주던 믿음들은 힘없이 무너져내리고 있었고, 정말 피하고 싶었던, 30대의 시작을 함께 했던 그 고민들을 나는 40대 중반이 되어서 다시 마주했다. 

 

2017년 17년간 다녀온 직장을 그만두고, 목수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가구는 내게 내 삶을 주체적으로 주도하고 그 누구의 것도 착취하지 않으며 나의 노력으로 무언가를 창조하는 삶을 의미했다. 기술적으로 높은 수준을 추구했으며, 그 기술로 만드는 가구 곳곳에 니체의 철학을 담는 나 자신을 상상하며 또다시 하루하루를 열심히 노력하며 살았다. 


2019년, 내게는 세 번째 만남, 니체의 ’즐거운 학문‘ 세미나가 시작되었다. 늘 그렇듯 니체는 서문에서부터 내게 물었다. ’너는 무엇을 발견했느냐‘고. 목수로서의 새로운 삶은 내게 무엇을 발견하게 했느냐고. 그러나 니체의 질문에 답하기 전에 나는 먼저 내 자신에게 물어야만 했다. 혹시 나는 또 다른 목적을 ’추구‘해 온 것은 아니었는지.


2. 목적없는 삶을 견딜 수 있는가?


# 아마도 웃음에도 새로운 미래가 있을 것이다! 그때는 이 궁극적인 해방과 무책임에 이르는 길이 개개인 모두에게 항상 열려 있게 될 것이다. 또한 그때는 웃음이 지혜와 결합되어 ’즐거운 학문‘만이 남게 될 것이다. - [즐거운 학문] p66 


회사를 그만두고 바로 다음 날부터 마치 회사를 다니듯 드나들었던 나의 공방, 그곳에서 나는 매일매일 가구와 씨름을 하고 있다. 신의 경지에 이른 날물 갈기 – 숫돌에 갈고나면 진짜 거울처럼 사물이 비춰지고 날물 위에 머리카락을 떨어뜨리면 스스륵 잘리는 그런 경지! 나뭇결 위에서 춤을 추듯 미끄러지는 대패질 – 잘린 단면은 실크보다 더 곱고 나뭇결의 뜯김은 찾아볼 수도 없는 그런 경지! 귀신처럼 아귀가 딱 들어맞는 장부짜임 – 마치 기계로 만든것처럼 빈틈이라고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그런 경지!


오해말기를 바란다. 이 모든 것들은 나의 모습이 아니라 내가 이루고자 했던 내 머리 속에 설정된 목표들이었다. 회사를 나왔어도 나의 삶에 대한 태도는 바뀐 것이 없었다. 하루하루 불안한 나의 삶에 위로이자 등대가 되어줄 ’목표‘가 필요했다. 나름 괜찮았다. 이유가 무엇이든 그 목표들 덕분에 하루를 웃으며 보낼 수 있었으니까. 


니체는 계속해서 내게 원점에서 다시 생각할 것을 종용했다. 내 목수의 삶에 특별한 목적이 없다면, 그래도 웃을 수 있는가? 궁극의 무책임에 다다를 수 있는가? 아! 언제나 그렇듯 이렇게 니체는 나를 흔든다. 가만 좀 내버려두면 좋으련만......


3. 수단으로서의 목공은 가능한가


Carpenter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 우리는 궁극적으로 무겁고 진지한 인간이며, 인간이라기보다는 중량이기 때문에, 사물을 넘어서있는 자유를 잃지 않기 위해, 신나고 떠돌아다니고 춤추고 조소적이고 유치하고 황홀한 예술을 필요로 한다. - [즐거운 학문] p179


나무를 만지고 가구를 만들 때면 나는 곧잘 환각상태에 빠지곤 한다. 내가 엄청난 장인이라도 된 듯 진지해지며 철학적 성찰을 담아내는 도구로써 가구를 대한다. 나의 눈길은 점점 성스럽게 변하고 손놀림은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조금의 오차도 인정하지 않는 엄격함으로 나를 몰아대기 일쑤다. 니체가 이런 나를 제대로 저격한다. ’역시 너는 중량이었어......’  


세미나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나는 왜 목수가 되려고 했는지, 그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계속되는 사유 속에 점차 나는 주체적인 그리고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그 수단으로써 목수를 선택했을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처음부터 수단이었을 뿐이었다. 목수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었던 것이다. 


4. 실험으로서의 목공은 가능한가


# 삶의 조건을 둘러싼 최후의 물음이 여기에서 제기되고 있으며, 실험을 통해 이 문제에 대답하려는 최초의 시도가 여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진리가 어디까지 체화를 견딜 수 있는가? 이것이 제기되고 있는 물음이며, 이루어지고 있는 실험이다. - [즐거운 학문]


세미나 시간 중에 내가 ‘진리란 없다’ 라고 발제를 했다가 바로 지적을 받았다. “니체는 절대적 진리가 없다고 했을 뿐이며, 진리 그 자체가 없다고 한 것은 아니다.” 반장님이 엇결도 절대적 진리를 진리라고 설정하고 발제한 것이라고 편들어 주셨다. 이제 고백하자면 내게 지적해 주신 그 말씀은 아주 정확한 것이었다. 나는 니체가 진리 자체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지금 이것을 고백하는 이유는 이 작은 사건이 내게는 즐거운 학문 전체를 보는 시각을 바꿔준 중요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후로 즐거운 학문은 내게 “절대적 진리가 없는 것, 목표가 없는 너의 삶 속에서 너는 무엇을 진리라고 믿고 있느냐?”고 질문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믿음이 얼마나 체화되고 있는지, 그리고 체화의 실험 속에 아직도 믿음으로 존재하고 있는지를 묻고 있었다.


니체는 즐거운 학문을 통해 ‘체화’를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진리, 믿음은 결국 삶 속에서 체험을 통해 발견되고 수정되며 스스로 성장해 가는 것이라고. 다시 내 심연으로 끌려들어간다. 나는 과연 주체적으로 살고 싶다는,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그리고 그것이 나의 가족과 이 자본주의의 시스템 안에서 가능하다는 그 믿음을, 목수라는 직업을 가지고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체화시키고 있는가? 여전히 더 배워야 한다는 강박, 아직도 준비되지 않았다는 두려움 때문에 세상에 나가길 두려워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것이 나를 지하공방에서 매일매일 혼자만의 시간속에 갇혀있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결국 나는 아직 나의 진리를 체화시키지도, 실험하고 있는 것도 아닌 상태임을 깨닫고 있었다.


5. 무지의 상태로서 ‘미래’를 긍정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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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사상은 내가 어디에 서있는가를 내게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내가 어디로 향해 갈 것인가를 알려줘서는 안 된다. 나는 미래에 대한 나의 무지를 사랑한다. - [즐거운 학문] p264 


나는 가구학교 전문가과정을 일년동안 수료하고 지금도 3년째 공방에서 수련을 계속하고 있다. 무엇이 나를 이런 충동으로 이끌었을까? 배움이 너무 좋아서? 아쉽게도 나는 그렇게 학구적인 인간이 아니다. 아마도 그것은 보다 확실하게 준비된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서일 것이라 생각한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고등학교 3학년을 철저히 준비해야만 했고, 다시 대학에서는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 시간을 쪼개쓰며 4년간 훈련을 해왔다. 회사에 들어가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 나를 몰아세운 생활이었다. 회사를 나왔어도 삶에 대한 나의 태도는 변한게 없었다. 목수로서의 미래가 근의 공식처럼 완벽하게 준비되어야만 했다. 나는 미래 설계자였으니까.


# 이 일이 성공하지 못하면 아마 다른 일이 성공하겠지. 그리고 전체적으로 보면 성공보다 실패에 더 감사해야 할지도 몰라. - [즐거운 학문] p280


나는 과연 삶 자체를 시도로서 실험으로서 살아낼 수 있을까? 이것은 어떤 논리의 문제도 아니며 그저 니체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의 기질의 문제일 뿐이다. 그럼 이렇게 물어야 하겠다. 나는 과연 그런 부류의 인간일까? 


6. 나는 나를 다시 사람들 속으로 보내야겠다.


# 우리는 인식을 위한, ‘진리’를 위한 기관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그것이 인간의 무리, 종에 유익한 만큼만 ‘안다’ - [즐거운 학문] p342


# 그대들 이주자들이 바다로 나아가야 한다면 그대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도 또한 신앙일 것이다! - p386


니체가 즐거운 학문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그의 전작인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는 절대적 진리를 추구하는 모든 형이상학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하면서 그 이면에서 가장 인간적인 것밖에 없음을 드러내고자 했다면, 「즐거운 학문」을 통해서는 네가 믿는 진리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삶의 경험을 통해서 생성되며, 다시 경험을 통해 수정되고  새로운 진리를 얻어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마도 니체 역시 그렇게 경험을 통해 ‘힘의 의지’와 ‘영원회귀’에 이르는 사상의 여정을 한 것이었을 것이다.  


나는 회사에 다니면서 노예로서 살고 있는 ‘나’를 발견했고, 그로부터 주체성과 자유를 찾아 회사를 떠났다. 나의 새로운 믿음은 다시 내가 떠나온 무리들 속에서 그들과의 ‘부딪힘’을 통해 깨어지고 고쳐지며 또다른 믿음으로 나를 이끌어줄 것이다. 결국 체화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제는 ‘다시 그들에게로 돌아가자.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지만 크게 보면 무엇이든 성공할 것이다. ’목수의 삶이든, 철학자로서의 삶이든 뭐든 하나는 이루겠지’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비로소 나만의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7. 즐거운 학문을 마치며 


공교롭게도 2019년을 시작하며 나는 두가지 목표를 세웠었다. 하나는 즐거운 학문이라는 새로운 니체 텍스트를 세미나를 통해 읽어내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기존의 목공기술과는 전혀 다른 그린우드워킹을 배우는 것이었다. 


그린우드워킹이란 건조되지 않은 생나무(greenwood)를 이용하여 가구를 만드는 것으로서 주로 윈저체어나 스푼, 바구니 등 생활잡화를 만드는 영역이다. 주요 특징이라면 주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local wood를 사용하여 생활속에 바로 사용할 목적의 도구나 가구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과정의 특성상 기술적 엄격함보다는 조금 불완전해 보이더라도 제작자의 자유분방함을 더 가치있게 평가하고 오히려 추구한다는 점이 기존 가구제작 방식과는 다른 점이다. 그린우드워킹을 배우면서 나는 가구가 흠하나 없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아닐 수도 있음을 배웠다. 나는 지금 처음의 가구 제작의 중요한 목표를 잃어버린 상태다. 아마 평소의 나라면 혼란스러웠을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즐거운 학문」과 더불어 목표를 잃어버림으로써 또 하나의 무한의 자유가 내 앞에 놓여있음을 느낀다. 이제 비로소 또다른 방식의 목공이 존재할 수 있음도, 그것이 내게 또다른 방식의 삶에 대한 사랑도 가능하게 함을 깨닫게 한다. 이제야 공방 밖으로, 세상 속으로 나올 ‘용기’가 내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 우리는 이 길고 위험한 극기 훈련을 거쳐 다른 사람이 된다. 이와 더불어 우리는 몇 개의 더 많은 의문부호를 갖게 되고, 삶에 대한 신뢰는 사라져버리고 삶 자체가 문제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이것이 사람을 필연적으로 우울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지는 말라! 삶에 대한 사랑은 여전히 가능하다. 다만 사랑의 방식이 바뀌는 것일 뿐이다. - [즐거운 학문]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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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의 향기로서의 사랑

 

 

 

 

 

담연(수유너머104 세미나 회원)

 

 

 

1 모를 뿐

 

장자의 덕이 무엇인지 말해보라면 나는 사랑이 떠오른다. 새벽 호숫가에서 아무도 모르게 은근히 피어오르는 물안개 같은 그런 사랑. 물론 사랑()이라는 단어는 인()과 더불어 유가가 선점해버린 어휘여서 장자는 덕을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덕을 지닌 장자의 이상적 인간들(眞人)이 모두 자기 방식으로 사랑하며 살았다고 본다. 다만 표현이 매우 수동적이고 은밀하며 은유적이어서 사랑받는 이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를 뿐이다. ‘모를 뿐.’ 어쩌면 장자는 이것을 의도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 알 듯 모를 듯한 이 사랑을 장자는 어떤 어휘로 표현했을까?

 

 

 

 

 

 

2 솔직한 마음 살이

 

다산 정약용은 「대학공의」에서 덕()이라는 글자를 + + 으로 해석한다. 그에 따르면 덕이란 사람이 무언가를 할 때 미리 재거나 계산하는 일없이 툭 튀어나오는 솔직한() 마음()을 따른다()’는 의미다. 여기서 솔직한 마음이란 선한 도덕적 본성이 아니라 충동적 욕망에 가깝다. 이렇게 계산없이 솔직한 마음을 따라 살다보면 어느 순간 그 사람 내면에 어떤 힘이 생기는데 장자는 이것을 덕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말이 쉽지 솔직한 삶은 그리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이것은 남의 평가나 사회적 가치관을 따르기보다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산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진심도 알기 어려운 데 그대로 산다고? 그러다가는 남에게 문제아나 반항아, 돌아이로 간주되어 은따 당하기 쉽상이다.

 

 

 

 

3 고독, 덕을 위한 시간

 

하지만 장자는 은따 되기, 혹은 기꺼이 고독()해지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솔직한 진심을 따를 때 그 사람 고유의 충만한 생명력과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무리에서 벗어나 진심이 이끄는 길을 가는 것은 남의 인정 외부를 걷는 행위이기에 고독하다. 하지만 이 고독 속에서 덕은 깊어지고, 자기만의 세계는 영글어 실한 열매를 맺는다. 여기서 말은 잠들고 치열한 실행만이 지속된다. 엥거스 그레이엄은 이 고독한 수행 속에서 차츰차츰 형성된 인간 내면의 덕을 힘(Power)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강요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절로 자신을 따르게 만드는 일종의 카리스마, 감화력이다. 뭘 했길래 사람들은 그가 좋아 따르는 걸까? 문제는 그가 자기 의도대로 무엇을 하지 않았다(無爲)’는 것이다.

 

 

 

 

 

 

 

4 덕의 효과

 

뭘 딱히 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따르는 이 현상을 장자는 무위자화(無爲自化)’라고 말한다. 여기서 무위는 덕을 갖춘 진인이 자기 뜻대로 사람들을 가르치거나 조종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상대가 누구든 무엇이든 생긴 그대로(自然) 살게 하고 스스로 변하게(自化) 둔다. 그러면 진인은 뭘 하는가? 그저 제 삶에 충실할 뿐이다. 장자는 덕충부편에서 덕을 내면에 기의 조화를 완성하는 수양(德者, 成和之修也)’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만물이 떨어질 수 없다(德不形者, 物不能離也)’고 본다. 진인은 만물이 생긴 그대로 살게 두고 진심이 여는 길을, 기의 조화를 유지하며 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렇게 내버려두는 방식으로 자기 길을 가다보면 사람들이 절로 그를 따른다. 이것이 감화력이며, 자기 의도대로 하지 않는 방식으로 하지 못하는 것이 없는(無爲而無不爲) 무위의 궁극 경지다. 참 묘하다.

 

 

 

 

 

 

5 빛을 품은 온기로

 

만물은 저마다의 색과 꼴로 다양한 향기를 전하며 이 세상에 잠시 피고 사라진다. 장자의 진인은 이러한 만물의 다양성을 자기 존재를 비우는 방식으로 아끼고 살려준다. 자기를 강요하기보다 상대를 살리는 방식으로 자신을 살리며 기의 조화를 유지한다. 만물이 그를 따르는 이유는 그가 이처럼 만물을 제 몸같이 아끼고 자유롭게 살도록 두기 때문이다. 이것을 장자는 보광(葆光)이라는 빛으 표현한다. 과시하듯 눈부신 빛은 감추고, 빛의 잔영인 온기를 나누며 만물과 더불어 겸손히 상생한다. 이것이 덕의 향기로 세상을 따뜻히 감싸는 장자 진인의 은근한 사랑이다.

 

 

 

 

 

 

 

Posted by 수유너머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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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학문], 탈주자를 위한 하드 트레이닝

 

 

 

모 로 / 수유너머104 세미나회원

 

 

 

‘낳을 때가 아니면 낳지 말라’(73. 성스러운 잔혹성 中)고 일렀건만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로 향할 미숙아 같은 글을 낳게 되었음을 미리 밝힌다. 니체의 《즐거운 학문》 제2부를 접한 나의 신체는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짜증이 극에 달했고, 심히 피로해졌다. 이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다. 세미나 당일에는 급기야 머릿속이 혼탁해져 발언이 무분별했던 것 같다.

 

살다보면 적잖은 것들이 나의 심기를 건드리는데, 그럴 때마다 난 기어이 그 정체를 밝혀야만 직성이 풀린다. 이번엔 도대체 무엇이 나를 자극한 것일까? 우선 격랑을 진정시키기 위해 세미나 다음날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내리 두 편의 영화를 봤다. - 제2부의 주요 소재였던 예술에 대해선 거의 논의하지 못했는데 나에게 예술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영혼의 비스킷이라 답하겠다. 아울러 이 시대 최고의 예술은 영화라 생각한다 - 다소 진정된 내가 찾은 위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니체의 글쓰기법, 즉 문체이다.

 

[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당신은 내가 쓰는 언어를 이해한다고 확신하는가?] - 보르헤스, 바벨의 도서관 中

 

 

이토록 놀라운 유용성이라니!

 

제2부의 내용에 대해 정리하는 것은 지금의 나로선 불가능하다. 텍스트만 생각하면 또 다시 머리가 지끈거리기 때문이다. 대신 나의 신체가 감지한 것을 면밀히 규명해봐야겠다. 이것이 현재의 나의 힘에의 의지이며, 니체라는 한 예술가를 감히 평해보는 나쁘지 않은 접근이 될 것 같다.

 

[이 운율을 붙인 말은 명료한 전달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방해하고모든 유용한 합목적성을 조소하기라도 하듯이 세상 모든 곳에서 솟아나오고] - 84. 시의 기원

[망상이란 느끼고 보고 듣는 일에서 자의가 돌출하는 것두뇌의 방탕한 향락무분별에서 느끼는 기쁨] - 76. 가장 큰 위험

 

자의의 돌출! 두뇌의 방탕한 향락! 바로 니체의 텍스트가 이러하다는 데 우리 세미나원들은 이견이 없을 것이다. 돌직구를 날리는가 싶다가도 저의를 알 수 없는 반어법을 쓰기도 하고, 언중들과의 약속을 가볍게 무시하고는 자신만의 자의적인 개념을 생성하는가 하면, 같은 단어라도 완전히 다른 개념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가벼워져라’ 하면서도 마냥 멍 때리고 읽는 독자는 안드로메다로 보내기 일쑤. 그래서 니체의 텍스트를 읽기 위해서는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 난 아직 본능화는커녕 체화하지 못해 가볍게 읽는 경지가 아니다 - 하며, 별도의 독해법을 몸에 익혀야 한다. 몇 가지 유형을 들자면 다음과 같은 식이다.

 

① 같은 단어라도 어떤 맥락에서 어떤 단어들과 결합했는가에 따라 반대의 가치를 갖는다.

▶[자연 속에서의 정열은 극히 눌언이고] (--> 본연의 순수한 충동) (80. 예술과 자연)

[이탈리아인들 덕분에 노래하는 정열이라는 또 다른 부자연스러움을 기꺼이 참을 수 있게 된 것처럼] (--> 가식적으로 고양된 감정) (80. 예술과 자연)

▶[늙은 무용교사] (--> 지혜로운) (75. 제3의 성)

   [늙은 아리스토텔레스] (--> 새로운 가치를 생성하지 못하는) (75. 제3의 성)

▶[정열적이면서도 느린 정신의 템포인 안단테의 발전속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 면밀한) (10. 일종의 격세유전)

   [보편적 신앙이 모든 정신적 과정에 대하여 요구하는 저 느린 템포](--> 보수적인) (76. 가장 큰 위험)

 

② 반어법을 빈번하게 사용해 진의를 파악하기 어렵다.

▶[건전한 상식”의 옹호자들이 모든 시대에 걸쳐 다수를 차지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이미 오래전에 멸망했을지도 모른다. ](76. 가장 큰 위험) --> 이 말은 반어법일까? 아닐까?

 

③ 통상 부정적으로 쓰이는 개념도 얼마든지 긍정적으로 쓰일 수 있다.

▶[유령 같은 아름다움이여!] (60. 여성과 원격작용)

▶[죽음처럼 고요하고 지칠 줄 모르는 방랑자들은!] (59. 우리들 예술가들)

--> 정말 부정적으로 쓰인 게 아닌 걸까?

 

④ 행간을 읽어야 한다.

▶[남자의 본성은 의지요, 여자의 본성은 응낙이다. 진정 이것이 양성의 법칙이다!] (68. 의지와 응낙)

-> 이렇게 쓰여 있다고 이것이 니체의 생각일까? 이를 통해 진짜 하려는 말은 무엇일까?

 

니체는 종종 여성은 변덕스럽고 헤아리기 어려운 존재 - 어찌 여성만 그러하겠는가! - 라며 역정을 내곤 하는데, 그렇다면 니체의 텍스트야 말로 '여성'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어져야 할 다음 질문은 왜 그는 이렇게 쓰는 것인가. 즉, 우리의 사고회로를 교란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의 기원(84 아포리즘)’ 편에서 니체는 시(운율)와 음악에 잠재하는 어떤 강제력, 기술적 수단으로써의 미신적 유용성, 마술적 힘을 몇 가지로 정리했다. - 파스칼 키냐르의 『음악혐오』는 책 한 권 전체가 이러한 내용들로 이뤄져있다 - 나는 《즐거운 학문》이라는 텍스트도 그 자체로써 미신적 유용성을 갖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물론 니체는 시와 음악의 부정적 기능을 비판 - 나는 예술의 선전·선동성을 비판하는 것으로 읽었다 - 하기 위해 미신적 유용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했으나, 이글에서 나는 긍정적 개념으로 변주하련다.

 

 

첫째, 탈주의 글쓰기로 가치를 전복시키는 작업.

 

[대부분의 사람들은 찬성이나 반대의 궁극적이고 확고한 근거에 대해 사전에 충분히 의식하지 않거나 혹은 그러한 근거에 대해 사후에나마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 현존재의 경이로운 불확실성과 애매성 한가운데에 머물며 물음을 던지지 않은 것물음의 욕구와 기쁨 앞에 몸을 떨지 않는 것 … 이것이 바로 내가 경멸하는 것이다.] - 2. 지적 양심

 

제1부 ‘2. 지적 양심’ 편에서 니체는 시대의 규범(중력장)에 물음을 던지지 않고 안주하는 우리들을 크게 나무랐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이성, 예술, 성, 덕 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집요하며 독창적인 해석을 손수 제시하며 지적 양심이란 바로 이런 것임을 보여준다. 글쓰기에도 당대에 통용되는 규범이란 것이 있다. 만약 니체가 규범적 글쓰기로 자신의 주장을 피력했다면 그것은 배신일 것이다. ‘75. 제3의 성’ 아포리즘에 빗대자면 니체의 글은 지배규범에 포섭되지 않는 '다른 성에 속하는 작은 여자'이다. 고로 《즐거운 학문》 이 책의 내용과 글쓰기 자체가 하나의 지적 양심의 사례집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지적 양심’을 배양시키는 트레이닝.

 

[결국 자유롭게 되고자 하는 모든 인간은 자신을 통해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자유는 그 누구에게도 기적의 선물처럼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 <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 99.쇼펜하우어의 추종자들.

 

하지만 각각의 가치들이 무엇인지 니체가 공으로 퍼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에게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리고 ‘어떠한 가치를 생성할 것인가’라는 개인 미션이 주어진다. 문제는 결여된 지적 양심을 복원하는 길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데 있다. 모호하며 역설로 가득한 니체의 암호문을 우리는 가진 애를 써서 최선을 다해 해독해야 하는데, 그 과정 자체가 지옥훈련 입문이다.

다시 말해 니체는 자신의 텍스트를 읽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각자 가치를 생성하는 법을 트레이닝 시키고 있는 것이다. 텍스트를 통해 사고법을 훈련시키다니! 무슨 ‘기적의 기억법’ 같은 두뇌 훈련법이 연상되기도 하고, 100년 전 텍스트가 살아 숨 쉬는 채찍이 되어 마법을 부리는 것 같기도 하다. 이것이 미래의 인류를 조련시키기 위한 니체의 기획은 아닐는지.

 

[오로지 창조하는 자로서만 우리는 파괴할 수 있다.] - 58. 오로지 창조하는 자로서만!

 

하지만 애석하게도 아직 《즐거운 학문》은 나에게 즐겁지 않다. 2부에 접어들면서 부쩍 난이도가 높아졌는지 나는 기진맥진해져 흥미를 잃었다. 훈련을 하다보면 슬럼프에 빠질 때도 있는 것이고, 그 슬럼프를 이겨내면 크게 도약하기도 한다. 아마 나는 그 지난한 과정에서 외로이 분투 중인가보다.

 

Posted by 수유너머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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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프라하 2019.04.28 0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로님. 잘 읽었습니다.~^^

니체의 물리학 - [즐거운 학문]

연 두 / 수유너머104 세미나회원

 

나는 아직 살아 있다. 나는 아직 생각한다

 

나는 아직 살아야만 한다. [즐거운 학문]은 회복기에 있는 나의 신체에 잘 맞다. 내게 아주 아름답다. 이 시기에 이 텍스트를 만나는 데에는 지극히 드문 우연이 필요했다. 나는 니체씨에게 이런 필연을 아름다운 것으로 보는 법을 더 배우고자 한다. 내 운명을 사랑하고자 한다. 나는 사랑하는 법을 더 배우고자 한다. [즐거운 학문] 4부를 읽어가는 과정은 매우 흥미로웠는데, 세미나도 역시 그랬다. 세미나 이후에 텍스트를 읽으면서는 더 많은 것을 ‘발견’하는 기쁨이 있었다. 그것이 이 글을 쓰는 나의 행복이었다.

 

‘아포리즘 #333, 인식이란 무엇인가‘는 세미나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그는 333이라는 특이한 번호에 이 아포리즘을 일부러 배치한 것 같다. [즐거운 학문]을 읽어가다 보면 그가 ‘인식’이란 개념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그런데 그는 과연 인식에 우호적인가, 다르게 말하면 니체적 인식이란 무엇인가. 니체씨는 묻는다. "너는 무엇을 인식하고 있는가. 너의 인식이라는 믿음의 근거는 무엇인가. 과연 그렇게 인식하는 게 타당한가" 라고 말이다.

 

 

깨어 있으라, 지금 여기.

 

매번 세미나 때마다 우리는 언제나 니체씨가 쓰는 개념이 무엇인지 왈가왈부한다. 그가 쓰는 단어의 용법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굳이 애를 써야 한다. 그는 이것을 정확히 겨냥했다. 그는 의도적으로 그가 쓰는 개념의 통일성을 버렸다. 개념의 일관성이란 인식을 고정시키는 ‘지속적 습관’이니까. 니체씨는 지속적 습관을 싫어한다지 않는가. 그는 개념들을 단기적 습관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그에게 자양분이 되고 있으며 깊은 만족감을 나누어주기 때문에.

 

애초에 명확한 개념이란 없다. 개념의 경계선은 없다. 우리는 개념 위로 사뿐히 안착할 수가 없다. 니체씨는 우리에게 그럴 자유를 주지 않는다. 그는 절대적 개념에 안주하려는 것을 일종의 죽음충동으로 보는 것 같다. 개념은 일종의 추세선이다. 이리저리 끊임없이 왔다갔다 하는 흐름 속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는 사유의 잠재력을 잊고 의식된 사유에 편안히 머무르려 하는 우리의 나태를 계속해서 흔들어 깨운다. 어이, 계속 죽으려고 하지 마! 우리는 삶의 파도를 넘으며 계속 항해 중인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지속적 평온, 영원한 안식이란 죽음 아니겠는가.

 

세미나 말미에 아주 중요한 화두가 던져졌다. "도대체 니체씨에게 영원회귀가 삶의 윤리로 왜 그렇게 중요했던 것일까, 힘의 의지로는 부족했던 것일까" 누군가는 거기에서 기독교 사상의 짙은 그림자를 본다고 했다. ‘피안, 천국, 영원한 안식’이라는 믿음이 시대의 공기로 니체씨를 밀어부칠 때, 그가 그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영원회귀를 창안해내어야만 했을 것이라는 그런 의혹을 제기하시면서. 나는 그런 물음은 한 번도 던져보지 않았는데, 과연 당장 니체씨에게 달려가 물어봤음이 타당한 그런 질문이었다.

 

 

정직하라, 자기에게.

 

도대체 매번 도덕적 판단이 어떻게 생겨나는가(#335. 물리학이여 영원하라!). 나는 이 질문이 4부에서 니체씨가 가진 가장 중요한 물음이라 생각한다. 니체씨는 "도덕이란 우리 행동의 수레바퀴에서 가장 강력한 지렛대"라고 말한다. 도덕이 우리를 ‘이런 방식으로’ 살게 하는 것이다. 도덕이 나의 삶의 양식을 규정하는 것이다. 그가 서문부터 내내 강조해 오던 지적 섬세함과 예민함은 바로 이 질문을 파헤치는 데 활용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 너는 왜 이것을 옳다고 여기는가?

- 너는 왜 네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가?

- 이러한 믿음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양심의 역할이 존재하지 않는가?

 

우리는 ‘현재’의 우리 ‘자신’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새롭고, 일회적이고, 비교불가능하고, 자기 스스로가 입법자이고, 자기 스스로를 창조하는 인간인 그 ‘자신’ 말이다. 니체씨는 그를 위해 물리학과 정직성을 동원한다. ‘창조자’라는 의미에서의 물리학자가 되라고? 물리학이란 무엇인가? 물리학이야말로 사물과의 관계, 힘의 원리를 연구하는 학문 아닌가. 우리 행동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도덕이라는 지렛대를 연구하라는 것이다. 무엇으로? 양심의 배후에 있는 양심, 지적 양심, 바로 정직성으로.

 

니체씨는 정직성을 통해서만 자신을 만나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무엇에 정직해야 하는가. 양심? 그럴 리가 없다. 너의 양심의 배후를 보라고 그는 단호히 말한다. 의식된 자아? 그럴 리도 없다. 비웃고, 한탄하고, 저주하고자 하는 충동들의 투쟁인, 힘들의 복합체인 자기 자신이다. 지속된 습관에 붙어있는 자가 아니라, 단기적 습관들 사이를 이행하는 존재. 고정불변하는 통일된 정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꿈틀대는 잠재성, 그것은 쉼없이 해안으로 밀어닥치는 파도 자체다. 그것을 관찰하는 일이야말로 니체의 물리학일 것이며 그 물리학을 통해 나는 나를 맞이하게 된다.

 

 

흘러라, 액체처럼.​

 

그래서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나의 인식은 나의 신체에 맞는 것인가. 현재의 내게 타당한가. 나의 인식은 내게 어떤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자신의 도덕, 자신의 윤리를 세우는 일은 그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자신의 윤리를 세우는 일은 단단한 울타리를 치거나 높은 곳에 깃발을 꽂는 일이 아니다. 끊임없이 중심을 찾고, 균형점을 찾아가는 일이다. 한 다리로 서 있기나 파도타기 같은 일 말이다. 중심점과 균형점은 외부에 있지 않다.

 

서핑을 하려면 끊임없이 파도의 흐름을 알아차리고, 무게 중심을 찾아가야 한다. 파도의 변화를 예민하게 알아차리고 끊임없이 다른 내가 될 때, 나는 계속해서 중심을 잡으며 파도를 탈 수 있다. 자신의 윤리를 단단한 울타리로 세울 때, 그것은 우리를 다시 압박하게 될 것이다. 니체씨는 액체와 같이 유동적으로, 단기적 습관으로 자신의 윤리를 세워야 함을 우리가 알아차릴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우리는 세미나시간에 종이 한 장 차이, 그 작은 틈에 대해서 얘기했다.

 

현재의 파도는 이전의 파도와 다르다.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이다. 모든 행동은 일회적이고 재귀불가능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매번의 파도가 부서질 때마다 모든 도덕은 해체되고 다시 생성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영원회귀가 필요한 이유 아닐까. 삶이 파도라는 비밀을 알게 된 나. 나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 것인가. 나는 오로지 힘으로서만 존재한다. 밀어붙이고 부서지고 심연으로 가라앉고 다시 떠오르는 그럼 힘으로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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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프라하 2019.04.28 0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아직 살아 있다." 첫 문장이 매우 강렬하네요.샘.굿ㅡ밤되세요.잘 읽고 갑니디ㅡ

 

통로로 존재하는 몸

 

 

                                                          담연 (수유너머 104 장자세미나 튜터)

 

 

1. 생명

 

  생명은 지속적인 흐름과 변화라는 속성으로 표현된다. 장자적 의미에서 잘 산다, 양생(養生)한다는 것은 따라서 변화하는 자연 안에서 그 유동적 흐름에 발맞춰 인간이 막힘없이 잘 통하는 몸이 된다는 의미다. 장자의 양생은 어떤 외부적 변화 상황 속에서도 인간이 자기 생명의 중심이 되는 기의 조화를 내면에 유지하면서 막힘없이 세상사에 발맞추어 흘러갈 수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즉 흐르는 물, 흐르는 바람의 통로인 몸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2.  막힌 몸 지우기

 

  기의 조화로움을 안에 유지한 상태로 막힘없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러한 물음에 떠오르는 그림은 통로로만 존재하는 몸의 이미지다. 머리도, 다리도 없는 몸통으로만 존재하는 신체. 이것은 마치 들뢰즈의 기관없는 신체처럼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지만 아직 어떤 구체적인 형식이나 특정한 꼴로도 규정되지 않는 생생하고 충만한 에너지로만 존재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베이컨은 기관없는 신체 이미지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괴기스럽고 기형적인 아래 그림은 눈, , , 피부 등 특정한 감각적 기관으로 엄밀히 분화된 인간 얼굴의 신체적 기능을 처참히 뭉개버린다. 분화된 감각 기관을 통해 수용된 자극들을 엄밀히 분석해 명석 판명한 사고를 전개하는 이성의 기능을 파기하는 것이다.

 

 

 

3. 지우는 것은 슬픈 일인가?

 

  오감으로 분화된 감각 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잡다한 질료들의 종합을 통해서 명석 판명하게 개념화된 분별 작용을 하는 인간의 이성적 기능에 대한 비판을 가한다는 점에서 들뢰즈는 장자와 통한다. 그렇지만 나는 장자의 통로로서의 몸이 들뢰즈의 기관없는 신체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베이컨의 기괴스러운 작품과는 다르게 몸통이라는 완고한 형식을 유지하고 있다고 본다.

 

 

 

  즉 기관없는 신체는 리좀의 형식을 지킨다. 이 때문에 인간-생명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몸통에 연결되는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 무한한 인간-생명-자연으로 변화될 가능성을 열고 있다. 온전한 인간 신체가 위와 같은 꼴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모든 기능이 온전히 갖추어진 육체를 통해서만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은 지워진 혹은 특정한 기능이 사라진 몸을 보고 슬퍼할 것이다.

  마그리뜨는 사회생활을 하는 데 무리가 없는 오감 기능을 온전히 갖춘 몸의 꼴을 인정한다. 뇌와 손발이 잘 갖추어진 한 인간 신체가 갖는, 그것 자체로 자연의 미를 표현하는 몸을 인정한다. 그러나 마그리뜨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사회 생활을 하는 평균적 인간 몸의 가능성을 넘어서, 새로운 존재 변형이 가능한 몸을 불러온다. 이것은 곧 몸통으로 존재하는 인간, 통로로만 존재하는 몸이다.

 

 

 

 

 

4. 통로로만 존재하는 몸

 

  마그리뜨는 두상을 지운다. 팔 다리를 지운다. 그리고 신체가 점유하는 공간의 형식을 무한의 형태로 확장하거나 축소, 절단, 재접속한다. 여기에 새로운 자연을 불러오고 새 생명을 탄생시킨다. 통로로만 존재하는 몸은 자연의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연결하는 기관이다. 그리고 크기를 어떻게 확장 및 축소하는가에 따라 혹은 무엇과 연결되는가에 따라 물고기가 될 수도 있고, 하늘의 달이, 내리는 비가 될 수도 있다. 여기서 인간은 하나의 새로운 창조적 자연으로 숨쉰다.

 

 

 

마그리뜨는 특정한 사회적 기능을 하는 인간 몸을 그 형식만 유지한 채 인간이라 규정할 수 있는 구체적 내용을 지워버린다. 지운 그 자리에 새 생명 존재로의 변형이 가능한 다른 관계를 연결함으로써 새로운 자연과 미지의 생명, 새 인간 존재의 가능성을 연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연의 흐름을 반영하는 통로로서의 인간 몸은 메마른 대지를 촉촉이 적시는 우주의 단비로 내릴 수도 있다.

 

 

 

  따라서 지우는 일은 슬픈 일이 아니며 구멍은 메꿔야 하는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기존의 몸통을, 특정한 방식으로 고착된 사유를 지우는 일. 특정한 형태로 쌓고 채우려는 기능에 구멍을 내고 그 텅 빈 공간을 유지하는 수련이 중요하다.

 

5. 마음을 비우면 슬픔도 사라진다

 

  우주의 흐름을 지속시키는 통로로서의 몸의 가능성을 연 마그리뜨 작품은 비움을 체현한 장자의 이상적 인간(眞人)을 은유적으로 반영한다. 장자도 기존의 고정된 생각, 특정한 내용으로 채워 경직된 인간 몸과 마음을 지속적으로 비우는 작업을 통해 우주적 차원에서 인간세를 유유히 노닐기 바라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마그리뜨는 장자의 벗이다. 특정 선/악, 시비, 호오, 신념으로 고착된 마음을 비우면 그것이 야기하는 마음의 슬픔도 사라진다. 그렇게 신기루처럼 사라진 슬픔의 끝에서 새로운 형태로 접속된 관계가 열어줄 미지의 모험과 충격, 환희의 세계는 우리를 기다리며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를 것이다. 저만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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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SoulFood는 '철학자들의 음식'이란 뜻입니다


마르크스와 한 잔 더! 

- 맥주에 취하고 혁명에 춤추다


박준영(수유너머104 회원)



작년이 마르크스 200주년이었지요. 1818년 5월 5일은 그가 태어난 날입니다.

마르크스는 이제 고교 교과서에도 나올 정도로 친숙합니다. 

그의 걸작인 《자본론》이 성경 다음 가는 베스트셀러이기도 하지요.



알트비어, 시와 결투

그런데 그가 굉장한 주당이었고, 맥주광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요. 마르크스의 술탐은 본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17세에 입학했으니 지금으로 치면 굉장히 일찍인 셈입니다.

그런데 아뿔싸! 이 본 대학이라는 곳이 전통적으로 술과 파티로 날을 지새우는 대학생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하나라도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었던 마르크스는 술로도 아마 지기 싫었던 모양입니다. 게다가 아버지 뜻대로 하고 싶지도 않은 법학을 전공했으니 오죽했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철학을 공부하게 된 건 1836년에 베를린 대학으로 옮긴 후예요. 20 세 되던 때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다시 예나 대학으로 옮겨 1941년 23세에 박사학위(철학)를 땄습니다. 고주망태 치고는 실력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20대 초의 마르크스.  가무잡잡한 피부, 검은 눈동자, 앙 다문 입술. 고집과 자존심이 강한 성격이 보입니다.


일단 마르크스의 본대학 시절을 생각해 보도록 해요. 당시 본대학이 있던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에는 맥주로 유명한 양대 도시가 있었는데, 하나는 뒤셀도르프였고, 다른 하나는 쾰른이었습니다. 본대학은 뒤셀도르프보다 쾰른에 더 가까이 있어요.


보통 쾰른 맥주 하면 '쾰쉬'(Kölsch)를 많이 떠올리지요. 그런데 마르크스가 본에 체류하던 1835년 경에는 그 이름이 없었어요. 쾰쉬라는 고유명은 1918년에야 생긴답니다.

쾰쉬는 보통 작은 잔(200ml)으로 원샷을 합니다. 우리가 보통 먹는 생맥주잔의 절반 정도지요. 아마 청량감을 위해서겠지요. 그래서 쾰시 전용 캐리어가 펍에 저렇게 있습니다.


그전에는 지역에서 잔뼈가 굵은 양조장들이 저마다  맥주를 생산했지요. 요즘으로 치면 크라프트 맥주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들이 이웃 체코의 필스너 맥주가 유행하자. 위기감을 느낀 후 상품을 개발하고, '쾰쉬'라는 이름으로 연합한 것입니다.


맥주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마르크스의 본 체류기의 크라프트 맥주 스타일은 뒤셀도르프 풍이었을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쾰쉬가 등장하기 이전에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의 맥주는 온통 뒤셀도르프의 알트비어(Altbier)였기 때문이지요. 가장 전통 깊고, 유명한 알트비어는 '슈마허 알트'입니다. 알트 비어는 동갈색의 신비한 빛을 띠는 에일을 품고 있지요.


#에일(Ale) 

맥주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에일'과 '라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일을 만드는 효모는 따뜻한 온도를 좋아하지요. 반면 라거는 시원한 온도를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효모의 취향이 맥주의 양대 주종을 이루는 것이지요. 에일은 라거보다 더 달콤하고 바디감도 무겁습니다. 왜냐하면 에일의 효모들은 발효탱크의 맨 위에서 따뜻하게 뒹굴면서 맛을 구성하기 때문이지요. 최근의 맥주 중에는 스타우트, IPA에서 듀벨(Duvel) 같은 벨기에 스트롱 에일까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슈마허 알트비어의 자태


 

#알트비어

이 동갈색의 에일은 장시간의 저온 숙성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다른 에일보다 과일향이 약하지요. 대신 라거와 같은 청량감을 살리게 됩니다.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이 뒤셀도르프 특산물에는 이름이 없었어요. 그저 지역 맥주에 불과했지요. 그러던 1838년 뒤셀도르프에거 가장 오래된 펍의 사장인 마티아스 슈마허가 '오래된' 이란 뜻의 'alt'를 이름에 넣어 그 역사를 부각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마르크스는 이 알트비어처럼 어두운 색깔의 바디감이 다소 무거운 맥주를 마시며 당시의 친구들과 어울려 토론도 하고 때론 싸우기도 하며 지낸 것이지요. 본 시절에 마르크스는 아마 철학을 하지 못하는 한풀이를 술과 문학으로 달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두 개의 동아리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하나는 <시인 클럽>이고, 다른 하나는 <트리어 타브렌 클럽>(음주 클럽)입니다. <시인 클럽>은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성격을 뗬습니다. 그런데 사달이 난 것은 예상대로 음주 클럽에서였지요. 여기서 마르크스는 결투 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 어쨌든 이래저래 성적은 떨어지교, 주량만 늘게 된 셈이지요. 아, 한 가지 수 십 편의 시가 남아 있군요.


1835년 당시의 본대학 전경입니다.


당시의 시대상도 알트비어처럼 다소 어둡고 암울했습니다. 프랑스에서의 혁명은 독일에 닿기도 전에 반혁명으로 좌절되었지요. 당시 독일은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통일 제국의 기운이 무르익어 가던 때였습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으로부터 승리를 획득한 워털루 전투(1815) 이후 베스트팔렌 지역을 수복했고, 독일 연방을 결성함으로써 유럽의 강국으로 부상하게 되었지요. 하지만 이러한 발전상 이면에는 반개혁, 관료주의와 사상의 억압, 노동운동의 탄압이 있었지요.

본대학 시절의 <시인 클럽>은 급진 좌파 성형을 가진 서클이었고, 내부에서는 이러한 정치적 상황에 대한 성토가 많이 일어났을 겁니다.

10대 후반의 마르크스가 알트비어를 들이키며 울분을 토하고 시를 휘갈겨 쓸 때 독일은 산업혁명의 후진국가이면서 정치적 수렁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베를린의 밀맥주 그리고 헤겔 좌파

그런데 사상적으로 독일은 유럽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바로 당대의 위대한 철학자들 때문인데요. 헤겔과 쇼펜하우가 바로 그들입니다. 이 중 마르크스의 사상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철학자는 헤겔입니다. 베를린 대학(아래 그림)으로 옮긴 후 마르크스는 헤겔에 심취한 덕분에 공부에 매진하게 됩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더욱 예민해지지요.


1837년 경에 이르면 헤겔에 대한 관심이 더 깊어지게 되고, 이에 따라 당시 베를린 대학의 급진 헤겔주의 그룹인 <청년 헤겔> 학파의 일원이 됩니다. 이들은 헤겔의 사상을 도입하되 그것을 종교 비판과 당대의 시대 비판의 도구로 벼루어 냅니다. 그리고 당시 베를린 대학에는 아주 뛰어난 유물론 철학자 포이어바흐가 있었지요. 많은 젊은 헤겔주의자들은 이제 헤겔을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에 입각해서 해석하게 됩니다. 아마 베를린 시절은 본 시절보다는 덜했겠지만 여전히 이들 지식인들과 어울려 마르크스는 맥주를 마셨을 겁니다.



엥겔스가 그린 헤겔좌파들의 술자리 토론 모습입니다. 엥겔스가 캐리커처에 재능이 있었다는 건 저도 처음 알았네요. 그런데 엥겔스가 여기 마르크스는 그리지 않았어요. 왜 그랬을까요?


자, 지금부터 등장하는 맥주는 정말 유명합니다. 앞서 말한 쾰쉬나 알트비어보다 역사도 더 오래되었지요. 바로 '베를리너 바이세'(Berliner Weisse)입니다. 마르크스가 베를린 시절 수많은 논쟁 테이블에서 앞에 두고 마셨던 그 맥주입니다. 물론 그의 논적들도 마찬가지였겠지요.


베를리너 바이세입니다. 원액의 시큼한 맛을 중화하기 위해 과일 향신료를 섞습니다.


베를리너 바이세는 기본적으로 밀로 만든 에일, 즉 밀맥주에 해당됩니다. 이 맥주는 언제부터 제조되었는지조차 불분명할 정도로 오래되었지요. 1516년 바이에른 주에서 공표된 '맥주 순수령'이라는 문헌이 존재하는데, 여기에 '바이스비어'라는 말이 나오지요. 그래서 독일에서는 보리로 만든 '로트비어'와 밀로 만든 '바이스비어'가 맥주의 양대 전통이라고 할 수 있어요. 로트비어와는 달리 밀이 발효하면서 나는 시큼한 맛이 특징입니다.  


밀맥주는 대체로 탁한 하얀색(어떤 경우 연노란색)입니다. 밀맥주를 지칭하는 '바이스'는 '흰색'을 의미하지요. 그런데 여기에 여러 향신료를 섞어서 색깔이 다양하게 변하는 겁니다.  이 밀맥주가 베를린에서는 '베를리너 바이세'라고 불린 것입니다. 그런데 밀맥주 자체가 그런 것처럼 이 베를리너 바이세의 기원도 매우 불분명해요.


하나의 설은 영국 맥주 저술가 로저 프로츠가 [세계의 클래식 병맥주]에서 밝힌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프로츠는 이 맥주가 시큼한 적색과 갈색의 에일을 선호했던 벨기에 플랑드르 지역과 프랑스에서 온 개신교도인 위그도 교도들에게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이때가 대략 17세기 후반인데 그즈음 많은 사람들이 종교박해를 피해 독일로 이주했습니다.


또 하나의 설은 베를리너 바이세가 17세기 베를린에서 제조되고 있었던 보리와 밀로 만든 어두운 색의 에일인 '할베르슈타터 브로이한'에서 유래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 시큼한 에일의 기원은 불확실하지만 17세기 당시에 인기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19세기에 이르러 250여 곳의 양조장이 베를리너 바이세를 주문제작방식으로 제조했으니까요.

오리지널을 즐기는 소수의 독일인들은 원액 그대로의 시큼한 맛을 즐겼고, 대개는 물에 타거나 라거와 섞어서 마셨습니다. 시큼한 맛을 중화하기 위해서 라거 외에 딸기 시럽, 레몬 시럽 또는 허브 시럽을 섞어 마시기도 했지요. 이렇게 되면 원액의 흰색도 여러 색채를 띠게 됩니다. 그래서 베를리너 바이세는 빨대를 꽂아 주스처럼 마셔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맥주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이 맥주가 미국에서 더 많은 양조장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마르크스가 베를리너 바이세와 더불어 박사학위를 마쳤을 때가 1841년인데요([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철학 체계의 차이], 1841, 예나대학), 이때 또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헤겔 좌파의 동지인 브루노 바우어(1809~1882, 마르크스와는 9년 터울이 나네요)와의 여행길에 있었던 일이지요. 이 둘은 의기투합해서 베를린에서 본까지 가기로 한 겁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마신 술에 취해 교회에 난입하여 큰소리로 고, 당나귀를 타고 거리를 활보한 것이지요. 마을 사람들이 아마 꽤나 혀를 찼을 것 같군요.


그렇다고 마르크스가 할 일 안 하는 알코홀릭은 아니었어요. 학위를 마치자 말자 그는 [라인 신문]의 편집장이 되어 수많은 정치평론을 씁니다. 1843년 라인 신문이 러시아 황제의 압력(지면에서 마르크스가 황제를 조롱했거든요)으로 폐간되기까지 정말 열심히 일 했습니다. 아마도 시큼한 베를린 바이세 맥주를 거의 매일 마셨겠지요.


라인 신문의 폐간은 마르크스에게는 꽤나 큰 충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완전히 어떤 '경고'도 없이 전격적으로 폐간 명령이 떨어진 것이거든요. 하지만 이제 마르크스는 당대의 정치평론가로 자리를 확고히 잡게 됩니다. 그리고는 곧장 사회주의자들이 우글거리는 혁명의 본고장인 프랑스로 가게 됩니다. 이곳에서 그는 1848년 2월 프랑스혁명에 뒤이어  3월 독일 혁명이 진행될 때까지 머무르게 됩니다. 이때에도 그는 프랑스에 소재한 [독불 연보]의 공동 편집장으로 활동합니다.


엥겔스, 타인의 취향

이 당시에 마르크스는 그의 평생의 동지가 될 프리드리히 엥겔스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엥겔스는 맥주보다 와인 애호가였던 것 같습니다. 곤궁한 혁명가 마르크스에 비해 본래 사업가였던 엥겔스는 다소 고급스러운 주종을 선택한 것이겠지요. 이런 엥겔스의 영향이었는지 마르크스도 이후 와인을 즐겼다고는 하는데, 대게 엥겔스가 주는 것을 고맙게 받아먹는 정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 삼아 얘기하자면 이 둘이 마신 와인은 '샤토 마고 1848'이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마르크스는 이 혁명기에 바로 그 유명한 [공산당 선언]을 작성 배포합니다. 이 선언문은 마르크스를 단숨에 당대 급진 좌파의 총아로 만들었지요. 지금도 [공산당 선언]은 가장 오래된 스테디셀러로 전 세계 대부분 대학의 필독서에 속합니다.


[공산당 선언] 첫번째 원고의 마르크스 손글씨 . 이 첫번째 수고(manuscript)는 1847년에 작성되었습니다.


전 세계 노동자들의 해방이 눈 앞에 보이는 사건들이 프랑스에 이어 독일에서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1789 프랑스혁명 이후 전 유럽은 다시 혁명의 물결에 출렁거리게 된 것이지요. 마르크스는 이때 참으로 열정적으로 일했습니다. 하지만 혁명이 실패한 것이 확실해지자 마르크스는 런던에 망명하기로 결심합니다. 이때 그는 이미 A급 요주의 인물로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지요.



##<청년 마르크스>(2018, 라울 펙 감독)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청년기 마르크스의 이야기입니다. 엥겔스와의 만남을 전후한 청년 마르크스의 이야기, 반드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토튼햄의 망아지들

런던에서도 맥주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독일 사회민주주의당의 창립자인 칼 리프크네히트의 아버지이자 마르크스의 동지였던 빌헬름 리프크네히트의 자서전에 그 내용이 나오지요. 이른바 '토튼햄 거리 주점 깨기' 이야기지요.


1900년대 초의 토튼햄 거리 풍경입니다. 양쪽으로 주점들이 보이시나요?


때는 1849~50년 경, 마르크스와 에드거 바우어(앞서 이미 마르크스와 한 에피소드를 함께 한 브루노 바우어의 동생입니다), 그리고 빌헬름 리프크네히트 세 명이 런던 중심지인 토튼햄 거리에 모였습니다. 마르크스가 당시 32세, 바우어는 1820년 생으로 30세, 리프크네히트는 1826년 생으로 24세쯤 되었을 겁니다. 이 때는 리프크네히트가 스위스에서의 혁명 실패 후 수배를 피해 런던으로 도피한 바로 직후였고, 알다시피 마르크스와 바우어도 1848년 프랑스혁명이 실패로 끝나자 런던으로 도피한 상태였지요.


세 명의 패잔병이랄까. 셋이 모이면 참 암울한 분위기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논쟁 도중에 다혈질인 바우어가 마르크스에게 주먹을 날리는 일이 자주 있었다고 하는군요. 요즘 말로 치면 술집 진상들? 새파란 혁명가들이니 이해하기로 하지요.  


토튼햄 거리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펍입니다.


그날따라 필이 받았는지 세 사람은 모든 펍(Pub)에 들러서 맥주를 기울이기로 했지요. 술이 거나하게 오르자 정치토론이 열띠게 이어졌습니다. 얼마 후에 술집은 그들이 내지르는 고함소리와 주먹질로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얼마 후 그들은 열을 식히려고 밖으로 나와서 포석이 깔린 도로를 걸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바우어가 작은 돌멩이를 가로등(당시에는 가스등)에 던지기 시작했지요. 뒤따르던 마르크스와 리프크네히트도 돌을 던졌습니다.


너 다섯 개의 가로등이 박살이 나고, 그 깨지는 소리에 경찰들이 달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들은 지금으로 치면 정치범들이고 수배가 내려진 상태였기 때문에 잡히면 그날로 철창에 본국 송환이었을 겁니다. 송환되는 순간 목숨이 어찌 될지 모르는 것이었지요. 셋은 필사적으로 토튼햄 거리의 끝까지 냅다 뛰었습니다. 마침내 경찰들이 추격을 포기했고, 셋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요.  


과연 마르크스가 목숨을 걸어놓고 마셨던 당시의 맥주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영국 맥주의 대명사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페일 에일(Pale Ale)이 아니었을까요?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에일 맥주인 '바스 페일 에일'


페일 에일은 알코올 도수가 4~6%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마시는 라거 맥주와 거의 같습니다. 하지만 가벼운 라거와는 달리 바디감이 더 묵직하고, 꽃향과 더불어 끝 맛이 살짝 씁니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이 맥주는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맥주가 됩니다. 바스 페일 에일의 경우 1860년에 일본에 최초로 수출되지요. 바스 에일 이전에는 주로 '다크 포터'나 '브라운 비어'였다고 합니다.


영국 페일 에일 양조는 17세기경에 시작되었습니다. 앞서 마르크스가 본이나 베를린 체류 때에 마셨던 알트비어나 베를리너 바이세보다 역사가 깊지는 않지요. 양조 중심지는 버턴어폰트렌트입니다. 1777년에 이곳에 설립된 '바스' 양조장에서 나온 버턴페일 에일은 색깔이 어둡고 맛은 달콤했습니다. 이 맥주는 이후 18세기에 러시아와 발트 3국에 수출되었지요.


인디언 페일 에일, 통상 IPA라고 부릅니다. 최근 우리나라도 IPA 붐이 일고 있지요. 마트 가면 이렇게 많습니다.


바스 양조장은 이후 기술을 개발해서 '인디언 페일 에일'이라는 상품도 개발하게 됩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의 동인도 회사에 납품하기 위해 만든 이 에일은 인도로 가는 동안 상하지 않도록 '홉'을 듬뿍 넣은 것이지요. 홉의 양이 많아짐에 따라 부케(bouquet, 향)도 강해지고, 그 맛도 더 쌉쌀하고 달콤해집니다.  


#홉

홉은 맥주의 맛을 내는 핵심 원료입니다. 주로 덩굴식물인 '후물루스루풀루스'(말도 안 되게 길고 어려운 명칭이네요)의 열매를 말려서 사용합니다. 이 홉에는 '알파산'과 '베타산'이라는 물질이 함유되어 있는데요, 맥주 원액이 끓기 시작하면 알파산의 쓴맛이, 한창 끓고 나서는 풍미가, 마지막 몇 분 간은 부케가 생깁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에서 가열을 멈추느냐에 따라 홉의 특성이 갈리고, 맥주의 맛도 달라지지요. 특히 홉의 알파산은 방부제 효과도 있습니다. 인디어 페일 에일에 홉이 많이 들어간 것은 이 때문이지요.



나에게 필스너를!

마르크스의 영국 망명 기간은 계속 이어져서 브뤼셀에 2년 정도 갔던 것을 제외하고는 계속 런던에 머물렀습니다. 1883년 서재에서 책을 손에 쥔 채로 세상을 뜨기까지 마르크스는 일 중독이라고 할 정도로 저술에 매달렸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가 그의 주옥같은 책들을 지금 볼 수 있게 되었지요. 하지만 그의 건강은 극도록 나빠졌습니다.


(위) [자본론] 초판 표지, (아래) '뮤지움 타베른' 최근 모습입니다.


[자본론]을 집필하던 시기에 마르크스는 주로 '대영도서관'(지금은 대영박물관 내 도서관)을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그 도서관 바로 앞에 유명한 펍이 있지요. '뮤지움 타베른'(Museum Tavern)이 그곳입니다. 지금도 있어요! 마르크스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서관에서 자료를 뒤지고, 요약하고 발췌하고, 또 글을 쓰고 난 뒤 피로한 두뇌를 쉬기 위해 거의 매일 여기 들렀다고 합니다. 이곳은 런던에서는 꽤 유명합니다. 마르크스뿐 아니라 조지 오웰, 코난 도일, 프리스틀리 등도 여기서 맥주를 마시면서 쉬기도 하고 글도 쓰고 했다는군요.


그런데 이때쯤이면 양조기술도 발전하여 지금 우리가 마시는 것과 같은 반투명의 황금색 맥주가 탄생하게 됩니다. 바로 '필스너'지요. 마르크스도 망명시절 이 필스너 맥주를 마셨지만 건강이 악화된 후 못 마신 것으로 보입니다.


최초의 필스너 맥주인 체코의 '필스너 우르켈'입니다. 1842년 첫 맥주가 나왔고 지금도 생산됩니다.


이 필스너 맥주가 왜 양조기술 발전의 결과냐 하면, 효모의 발효 원리를 알고서 제조된 맥주이기 때문입니다. 양조업자들은 효모가 맥주 생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작용원리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지 못했지요. 그런데 독일의 생리학자 테오도어 슈반이라는 사람이 발효과정의 비밀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슈반의 원리를 응용해서 체코(당시는 보헤미아) 양조업자들은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아마 마침내 황금빛의 새로운 에일을 얻게 되었을 때 이들은 황홀감에 젖지 않았을까요? 이 황홀감은 곧장 독일로 전수되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황금빛 맥주는 보헤미아와 인접한 독일 작센 주로 전파됩니다. 그래서 나온 맥주가 '라데베르거 필스너'이지요. 이를 다른 말로 '저먼 필스너'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 맥주는 스파이시한 향과 달콤한 향이 번갈아가며 풍미를 돋우고, 약한 쓴맛의 마우스필을 가집니다.




이제 마르크스의 '칼스바트 일화'를 마지막으로 이야기하면서 저도 이제 맥주 한 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1870년 경입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초판본의 독일어 수정판과 프랑스어 번역판을 준비하는 동안 엄청난 스트레스와 과로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었습니다. 엥겔스는 특단의 조치를 친구에게 가하기로 했지요. 그래서 있는 돈을 긁어서 40 파운드를 만든 다음(당시 노동자 일 년 임금이 10-20 파운드였습니다) 마르크스에게 쥐어주며 칼스바트로 가라고 '명령'합니다. 칼스바트는 독일 온천 휴양지예요. 당시에는 체코였지요.


여러 가지 사정으로 뭉기적 대다가 1874년에야 마르크스는 칼스바트로 떠날 결심을 합니다. 무엇보다 막내딸인 엘리노어의 건강이 악화되었기 때문이지요. 이 여행은 상당한 위험부담이 있었어요. 일급 요주의 인물인 마르크스가 독일로 다시 왔다는 것이 경찰의 귀에 들어가면 그날로 당장 체포되거나 추방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지요.


다행히 마르크스 일행은 무사히 칼스바트에 도착해서 휴양을 하게 됩니다. 그들의 숙소는 온천에서 100m 정도 떨어진 언덕 위의 <하우스 게르마니아>였습니다(지금은 'Olympic Palace')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칼스바트에 있는 마르크스 동상


이때의 마르크스가 어떻게 휴양지에서 지내는지는 엥겔스에게 보낸 아래의 편지 속에 드러납니다.


우리 둘[마르크스와 딸]은 규칙에 따라 엄격히 생활한다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매일 7잔을 마셔야 하는 훌륭한 온천수원으로 가지. 앞 잔과 뒤 잔 사이에 항상 15분의 간격을 두고, 그 사이에 오르락내리락하며 경보로 걷지. 마지막 잔을 마시고 1시간 동안 산책을 하면, 마침내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다네.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는 차가워진 온천수를 한잔하고.


그리고 그는 거의 나지막하게 한탄하는 투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매일 물만 마시는 반면에, 막내딸은 매일 1잔의 필스너 맥주를 마시는 통에 매번 부러운 눈으로 쳐다본다네.


이 대철학자이자 혁명가, 20세기의 역사와 지도를 만들었던 위대한 사상가가 필스너 맥주 한 잔에 갈급해하는 모습이 머리에 그려저서 풉 하고 웃음이 나옵니다. 상당히 귀여운 할아버지 같아 보이지 않나요.

자, 마르크스 할아버지 이제 마음껏 한 잔 하러 가시죠.

저랑요. ㅎㅎ




<참고 문헌>

Wilhelm Liebknech, [Karl Marx: Biographical Memoirs], Journeyman Press, London, 1975.

죠수아 M. 번스타인 지음, 정지호 옮김, [맥주의 모든 것], 푸른숲, 2015

프랜시스 윌 지음, 정영목 옮김, [마르크스 평전], 푸른숲, 2001

위키피디아 마르크스 항목

한국역사연구회, <맑스-런던에 있는 그의 유적을 찾아>

Marx on the piss; a London pub crawl with Karl Marx in the late 1850s - Wilhelm Liebknecht

레디앙, <칼스바트의 마르크스> 



Posted by 수유너머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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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힙합음악과 비극적 영웅의 테마

- 청년세대와 힙합음악, 그리고 비극적 영웅


류 재 숙 / 수유너머104 회원


 

1. 힙합HipHop을 알면 청년세대가 보인다



지금 한국 대중음악에서 가장 잘 팔리는 장르를 꼽으라면, BTS 같은 몇몇 세계적 아이돌그룹을 제외하고는 단연 힙합이다. 지금은 분명 힙합시대다. 아이들은 아이돌이 아니라 성공한 래퍼를 꿈꾼다. 도끼, 더콰이엇, 빈지노, 제이팍, 쌈디, 그레이 같은 래퍼는 아이돌 이상의 인기를 누리고 대학축제에서 가장 환영받는 게스트이다. 최근 <쇼미더머니777> 인기영상들은 100만 조회를 가볍게 넘기고, 음원차트 4개 중 1개는 힙합이다. 일리네어, AOMG, 인디고뮤직, 하이라이트 같은 힙합레이블은 메이저기획사가 되었다. 여기에 <쇼미더머니>, <고등래퍼>, <언프리티랩스타> 같은 TV쇼가 힙합의 대중적 열기를 견인한다.


1990년대 이래 한국 힙합이 버텨온 방식은 양념처럼 쓰이는 피처링이었는데, 노래에 특이함을 첨가하기 위해 랩을 악세서리로 쓰는 것이다. 힙합이 주목받을 때조차 그것은 음악적 진정성이 배제된 패션스타일로 소비되어왔다. 따라서 힙합이 진지하게 취급되는 경우는 서브컬처나 블랙뮤직의 꼬리표를 달고 대중성과 거리가 먼 마니아의 전유물일 때였다. 이것이 몇 년 전까지 힙합씬의 풍경이었는데, 어떻게 힙합은 대세가 되었을까? 힙합HipHop은 어떻게 hip’하게 되었나? 그것은 무엇보다 힙합음악이 청년세대를 자신의 대중적 토대로 확보하면서이다. 힙합을 알면 청년세대의 삶의 방식이 보인다고 했다. 힙합은 음악을 넘어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힙합에는 청년세대의 감각욕망현실이 들어있다.


미국 힙합의 대중적 토대가 흑인이라면, 한국 힙합의 대중적 토대는 청년세대이다. 미국의 힙합은 1970년대 뉴욕 빈민가의 흑인집단에서 시작된 음악으로, 흑인들은 힙합을 통하여 백인 주류사회의 차별과 억압에 저항했다. 한편 한국의 힙합은 미국 힙합의 영향으로 1990년대부터 시작되었는데, 메인스트림에서 힙합의 저항성은 제거된 채로 패션스타일로 소비되거나, 언더그라운드에서 흑인힙합의 저항성과 소통하면서 마니아의 전유물이 되었다. 어느 경우나 젊은 층의 문화취향을 기반으로 하였다. 이렇게 1990년대 청년세대의 서브컬처로 시작된 힙합은, 2010년대를 거치면서 청년세대 전체의 문화코드로 부상하면서 지금의 힙합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힙합이 대세가 되고 돈이 되는 시대에 <쇼미더머니>나 힙합을 비판하는 것은 쉽다. 그런 비판에 비판을 하나 더 추가하는 것은 의미도 없다. 대중문화는 그 시대의 지배적 가치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부정적 평가를 피할 수 없다. 동시에 대중문화는 대중이 그것을 즐기고 그것으로 숨쉬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대중문화에 대립하는 것만으로는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긍정성이 부정성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대중문화가 작동되도록 하는 것, 대중문화의 부정성에 균열을 내는 긍정성을 포착하는 것, 니체적 의미의 긍정적 종합일 것이다.


이글은 첫째, 어떻게 힙합이 청년세대의 문화코드가 되었나? ‘힙합과 청년세대의 친화성을 살펴볼 것이다. 이것은 한편으로 힙합의 신체성자기 서사접근성경제성 같은 음악적 특성에서 청년세대가 자신만의 표현수단을 찾았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 힙합이 대중화되면서 =성공이라는 시대적 프레임이 청년세대의 욕망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둘째, 지금의 힙합씬에서 반시대적 가능성을 포착할 수 있을까? 시대적 프레임에 속에서도 힙합의 반시대성을 보려고 한다. 이는 힙합씬에 등장하는 비극적 영웅의 테마를 분석함으로써, 청년세대의 문화코드 속에 포함된 특이성과 자기극복의 가능성을 보려는 시도이다.

 


2. 한국 힙합과 청년세대의 문화코드

: 어떻게 힙합은 청년세대의 문화코드가 되었나?



어떻게 힙합은 청년세대의 문화코드가 되었나? 왜 청년세대는 힙합에 열광하는가?

먼저 힙합의 음악적 특성은 청년세대의 감각과 잘 조응한다. 신체성자기 서사접근성경제성의 관점에서 힙합은 다른 음악과 다른 특이성을 갖는다. 힙합의 음악적 특성은 청년세대가 기성의 방식과 다른 그들만의 감각을 구성하는데 적합한 표현수단이다. 기성의 방식과 다른 표현수단은 새로운 감각뿐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구성하는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주류가 된 힙합은 =성공이라는 방식으로 청년세대의 욕망을 반영한다. 1990년대 초기 언더그라운드 힙합은 학벌주의, 물질만능주의와 사회적 부정부패를 비판하는 방식으로 사회와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의식을 노래했다. 또한 방송출연이나 대중친화적 태도를 꺼리면서 주류음악계와 거리를 두려고 했다. 하지만, 2010년대를 전후하여 특히 <쇼미더머니>의 영향으로 언더그라운드 힙합씬에 있던 많은 래퍼들이 주류음악계로 편입되면서 힙합의 가치관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돈과 성공에 대한 욕망과 자기계발하는 주체 같은 기존의 가치를 대변하게 된 것이다.


힙합은 청년세대를 시대적 가치에 저항하게 하지만, 동시에 힙합은 청년세대를 시대적 가치로 포섭한다. 전자는 현실에 대한 청년세대의 저항방식과, 후자는 현실에 대한 청년세대의 복종의지와 결합될 것이다. 이는 힙합의 반시대성이 청년세대의 저항의지와 결속하고, 힙합의 시대성이 청년세대의 현실욕망과 공명하는 과정이다. 전자가 힙합과 청년세대가 긍정적으로 종합되는 방식이라면, 후자는 힙합과 청년세대의 부정적 종합을 보여준다.

 

힘은 할 수 있는 것이고, 의지는 원하는 것이다. ······ 힘에의 의지는 힘의 생성적 요소임과 동시에 힘들의 종합의 원리이다. ······ 니체가 우아함고귀함주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능동적 힘이며 긍정적 의지이다. 니체가 저속함비루함노예라고 부르는 것은, 반동적 힘이고 부정적 의지이다.” 니체와 철학p104, p105, p110

 

     힙합과 청년세대의 긍정적 종합 :: 시대적 방식에 저항하는     


힙합의 음악적 특성은 청년세대의 감각을 긍정적으로 표현한다.

먼저, 힙합의 신체성은 표현형식에서 다른 대중음악과 다르다. 다른 음악이 대체로 가사와 멜로디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힙합은 심장박동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리듬과 비트가 특징이다. 비트와 리듬이 힙합의 기본플로어를 구성한다면, 가사는 라임의 형태로 존재할 뿐 내용의 전달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자막 없이 가사를 알아듣기란 쉽지 않고, 가사가 들린다하더라도 비트와 리듬이 먼저 오고 가사는 뒤따른다. 가사와 멜로디 중심의 음악에 비해, 빠른 비트와 역동적 리듬의 힙합은 확실히 신체를 타격한다. 힙합은 직설적 가사와 사회적 메시지 이전에 이러한 신체성을 특성으로 갖는다. 진지함과 엄숙주의를 부정하는 청년세대는 비트와 신체성이 이끄는 힙합에 몰입하게 된다.


다음, 힙합의 자기 서사는 내용형식에서 다른 음악과 구별된다. 힙합은 다른 어떤 장르보다 뮤지션의 삶과 음악이 동일시된다. 일반적으로 대중음악에서 가수는 작곡작사보다 대체로 목소리와 연주를 담당했다면, 힙합에서 래퍼는 벌스를 쓰고 플로어를 구성하고 랩을 하는 모든 과정을 직접 수행한다. 힙합에서 다른 사람의 벌스를 내뱉는 래퍼를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래퍼는 자신의 생각과 삶을 자신만의 랩스타일로 정립한다. 가수가 자기 노래와 다르게 산다고 문제될 것은 없지만, 래퍼는 오히려 자기 랩에 맞는 삶의 스타일로서 음악적 정체성을 확보한다. 자기 이야기를 음악 속에 표현하고, 자기 음악처럼 사는 자기 서사가 힙합의 내용적 특이성을 구성한다. 보편주의와 일반적 가치를 거부하는 청년세대가 자기 서사에 집중하는 힙합에 끌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한편, 힙합의 음악적 접근성은 많은 청년들을 마니아에서 뮤지션을 꿈꾸게 했다. 2018<쇼미더머니777>에는 13천명이 지원하여, 역대 최대기록을 갱신했다. 음악적 접근성은 힙합음악 이전에 청년문화를 대변했던 락음악과 비교해도 분명하다. 인디락은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이라는 걸출한 밴드를 배출해냈지만, 현시점에서는 혁오밴드 정도가 독보적인 정도이다. 락밴드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기타드럼베이스 같은 악기를 다루거나 보컬능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대부분의 락마니아들은 뮤지션의 음악을 통한 대리만족에 머물러야 했다. 하지만 힙합은 미리 녹음된 비트에 랩을 얹는 방식으로, 가사를 쓰는 벌스능력과 최소한의 박자감각만 있으면 가능하다.


또한, 힙합의 경제학은 음악의 생산방식에서 다른 장르와 확연히 다르다. 힙합은 어떤 음악보다 경제적인 장르인데, 많은 청춘들이 래퍼가 되고 싶어하는 건 무엇보다 경제논리에 근거한다. 락밴드가 트랙 하나를 녹음하기 위해서는 연습실도 빌려야 하고 녹음실도 대관해야 하는데 모든 게 돈이다. 그러나 힙합은 컴퓨터를 기반으로 좋은 마이크와 약간의 악기를 자기 방에 준비하면 끝이다. 노력과 열정만 있으면 끊임없이 데모테이프를 생산할 수 있다. 대학축제에 초대된 밴드는 여러명의 멤버로 이루어지고 악기를 나를 큰 차량도 필요하지만, 래퍼는 자기가 부를 곡의 비트만 USB에 담아가면 끝이다. 수익금을 나눌 필요도 없다.

 

     힙합과 청년세대의 부정적 종합 :: 시대적 가치에 포섭되는     


주류음악으로 편입된 힙합은 청년세대의 현실을 부정적으로 재현한다.

한국 힙합의 성공한 래퍼들은 청년세대의 성공신화로 자리잡았다. 래퍼 도끼는 TV에 나올 때마다 번쩍이는 금목걸이를 하고 여러 대의 외제차, 초호화 럭셔리하우스를 자랑한다. 한국에서 돈 자랑은 대개 비난의 대상이 되어왔지만, 성공한 래퍼들의 머니 스웨거Money Swagger’는 노력의 결과물로 인정받는다. 이들의 서사는 이렇다. “금수저가 아니다. 나도 가진 게 없었으나 노력만으로 성공했다. 노력의 결과로서 돈을 자랑하는 것은 자신감이다.” 같은 세대로서 자기 재능으로 자수성가를 누리고 사는 래퍼의 모습은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힙합을 통한 성공스토리는 청년세대로 하여금 현실의 참담함을 견딜 수 있는 판타지가 된다.


한국사회에서 개인적 노력에 의한 신분상승을 뜻하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건은 실종된 지 오래다. 나의 앞날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부모의 재력에 의해 결정되어버린 흙수저, 금수저운명론으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힙합은 아직까지 자수성가 스토리가 가능한 영역으로 보인다. 부모 잘 만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거나 공부해서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보다, 힙합을 통해 성공하는 것이 실현가능성이 높고 그 과정이 공정한 것처럼 보인다. 비정규직이 50%를 넘고, 청년실업자가 100만을 육박하는 우울한 한국사회에서, 이처럼 성공한 래퍼들은 청년세대로 하여금 대리만족의 포만감을 던져준다. 이 포만감이 성공에 도달한 래퍼들의 자기착취에 가까운 과도한 노오력을 감추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자본 축적에 무한자유를, 다수 인민에 무한빈곤을 보장하는 신자유주의는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자기계발하는 주체를 생산한다. 실업과 빈곤의 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별주체가 할 수 있는 것은 경쟁의 사다리를 기어오르는 오로지 자기계발의 --뿐일 것이다. 고난과 역경을 뚫고 성공에 도달한 래퍼들은 신자유주의의 자기계발 주체와 겹쳐치고, 성공한 래퍼들의 노력-성공의 서사는 이러한 자기계발 서사를 대변한다. ‘노력-성공의 서사를 한국식 스웨거로 만든 도끼와 일리네어레코즈는 이제 한국 힙합의 주류가 되었다. 힙합음악의 대중화를 견인한 <쇼미더머니>는 무한경쟁 속에서 자기계발하는 청년 주체들의 전시장이 되었다.돈과 성공이라는 가치가 저토록 노골적이고 자연스럽게 울려퍼지는 동안, 아무도 그것의 가치에 대해 묻지 않은 채 말이다!


<쇼미더머니> Show me the Money ‘내게 돈을 보여줘!’ 얼마나 많은 돈을 획득하는가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이 프로그램만큼, 돈이 인생의 목표이고 성공의 유일한 기준이 되어버린 우리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이 또 있을까? 청년세대는 물질적 가치를 넘어서는 정신적 가치, 개인적 이해를 넘어서는 사회적 대의를 추구하던 기성의 가치관을 가볍게 꼰대로 규정한다. “돈이 삶의 목표가 되어도 좋은지, 돈이 성공의 표지가 되어도 좋은지, 그런 삶이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런 질문 따위는 괄호 속에 묶어버리고, ‘= 성공의 등식을 내거는 데에 주저함 없다. 그래서 힙합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돈과 성공에 대한 욕망을 보여주는 쇼라는 비판에 <쇼미더머니>는 무기력하다.

 


3. 한국 힙합씬에 등장하는 비극적 영웅의 테마

: 힙합에서 반시대적 요소를 포착할 수 있을까?

 


힙합음악이 대세가 된 시대, 힙합이 돈이 되는 시대, 힙합에서 반시대적 요소를 포착할 수 있을까? 이미 주류의 가치에 포섭된 힙합 내부에서 시대적 가치에 반하는 다른 가치를 생성하는 것은 가능한가? 여기서 힙합의 자기극복, 청년세대의 자기극복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는 없을까? “삶은 필연적으로 자기극복의 법칙을 가지고 있다.” 니체는 모든 사물은 내부에 자기극복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도덕에 의한 도덕의 극복, 기독교에 의한 기독교의 극복, 그리고 차라투스트라에 의한 차라투스트라의 극복이 모두 같은 방식을 말한다.


힙합음악이 기성문화의 보편가치와 일반성을 거부하는 한, 청년세대가 힙합에서 기존의 가치에 대한 저항과 탈출구를 찾는 한, 그것은 시대를 극복하려는 니체적 시도를 반복한다. 이러한 시도는 니체철학의 비극적 영웅의 테마로 극화된다. 비극적 영웅은 누구인가? 그는 특이성과 자기극복으로 정의되는 존재이다. 그가 영웅인 것은 무리적인 것들 중에 특이적 유형이기 때문이고, 그것이 비극인 것은 그가 자기몰락 속에서 되돌아오는 자이기 때문이다. 이제 <쇼미더머니>를 중심으로 한국 힙합씬에서 등장하는 비극적 영웅의 테마를 분석함으로써, 청년세대의 문화코드에서 반시대성을 포착하려고 한다.


     비극적 영웅 :: 무리적인 것들 중에 특이적 유형 “Real Style, Real Me, Real MC”     

 

니체는 공리주의자의 유사성의 원리뿐 아니라 칸트의 보편성의 원리를 거리감 혹은 차이의 느낌(차이적 요소)으로 대체한다. <이 거리감의 고상함으로부터 가치를 창조하거나 그것을 결정할 권리를 키운다.> p18 ······ 니체에게서 힘의 개념은 다른 힘과 관계 맺고 있는 어떤 힘의 개념이다. 이 측면에서 힘은 의지volonte로 불린다. 의지(권력의지)는 힘의 차이적 요소이다.” 니체와 철학p18, 26


니체에게서 무엇이 참이고 거짓이며, 무엇이 정당하고 부당한가를 알고자 하는 도덕적 물음은 이렇게 제기된다. “무엇이 병들었고 무엇이 건강한가? 무엇이 무리적이고 무엇이 특이적인가?” ······ 두 개의 세력이 존재한다. 하나는 무리적 사유를 하는 평등주의적 세력이고, 다른 하나는 독특한 사례들의 위계적 세력이다. ······ 니체에게 중요한 것은 예속성에 기반한 무리적문화가 아니라, 감응들의 행동에 따른 특이적문화이다.” 니체와 악순환p25, 26

 

비극적 영웅은 무리적인 것들과 구별되는 특이적 유형으로서 힘에의 의지를 극화한다. 니체철학에서 힘에의 의지는 무리적인 것들과의 차이를 확보하려는 거리의 파토스를 말한다. ‘힘에의 의지란 자기 스타일과 자기 특이성을 구축하려는 의지에 다름아니다. 무리적인 것과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가에 의해, 스타일은 독특해지고 특이성은 강화된다. 그래서 니체에게서 참과 거짓, 정당함과 부당함은 무리적인 것과 특이적인 것으로 대체된다.


2017<쇼미더머니6>는 특이성에 대한 2가지 흥미로운 사례를 보여준다. <쇼미더머니6>에서는 직전에 끝난 <고등래퍼1>의 영향 탓에 우승자 영비(양홍원)를 흉내낸 참가자들이 유독 많았다. 영비의 트레이드인 십자가 귀걸이를 한 참가자들은 한결같이 그의 독특한 딕션까지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다. 이런 영비 현상에 대해 프로듀서 지코는 이렇게 말했다. “이미 영비가 있으니까, 다운그래이드된 영비를 뽑을 이유는 없다.” 한편 다크랩 계열의 이그니토와 우원재가 맞붙었을 때 대체로 다크랩의 일인자 이그니토가 이길 것으로 예상했지만, 결과는 예상을 뒤엎고 경력 1년 남짓의 풋내기 우원재가 승리했다. 스킬에 있어서는 이그니토를 따라잡을 수 없었지만, 우원재의 독특함은 이그니토를 능가하고도 남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그와 같은 래퍼는 없었던 것! 아무리 스킬이 뛰어나도 누구를 흉내내는 것이라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테크닉에서 미숙하더라도 자기 스타일을 가진 존재야말로 진정한 강자일 수밖에 없다.


201811월에 끝난 <쇼미더머니777>은 한국 힙합씬의 특이성에 관한 하나의 분기점으로 보인다. “랩은 그냥 빠르기만 하면 되는 거 아냐?” 랩에 대한 이런 통념을 깨면서, <쇼미더머니777>은 한국 힙합씬을 랩스킬에서 해방시켰다. <쇼미더머니>가 시작되고 나서 대세는 빠른 비트에 박자 쪼개기에 바빴던 트랩스타일이었다. 일명 속사포랩이 주류를 이루었고, 그러다보니 귀에 때려박는가사 딜리버리 같은 랩스킬이 돋보였다. <쇼머더머니5>의 비와이, <고등래퍼2>의 영비는 이러한 트랩스타일에 정점을 찍었다. <쇼미더머너777>는 붐뱁의 강자 나플라와 싱잉랩 스타일의 루피가 각각 1등과 2등을 차지하면서, 스킬 중심의 트랩감각을 한순간에 올드하게 만들었다.


프로듀서 스윙스는 변화를 이렇게 요약했다. “시즌6까지만 해도 누가 랩을 기술적으로 더 잘하냐가 평가기준이었다면, 이번 시즌에는 기술을 넘어 얼마나 나를 더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지에 집중하게 됐다.” 그래서 스킬에서 손색이 없으나 빠르기만 한 참가자들은 잘하는데 개성이 없다, 과거에 멈춰있는 느낌이다. 뻔하다, 올드하게 들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속도와 스킬에서 자유로와진 한국 힙합씬은 이제 보다 다양한 스타일을 수용할 태세가 된 것 같다. <쇼미더머니777>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바보야, 문제는 스타일이야!” 그랬다, 문제는 스킬Skill이 아니라 스타일Style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힙합은 ‘Real Style, Real Me, Real MC’로 정식화한다. 자기 스타일을 가지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 자가 Real MC이며 진정한 래퍼라는 거다. 2018년 한국 힙합씬에 떠오르는 새로운 영웅들의 자격을 말하자면 이렇다. “플로우가 얼마나 신선한가? 스타일이 얼마나 유니크한가? 스웩이 얼마나 자연스러운가?”


[디보 - 디보 자체] 스타일의 유니크함으로 말하면 디보를 따라올 자는 없는 것 같다. 디보는 자기 스타일의 유니크함으로 승패를 우습게 만든다. “나플라나 수퍼비나 루피나 아무나 와도 상관없다. 난 내 음악을 보여줄 거니까.” 그는 본선에도 오르지 못했지만, ‘갓디보라는 영예를 얻으며 <쇼미더머니777>을 통틀어 가장 강렬한 기억을 남겼다. 프로듀서 더콰이엇은 래퍼평가전에서 가사를 절은실수까지 그의 독특함으로 평가한다. “진짜 독자적이다. 랩과 음악이 전혀 정교하지 않은데, 투박함에서 나오는 그 어떤 경지라고 해야 할까? 물론 실수를 안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너무 완벽하면 그건 디보가 아니다.” 여기에 프로듀서 딥플로는 덧붙인다. “저거(디보 공연)를 더 많은 사람들이 봐야 된다. 그래서 저게 예술이 맞는지 아닌지를 토론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디보를 보면서 느끼는 저게 뭐지?” 하는 당혹감은 음악과 음악이 아닌 것의 경계에 있는 디보의 규정불가능성을 표현한다.


[EK - GOD GOD GOD] 한편 EK는 자기에 대한 믿음으로 경쟁의 순간들을 돌파해나갔다. 그는 우승후보였던 키드밀리를 배틀상대로 지목하면서, 우승을 위한 손쉬운 방식 대신 매번 인생을 거는 강자의 면모를 드러냈다. 이어 다른 래퍼들이 유명 뮤지션의 피처링으로 화려한 무대를 연출하는 동안, 그는 함께 활동하는 자기 크루 MBA와 무대를 구성했다. 이 선택에 대해 EK어려운 시절을 함께 버텨온 크루에 대한 의리가 아니라, ‘어떤 피처링진을 가지고 와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라고 말했다. EK는 자기 크루를 새로운 종교로 표현하고, 스스로를 GOD으로 불렀다. “GOD GOD GOD call me. GOD GOD GOD now call me. / 기억해 EK MBA 이건 새로운 종교.” EK‘GOD, GOD, GOD’은 힙합크루의 군무와 화려한 래핑, 중독적 훅으로 관객들을 매혹시켰다. 결국 ‘GOD, GOD, GOD’<쇼미더머니777>의 레전드 무대가 되었고, 경쟁에서 패배함으로써 EK는 보다 극적이 되었다. 프로듀서들은 한결같이 ‘EK만이 할 수 있는, EK가 아니고서는 누구도 소화할 수 없는, 소름 돋는무대라고 극찬했다. 무대전략의 승리라기보다, 자기 스타일에 대한 신뢰의 결과였다.


[오르내림 - i] 오르내림은 지금 힙합씬에서 가장 힙합스럽지 않은 래퍼 중 하나이다. 자극적인 말장난, 폭력적인 가사, 무의미한 허세가 힙합의 트레이드처럼 취급되는 가운데, 오리내림 특유의 아기자기한 스타일, 따뜻한 음악감성은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낯설다. 하지만 오르내림은 쿠기를 꺾고 본선에 진출함으로써 <쇼미더머니777>의 가장 커다란 반전을 연출했다. “아무도 내가 6명까지 남을 거라고 생각 못했을 거다. 그런데 이게 나고, 나는 여기까지 와 있다. 또 나는 변함없이 내 음악을 할 거다. 이게 나고, 나는 이런 내가 좋다. 나다운 걸 찾아서 계속 뭔가를 만들어 볼테니 지켜봐 달라.” 주변의 냉소에도 불구하고 오르내림은 자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오르내림은 ‘i’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Who am I? 나는 내가 될래! / 잘 하려고 하지 마, 남 다르면 돼! / 다 똑같은데, 난 나인 게 좋아. / 철이 들기에는 멀어서 너무나 다행이야. / who am I부터 받아들이고 만든 음악. / 모두 조금씩은 다른 우주에서 비행하는 우린 애쓰지 않아도 같을 수 없기에 애써 다를 필요 없어.”


특이적 스타일은 단지 이것저것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 미학적으로 완성된 것일 때 의미가 있다. <쇼미더머니777>을 포함하여 기존의 것과 다른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래퍼들이 있다. 이들의 시도가 얼마나 멀리 갈지, 그리하여 특이적 스타일을 구축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들 중의 어떤 래퍼는 더 멀리 갈 것이고, 그것을 기대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유쾌하다. 무리적인 것은 시대적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를 가로막는다. 따라서 당장에 특이성을 획득하지 않더라도, 무리적인 것에서 멀어지려는 시도들은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다. 무리적인 것에서 멀어지려는 시도들은 그 만큼의 실패 속에서 시대적 방식을 뚫고 반시대적 특이성을 구성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크 피셔는 힙합에서 리얼real이 갖는 2가지 의미를 구분한다. 먼저 주류 음악산업을 거부하는 진정성있고 비타협적인 음악을 의미하는 한편, 자본주의의 경제적 불안정성이라는 현실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힙합의 비타협적 진정성이 자본주의적 시장성에 포섭되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이처럼 힙합의 리얼real은 한편에서는 진정성으로 다른 한편 현실이라는 2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한국 힙합의 진정성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어 왔는데, 논란의 배후에는 리얼real에 대한 퍼스펙티브가 있다. 문제는 리얼real을 어떤 방식으로 해석할 것이며, 어떤 방식으로 종합할 것인가 하는 거다. 리얼real본질적 의미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을 어떤 퍼스펙티브 아래서 어떤 방식으로 종합할 것인가에 의해 리얼real은 시대적이거나 반시대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자본주의적 시장성을 의미하는 자본주의적 현실성real’은 자본주의에 반하는 비타협적 진정성real’에 의해서만 극복될 것이다.


     비극적 영웅 :: 몰락 속에서 되돌아오는 자 누가 드라마를 쓰는가?”     

 

나 너희들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노라. 사람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너희들은 너희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 사람에게 위대한 것이 있다면, 그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교량이라는 것이다. 사람에게 사랑받을 것이 있다면, 그가 하나의 과정이요 몰락이라는 것이다. ······ 보라, 나는 항상 스스로를 극복해야 하는 존재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p17, 20, 193


차라투스트라는 서문에서부터 <자기 자신의 몰락을 원하는 자>의 찬가를 부른다. <왜냐하면 그는 파멸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을 보존하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는 주저없이 다리를 건널 것이기 때문이다.> ······ <인간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누가 인간을 극복하는가>이다. 위버멘쉬는 새로운 감각방식에 의해서 정의된다. ······ 니체에 따르면 영웅들의 비극은, 그들이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의 노리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격렬한 정념에 희생된다는 데 있다. <영웅은 명랑하다.> 바로 그 점이 비극의 저자들이 회피해왔던 것이다. 비극, 그 순수하고 역동적인 명랑성.” 니체와 철학p135, 285, 48

 

무엇보다, 비극적 영웅은 몰락 속에서 되돌아오는 자로서 위버멘쉬의 극화이다. 위버멘쉬는 몰락을 원하는 자이며, 자기극복으로 정의되는 존재이다. 당연하게도 위버멘쉬의 자기극복은 자기정체성의 발전이나 진화가 아니라 몰락과 변신의 과정이다. 자기정체성의 철저한 몰락만이 위베멘쉬-되기의 전제조건이다. ‘새로운 나를 위해서는 지금의 나는 몰락해야 한다. “사람에게는 최선의 것(위버멘쉬)을 위해 최악의 것(심연)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위버멘쉬는 심연을 건너온 자, 자기 심연을 넘어서 새로운 자기가 된 자이다. 따라서 그들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의 희생자가 아니라, 자기 파토스(열정)의 희생자이다. 자기 파토스에 의한 희생이 우울하거나 엄숙하지 않고 유쾌하고 명랑한 것은 당연하다.


<쇼미더머니>는 힙합을 매개로 하는 자기극복의 드라마이다. 힙합의 자기 서사적 특징 때문에, 힙합은 음악 자체보다 힙합이 보여주는 ‘Real Story’ 삶의 이야기가 더 흥미롭다. 그래서 사람들은 <쇼미더머니>의 돈과 성공이라는 노골적인 컨셉에도 불구하고, 문신 뒤에 가려진 래퍼들의 스토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래퍼들의 Real Story가 만들어내는 드라마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식상한 코드가 되어버린 사연팔이와 쉽게 혼동된다. 실제로 드라마와 사연팔이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 어느 깊이에서 자신을 끌어내는가 하는 진정성이라는 양적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사연팔이가 얕은 깊이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드라마는 자신의 심연을 끌어올리는 힘의 강도에서 구별된다.


<쇼미더머니777>은 처음부터 누가 우승하는가?’ 보다 누가 드라마를 쓰는가!’에 주목했다. 예를 들면, 패배가 예상되는 래퍼들에 대한 이런 리액션을 보면 그렇다. “이름 뒤에 우승후보라는 수식어가 붙지는 않았지만, EK는 무대적인 드라마가 있는 친구다.” (딥플로우) “이전 같으면 수퍼비가 더 유리하다고 이야기하겠지만, 지금은 드라마를 쓸 수 있는 오디가 더 유리하지 않을까?” (차붐) 우승은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지만, 드라마는 자기 이야기이다. 승패를 넘어 드라마를 쓰는 자, 그런 방식으로 자기 한계를 넘어서는 자가 바로 비극적 영웅이다. 그런 의미에서 <쇼미더머니777>은 승패를 떠나 자기를 넘어서려는 영웅들의 비극적 서사로 풍성했다.


[차붐 - 죽어도 좋아] 차붐은 고통과 질병을 넘어 <쇼미더머니>에 섰다. 그는 갑작스럽게 길랭바레 증후군이라는 급성마비질환, 희귀성 난치병에 걸렸다. “이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여기에 나오지도 않았을 거다. 그래서 이 병한테도 고맙다.” 그는 루피와 대결에서 예견된 그리고 참담한 패배 후에 이렇게 말한다. “이런 무대를 꼭 하고 싶었고 얻을 걸 모두 없었으므로, 이 이상은 없다. 죽어도 좋다. 결과를 예상했기 때문에, 장렬하게 전사하겠다.” 차붐의 죽어도 좋아는 고통의 긍정과 비극적 미학이 그대로 살아있다. “난 알면서도, 난 뵈는 게 없어. 뛰어드는 붉은 태양 I can feel it's too hot, 죽어도 좋아. 이 노래가 끝날 때까지 난 춤을 출래.” 비극적 결말을 알면서도 기꺼이 그것에 뛰어드는 그는, 자기 파토스의 비극적 희생자를 자처한다.


[루피 - Save] 루피는 <쇼미더머니777> 참가자 중에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다. “트렌디하고 부드러운 싱잉랩의 끝판왕 / 스킬적인 랩보다 무드와 그루비한 랩을 즐기는, 부드럽고 차가운 감성의 래퍼. / 남자를 게이로 만드는 남자, 남게남 / 퇴폐미가 매력적인 래퍼하지만 그는 LA 메킷레인 레이블의 수장으로서 고독과 쉽지 않았던 한국생활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처음에는 너무 확신에 차서 한국에 들어왔다. 어느날 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미래가 창창한 동생들 인생을 책임지겠다고! 내가 무슨 자신감, 무슨 근거로? 혼란스럽기 시작했다. 그 고생 혹은 고통, 고민에 관한 노래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Save’는 그의 고독과 불안감이라는 심연에서 끌어올린 곡이다. 이제 그는 구원이 필요한 이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졌다.


[매드크라운 - 마미손] 마미손은 래퍼평가전도 넘지 못하고 초반에 광탈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즌 내내 화제를 몰고 다니면서 <쇼미더머니777>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 주방용 고무장갑을 연상시키는 분홍색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마미손이라는 캐릭터로 등장했을 때, 그가 매드크라운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쇼미더머니5> 프로듀서 출신 매드크라운은 이 바닥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래퍼. 그는 속이는 사람만 있고 속는 사람은 없는진실에 대한 은유를 만들어냈다. 처음에는 매드크라운의 행동을 기이하게 쳐다보던 사람들도, 차츰 마미손의 놀이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는 마미손이라는 캐릭터로 이전의 자기 캐릭터를 넘어서고 싶었던 것. “내 안에는 표현하고 싶은 수많은 가 있는데 한계가 느껴졌다. 남의 눈치 안보고, 내 눈치도 안보고 하고 싶은 거 하고 싶다. 이 마스크는 온전히 나를 위한 즐거움, 나의 놀이다.” 자기 캐릭터를 넘어서는 이 과정을 유쾌한 놀이로 만든 그는 니체적 의미에서 비극적 영웅, 명랑한 영웅이다.


[쌈디 - Me No Jay Park] 사이먼 도미닉 쌈디‘Me No Jay Park’을 발표하면서 AOMG 공동대표를 사임했다. 직접적인 해명글이나 말보다는 노래와 가사를 통해 자신의 심경을 대변하여, 래퍼다운 행보로 평가받았다. 제이팍(박재범)AOMG의 공동대표였던 그는 이 곡을 통해 공동대표로서의 한계를 솔직히 드러내며 제이팍에 대한 열등감과 자의식을 넘어서고 있다. “AOMGJAY, 그 다음은 로꼬-그레이빨. 점점 기울어지는 책임감의 무게. 히트 몇개로 재탕하는 양심없는 나의 무대. 한명은 늘 확실한 계획이 있어. ‘사장님, 대표님' 소리도 징그럽게 들려. Park의 속도를 따라가는 게 힘들었네.” 쌈디는 여기서 자신의 열등감과 자의식을 노골적이고 정직하게 드러내면서 부정의 감정들을 돌파한다!


한편, <고등래퍼2>의 빈첸과 <쇼미더머니6>의 우원재는 자기 상처를 통해 시대의 상처를 드러낸다. 우원재는 <>, <진자>, <시차> 등을 통해 밤과 낮이 바뀌어버린 자신을 시차 부적응자시대 부적응자로 묘사하고, 자살이나 약물 등으로 내면의 불안과 상처를 드러낸다. 한편 빈첸의 <바코드>는 상품과 소비를 상징하면서 동시에 청소년의 손목자해를 의미하는 중의적 표현이다. “끊어버리고만 싶어, 이거 다 / 그만 놔버리고 싶어, 모두 다 / 엄마는 바코드 찍을 때 무슨 기분인지 묻고 싶은데, 알고 나면 내가 다칠까 / 난 사랑받을 가치있는 놈일까 / 방송 싫다면서, 바코드 달고 현재 여기 / 흰색 배경에 검은 줄이 내 팔을 내려보게 해 / 이대로 사는 게 의미는 있을지 또 궁금해무엇이 그들의 신체에 상처를 내고 허무의 심연으로 끌어내리는가? 그들은 불안에 사로잡힌 신체, 우울에 잠식당한 신체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병든 시대를 증언한다. 격렬하게 시대를 비판하거나 시대에 섣부른 대안을 제시하는 것보다, 훨씬 반시대적이다.


이 밖에 래퍼 김효은은 나플라와 제대로 된붐뱁 대 붐뱁의 대결에서 패배한 후에 자신을 넘어선다. “이기고 지고를 떠나 무대를 멋있게 하고 싶었다. 우승 그런 건 애초에 상관 없었고, 나 자신을 뛰어넘을 수 있을 거 같아서 <쇼미더머니>에 지원했다. 계속 도전일 거다. 결과에도 만족하고 내 자신에게 너무 만족해서, 이걸 밟고 좀더 높이 올라가고 싶다.” 한편 쿠기는 집안의 반대와 사회적 가치를 넘어, 안정적인 대기업 대신 랩을 선택했던 갈등을 고백한다. “대기업 취직을 꿈꾸는 대학생이었다. 부모님은 공기업을 원하셨고, 누나도 공기업에서 일하고 있고, 집안에 나 같은 사람은 처음이었다.”


이처럼 <쇼미더머니>와 한국 힙합씬은 다양한 유형의 자기극복의 테마를 연출한다. 넘어서야 할 그것은 때로 차붐처럼 신체적 질병일 수도 있고, 마미손처럼 고정화된 자기 캐릭터일 수도, 루피처럼 리더로서의 책임감일 수도, 쌈디처럼 열등감이나 자의식일수도, 우원재와 빈첸 같은 내면의 상처나 불안일 수도 있다. 나를 넘어서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고 자신의 상처와 대면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이렇게 나를 병들게 하는 것들을 넘어서는 가운데 내 안의 위버멘쉬는 깨어날 것이다.


<쇼미더머니> 같은 서바이벌 경쟁프로그램에서 이들은 타인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넘어서는 것에 집중한다. 이는 경쟁과 승리라는 시대적 가치로부터 비껴나 자신을 다른 곳으로데리고 간다. ‘경쟁의 우승자가 아니라 자신의 드라마를 쓰는 자가 되려는 그들에게는 비극적 영웅이 숨쉬고 있다. 우리가 우승자가 아니라 그들을 기억하는 것도 자기의 몰락과 변신이라는 비극적 서사 때문이다. 승리라는 시대적 가치가 아니라, 오히려 몰락이라는 반시대적 가치가 아름다운 것도 이 때문이다.



4. 힙합 속에서 청년세대의 다른 가능성을 본다

: 비극적 영웅의 도래를 기다리며!

 


청년세대는 힙합음악 속에서 시대와 공명하거나 시대에 저항한다. 그들은 돈과 성공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며 시대적 가치에 복종하지만, 동시에 자기 세대의 특이성과 자기극복의 방식으로 저항한다. 성공한 래퍼들이 한편에서 신자유주의의 자기계발의 서사를 노래하는 동안, 다른 한편 힙합의 건강함은 Real Style, Real Me, Real Story자기 서사를 써내려간다. 무리적인 것을 넘어 특이적 스타일을 생성하려는 시도는 다수적 방식에 저항하고 있다. 또한 승패를 넘어 자기극복의 드라마를 쓰는 방식은 성공이라는 가치를 넘어서는 가능성이다. 이러한 힙합의 반시대적 요소를 신자유주의에 대한 청년세대의 저항성으로 읽는다. 


전체 노동자 2000만의 절반인 1000만이 비정규직이고, 전체 실업자 400만 가운데 청년실업자가 100만이다. 정규직은 줄어들고 정년은 짧아져서 직업의 안정성이 좋은 직장의 절대적 기준이 되었다. 그래서 정규직이나 건물주가 청년세대의 꿈이 되었다. 무엇보다 대학졸업생 3명 중에 1명만 취업되고 2명은 졸업과 동시에 실업자가 되는 현실, 그래서 취준생이 70만명, 공시생이 50만명에 육박한 것이 청년세대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은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중산층의 꿈으로 이어지는 행복의 가치계열을 불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행복의 가치계열이 불가능할수록 여전히 많은 청년세대는 그것에 더욱 집착하지만, 점점 많은 청년들이 이 가치계열에서 이탈하고 있다.


대학졸업장으로도 밥벌이가 힘들어진 상황은, 대학을 포기하는 것을 특별한 예외가 아니라 선택사항으로 만든다. 이전에 제도교육에서 이탈하는 것은 가족의 반대는 물론 스스로도 특별한 결단이 필요했다. 제도교육의 메리트가 사라진 지금, 고등학교를 자퇴하거나 대학을 포기하는 것은 훨씬 가벼워졌다. 실제 고등래퍼의 많은 참가자는 고등학교 자퇴자이다. 대기업공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정규직조차 힘든 상황은, 자발성과 상관없이 취직을 포기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한다. 이전에 대학졸업하고도 백수로 지내는 것은 개인적 무능력이나 노력부족으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일자리가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로 드러난 지금, 취준생공시생 대열에 추가되기를 거부하고, 알바프리랜서로 있으면서 자기일을 하려는 시도가 늘어난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 좌절된 마당에, 결혼-출산으로 이어지는 중산층의 꿈까지는 너무 요원하다!


힙합에 집중하고 그것으로 행복할 수 있다면, 시대가 만든 행복의 가치계열에 균열을 낼 수는 없을까? 힙합의 열정 속에서 건물주공무원정규직의 꿈이 초라해질 수는 없을까?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취업준비생에 이르기까지 행복해지기 위해 끝없는 준비를 하는 대신에, 힙합이 지금 여기서 행복을 노래할 수는 없을까? 모든 가능성이 닫혀버린 현실에서 내 삶은 이미 정해져버린 게 아닐까? 이번 생에는 틀렸어!” 허무주의 대신 힙합이 이렇게 말할 수는 없을까? “그것이 무슨 문제인가. 얼마나 많은 것이 아직도 가능한가!”


다수 인민의 무한빈곤에 근거해서만 자본축적이 가능한 신자유주의는 청년세대에게 실업과 불안 외에 어떤 것도 제시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신분상승의 사다리, 중산층의 꿈이 좌절된 청년세대를 더 이상 이 시스템으로 포섭할 수 없다. 이제 어떤 메리트도 제시할 수 없는 무능체제로서 신자유주의는 자기 가치에 반하는 세대를 길러내고 있다. 힙합의 내부에서 신자유주의로부터 이탈하는 청년세대의 가치유형들을 본다. 시대적 가치에 포섭되지 않는 특이적 존재, 스스로 몰락하면서 되돌아오는 자, 한국 힙합씬에서 더 많은 비극적 영웅의 도래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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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로 보는 삶3

 

 

인간 세상, 고통의 근원은 무엇인가?

 

 

담연(수유너머104 장자세미나 튜터)

 

 

 

*고통의 근원 - 명예와 지식 추구

 

장자(BC367-286?)가 살았던 전국 중엽은 영토 확장을 위한 겸병(兼倂) 전쟁이 끊임없었다. 주나라 붕괴 후 진한 건국 전까지 50여개 국으로 분열된 시기에 각국 제후들은 천하의 패권을 쥐려는 야심을 품고 서로를 죽였고 뜻을 실현시켜줄 인재를 찾았다. 이 때문에 전국 시기는 피흘리는 겸병 전쟁과 제후에게 등용되기 위해 치세를 논하는 제자백가가 펼쳐졌다.

여기서 장자는 세상이 이처럼 혼란한 원인이 지나친 명예()와 지식() 추구 때문이라고 보았다. 장자에 따르면 명예란 서로 헐뜯는 것이며 지식이란 다툼의 도구다(名也者相軋也, 知也者爭之器也. 人間世).’ ‘이 두 가지는 인간을 불행으로 몰아넣는 흉기여서 끝까지 추구해서는 안된다(二者凶器, 非所以盡行也. 人間世).’ 무력으로 정권을 찬탈하는 패도(霸道)가 우세했던 시대에 포악한 위나라 군주를 계도하려는 안회의 시도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지식()으로 상대를 교화시키는 일이다. 등용되면 명예는 얻겠지만 잘못하면 포악한 군주 손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장자는 외적 지식과 명예 추구보다는 내면의 덕을 닦고 생명을 온전히 지키라고 말한다. 여기서 덕이란 조화로움을 완성하는 수양(德者成和之修也 德充符)이다. 또 생명을 지키는 방법으로 제시한 것은 특정 신념에 경도된 마음(師心)을 비우기(), 부득이한 일에는 마음 편히 운명을 따르기(安之若命), 무용지용(無用之用)의 태도다.

 

 

 

*명예보다는 생명!

 

장자는 지식 추구로 명예를 쌓는 사가들이 특정한 시비 가치관에 사로잡혀 그것을 기준으로 남을 함부로 평가하며 계급적 구분과 사회적 차별을 일삼는다고 비판한다. 이들의 지식 추구와 명예 쌓기는 사회적 분쟁과 다툼의 원인이며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가 된다. 이들을 등용해 특정 시비관에 기초한 정사를 펴는 제후들은 전쟁을 일으켜서 백성들을 전쟁터로 내몰고 불구로 만들거나 죽게 한다. 이처럼 지자가 득세할수록 힘든 것은 무고한 백성들이다.

이 때문에 장자는 외적 지식과 명예 추구에 앞서 생명을 온전히 지키라고 말한다. 󰡔장자󰡕의 배경을 이루는 다양한 불구자들, 노동자, 가난, 질병, 죽음의 풍경은 장자가 끊임없는 살육 전쟁으로 인해 생존의 위협을 느끼며 살아야 했던 당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고 풀기위해 양생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자기 상실의 시대, 사라진 자존감

 

지식 정보 사회라고 일컬어지는 지금은 이런 고통이 없을까? 장자 당대 지식인들이 위정자에게 인정받기 위해 지식을 쌓고 명예를 추구했듯 우리 역시 부와 권력으로 대변되는 사회적 성공을 위해 끝없이 지식을 습득하고 스팩 쌓기에 열을 올린다. ‘사회적 성공이 곧 행복이라는 주입된 표준 가치를 맹목적으로 따르면서 무한 경쟁 시스템에서 살아남기 위해 친구도, 휴일도 없이 스스로를 혹사시킨다. 그리고 고독하게 혼자 쉰다. 한병철은 이런 한국을 자기 착취가 일상화된 피로 사회라고 불렀다.

한국에서 인간의 사회적 가치란 학교에서는 성적과 학벌, 취업시장에서는 경제적 효용성과 생산성이라는 실적으로 평가된다. 돈 많이 버는 인간이 성공한 존재고 행복한 자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허상을 무반성적으로 내면화하고 추종하다가 자기다움을 잃어간다. 우리는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하는 이 곳에서 성공을 위해 달리다 지쳐 쓰러져가는 경주마 처지지만 돌아가 쉴 곳이 없다.

 

 

 

 

*경쟁과 인간 소외

 

장자가 비판했던 외적 지식과 명예 추구는 현 사회에서 점수 따기와 취업이라는 형태로 변형되었고 유혈투쟁은 아니지만 지식 경쟁으로 이미 사회는 전쟁터 같다. 그리고 어느새 경쟁을 게임처럼 즐기는 경지가 되었다. 그리고 자본 증식의 도구로 쓰이기 위해 취업 경쟁의 전쟁터를 통과하면서 우리는 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여기는 비인간적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내가 경쟁에서 실수하고 탈락하면 누군가는 그 자리를 차지하는 영예를 얻기 때문이다. 경쟁의 장이 인간 불신과 소외를 야기하는 이유다.

 

 

*자살 조장 사회

  

무엇을 위해 우리는 이렇게 치달리는가? 지식 추구도, 사회적 성공도 결국은 행복하기 위한 일이다. 문제는 지식, 학벌, 성공과 명예 추구가 개인의 실질적 행복감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입시, 취업, 실적 경쟁의 전쟁터에서 우리가 잃어가는 것은 나다움, 우정, 사랑, 가족과 이웃들이 함께 하는 소소한 일상적 행복 같은 질적 가치다. 정작 소중한 삶의 의미는 여기 있다.

한국은 그동안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지켜왔다. 최근에야 리투아니아의 등장으로 2위가 되긴 했지만 13년간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나는 20대를 보내면서 왕0, 0, 0, 0, 0 등 가까운 친구들을 자살로 먼저 보냈다. 개인적 불행이라 자조했을 뿐 사회적 문제라고 인지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음미한 결과 이들 자살의 핵심에는 자기 삶의 주도권을 잃어버렸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박사 졸업 후 학생들을 만나며 마주친 문제는 20년 전 내 고통이 되풀이되고 있는 현실이었다. 대입수능, 자퇴 또는 휴학, 재수능, 재 대학 입학의 내 20년 전 경험을 지금 대학생들도 3-40%는 되풀이 하고 있었다. 외부 강요로 원치 않는 과에 들어가 늦게서야 방황을 시작하는 것이다. 고교 아이들은 입시를 위한 주입식 교육 때문에 자기 성찰의 시간이 부족하다. 원하는 과를 선택하기보다는 명문대라는 타이틀이 앞선다. 본인의 의사라기보다는 암묵적 외압의 영향이 강하고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와 방황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다.

 

 

*나는 누구인가? 정말로 원하는 건 무엇인가?

  

입시에서의 자기 부정, 20대 벗들의 자살, 원치 않는 과에서 지금도 방황하는 대학생들의 현실은 결국 학벌과 취업 위주의 미래를 강요하는 기성세대의 암묵적 강요 속에서 자신이 자기 삶을 주도할 힘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청소년기는 자기 성찰에 기반해 내가 누구인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또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기 위해 힘을 쌓는 시기다. 지식이란 이런 힘을 기르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가해지는 삶에 대한 다른 이들의 폭력적 간섭과 충고는 아이들의 진심이 이끄는 길을 흐리게 한다. 그 힘에 못 이겨 자신이 원하는 것을 버리고 남의 말대로 움직일 때 인간은 꼭두각시 삶을 산다. 그리고 남 탓을 한다. 이런 자신을 방치한 채 나이가 들면 늦도록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공허한 마음으로 방황한다.

 

 

 

 

*나로 사는 연습, 그리고 실행

 

 

이것이 지금의 문제다. 자기 부정을 통해 타인의 인정을 얻는 길은 충분히 걸었고 이제 그만 걸어도 좋을 것이다. 장자의 말처럼 할 일은 진인(眞人)이 되는 것, 즉 나다운 길을 걷는 것이다. 남의 강요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길을 걷고, 그 걸음에 책임지면서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경험을 해야 한다. 이러한 경험이 쌓여 나를 믿는 힘이 커질 때 자신감과 자존감은 차츰 회복된다. 남이 깔아둔 판에서 한자리 얻으려고 자신을 부정하고 왜곡하기보다는 부족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믿고 실현시켜갈 길을 찾는 것. 없다면 새롭게 길을 내는 것. 내가 꿈꾸는 대로 살아보려고 수고롭지만 몸을 던져 노력해 보는 것. 그 과정에서 겪는 시행착오를 기회로 삼는 것. 이런 실천적 고민과 꾸준한 노력이 수반될 때 자신의 고유한 경험이 담긴 글은 살고 싶은 미래를 현실로 불러내는 힘이 된다.

 

Posted by 수유너머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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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팩트 이론 입문 3강 :지속의 시간을 흐르는 (무)의식의 힘         





                                                                                                                                                                     로라(수유너머104 회원)


 


 지금까지 1,2강에서는 우리에게 약간은 생소한 듯한 affection에 대한 기본 개념과 현재의 유행적 상황, 그리고 스피노자의 affection과 프로이트의 무의식으로 나타나는 억압적 affection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3강은 베르그송의 철학으로 보는 affection이어서 많은 기대감을 걸고 강의를 들으러 갔었다. 베르그송의 가장 중요한 개념인 지속과 생성, 그리고 베르그송 사유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직관에 대하여 친절한 설명이 있었고 정신과 신체를 연결할 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로서 베르그송이 선택한 ‘기억’에 대하여 유명한 베르그송의 도식을 활용한 강사님의 설명이 있었다. 




진정한 기억..즉 순수기억은 특정 개인에게 속한 성질도 아니고 주관적 느낌으로서 제한된 감성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객관적이고 실재적인, 비인격적이고 비개체적인 물질적 흐름 자체이다. 실상 과거니 현재니 미래니 하고 부르는 단절적이고 개별화된 시간이란 없다. 시간은 시간 자체로서 무한히 흐르는 연속체일 뿐이다. 그렇게 본다면 시간은 그 자체이자 전체로서 일종의 기억이라 할 만하다, 지속-기억으로서의 시간. (강의록중에서)


  베르그송에게 있어 정신의 역사란 시간의 역사이며 시간의 역사는 지속으로서의 기억 자체이자 그 전체이다. 물질계 전체의 기저에 있는 변화와 변동의 생성적 힘이 바로 시간성과 그 기억인 것이다. 


그런데, 베르그송이 affection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논의를 펼친 바가 없고, 철학사적으로도 유관성을 거론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내용은 약간 당황스러웠다. 물론 들뢰즈의 철학에서 되불려와서 다시 재조명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들뢰즈가 불러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베르그송의 철학적 업적이 존재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고, 철학사적 측면에서도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는 르네 데카르트의 인과론적 근대 기계론이 말하는 심신이원론(사유실체와 연장실체의 연결이 송과선^^:;이라고 하는)이나 그 후의 철학자들에 의해 주장된 심신평행론(정신과 신체가 각각 독자적 원리로 활동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없지만 알 수 없는 원인^^:;에 의해 서로 일치하게 되어있다는)의 근대성을 종말지으며 과학의 발달에 힘입은 실증주의적 관찰과 직관의 사유로 현대 철학의 문을 연 철학자라고 평가하는 나의 생각에 상당히 실망감을 준 언급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강사님의 의도를 내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전략적 언급을 문자 그대로 오해 했을 수 도 있다. 


베르그송의 저서 ‘물질과 기억’에서 affection이 언급된 부분을 보자면, 베르그송은 운동하는 이미지들을 행동, 지각, affection의 순으로 고찰하고 있는데 행동은 신체라는 이미지의 운동방식이고 지각과 affection은 운동이미지가 신체와 그것의 행동이라는 이중의 매개를 거쳐 나타난 형태이다. 베르그송 역시 affection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 즉 지각은 감각을 통해 대상이 가진 인지적 특성을 파악하고 감각은 단지 지각의 재료가 아니라 affection이라는 특성으로 생명체의 고유한 본성을 보여주며 쾌, 불쾌의 감정일 뿐 아니라 생명체가 가진 근본적인 삶의 감정이기도 하다는 전통적인 생각의 연장선에서 affection에 대한 견해를 펼친다. 베르그송은 신체라는 이미지가 이미지-물질의 세계에서 특별히 다른 두 가지를 가지는데 첫째는 그것이 외적 대상의 운동에 대하여 물질처럼 기계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선택적으로 행동한다는 점, 둘째는 지각에 의해서 외부로부터 알 뿐만 아니라 affection에 의해서 내부로부터도 안다는 점이다. 지각은 외부에서 작용하지만 affection은 내부에서 느껴진다는 것이다. 신체는 밖에서 볼 때는 하나의 이미지에 불과하지만 내부에서는 affection을 느끼는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가지므로 신체는 물질일 뿐만이 아니라 생명체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베르그송은 affection의 작용이 “우주와 우주의 역사에 진정으로 새로운 것을 덧붙이는 것”(물질과 기억 P 39)이라고 했다. affection은 외적 원인에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내적 감정을 의미한다. 생명체가 느끼는 고통이나 쾌락의 느낌은 기계적 물질관에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생명의 독특한 특징이기 때문에 이 우주에 진정으로 새로운 것을 덧붙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지각과 affection은 신체를 놓고 그 외부와 내부라는 대립극에서 일어나지만 더 원초적인 것은 지각으로 affection은 지각의 필요성이 따른 반대 급부 즉, 들뢰즈의 표현을 빌리자면 “의식적 지각의 댓가”, 신경계가 출현한 댓가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고등생명체는 더 효율적으로 지각하기 위해 신경계가 발달하고 비대해짐으로 작은 자극으로도 극심한 통증을 유발 할 수 있다. 의식이 발달할수록 고통의 강도가 증가하는 것처럼. 베르그송은 지각과 affetion을 모두 행동으로 설명한다. 여기서 베르그송의 진화론적 입장을 잘 알수 있다. 


만약 내가 20대에 베르그송을 알았더라면... ‘삶의 비극을 무시‘하고 자신의 연구에만 몰두한 베르그송의 학문적 태도에서 실망 할 수도 있었을 것이지만 지금 드는 생각은 베르그송이 열었던 새로운 차원의 철학적 세계가 없었다면 이 급변하는 세계를 살아가야하는 나에게 철학이 차칫하면 무용하게 또는 무력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과학 철학이라고 불렀던 것도 물리과학의 철학(본질주의, 결정론, 보편주의, 환원주의 등)이었지 철학이 시작된 근본적인 이유인 인간의 기원에 관한 의문에 대한 답도 줄 수 없고 인간이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한 답도 줄 수 없다고 느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베르그송이 제기한 질문은 생물학의 발달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과학으로 접근할 수 없는 순수정신과 오직 물리학의 대상인 물체 사이에 생물학의 대상인 ’생명체‘가 있다. 심신관계를 생물학적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베르그송의 태도는 생물학적인 개념인 확률, 우연성, 다윈주의, 창발성, 역사적 담론 등에 관심을 가지게 한다. 전통적인 철학에 이러한 생소한 외부 개념의 침입이 철학을 진보하게하고 고통 받는 세상에 응답할 수 있는 철학이 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Posted by 수유너머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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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의도하지 않은 유혹자


박 연 희 / 수유너머104 세미나회원



"의도하지 않은 유혹자. 그는 그저 시간을 때우려고 공허한 말을 던졌다.

아무 생각없이- 그런데 거기에 한 여자가 맞고 쓰러졌다."  _『즐거운 학문』

 


      나의 니체 "니체가 처음 내게 온것은"      




우리가 토론하기로 한 책은 『들뢰즈의 니체』이다. 들뢰즈가 니체를 만났던 것처럼 나도 니체를 만났고 그러므로 내 후기의 처음은 나의 니체가 되어야한다는...... 


니체가 처음 내게 온 것은 아마도 고등학교 때 윤리시간이었던 것 같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밝고 명랑하게 나를 보았던 친구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온통 허무주의 천지였다. 그 때 나에게 인생은 이유 없이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했으며 나는“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있었다. 자살한 여성 문학가 전 혜린의 책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나에게 큰 충격이었고,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인 나 혜석 이라는 미술가의 생애와 그녀가 엄청 욕을 먹은 불륜에 매료되기도 했다. 한 서른 살까지만 멋지게 아니 방탕하게 살다가 어느 날 버지니아 울프처럼 바다에 빠져 죽는다는 생각은 근거도 없이 나를 매혹시켰다.


막연하게 서른 이후의 삶은 의미 없고 낡고 퇴색했을 것만 같던 무지함 어리석음...... 그러던 중에 윤리 시간에 들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을 무작정 샀던 것 같다. 아마도 참고서 산다고 거짓말하지 않았을까? 짜라투스트라는 이름이 뭔가 끌렸고 그것이 독일어로 ‘알조 쉬프라크 짜라투스트라’ 라 하는 선생님 말씀... 나는 그 때 독일어를 제2외국어로 배웠는데 무작정 독일어 사전도 샀고 선생님께 독일어 원본을 빌리기도 했던 거 같다. 물론 한 페이지도 원서로 읽지 못했다.


난 그 때 읽었던 책의 내용을 많이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책을 읽을 때의 고조되고 들뜨고 가슴이 벅차기도 했던 그 신체의 기억은 아직도 남아있다. 지금도 니체라는 이름은 나를 설레게 한다.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내가 어쩌면 더 솔직하고 옳을 지도 모른다는 자만심!! 오독의 어리석음이라 할까 제도에 순응해서 열심히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공부하는 친구들이 마냥 어리게 보였고 나는 참고서 밑에 니체 책을 숨겨 놓고 몰래 몰래 읽곤 했다. 특히 “인간은 초극해야 할 무엇이다” 라던가 “줄타는 광대”라는 말에 연극부에 들어가 ‘창조적인 삶’을 잠시 살아도 봤다.


친척들이 모두 열렬한 교회신자였는데 내 어린 생각에 무척 위선적인 그들이라서, “신이 죽었다”는 니체의 말은 통쾌하기도 했다. 이미 죽어서 아무 영향력 없는 신에게 열심히 비는 모습은 얼마나 우스운가? (물론 지금은 종교도 인정하고 많은 좋은 예수의 제자들이 있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위버멘쉬! 초인! 최근에야 그것의 정확한 개념을 좀 더 잘 이해했지만 2. 30대의 나는 초인이란 나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인생은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었으며 번번이 그때 마다 나는 초인의 이미지를 떠올렸던 것 같다.


30살에 죽고 싶지도 않았으며 뭔지 모르지만 다가오는 내 인생을 사랑해야할 것 만 같은 막연한 느낌이 들었다. 오히려 한 때 오만했으므로 “신이 오해하여 나를 데려가지 않을까”하는 걱정까지도 하면서 “이세상은 사랑의 터전“이 되어버렸다. (물론 니체는 사랑인 인생만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부정도 긍정하는것이지만). 물론 기억이라는 것이 과장되고 왜곡되기 마련이지만 “사랑은 가도 추억은 남는 것처럼”그렇게 남았다.

 


      우리의 니체 "두명의 니체, 열명의 니체"      


 


그리고 작년부터 시작한 니체 세미나! 유난히 더운, 연일 최고기온을 경신하던 무더운 8월. 그것도 우연히 제주도 여행 중에 수유너머 홈페이지를 보게 되었다. 니체 세미나! 중증의 빈혈에서 조금 회복되고 있었던 때였는데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증의 빈혈이란 내 사고가 느리게 흘러가고 차를 타고 내려도 나는 계속 가는 그런 느낌과 모든 진이 다 빠져 나가는 그런 상태. 생각이 정지된 느낌....... 뭐라도 해야 했는데 내키는 게 없었다. 여행도 운동도 다 시들했다. 알 수 없는 허무의 그림자가 덥쳐 왔고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이상한 병이 도졌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다가, 어느새 백수의 아줌마가 되어 잠시 행복했을 뿐... 삶의 권태와 무기력 신체의 병은 나를 지치게 하고 나는 생기를 일어가고 있어서 친구의 강권으로 제주도에 갔던 거였다. 바보 같이 몸이 병드니 정신까지 병드는 어리석은 상황이 된 것이다. 다시 니체를 만나야 할 것 같았다. 아니 만나야했다. 그럴 때 유쾌하고 통쾌한 니체는 얼마나 큰 위안이며 벗인지... 아마 니체는 그런 것을 원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라는 책, 아포리즘 208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책은 거의 인간화된다- 작가는 책이 자신으로부터 떨어지자마자 스스로 독자적인 삶을 영위해나가는 것에 새롭게 놀란다. 그것은 마치 곤충의 일부가 절단되면, 그것이 그때부터는 제 길을 가는 것과 같은 기분이다."  _『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2명과 세미나를 하면 두 명의 니체를 만나고 10명이 세미나를 하면 10명의 니체를 만난다. 같은 책을 때론 다르게, 때론 공명하며, 때론 반박하며 자신의 삶과 결합시켜 이야기들은 풀어냈다. 매번 세시간 넘는 토론이 이어졌으며 집이 먼 나는 아쉬워하면서 먼저 가야 했다. 우리는 각자의 호흡과 리듬으로 통찰력으로 니체를 읽었으며 토론했고 간식을 나누어 먹고 걷기도 했다. 나는 니체 책을 니체가 되어 읽으려고 노력했다. 원래 나의 독서법은 “거리두기” 인데, 왜 여기서 그는 이렇게 말했을까? 그때 그는 어떤 상태였을까 헤아려보며.

 


      들뢰즈의 니체 "들뢰즈의 눈으로 니체를 본다는 것"      


 


이제 구성원들은 구성도 변하고, 각각의 사람들도 다른 ‘나’들이 되었겠지만 다시 우리들이 되어 『학문의 즐거움』 읽기 전에, 먼저 『들뢰즈의 니체』를 읽기 위해 모였다. 만났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나는 들뢰즈에게서 니체를 만나기도 하고 니체에게서 들뢰즈를 만나기도 한다. 아마도 둘 다 기존의 질서나 형식을 전복하는 철학자들이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들뢰즈의 니체』를 읽는다는 것은 들뢰즈의 눈으로 니체를 새롭게 보는 것이 아닐까? 물론 니체의 생애나 철학적인 면모들은 잘 알려져 있지만 들뢰즈가 보는 니체는 어떤가하고 우리가 보는 ‘이중의 봄’의 세미나인 것처럼 느껴진다.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기억력 부족으로 다 적을 수도 없고 『들뢰즈의 니체』니까 들뢰즈가 주장한 것에 대해 정리해 보고 싶다.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 충분하지 않으므로.....

 

## 위대한 건강

들뢰즈의 말처럼 철학자가 개념을 창조하는 자라면, 니체는 ‘위대한 건강’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낸 것이 틀림없다. 니체는 병에서 건강에 대한 하나의 관점을 보며, 건강에서 병에 대한 하나의 관점을 본다. 건강으로부터 병으로, 병으로부터 건강으로의 이동이 탁월한 건강이며, 그러한 이동에서의 경쾌함이 ‘위대한 건강’의 징표다. 몸은 타자들의 공통체이며 힘들의 지배를 받는 곳이다. 병이란 어느 한 힘이 커졌을 때 발현하는 것이며 병 때문에 몸이 고통스럽다하더라도, 병이 절대로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오히려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자신의 병마저도 환대하는 니체야말로 ‘위대한 건강’의 소유자가 아닐까? 자신의 신체를 탐구하고 병을 부정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라는 장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다양성이라고 인식하는 것. 그것이 곧 긍정의 철학이며 운명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다. 건강의 가치평가로서의 병, 병의 가치평가로서의 건강, 그것이 ‘전도=관점의 이동’이며, 니체는 ‘가치들의 전환’이라는 자신의 방법의 본질, 자신의 사명의 본질을 본다. 건강도 병도 니체에게는 ‘가면’일 뿐이다. 하나의 통일성을 믿지 않는 니체에게는 ‘광기’조차 ‘최후의 가면’인 것처럼. 광기는 단지 가면들이 소통하고 이동하는 것을 그치면서 죽음의 경직 안에서 뒤섞이는 순간을 가리킬 뿐이기 때문이다.


고통이 계속되지만 그의 신체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열정’에 의해서 자주 지배되며 자신의 높은 상태를 느낀다. 니체는 자신이 아팠을 때는 세상에서 빠져나와 건강한 이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몸이 건강해지면 세상에 뛰어들어서 거기서 가능한 통찰을 활용했다고 한다. 몸이 아프다고 해서 정신마저 우울해서 병든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인가?

 

## 관점주의: 퍼스펙티브적인 것

관점주의는 니체의 사유의 방식이며 가치 평가의방식이다. 니체의 세계는 플라톤의 이데아의 세계처럼 해석이 존재하지 않는 절대적인 세계가 아니라, 보편적인 눈이란 없는 세계이다. 다시 말하면 ‘사실은 없고 해석만이 존재하는 세계이다‘라고 했을 때, 이는 “절대적인 진리는 없으며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는 관점주의를 말한다. 


개구리 눈에는 가까이 낮게 있는 사물이 크고 길게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연못 표면의 곤충을 잡는다. 개구리 눈의 오류지만 이 오류 때문에 개구리는 산다. 니체가 ‘퍼스펙티브적인 것’을 모든 생명의 근본 조건이라 부른 것은 이 때문이다. 고병권은 그의 책 『다이너마이트 니체』에서, 니체의 서술도 하나의 관점으로 볼 수 있지만 니체의 퍼스펙티비즘에는 개별 퍼스펙티브로 환원되지 않는 '퍼스펙티브들에 대한 태도‘의 차원이 존재한다고 한다.


니체의 퍼스펙티비즘은 세상을 보는 눈들이다? 더 많은 눈을 가질수록 다양한 것을 보고 모든 것에서 ’덕성을 찾아내는 미덕‘을 갖게 되지 아닐까? 인간이 신을 창조하고 믿는 오류 (유신론자의 입장)가 세계 곳곳의 대성당이나 멋진 교회음악을 만들어 내지 않았던가?

 

덧붙여: 나는, 우리는 니체가 기대리던 미래의 독자일까? 아니면 우리 중에 니체가 바라던 도래하는 철학자가 있을까? 아직도 니체는 도래할 독자를 기다려야하는가? 이 모든 의문에도 불구하고 니체는 행복한 철학자임에 틀림없다. 이 먼 나라에서 그가 죽은 먼 후일 한글로 그의 책들을 읽고 토론하며 인생의 안내자로 친구로 스승으로 혹은 적으로 생각하는 많은 사람이 있으니...... 아직도 어구에 설레고 공허한 말들에게 속곤 하지만, 니체는 자신의 삶이 곧 그의 철학인 것 같아 믿음이 가긴 한다. 그러나 믿음이 안가면 어떠랴? 믿음이 안가면 불신으로 읽어야지... 오류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Posted by 수유너머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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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2.09 16: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무심이 2019.04.14 2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3. 프라하 2019.04.28 0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차안에서 샘의 글을 읽고 있습니다. ~^^

2. 장자는 왜 논쟁하지 않고 이야기 하는가?

 

 

담 연(수유너머104 장자세미나 튜터)

 

 

 

 

 

확실성의 신, 젊은 비트겐슈타인

석사 20대 후반은 온통 비트겐슈타인 생각뿐이었다. 당시 지도교수님은 비트겐슈타인 영독본을 교재로 매주 토요일 아침 강독을 하셨다. 세미나는 학부 마지막 학기부터 박사과정을 그만 둘 때까지 6년 정도 이어졌다. 이 때문인지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는 마치 성경처럼 정신을 지배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논고> 7)’는 그의 경구에 억눌려 나는 확실성 없는 인간사에 침묵하기로 했다. 말을 잃은 시간 속에서 30대가 된 어느 날 문득 너무도 어눌해져버린 내 말에 스스로 놀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