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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_철학.사회

[이슈_4040] 사드와 꼬부기



사드와 꼬부기 





전주희 / 수유너머N 회




“누나, 포켓몬 알아?” 

연구실 20대 후배가 ‘포켓몬고’를 물어본다. 모르면 알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르는 걸 확인하고 놀리기 위해서. 나이가 먹을수록 알아야할 것들이 너무 많다. “당근 알지”라고 퉁치며 넘어가려는데, 또 물어본다. “그래서 포켓몬이 뭔데?” 그거. 꼬마들이 목숨걸고 딱지 모으던 만화 캐릭터 아니냔 말이다. 우하하~ 모를줄 알았다며, 옛날사람이라고 한참을 놀린다. 

무튼 속초까지 가서 잡아온 포켓몬들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이제 이것들을 키운단다. 


“그니까, 그게 다마구치잖아.” 아이들은 뒤집어졌고, 난 흥칫뽕이다. 





‘포켓몬 고’는 게이머가 현실 세계를 직접 돌아다니며 게임에 등장하는 작은 몬스터를 잡고, 이를 키우는 방식의 증강현실 게임이다. 지난 7월 6일 호주와 뉴질랜드를 시작으로 미국 등지에서 출시됐다. 무려 35개국에서 ‘포켓몬 고(Pokemon GO)’ 광풍이 불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피카츄가 나타난 것이다! 아직도 가끔 꿈에서 꼬마자동차 붕붕이를 타고 붕붕거리는 꿈을 꾸는 나인데, 붕붕이를 타고 요술공주 밍키와 모래요정 바람돌이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고 상상하면 너무 신나서 방방 뛸 것 같다. 그러니 열일 제치고 속초를 가는 것 쯤이야. 


증강현실(AR·Augmented Reality)은 현실에 가상의 이미지나 정보가 덧입혀지는 것을 말한다. 현실의 이미지와 가상의 이미지가 결합해 새로운 현실을 낳는다. 이 기술로 인해 인간과 기계의 공존은 더욱 밀도가 높아질 것이라고들 한다. 증강현실의 리얼리티는 이미지의 물질성을 생각하게 해준다. 보통 현실의 대상이 있고 이를 모사한 것이 이미지인데, 증강현실에서 이미지는 서로의 물질성을 보장한다. 실제 현실은 피카츄라는 이미지의 물질성을 보장하고, 피카츄라는 가상의 캐릭터는 속초 앞바다의 물질성을 전제한다. 피카츄가 없는 속초는 바다가 있는 도시일 뿐이고, 속초가 아니라면 피카츄는 게임속의 캐릭터에 불과하다. 각각의 이미지는 새로운 리얼리티의 조건이 된다. 그럼으로써 현실은 이미지세계에서 추방되는 것이 아니라 증강된다. 


반면 가상현실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환경을 구현한다. 현실 정보를 차단한 채 오로지 가상 정보(소리∙형태 등)만 보여준다. 우리는 가상현실이라는 이미지들의 체계를 통해 현실을 지우고 가상에 몰입하게 된다. 


포켓몬고는 무엇보다 신체를 움직이게 하는 게임이다. 포켓몬을 찾아나서고, 잡아야하고, 정성으로 키워야한다. 돈으로 손쉽게 살 수 있는 게임아이템과는 다르다. 감정이란 신체적인 동시에 정신적인 것이라면 사람들은 가상현실을 통해 느끼는 감정보다 증강현실에 더욱 열광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또한 전세계의 포덕들과 지구적 사이즈의 공감 역시 이들을 더욱 신나게 한다. 속초는 대한민국 강원도 도시가 아니라 포켓몬들의 서식처가 되었다. 



속초가 이렇게 신났을 때 경북 성주는 ‘사드’의 고장이 되어 날벼락을 맞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7월 8일 "사드는 국민 생존권 문제"라고 선언했다. 6일 포켓몬 출시 이틀만의 시련이다. 행복은 짧고 불행은 구체적이다. 사드가 뭔지는 몰라도 사드레이더 근방 100미터는 전자파로 인해 화상과 내상을 입을 수 있다고 한다. 말이 화상이지, 전자파로 화상을 입는 정도면 ‘방사능 수준의 위험’이다. 2012년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사람이 불타죽을 수 있는 수준의 전자파다. 상주 군민들은 빨간띠를 머리에 둘렀고, 황교안 국무총리는 주민들의 차를 들이받고 튀어 뺑소니범이 되었다. 





사드를 반대하는 시민들은 ‘안전하게 생존할 권리’를 주장하고, 이에 대해 박근혜 정부와 군 관료들은 “북한의 핵무장과 핵미사일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한미양국의 결정사항”이라고 통보했다. 북의 핵미사일이야 10년 전에도 있었는데 왜 이제와서 저러는지 알 수 없지만 중국이 보통 열받은게 아닌게 아니라서 동북아 신냉전의 방아쇠를 당겼다(심지어 소심쟁이인 우리가!)는 우려가 심심찮게 나온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드 배치의 철회는 쉽지 않아보인다. 박근혜 정부는 오직 안보의 프레임으로 사드 배치를 주장한다. 시민들의 안전하게 생존한 권리와 국가의 안보가 충돌하고 있지만 국가의 ‘안전’프레임 안에 시민들의 안전한 생존은 배제된다. 그들은 현실 정보를 차단한 채 오로지 북핵-자위권-안전-사드로 이어지는 가상 정보만 반복한다. ‘가상현실’은 이렇듯 현실적인 것 가운데에 현실을 가리며 작동한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은 기술 이전에 기술이 품을 수 있는 상상력의 문제다.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인간의 상상력이 탐욕과 편파적인 감성을 넘어 사회를 구성할 수 있는 원리이자 힘이라고 보았다. 상상력이란 ‘불을 뿜는 용’이나 ‘날개달린 말’처럼 경험된 현실과 지각된 감각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본디 인간이란 이기적인것 이상으로 편파적이다. 지금은 일반인 나씨가 된 나향욱 교육부 관료가 자기 자식은 스크린도어로 사망한 청년과 다르다고 한 것은 인간의 편파적인 감정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편파성은 ‘사회’라는 새로운 현실을 구성함으로써 극복될 수 있다. 혹자는 나씨의 공감력의 부재를 이야기하지만 공감이란 무한하게 확장되지 않고 늘 자기 주변에 국한되는 편파성을 띈다. 나씨는 공감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공감이 ‘미개한 자연상태’를 벗어나지 못했을 뿐이다.  


제한적인 감정을 나와 관련없는 타인과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은 상상력 덕분이다. 상상력은 나에게서 멀리 있는 것을 나의 생생한 현실로 만들어 준다. 스크린도어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속초 모래사장을 뒹구는 포켓몬을 찾아 여행을 나서고 꼬마자동차 붕붕이를 애틋해하는 것은 상상력에 따라 확장된 감성의 힘이다. 상상력이 중요한 것은 현실의 너머, '아직은' 비현실적을 것을 인식할 수 있는 역량이다. 이것이 편파적인 감성을 사회적 감성으로 확장한다. 사회라는 새로운 리얼리티는 인간들의 증강된 힘이다. 


따라서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은 상상력 이전에 상상력을 지배하는 감성의 문제다. 감성은 현실의 관계 속에서 어떤 현실을 구현할 것인지의 문제에 깊숙히 개입한다. 리얼리티의 배제인가, 새로운 리얼리티의 구축인가 여부는 감성의 방향에 달려있다. 


일반인 나씨와 박근혜 정부는 사드의 안보논리, "국가안전=시민안전=사드"라는 공감을 얻지 못해 안보의 가상현실안으로 퇴행했다. 반면 포켓몬들은 국경과 인종을 넘어, 인간과 기계와 공존하는 모든 곳에 살 수 있다. 몬스터들은 모든 환경들과 결합해 공존의 지역을 넓히고 있다. 하지만 단 한 곳, 전자파가 살을 녹이는 성주에 포켓몬들은 서식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그 곳을 찾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주에는 포켓몬 중 최강 귀요미 꼬부기의 해사한 미소도 없다. 

다마구치와 딱지만 아는 나는 또 다른 증강현실을 상상해본다. 성주를 안보의 가상현실로 만들지 말기를. 꼬부기를 찾아 여행하는 사람들이 성주의 전자파 담장을 무너뜨릴 수 있기를. 성주시민들이 꼬부기와 그의 지구적 친구들과 함께 공존하는 날이 오기를. 






애가 꼬부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