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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_문학.예술

[풍문으로 들은 시] 빛과 법 - 송승언, 『철과 오크』(문학과 지성사, 2015.2.) 빛과 법 이 종 현 / 수유너머N 회원 비스마르크, 오크, 참나무 법 앞에서그가 문을 열고 나오자, 환자들의 긴 행렬이 보였다 죽을 때까지 높은 언덕을 넘어 그의 병원으로 오고 있었다아침이면 널린 신비를 걷어야겠다는 생각도 했고빛이 섞여 들었다흔적이 남을 겁니다 누가 파헤친 것처럼 의사인 것으로 보이는 그는 병원의 문을 열고 나온다. 그의 앞에는 환자들의 긴 행렬이 있다. ‘죽을 때까지’라는 말은 매우 막막하다. 그런데 그는 아픔이 신비롭다고 말한다. 환자들이 그에게로 가져오는 아픔이 왜 신비로운 것일까? 이에 대한 설명은 바로 나오지 않는다. 머리에 붕대를 감은 사람들, 언덕을 넘어 풀린 붕대처럼 길게 행렬을 이루는 사람들, 아침이 되어 문을 열고 나가보면 붕대처럼 늘어선 신비로운 아픔들. 감겨있는 붕.. 더보기
[영화리뷰] 사건을 해결하는 남성적 연대의 헛된 상상 [이슈&리뷰] 사건을 해결하는 남성적 연대의 헛된 상상: 1000만 관객 돌파 영화 를 보고 수유너머N회원 조지훈 나만 몰랐는지는 모르겠지만 2000년대 이후 1000만 관객을 넘은 영화 중에서 여성이 주인공을 하고 있는 작품은 거의 없다고 한다. 이를 손희정은 문화과학 83호에 실린 에서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서 보여준다. 명량, 괴물, 7번방의 선물 등등 얼핏만 생각해보아도 그 말이 틀리지 않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90년대 흥행작에는 나름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영화들에서 여성은 커리어 우먼으로 남자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사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물론 결국 손희정의 말마따나 영화 막바지에 다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그 당당하던 커리어우먼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지만 말이다. 그러던 .. 더보기
[풍문으로 들은 시] 몸이라는 예배당-성동혁, 『6』(민음사, 2014) 하이데거는 시인을 일컬어 ‘존재의 거처를 지키는 파수꾼’이라고 말합니다. 시인은 왜 스스로 아무도 돌보지 않는 존재의 터, 텅 빈 그 자리의 문지기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그들의 시쓰기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수행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니 시를 들여다보는 일은 나와 더불어 세계의 본질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 됩니다. [풍문으로 들은 시]에서는 2000년 이후의 출판된 한국의 좋은 시집들을 한권씩 소개하려 합니다. 풍문으로만 들었던 시를 읽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코너소개 몸이라는 예배당 성동혁, 『6』(민음사, 2010) 수유너머n 회원/하얀 아픔의 입구 가슴이 열린 채로 묶여 있었다/유약이 쏟아졌다/유약을 뒤집어쓰고 벽을 오른다 생각했다/누워 소변을 보고 누워 부모를 기다리.. 더보기
[개봉영화 파해치기] 끝나지 않을 매국의 문제: 영화 <암살>에 대하여 [개봉영화 파해치기] 끝나지 않을 매국賣國의 문제 -『암살』이 제기하는 친일에 관한 새로운 관점에 대하여- *이 글에는 『암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수유너머N 세미나 회원 전병석 How?; 『암살』은 어떻게 말하는가 ‘친일파를 처단하라. 그들은 민족의 악적이다.’ 이러한 구호들이 지금-여기의 우리들에게 어떠한 울림을 주는 걸까?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친일파 처단에 대한 구호들은 식상하고 조금은 진부하기까지 하다. 식민지 시대는 오늘날의 우리들이 체감할 수 없기에 흐릿해져가는 역사적 사건들의 배경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친일파는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이기 때문에 그들은 심판되어야 할 악惡이라는 통념은 이미 형성되어 있다. 그렇다면 영화 『암살』은 어떠한가? 이 글에서는 이 영화가 친.. 더보기
[풍문으로 들은 시] 어찌할 바 모르겠으니 서둘러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 이순영, <학원가기 싫은 날>(2015) 어찌할 바 모르겠으니 서둘러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정말 풍문으로 들은 시가 한 편 있다. 시집의 표지는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사진으로 보았다. 시가 적혀 있는 쪽의 삽화도 어느 블로그에서 보았지만 화질이 좋지 않았다. 부산 교보문고에 한 권 남아 있길래 간신히 구할 수 있겠다 싶었지만 그마저도 배송 과정 중에 누군가에게 빼앗겼다. 원래 시는 손에 착 들어오는 사이즈의 시집을 조물락거리며 누워서 읽는다. 싫증나면 내던졌다가 한참이 지나 접어둔 곳부터 다시 읽는다. 그런데 이번에 풍문으로 들은 시는 그 시의 물리적 실재를 만져보지도 못하고 인터넷에 떠도는 글들을 통해 읽게 되었다. 스탈린주의가 한창이던 소련에서 시인이 숙청당해 시집이 모조리 금서 조치되면 가족과 친구들이 그의 시를 평생 외웠다가 후손들에게 .. 더보기
[개봉영화 파해치기] 영화-세계의 정치적 가능성: 영화 <소수의견>을 보고 [개봉영화 파해치기] 영화-세계의 정치적 가능성. :영화 을 보고 수유너머N 세미나 회원 신광호 은 용산 참사를 배경으로 하는 픽션 영화이다. 하지만 용산을 배경이야기로 삼음에도 직접적으로 용산을 다루지는 않는다. 법정물이 지니는 장르적 쾌감을 원동력으로 삼아 이야기를 진행하며 법정 공방의 가운데에서 우리 사회의 비합리적인 구조를 드러내 보이려는 야심을 은 지니고 있다. 실제 그 야심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내었는가 하는 평가는 둘째로 치고, 여기에서 우리는 주목할 만한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용산에 관한 다큐멘터리는 이 이미 있다. 그렇다면 용산이라는 현실을 픽션은 어떠한 방식으로 다루어 낼 수 있을까? 그러니까 픽션은 어떻게 정치적일 수 있을까? 우리는 이른바 ‘정치적’이라 여겨지는 픽션 영화들을 알고.. 더보기
[풍문으로 들은 시] 서효인, 『소년파르티잔 행동 지침』(민음사, 2010) 하이데거는 시인을 일컬어 ‘존재의 거처를 지키는 파수꾼’이라고 말합니다. 시인은 왜 스스로 아무도 돌보지 않는 존재의 터, 텅 빈 그 자리의 문지기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그들의 시쓰기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수행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니 시를 들여다보는 일은 나와 더불어 세계의 본질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 됩니다. [풍문으로 들은 시]에서는 2000년 이후의 출판된 한국의 좋은 시집들을 한권씩 소개하려 합니다. 풍문으로만 들었던 시를 읽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코너소개 퍼져라, 웃음아 서효인, 『소년파르티잔 행동 지침』(민음사, 2010) 수유너머n 회원/하얀 비애가 삼켜버린 불안한 웃음 노, 노점상 같은 겨울에 부부는 토, 토스트를 뒤집어 보기로 했단 말이지 허기처럼 말랑.. 더보기
[개봉영화 파헤치기] 풀 스로틀(Full-Throttle, 최고속력)이 우리를 미치게 만든다 풀 스로틀(Full-Throttle, 최고속력)이 우리를 미치게 만든다. -기계가 우리의 삶과 정신을 모두 지배할 때- 영화 : 매드맥스 장 희 국 /수유너머N회원 1. 기계에 대한 강렬한 물신숭배 -“V8을 외쳐~!!” 임모탈의 병사들이 V8을 외치며 출병하던 모습을 기억하는가. 강렬한 엔진배기음이 귓가에 들리는 듯한 그들의 외침은 앞으로 시작될 영화의 장렬한 속도감을 충분히 예감케 한다. V8이 뭐길래 그 단어만으로 속도가 느껴지느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자동차 매니아가 아닌게 분명하다. V8-8기통 엔진은 일반적으로 대형차에만 달리는 강력한 엔진이다. 이 엔진이 소형차에 달리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무게 50kg의 배낭을 메고 뛰던 당신이 갑자기 그 배낭을 벗어던지고 달릴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해 보라... 더보기
[풍문으로 들은 시] 시 쓰는 코기토 - 『즈비그니에프 헤르베르트 시전집』(문학동네, 2014) - 『즈비그니에프 헤르베르트 시전집』, 김정환 옮김 (문학동네, 2014) 이 종 현 / 수유너머N 회원 목차를 훑어보면 재미있어 보이는 시집의 제목들이 눈에 띈다. , , , , 등등. 가장 먼저 손이 가는 것은 (1974)다. 그 코기토가 맞나 싶어 원어를 찾아 보니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의 코기토가 맞다. ‘코기토 에르고 숨’의 뜻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이니까 이 시집의 제목은 ‘나는 생각한다 씨’가 된다. 혼자 방에 앉아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되뇌는 데카르트는 감각기관들을 하나씩 잘라내고 자기 존재의 알맹이를 찾기 위해 생각으로만 남았다.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초승달 같은 검은 눈썹도, 목을 감싸고 있는 하얀 칼라도 필요 없다. 그는 생각하고.. 더보기
[개봉영화 파해치기] 블록버스터에 우리 동네가 나오다 [개봉영화 파해치기] 블록버스터에 우리 동네가 나오다: 의 이국적인 서울 수유너머N회원 조지훈 가 개봉했다. 예매율 갱신기록이 날이 갈 수록 올라간다. 블록버스터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하루이틀 일 아니지만, 이번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에는 서울이 나온다! 제작년에 마포대교, 새빛둥둥섬, 강남을 방문한 어벤져스 촬영팀 때문에 도로 전체가 통제된 것을 기억할 것이다. 하루 종일 도로가 통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OK를 했고, 사람들은 이해했다. 왜냐하면 어벤저스 촬영으로 인해 우리는 수십억 달러 이상의 경제적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처럼 창조경제의 마법 같은 소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도로 통제에도 불구하고 어벤져스 촬영에 호의적이거나 그.. 더보기
[풍문으로 들은 시] 이제니,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문학과지성, 2014) 하이데거는 시인을 일컬어 ‘존재의 거처를 지키는 파수꾼’이라고 말합니다. 시인은 왜 스스로 아무도 돌보지 않는 존재의 터, 텅 빈 그 자리의 문지기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그들의 시쓰기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수행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니 시를 들여다보는 일은 나와 더불어 세계의 본질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 됩니다. [풍문으로 들은 시]에서는 2000년 이후의 출판된 한국의 좋은 시집들을 한권씩 소개하려 합니다. 풍문으로만 들었던 시를 읽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코너소개 우리, 저마다의 거리를 가진 존재 -이제니,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문학과지성, 2014. 하얀/수유너머N회원 이제니는 2008년 등단 후 음악도 하며 시도 쓰며 거제에서 지낸다. 그녀에게 시는 .. 더보기
[풍문으로 들은 시] 타인과 드라마 - 기혁,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 박수』(민음사, 2014. 12) - 기혁,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 박수』(민음사, 2014. 12) – 이 종 현 / 수유너머N 회원 노란색 시집 서로를 껴안는 사람들. ‘스타니슬랍스키 연기론’이 시집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배우가 대본에 의존하여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닌, 배우의 직감 ‧ 상상력 ‧ 체험 등 본인의 모든 것을 동원해 배역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연기를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stanislavsky system)이라고 한다. […] 이러한 연기가 가능했던 희곡이 체호프나 이오네스코이고 그것의 연출자가 스타니슬랍스키이고, 그것이 상연된 극장이 모스크바예술극장인 것이다. 모스크바예술극장의 설립 초기와 오늘날의 모습 여름이 끝나고 찾아오는 드라마. 처방전을 대신하는 시 기혁의 시는 관객들에게 비춰져 새로운 모습으로 반복될 사.. 더보기
[풍문으로 들은 시] 지옥에서의 한 철 -황병승, 『육체쇼와 전집』 하이데거는 시인을 일컬어 ‘존재의 거처를 지키는 파수꾼’이라고 말합니다. 시인은 왜 스스로 아무도 돌보지 않는 존재의 터, 텅 빈 그 자리의 문지기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그들의 시쓰기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수행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니 시를 들여다보는 일은 나와 더불어 세계의 본질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 됩니다. [풍문으로 들은 시]에서는 2000년 이후의 출판된 한국의 좋은 시집들을 한권씩 소개하려 합니다. 풍문으로만 들었던 시를 읽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코너소개 지옥에서의 한 철 -황병승, 『육체쇼와 전집』, 문학과지성사, 3013. 하얀/수유너머N 회원 시인 황병승은 2003년 등단 후 ‘미래파’의 대표주자로 언급되면서 논쟁 속에 휘말린다. 논쟁 속에서 그의 시는 .. 더보기
[풍문으로 들은 시] 이질적인 것들과 공명의 에너지-김이듬, 『히스테리아』(문학과지성사, 2014) 하이데거는 시인을 일컬어 ‘존재의 거처를 지키는 파수꾼’이라고 말합니다. 시인은 왜 스스로 아무도 돌보지 않는 존재의 터, 텅 빈 그 자리의 문지기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그들의 시쓰기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수행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니 시를 들여다보는 일은 나와 더불어 세계의 본질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 됩니다. [풍문으로 들은 시]에서는 2000년 이후의 출판된 한국의 좋은 시집들을 한권씩 소개하려 합니다. 풍문으로만 들었던 시를 읽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코너소개 이질적인 것들과 공명의 에너지 -김이듬, 『히스테리아』, 문학과지성사, 2014. 하얀/수유너머N 회원 김이듬 시인의 본명은 향라(香羅). 그녀는 차연(差延)이라는 뜻의 우리말을 찾다가, ‘바로 다음의’, ‘.. 더보기
멈추지 않을 질문들- 황정은 외,『눈먼 자들의 국가』(문학동네, 2014) 멈추지 않을 질문들 - 황정은, 「가까스로, 인간」, 『눈먼 자들의 국가』(문학동네, 2014) 전병석/수유너머N 세미나회원 고백; 우연히 노란리본을 가지다 우연히 세월호 사건을 길거리에서 마주했다. 6월의 어느 날, 밀양 송전탑 반대를 위한 1인 시위를 나가기 위해 피켓을 들고 홍대입구역으로 갔다. 홍대역 9번 출구에서는 노란 모자의 아주머니들이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해 서명을 받고 있었다. 잠깐 멈칫하다 연락처와 주소 그리고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가방에 매다는 노란리본을 선물받았다. 그렇게 우연히 나는 노란리본을 가방에 걸게 됐다. 『눈먼 자들의 국가』라는 책을 알게 된 것도, 그리고 세월호 사건에 대한 이 글쓰기도 우연이다. 그런 우연 탓일까? 책을 읽었음에도 좀처럼 글쓰기는 진도가 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