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_철학.사회

[이슈_이진경 칼럼] ‘강남좌파’를 위하여

강남좌파’, 아마 지금 한국의 보수층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의 하나인 듯하다. 며칠전 동아일보의 한 논설위원은 서울대 조국 교수를 명시적으로 거명하면서 강남좌파를 비판하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분당 우파여, 강남좌파에 속지 말고, 자신이 속한 계급을 지지하라!”는 것이 그 글의 결론이었다. 다른 한편 지난달 초순 ‘B급 좌파를 자처하는 한 논객이 조국 교수의 <진보집권플랜>을 비판하면서, “먹고살 걱정 없는 중산층 엘리트가 자신들에게 필요한 변화를 대다수 인민을 위한 변화라고 과장하여 주장한다며 비판한 바 있었다. 당신은 중산층 엘리트고, 당신이 주장하는 건 민주집권플랜이지 진보집권플랜이 아니라고, ‘진보는 우리 땅이니 저기 당신들 땅(강남!)으로 가라고 비판한 것이니, 단어는 직접 사용하지 않았지만 강남좌파에 대한 좌익적 비판이었던 셈이다.

강남좌파 때문에 분당의 중산층이 왼쪽으로 몰려가면 어쩌나 근심하는 우파 논객과 강남좌파의 거짓
진보때문에 진짜 진보를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면 어쩌나 근심하는 좌파 논객, 입장은 상반되지만 강남사람이면, 혹은 중산층 엘리트면, 아니 돈 많은 부르주아 자본가라면 우파적인 입장을 주장하거나 지지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것 같다. 그러나 돈 없고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보수당을 지지한다. 노동자들 역시 대부분 진보정당이 아니라 보수당을 지지한다. 반면 맑스나 레닌, 게바라 등 유명한 좌익들은 모두 변호사나 의사 등 돈 있는 집에서 태어나 많이 배운 엘리트들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돈 있는 사람들이 우파가 되는 건 사실이다
. 예전에 강남출신 서울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통계조사에서, 대개 돈 있는 집 자식인 그들의 관심이 주로 돈을 버는 것이었음을 한탄한 적이 있다. 물론 돈 없는 집 자식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돈 없는 사람들이 돈 버는데 관심을 갖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돈 있는 사람들이 돈 버는데 미쳐 있는 것처럼 멍청한 것도 없지 않을까? 돈 있으면, 그 돈으로 인생을 어떻게 잘살까 고민해야 하는 게 좋은 삶 아닌가? 혹은 돈을 많이 벌었으면 이제 돈 없는 사람들 걱정도 좀 해주고, 그들 위해 좋은 일이 뭘까 고민하고 하는 게 좋은 인생 아닐까?

그저 돈만 아는 부자들이 돈을 더 버는데 좋은 입장으로 쉽게 끌려가는데 반해 그래도 생각 있는 부자들이
강남좌파가 되는 건 이런 이유에서 아닐까? 그래서 나는 강남좌파는 돈 있는 사람 가운데 삶에 조금이나마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린사람들을 뜻한다고 믿는다. 심지어 생각에 몸이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면서도 그러려고 하고,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또한, 말과 행동이 다른 위선자나 이중인격자라기보다는 좋은 생각에 힘들게 맞추어가려고 애쓰는 사람이라고 믿고 싶다. 사실 생각에 몸이 완전히 따라주는 것이야 부처님처럼 완전히 각성한 도인들의 경지 아닌가! 우리 같은 범인들이야 저렇게 사는 게 좋은 것이려니 믿고 생각날 때마다 따라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물론 그저 폼만 재며 자신과 이웃을 속이는 위선도 있을 것이다
. 그런 허세와 위선을 어찌 좋다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가리고 숨어서 하려는 위선적 시도조차 없이 노골적으로 자기집단의 이익을 취하는 이명박 정부 주변 우파들의 솔직함이나, 최소한의 품위마저 포기한 채 노골적으로 이익을 탐하는 기업이나 언론사, 대학들의 솔직함을 생각하면, 문제는 그런 위선이 아니라 그마저 사라진 세태에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돈 없는 자 또한 이런 의미에서
좌파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돈 없는 사람들의 삶에 항상 시선을 주는 것을 좌파라고 믿기 때문이다. 못사는 사람이 못사는 사람들의 삶에 항상 눈을 돌려야 하는 것은, 자기가 못살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돈이 있는 없든, 나 아닌 사람들, 못살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고 그들이 잘 살기를 바래야 하는 것은, 그게 타인은 물론 자신 또한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삶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강남에 살기는커녕 강북에 집도 한 채 없지만
, 그래서 좌파가 된 건 아니다. 그러나 돈을 벌어서 집을 사고 강남에 이사를 가도 우파는 하고 싶지 않다. 돈벌고 신세 좀 폈다고, 돈 없는 자들 무시하고 돈만 챙기는 천한 인생처럼 불행한 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글 / 이진경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