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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_철학.사회

혁명적 정세와 혁명적 주체 혁명적 정세와 혁명의 주체 - 전쟁과 혁명 사이, 레닌은 무엇을 사유하였나? - 에티엔 발리바르의 에 대하여 이제 레닌의 귀환은 부인될 수 없는 사실이 된 것 같다. (사이먼 클락 외, 2000)가 출간될 당시만 해도 전혀 관심이 되지 못했던 레닌이 어느덧 우리 시대의 지적 스타 지젝의 ‘레닌의 제스처를 반복하자’는 구호와 더불어 대한민국 진보 지식계의 뜨거운 관심사가 되었다. 지젝의 레닌론인 (2006) 이후 레닌에 대해 쏟아지는 국내외 저작들, 특히 한국의 연구자들이 중심이 된 연구서의 출간이 활발해졌다. 이제 레닌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반자본주의와 혁명을 논의하는 것은 시대에 뒤쳐진 일처럼 보이는 시절이 도래한 것 같다. 그러나 레닌의 귀환을 경축하기에 앞서 우리는 ‘어떤’ 레닌이 돌아왔는지 먼저 .. 더보기
'빚’이 있으라 하였으니 - 관계를 증축하는 부채를 생각한다 우리는 고요를 좋아한다. 숲의 나무들이 바람에 서걱이는 소리를 들을 때는 이러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선 쥐들이 떠드는 소리 때문에 괴롭다. -1796년 펜실베니아 주지사에게 인디언 추장이 한 말 대학을 다니며 삶에서 잊어선 안 될, 언제나 가슴 속에 간직해야 할 것이 생겼다. 그건 사랑도 아니요 우정도 아니요 진리를 향한 지적 욕구도 아니었다. 그건 바로 원금 상환일과 통장의 잔고였다. 대학 재학 시절, 나는 더 이상 부모님을 착취할 수 없게 되자 정부 보증 학자금 대출에 ‘손을 댔다’. 그땐 대출이자만 냈기에 생활은 그럭저럭 견딜 만 했다. 하지만 졸업 후 원금도 상환하는 지금, ‘그 날’이 오면 탈수기를 강으로 놓고 돌리기라도 한 듯 통장에선 돈이 탈탈 빠져나간다. 그렇게 다달이 나는 가슴 한 구석.. 더보기
잃어버린 신화를 찾아서 ― 미하일 바흐찐의 <예술과 책임>(뿔, 2011) “오빠가 돌아왔다!” 1980년대 한국 비평계와 지성계에 민중 문화 담론을 촉발시키고서 홀연 사라졌던(?!) 바흐찐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러시아어 완역본’이라는 휘장을 감고서. 물론, ‘문화의 시대’를 선언하던 1990년대와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군주가 지배하던 2000년대에 그가 온전히 종적을 감췄던 것은 아니다. 그의 최대 주저(主著) 중 하나인 (아카넷, 2001)가 번역되었고, 몇 권의 전문 연구서들이 간간히 번역·출간되기도 했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 문예 미학의 ‘태두’였던 루카치와 나란히 거론되고, 한때 구미권에서 ‘바흐찐 산업’이라는 표현이 떠돌 정도로 명성과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에 비한다면, 지난 20년간 바흐찐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초라해졌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던 그가 ‘돌연’, 혹.. 더보기
미셸 푸코, "저자란 무엇인가? (Qu'est-ce qu'un auteur?)" 번역문(부분) 이 번역문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다른 일들에 쫓기다 보니 까마귀즘(^^;;) 때문에 시간이 한참 흘러가 버렸네요.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에서는 3-4월 두 달간 조성천, 홍서연 선생님과 함께 프랑스어 강독 세미나를 했었는데요. 3월 17일에 읽은 3회차 강독 텍스트를 김민우님이 번역해 주셨습니다. 미셸 푸코의 유명한 텍스트입니다. Michel Foucault, "Qu'est-ce qu'un auteur?", in Dits et écrits, tome I, Paris, Gallimard, 1994[1969], p. 789-821. 이 중 강독/번역된 부분은 텍스트의 내용상 핵심적으로 보이는 부분들입니다. -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블로그 운영자 미셸 푸코, "저자란 무엇인가?" (789쪽) 뱅센느 실험.. 더보기
바깥의 목소리를 듣다. -황정은 소설을 읽고 메모 하나. 어느 밤에 나는 먹으려고 평소보다 멀리 나갔다. 계란 껍질과 말라 비틀어진 사과 심을 발견해 먹고 달을 바라보며 그늘 속으로 걸었다. 목이 말랐다. 길 가장자리에 고인 물 냄새를 맡았다. 그때 뒤쪽에서 무슨 일인가 벌어졌다. 순식간에 몸이 들려 자루에 담겼다. 빗물에 젖은 털 냄새가 나는 차에 실려 어딘가로 옮겨졌다. 나처럼 방심한 틈에 잡혀온 짐승들이 울어대고 있었다. 귀 모양도 제대로 잡히지 않은 어린 녀석부터 늙은 녀석까지 이 몸 십여 개체가 넘는 동족들과 같이 각종의 분비물로 덮인 철창에 갇혔다. 미지근하게 끓는 듯 좋지 않은 냄새가 났다. 안색 나쁜 인간 두 명이 침침한 불빛 아래서 우리를 들여다보았다. ... 꼼짝하지 못하도록 그들이 이 몸을 약품으로 처리했다. 배가 위쪽을 향하도록 몸을 뒤집.. 더보기
들뢰즈의 스피노자 강의(1978. 1. 24.) 번역 - 스피노자에게 있어 관념과 감정(Idée et affect chez Spinoza) 이 글은 수유너머N에서 3-4월에 진행한 초중급 불어강독 중 8회에 읽은 텍스트를 강독에 참가한 김민우님이 번역한 것입니다. 들뢰즈의 파리8대학 스피노자 강의를 녹취한 원문 중 처음부터 9번째 문단까지의 번역입니다. (DELEUZE / SPINOZA Cours Vincennes - 24/01/1978 원문 바로가기) 들뢰즈의 스피노자 해석을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부분을 알기 쉽게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는 명강의라고 생각됩니다. ------------------------------------------------------- 오늘은 연속된 변이(variation continue)에 대해 [이제껏] 다루었던 것을 잠시 미루고, 철학사 수업을 위하여 매우 분명한 어떤 사항에 대해 임시로 되돌아가겠습니다... 더보기
미하일 바흐찐, 또는 신화의 귀환 ― 한국어판 선집 간행에 부쳐 한국사회와 바흐찐, 첫 번째 만남 우리나라에 바흐찐의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80년대였다. 루카치로 대표되던 맑스주의 문예이론의 엘리트주의를 넘어서는 한편으로, 문학과 예술의 민중적 토대에 대한 모색이 활발히 진행되는 가운데 집중적으로 소개되었던 것이다. 바흐찐은 문화를 루카치처럼 ‘해방’과 ‘진보’의 위대한 이념이 전개되는 과정이 아니라, ‘대화’와 ‘웃음’을 통해 인간의 상상력이 종합되고 역사 속에 풀려나오는 과정으로 묘사했다. 그가 보기에 문화는 평범한 민중들의 삶 자체가 일으키는 사건에 다름 아니었고, 이는 ‘민중문화’를 노래하던 80년대의 분위기와도 잘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더구나 혁명의 고향인 러시아 출신의 이론가라는 사실은 바흐찐을 ‘신화적’ 위광 속에서 조명하기에 충분하게 만들었다... 더보기
문명과 야만 사이 시작하며 문명화란 것이 야만의 정복과 서구문명의 이식과정에 다름이 아님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지난 500여 년 간의 세계의 문명화와 서구 지배의 역사의 배경에는 이성과 합리주의라는 사상의 흐름이 뚜렷이 새겨져있다는 것도 이젠 상식이 되었다. 인간의 보편적 특성과 능력의 총체를 문화라고 하고, 그 문화의 능력으로 산출된 모든 유산을 문명이라고 하는 하나의 정의(定義)가 있다. 이 정의를 따르자면 근대이후의 전 세계적 문명화과정과 그 산물은 서구인의 특성과 능력으로 만들어진 유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근대 서구의 역사는 이성과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계몽주의와 진화론을 양식으로 삼아 야만의 타자들을 정복해온 역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서구가 아닌 세계에 대한 편견과 차별로 점철된 역사이며.. 더보기
[책리뷰] 아베코보, 모래의 여자 읽는내내 입안에 모래가 까끌거리는 느낌이 들게하는 소설이었다. 몸에 달라붙은 모래 알갱이들을 털어 내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혹시 나도 모래구덩이에 있지는 않은지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탈출을 꿈꾸는 주인공. 그가 꿈꾸는 탈출은 구속을 전제로 한다. 숨막히는 도시 생활로 부터의 탈출. 그 탈출의 동력은 '숨막히는 도시생활'에 대한 반응적 힘이다. 나 또한 그것이 자유인줄 알았다. 혹은 지금도 그런 자유를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자유를 꿈꾸는 동안, 나는 결코 을 강행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은 탈출과는 다른 힘을 필요로 하는듯 싶다. 주인공은 변종을 찾고 싶어 했다. 변종 벌레를 찾는 그 소소한 업적속에서 이름을 남기고 싶어했다. 어쨋든 그가 을 강행할 수 있었던 동력이 된 것은 도시생활.. 더보기
러시아와 들뢰즈, 혹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사유 * 러시아어판 최근 러시아를 다녀온 선배의 블로그를 통해 들뢰즈와 가타리의 (Tysyacha plato : kapitalizm i shizophreniya)이 작년 말 러시아어로 완역되었음을 알게 되었다(Yakov Svirsky 옮김, U-Faktoriya, 2010). 코뮨에서 생활하며 부딪혔던 사유와 삶이라는 문제 외에도, 박사 학위 논문을 제출할 때 들뢰즈와 가타리는 중요한 인용 전거 중 하나였다. 그때 “혹시나 이제라도 러시아어로 번역된다면 직접 번역하는 수고를 덜 수 있을 텐데...”하며 기다렸는데, 늦었지만 반가운 감이 들었다. 이제 이 러시아어로 출판됨으로써, 들뢰즈의 거의 모든 저술들을 러시아 도서관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된 듯하다(* 만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들뢰즈와 러시아는 대체.. 더보기
메시아의 도래와 진정한 예외상태 - 조르조 아감벤의 <남겨진 시간>에 관하여 은밀한 계보 우리에게 주권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전개하는 사상가로 알려진 아감벤에게 영향을 미친 사상가는 매우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단연 주목해야할 이름은 발터 벤야민일 것이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아감벤의 사유는 슈미트의 주권론과 대결 속에서 전개되고 있으며, 이 대결의 과정에서 벤야민은 아감벤에게 끊임없이 사유의 영감을 제공하는 원천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감벤은 정치에 대한 사유에서 벤야민의 계보에 서있는 것이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벤야민이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8번테제에서 언급하고 있는 ‘진정한 예외상태’라는 문구이다. 아감벤에 따르면, “진정한 예외상태를 도래시키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는 벤야민의 구절은 사실상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라는 슈미트의 테제를 직접.. 더보기
<곰에서 왕으로> 인디언의 삶을 통해 본 사랑의 기술 1. 굴다리 밑의 눈이 녹았다. 얼었던 지면이 물기를 빨아들이고 있다. 며칠 전 시원하게 쏟아 붓던 빗줄기도 모두 어디론가 스며들어 길을 적셨다. 한겨울 같았으면 생각도 못했을 일이다. 지난 겨울, 자전거라도 탈라치면 날리는 바람에 얼굴은 깨질 듯했고, 입김은 목도리에 성에를 남기곤 했다. 그때 땅은 얼어붙어 무엇 하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개의 오줌도, 자동차 바퀴가 지나간 아스팔트의 잿빛 물도, 지면은 천천히 빨아들인다. 나는 문득 사랑을 떠올렸다. 2. 성년이 되기 위해 사냥 훈련을 나간 인디언 남자가 있었다. 어느 날 그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 그는 어떤 여성을 만나 사랑을 하는데, 이 여성은 염소 가죽을 둘러쓰자 염소가 되었다(!) 남자도 염소 가죽을 뒤집어써보니 그도 염소가 되었다.. 더보기
이 시대의 리얼리즘 - 편혜영의 <아오이가든> “썩은 돼지 사체가 퍽 소리와 함께 땅 위로 솟았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며칠 전 컴퓨터를 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기사 제목이다. 만약 몇 년 전쯤 이 기사 제목을 봤다면 어땠을까. SF영화나 장르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나 이 문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안다. ‘구제역으로 파묻은 돼지 사체가 따뜻한 날씨에 부패하면서 가스가 차 매몰지에서 솟아올랐다’는 설명을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말이다. 2월의 마지막 일요일인 지금은 하루 종일 비가 오고 있다. 이 비에 매몰지가 붕괴할지 모른다는 우려들이 쏟아지고 있고 어디선가 침출수로 의심되는 폐수가 쏟아졌다는 소문도 들린다. 연구실에서는 매주 월요일 문학 세미나가 열린다. 이 세미나에서는 주로 ‘.. 더보기
[책리뷰] 체게바라를 잃어버리다 | 뜨거운 여행 여행이란 일종의 거대한 ’아이러니’와의 조우가 아닐까 싶다. 여행자는 늘 자신의 일상이 아닌 바깥을, 존재해왔던 그대로 보고자 꿈꾸며 떠나기 마련이지만, 여행지가 일상인 현지인들은, 다름아닌 바로 그 여행자들때문에 닥쳐오는 변화들에 온 몸을 부딪쳐야만 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의사소통이 힘들면 힘들수록 더욱 더 ‘수줍은 신비’를 지닌 타자일 수 밖에 없는 이 양자는, 그래서 늘 서로에게, 어느 쪽으로든 변용의 계기를 선사하기 마련이다. 이 변용의 과정에서 ‘자신을 무너트리지 않은 채 꾸역꾸역 버티는 자’가 있는가 하면, ‘어느 순간 밝은 빛에 눈이 노출된 후 눈이 멀게 되는 자’도 있다. 박세열, 손문상의 은 이 중에서도 후자들의 경험담이라 할 만하다. 1951년의 체게바라가 산 파블로 나환자 .. 더보기
다케우치 요시미와 루쉰의 만남 다케우치 요시미의 “루쉰"을 읽고 작년 중순부터 노들 현장인문학에 합류했다. 내가 합류하기 전에 맑스의 자본을 읽었다고 했고, 내가 결합할 즈음에는 푸코의 저작을 열심히 읽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고 나서 작년 말경부터 '루쉰'의 소설과 잡감을 비롯해서 그의 전기를 읽고 있다. 물론 노들의 활동가분들과, 노들 야학학생들, 그리고 수유너머가 함께 세미나를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사실 루쉰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이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소개 받은 책이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사람의 평론집이었다. 그런데 이 분이 말하는 '루쉰'이라는 사람이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작년에 연구실에서 하는 “국제워크숍”에서 다니가와 간이라는 노동운동가이자 시인을 공부했었는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