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감면·할인 제도 없어져야"
- 꼬리에 꼬리를 무는 투쟁이야기' 남병준 정책실장
"감면·할인 제도 대신 직접 소득보장으로 바꿔야"
강혜민/비마이너 기자
장애등급이 높으면 복지를 더 많이 필요로 할까?
복지와 장애등급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남병준 정책실장의 설명이다.
“장애 1급이 2급보다 복지를 우선적으로, 더 많이 필요로 하는가? 복지가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다. 활동보조라면 1급이 2급보다 더 많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러나 수화통역 서비스라면? 이건 장애유형의 문제지 등급의 문제가 아니다.”
광화문역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장에서 27일 늦은 4시 20분 '꼬리에 꼬리를 무는 투쟁 이야기' 첫 번째 시간이 열렸다. 이날 이야기꾼으로는 남 정책실장이 장애등급제를 주제로 마이크를 잡았다.
남 정책실장은 장애등급과 유형에 따라 복지서비스가 전달되는 현행 복지체계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밝히며,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의 방향에 대해 제시했다.
특히 현재 등급에 따라 감면·할인을 받는 제도를 지적하며 이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감면·할인을 통해 간접적으로 주어지는 혜택을 장애인 연금이라는 직접 소득보장으로 돌리자는 것이다.
현재 복지 체계는 장애유형과 상관없이 등급에 따라 나눈다. 따라서 지체장애 1급이든 시각장애 1급이든, 모두 다 같은 ‘장애 1급’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지체장애인이 원하는 복지와 시각장애인이 원하는 서비스는 분명 다르다.
우리나라는 장애를 6개의 등급과 15개의 유형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15개의 장애유형에 속하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 장애인 복지카드를 받을 수 없다. 장애인 복지카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은 장애인 복지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는 의미다.
현재 한국에서 장애인 복지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장애인 등록을 하고 등급 판정을 받은 뒤 복지카드를 받아야 한다. 이것이 현재 한국 장애인 복지 시스템이다.
소득 문제는 어떤가. 장애 1급에게 2급보다 더 많이, 우선적으로 경제적 지원을 해야 할까? 장애등급과 소득은 어떤 관계인가?
남 정책실장은 묻는다.
“장애인차별금지법(아래 장차법)에서 장애 1급만을 장차법 대상으로 하면 어떨까? 1급이 더 많이 차별받으니 1급만을 차별 대상으로 하는 거다. 이렇게 되면 황당할 거다. 장차법에서는 장애등급을 따지지 않는다. 장애인 연금에서도 등급은 필요 없다.”
장애인연금은 장애인의 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소득 기준으로 연금을 보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행 장애인연금은 장애인 당사자의 소득 기준보다 장애등급을 우선으로 한다. 1, 2급 및 중복장애 3급을 장애인연금의 대상으로 하며, 이 중에서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 차상위 초과로 대상자를 한정한다.
남 정책실장은 우리나라 장애인복지가 등급으로 나뉜 이유는 “공무원의 행정편의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등급으로 줄을 세워 앞에서부터 대상자를 자른다. 앞에 서 있는 장애인 당사자들은 자신이 앞줄에 서 있으니 이를 당연히 생각한다.
만약 대상자를 뒤에까지 확대한다면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받는 복지의 양이 줄어든다며 반대한다. 장애인들끼리 싸운다. 정부는 그렇게 예산에 따라 자르기만 하면 된다. 남 정책실장은 “이러한 줄 세우기가 장애등급제”라며, 이 줄 자체가 없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장애등급제가 없는 복지 서비스, 정말 가능할까? 가능하다. 특수교육 현장에서는 이미 실행 중이다.
“2007년에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 만들어졌다. 아이들도 장애등급을 받아야만 특수교육을 받을 수 있나? 아니다. 특수교육법에 따르면 복지카드 유무는 따지지 않으며 특수교육 대상자임은 현장에서 판단한다. 아이들의 경우, 장애등록 안 하는 경우가 더 많다. 교육은 교육대로 가면 된다. 등급과 상관없다. 우리는 이제껏 복지와 장애등급이 상관있다고 속아 온 거다.”
이렇게 우리나라 복지서비스는 가구소득기준, 즉 부양의무제 기준과 장애등급제로 대상을 제한한다. 그러나 장애인 복지서비스 중 가구소득기준이 무너진 시점이 있다. 바로 2007년 도입된 활동보조제도다.
당시 정부는 활동보조 대상자를 장애 1급에 수급자로 한정했다. 수급자가 아니면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는 거다. 이에 반발해 장애인계는 단식에 들어간다. 23일간의 단식 끝에 차상위로 제한한 소득기준을 없앴다. 부양의무자 기준에 따라 수급자만을 대상으로 하던 복지가 활동보조서비스에서만큼은 없어진 것이다. 한국 복지제도 역사상 최초였다. 그러나 이때 장애등급제마저 없애지는 못했다.
“당시에는 대상을 1급으로만 제한하거나 6급까지 확대하거나 1급만 받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반대로, 그러므로 6급까지 열었어야 했다. 6급까지 열어도 1급밖에 받을 수 없다면 등급은 이미 필요 없는 것 아닌가. 현재 1급으로 등록된 장애인이 20만 명이 넘는데 그 중 활동보조서비스를 받는 장애인은 5만 명이다. 활동보조에서도 장애등급제 기준은 필요 없는 거다. 그런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장애등급제를 정부는 왜 잡고 있나. 이게 있어야만 예산이 통제되기 때문이다. 부양의무제도 같은 이유다.”
지난 3월 15일 장애등급제를 둘러싼 쟁점을 토론하는 자리인 ‘장애인계 장애등급제 대토론회’가 열린 바 있다. 당시 이 자리에는 장애인계 인사들과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 정충현 과장이 참석해 장애등급제 폐지와 이후의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토론회에서 복지부 또한 장애등급제 폐지에 동의하는 견해를 내비쳤다. 그러나 남 정책실장은 올해 안에 그에 관한 결과가 나올 것이나 그 결과는 썩 만족스럽지 않을 거라고 내다봤다.
당시 복지부가 내놓을 안은 ‘장애등급제’라는 이름만 바뀌고 내용은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 6급으로 나뉘어 있는 것을 중·경증, 혹은 최중증·중증·경증으로 나눈다는 것이다. 지난해 복지부의 연구용역 결과를 보면 일본식 방식을 참고해 여전히 의료적 기준으로 장애 정도를 구분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장애인계에서 주장하는 장애등급제 폐지의 핵심은 의학적 기준을 없애자는 것이다.
의학적 기준을 없앤다면, 그 후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개인별 지원체계다. 개인별 지원체계란 각각 원하는 욕구를 파악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스레 자립생활로 연결된다. 기존 시설 중심의 장애인 복지에서 벗어나 탈시설로의 방향전환이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나와 살며 개개인이 원하는 욕구를 지원받아 이 사회 주체로서 살아가게 된다. 이를 위해 활동보조인이 필요하고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해야 한다. 무엇보다 ‘소득’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제까지 장애인 소득보장에 대한 담론은 없었다.
소득보장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 남 정책실장은 장애인 소득보장을 위한 제도인 장애인연금이 ‘연금답게’ 제대로 지급되어야 하며, 현재 등급별로 이뤄지는 장애인 감면·할인제도는 아예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애등급제 폐지하자고 하면 감면·할인제도가 없어지는 것에 대해 걱정한다. 무슨 기준으로 감면·할인해주느냐고. 수십 가지 감면·할인 중 실생활에 주로 쓰이는 것은 자동차 관련 세금, 지하철·열차 할인 혜택 등 이동 관련 비용이다. 외국에는 감면·할인제도가 거의 없다. 대신 장애인에게 직접 연금을 지급한다.”
장애인 감면·할인이 하나의 ‘혜택’으로 크게 느껴지는 것은 장애인에게 지급되는 연금이 그만큼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연금의 본래 취지는 소득보장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장애인연금은 2010년 장애수당이 이름만 바뀐 수준이며 내용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현재 장애인연금의 최대치는 17만 4600원이다. 장애인연금은 국민연금을 내는 사람의 평균소득 5%를 지급하는 기초급여와 수급자의 경제형편에 따라 차등지급하는 부가급여로 이뤄진다. 기초급여는 9만 4600원이다. 이 금액이 국민연금 내는 사람의 평균소득 5%니, 반대로 국민연금 내는 이들의 평균소득은 9만 4600원의 20배가량이 된다. 장애인연금은 장애인에게 주어지는 연금이나 장애인의 현실과는 아무 상관 없이 책정됐다.
또한, 장애 때문에 발생하는 추가비용도 고려되지 않았다. 2011년 복지부 실태조사를 보면 장애인은 각종 재활치료나 보조기기 구매 등으로 월평균 16만 1천 원 더 든다. 중증장애인은 평균치보다 더 높아 추가비용이 23만 6천 원이다.
현재 1인 가구 최저생계비는 57만 원가량이며, 현금급여로는 46만 8천 원이다. 비장애인과 똑같은 수급비를 받아도 중증장애인은 비장애인 수급자보다 더 드는 추가비용 24만 원가량을 덜 받는 셈이다. 중증장애인이 수급비로만 살 수 없는 이유다. 그러므로 중증장애인일수록 장애로 인한 추가비용을 고려해 최저생계비가 비장애인보다 더 높아야 한다고 남 정책실장은 말한다.
“활동보조제도 도입 당시, 정부는 자원봉사가 있으니깐 활동보조를 제도로 도입하면 안 된다는 논리를 펼쳤다. 그러나 자원봉사를 믿고 내 인생을 설계할 수 있나? 활동보조가 안정돼야 자기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 활동보조가 기본으로 있고 자원봉사는 ‘플러스 알파’로 있는 거다. 있으면 좋고 없으면 없는 거다. 감면·할인도 똑같다. 기본소득으로 내 인생을 설계하고 그에 더해 감면·할인 있으면 ‘플러스 알파’로 이용하면 된다.”
‘여기는 장애인 할인 없나요?’라는 그 물음의 기저에는 장애인의 가난이 있다. 그러나 내가 장애인이라는 것과 가난하다는 것에는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나. 장애인에게 가난은 왜 당연해야 하나? 전체 국민 중 수급자는 3% 정도인데 전체 등록장애인 중 수급자 비율은 16.9%다. 비장애인의 5.5배다. ‘장애인이기에 가난하다’라는 연관관계에 대해 물어야 한다.
따라서 장애인에게 주는 ‘혜택’으로 여겨졌던 장애인 할인 또한 장애인에게 가해지는 차별이었다. ‘여기는 장애인 할인 없나요?’라고 묻지 않아도 당당히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탄탄한 소득보장이 필요하며 이를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소득보장액의 기준은 최저임금선이 되어야 한다.
개인별 지원체계와 탈시설 자립생활, 그리고 소득보장. 무엇하나 쉽지 않다. 그러나 이 모든 내용이 ‘장애인권리보장법’에 들어간다. 이 세 가지가 장애인권리보장법의 핵심이다.
장애인권리보장법으로 우선 장애인의 개념이 달라지며 탈시설 자립생활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 개인별 지원체계는 이미 발달장애인법에도 제시되어 있는 내용이다. 이를 발달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장애인으로 대상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남 정책실장은 “4월 내로 장애인권리보장법 안을 완성해 국회에 발의한 후 올곧게 제정할 수 있도록 투쟁할 계획”이라고 밝히며 이날 강의를 마무리지었다.
※ 이 글은 장애인의 주홍글씨 <비마이너>에 기재되었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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