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타는 장애인, 혹시 보셨나요?
- <동행취재> 1인시위 과정 자체가 또 하나의 싸움인 사람들
"버스요? 36세 평생에 올해 처음 타 봤어요"
강혜민/비마이너 기자
태풍 볼라벤이 거세게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간 29일 수요일에도 전국 50여 개의 버스정류장에서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주최로 ‘저상버스 100% 도입 전국동시다발 버스정류장 1인 시위’가 진행됐다. 이들은 “장애인도 버스 좀 같이 탑시다!”라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기존 계단이 있는 버스는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탈 수 없으니 계단 없는 버스, 즉 저상버스를 도입해서 장애인도 함께 버스 타자는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1인 시위를 하러 나오는 과정 또한 장애인에게는 ‘투쟁’이었다. 1인 시위가 아니라 1인 시위하러 나오는 과정 자체가 또 하나의 싸움인 사람들.
이날 수원역에서 1인 시위를 한 수원중증장애인독립생활센터(아래 수원센터) 자립생활지원팀 강민산 간사(36세, 뇌병변장애 1급)를 29일 이른 11시부터 동행 취재했다.
① 집에서 센터로, 중증장애인의 아침 출근
수원 권선구 세류사거리에서 수원센터까지 2.5km. 보통 택시를 이용하면 10분 이내에 도착한다. 버스를 이용한다면 25분 정도 걸린다. 그러나 강 간사는 세류사거리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수원센터로 11시까지 출근하기 위해 오늘도 새벽 6시에 일어나야 했다.
“아침 10시 20분 장애인콜택시(아래 장콜) 예약하려면 새벽 6시에는 일어나야 해요. 당일 예약만 가능해서 6시에 예약해야 탈 수 있거든요. 장콜 예약은 시간싸움이에요. 누가 나보다 빨리 예약하면 내가 못 탈 수 있으니깐…. 예약하고 다시 잤어요. 그리고 7시에 일어났는데, 아휴, 수원센터 가는 날은 아침부터 정신없어요.”
10시 20분에 예약한 장콜이 왔다. 기사는 택시에서 내려 강 간사의 탑승을 돕는다. 수원센터까지는 장콜로 15분가량 걸린다. 요금은 4,300원. 강 간사가 실제 낸 요금은 40%인 1,720원이다. 그러나 이 요금도 수입이 적은 강 간사에게는 부담스럽다. 출퇴근을 장콜로 하는 데 한 달에 5, 6만 원 정도 지출한다.
② 센터에서 수원역으로, 전동휠체어 타고 가기
매주 수요일에는 전장연 주최로 ‘저상버스 100% 도입 전국동시다발 버스정류장 1인시위’가 열린다. 오늘 강 간사는 수원역 버스정류장 1인 시위를 맡았다.
11시경, 수원역 1인 시위를 가기 위해 강 간사는 센터 활동가들과 나섰다. 수원센터에서 수원역 1인 시위 장소까지 거리는 800m, 도보로 15분 정도 걸린다.
수원역으로 가는 길, 인도가 매끄럽지 않다. 보도블록으로 이뤄진 인도는 중간 중간 블록이 깨져서 움푹 파여 있다. 그때마다 강 간사가 타고 있는 휠체어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소형자동차처럼 덜컹거렸다.
불안하게 달리던 전동휠체어는 인도가 끊기는 지점에서 멈췄다. 수원역 광장 방향으로 계속 가기 위해서는 인도에서 내려와 작은 건널목을 지나야 하는데 지금 서 있는 곳의 턱이 너무 높다. 전동휠체어엔 깎아지른 절벽과도 같은 높이다.
동행하던 활동가가 턱이 낮아 보이는 곳을 가리키며 “저쪽으로 돌아가요”라고 했다. 그러나 그곳도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에게는 아슬아슬한 높이다. “갈 수 있겠어요?”라는 활동가의 말에 강 간사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인다. 뒤에서 활동가가 강 간사의 휠체어를 두 손으로 잡아서 보조한다. 앞바퀴가 '덜컹'거리며 내려가고 뒷바퀴가 '쿵' 소리를 내며 내려왔다.
휠체어는 그렇게 다시 울퉁불퉁한 시내 거리를 달리다 마침내 수원역 맞은편에 섰다. 수원역 광장으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육교를 건너야 한다. 강 간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육교 위로 올라간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강 간사는 후진하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러나 후진하던 중, 휠체어가 육교 난간에 부딪힌다. 엘리베이터 한쪽이 육교 난간에 가로막혀 있어 휠체어가 편히 운전하기엔 공간이 넉넉지 않았다. 몇 번의 후진 끝에 휠체어가 무사히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왔다.
가까스로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강 간사는 잠시나마 시원하게 평평한 육교를 가로질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젠 육교를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앞엔 이미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서 계셨다. 어르신들 틈으로 휠체어가 조심스럽게 쑤욱 들어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온 강 간사는 내릴 때에도 꽤 애를 먹었다. 수원역 6번 출구 지상 엘리베이터 바로 앞에는 육교를 지탱하는 거대한 철근 기둥이 있었다. 그 기둥에 막혀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 엘리베이터를 쉽게 타고 내리기엔 공간이 넉넉지 않았다.
③ "장애인도 버스 같이 탑시다!" 수원역 1인 시위
수원역 광장 앞 버스정류장. 강 간사가 저상버스 1인 시위 팻말을 들고 있다. 사람들이 바쁘게 스쳐 지나며 강 간사를 흘낏 바라본다. 종종 유심히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수원역 버스정류장에서 한 시간여가량 1인 시위를 하는 동안 강 간사 앞으로는 수십 대의 버스가 지나갔다. 그러나 장애인이 탈 수 있는 저상버스는 잘 눈에 띄지 않았다.
길을 지나던 김양웅 씨(56세)는 “장애인이 전철 타는 건 봤지만 버스 타는 모습은 못 봤다”라며 “버스에도 장애인이 탈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천안에서 왔다는 김분열 씨(71세)는 “계단 버스 타는 게 아직은 괜찮지만, 계단 없는 버스가 더 좋다”라며 “서울에는 계단 없는 버스가 많지만, 지방에는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 이해엽 씨(21세)는 “수원에서 2-1번 저상버스를 한두 번 이용해봤다”라고 밝혔다.
이날 전장연이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면 현재 경기도 전체 저상버스 보급률은 8.7%다. 장애인이 탈 수 있는 저상버스는 열 대 중 한 대꼴도 되지 않는다.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아래 편의증진법)에는 장애인과 교통약자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저상버스, 특별교통수단의 도입을 의무화하고 있다. 편의증진법은 중증장애인들의 오랜 투쟁 끝에 2005년 제정됐으나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앞서 1차 편의증진 5개년 계획(2007~11년)에서 '2011년까지 전체 버스의 31.5%, 2013년에는 50%를 저상버스로 도입한다”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것은 지난 3월 국토해양부의 2차 5개년 계획(2012~16년)에서 뒤집어졌다. '2013년까지 저상버스 50% 도입'한다던 1차 계획이 2차에서 '2016년까지 41.5% 도입'으로 하향 조정된 것이다. 그러나 저상버스의 실제 도입률은 2011년까지 12%에 그쳤다.
특별교통수단 상황 역시 열악하다. 강 간사가 오늘 아침 출근에 이용한 장콜이 특별교통수단이다. 현재 수원 전체지역에는 15대의 장콜이 운행되고 있다. 그러나 편의증진법에 따라 수원시에서 도입해야 하는 법정대수는 44대다. 현재 29대가 부족하다. 또한 특별교통수단 법정대수조차 1·2급 중증장애인 200명당 1대로 정해 산출된 결과임을 고려할 때, 법정대수도 중증장애인 이동권을 충분히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다.
“살면서 버스를 딱 네 번 타봤어요. 나도 버스 타고 싶은데, 저 혼자 있으면 기사분들이 잘 안 세워줘요.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버스를 타려면) 저상버스에서 리프트가 내려오고 기사님이 버스 의자 접어서 안전띠를 매줘야 하는데, 바쁘면 사람들이 이런 거 안 좋아하잖아요. 그래서 나도 마음이 안 좋아요. 사람들이 좀 양보했으면 좋겠는데.”
강 간사는 “이런 상황 때문에 버스 탈 수 없는 게 마음 아프다”라면서 “그러니 비싸도 어쩔 수 없이 장콜을 이용하게 된다”라고 밝혔다.
④ 수원역에서 센터까지 83-1번 저상버스 타고 가기
한 시간 동안의 1인 시위를 마친 뒤, 강 간사와 센터까지 저상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수원역 4번 출구 버스정류장에서 수원센터로 가는 83-1번 저상버스를 기다렸다. 수원역 4번 출구 버스정류장은 마흔다섯 개의 각기 다른 노선버스가 서는 곳으로 평소에도 매우 혼잡하다. 그리고 그만큼 정류장 길이가 길어 버스가 어느 위치에 설지 종잡을 수가 없다.
10분여가 지난 뒤, 83-1번 저상버스가 도착했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탄다는 것을 알리자 버스에서 휠체어 리프트가 나왔다. 휠체어가 리프트를 타고 올라 버스 안에 들어서자마자 버스는 출발했다.
버스 내 휠체어를 고정할 수 있는 좌석과 안전띠가 있지만 강 간사는 이날, 안전장치를 이용하지 못했다.
버스 기사는 “내가 왜 의자 접고 안전띠를 매주어야 하느냐”라며 “다다음 정류장에서 내릴 거면 그냥 가자”라고 했다. 강 간사는 버스 안에 있는 봉을 손으로 꽉 쥐며 흔들리는 몸을 그곳에 의지했다. 손으로 봉을 잡지 못하는 중증장애인이 탔더라면 더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⑤ “정류장에서 내려 센터까지 가기도, 쉽지 않네”
수원역에서 수원센터까지는 버스정류장으로 두 정거장이다. 버스에서 내린 강 간사는 처음 와보는 장소에 떨어진 것처럼 불안한 기색을 띠면서 “여기가 어디지?”라며 당혹해했다. 내비게이션으로 장소를 확인하니 버스정류장은 수원센터에서 도보로 4분 거리였다. 길을 건너 조금만 가면 센터였다. 그러나 이곳에서 버스를 단 한 번도 이용해본 적 없는 강 간사에게는 너무 낯선 곳이었다.
길 건너 센터로 가기 위해 건널목 앞에 섰다. 그런데 건널목 턱이 높다. 휠체어는 또다시 덜컹거리며 겨우 내려갔다. 그러나 맞은편에 도착해 건널목에서 인도로 올라가지 못했다. 높은 턱에 가로막혀 바퀴는 그 자리에서 공회전했다. 그동안 건널목 신호등은 빨간불로 바뀌어 있었다. 건널목 앞에 서서 인도로 올라가지 못하자 차들이 경적을 “빵빵!” 울려댔다. 10m 앞에 턱없이 경사로로 이뤄져 있는 길을 발견했다. 강 간사는 차도 갓길에서 급히 휠체어를 틀어 그쪽을 이용해 인도로 올라왔다. 강 간사 곁으로는 차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낮 12시 45분경 센터에 돌아온 강 간사는 그제야 긴 한숨을 폭 내쉬었다. 모자를 벗자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묻어났다. 집에서 나온 지 두 시간 반 만이었다.
강 간사는 “버스는 리프트가 내려오면 빨리 타고 빨리 내려야 할 것 같은 분위기 때문에 지하철보다 타기 더 어렵다”라고 토로했다.
“장애인이 타도 기사분이 (오늘처럼) 자리 안 봐줘요. (안전장치도 안 한 상태에서) 버스가 많이 흔들리니깐 머리도 어지럽고 위험해요. 장콜 흔들림보다 버스 흔들림이 훨씬 심하죠. 지난번에 한 번 혼자 탔을 때는 제가 내릴 곳을 미리 종이에 써서 드렸어요. 왜냐면 (언어장애 때문에) 사람들이 대부분 제 말을 잘 못 알아들으니깐…. 버스 타면 긴장되고 불안해요, 진짜.”
36세의 강 간사는 올해 버스를 처음 타봤다. 버스를 타면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봐서 “꼭 동물원 원숭이가 된 느낌”이라고 했다. 지하철을 처음 타본 것은 5년 전, 서른한 살 때다. 혼자 멀리 가본 적은 그때가 처음이라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겨우 찾아갔다. 지하철 갈아탈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지하철이 버스보다 편하기는 하지만 지하철이 마냥 안전한 것만은 아니다. 휠체어리프트도 불안하다. 강 간사는 승강장과 지하철 차량 사이에 휠체어 앞바퀴가 끼인 적도 두 번이나 있다고 했다. 강 간사는 앞바퀴가 끼이면서 몸이 앞으로 쏠려 크게 다쳤다며 “아찔한 순간이었다”라고 전했다.
“사실 보치아 운동하려고 작년에 여기 오게 됐어요. 이런 활동이 있는지 전에는 몰랐죠. 작년에 투쟁하는 모습 보면서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이해를 못 했어요. 사람들이 왜 또 우리만 무시하는지. 그런데 이렇게 싸워야만 예전보다 지금 더 편하게 살 수 있구나, 이젠 좀 알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게 너무 마음 아파요. 먹먹하고 마음이 무너져요. 장애인 대부분은 집에만 있는데 그게 싫어요. 나도 마음대로 다니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깐 화도 나고. 그래서 밖에 나왔어요. 26살 때, 전동휠체어 타게 되면서 밖에 나오게 됐고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어요. 이동하기 어렵다고 집에만 있으면 사람들이 우리를 못 보잖아요. 사람들이 휠체어 탄 장애인들을 자주 봄으로써 의식이 많이 바뀌었으면 해요. 사실 장애인들만의 문제가 아닌데, 많은 사람이 함께 이런 문제를 해결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미래의 장애인들은 우리보다 조금 더 자유롭고 변화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 이 글은 장애인의 주홍글씨 <비마이너>에 기재되었던 기사입니다.
<버스를 타자>, 2002 (축약본)
<장애인도 고속버스 타고 고향에 가고 싶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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