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등급제, 누리꾼에게 답한다
김유미/노들장애인야학 교사
4월 20일 장애인의 날. 그날을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만들겠다며 여기저기 데모하러 다니기 바쁜 즈음,기자들은 우리를 찾아다녔다. 동숭동 노들야학으로 노컷뉴스 기자가 찾아와 야학 학생과 교사 한 명을 인터뷰해 갔고, 그 기사가 어느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에 실렸다. 기사는 우리가 열심히 싸우고 있는 주제인 장애등급제 문제를 좀 다루고 있었다.
기사 제목은 '“장애인이 한우입니까”…장애인 울리는 등급제'. 포털의 힘인가, 댓글이 왕창 달렸는데, 내용이 좀 거시기하다. 장애인 이동권, 교육권 문제를 이야기했을 때와 반응이 사뭇 다르다. 장애등급제라는 것이 대중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제도구나 싶은 것이, 설명이 많이 필요한 싸움이 되겠구나 싶다. 댓글을 보며 처음엔 기분이 나빴지만, ‘무플’ 아닌 ‘악플’에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 모를 그들의 댓글에, 꼼꼼히 댓글을 달아주고 싶은 마음에 남병준 님(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2012년 4월 19일자 노컷뉴스, “장애인이 한우입니까”…장애인 울리는 등급제 기사에 달린 누리꾼 의견 134개를 분석해 공통된 내용을 추려 8개의 질문으로 만들었다. 내용은 누리꾼이 묻고 남투사(남병준)가 답하는 식으로 정리했다.
누리꾼 : 학생들도 내신 등급이 있고, 신검 받아도 등급이 나오고, 신용도 등급이 있고, 기능사 자격증도 등급이 있고, 등급은 장애인한테만 있는 게 아니다. 등급 나오면 다 한우냐? 행정, 제도상 필요해서 쓰는 건데 왜 시비냐?
남투사 : 학생들 내신등급과 신용등급 같은 것도 나쁜 거지만, 그래도 한 가지 지표에 불과한데 장애등급은 자격증이 아니라 신분증이거든요. 학생들 학교생활까지 내신 등급별로 3급 이하는 학교 버스도 못 타고, 4급 이하는 급식도 못 받게 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런 세상은 어떨까요? 할머니 1급 노인, 할아버지 2급 노인, 어머니 2급 회사원, 아버지 5급 비정규직, 동생 4급 학생. 우리 동네 2급 지역. 우리 집 3급 주택…. 이런 말 하시는 분들 인권의식은 높지 않아 보이는데, 인권의식 등급 매겨서 등급 낮은 분들 공공장소 출입 못하게 한다고 인권의식이 높아질까요?
누리꾼 : 장애인 되면 혜택이 많은 게 사실 아닌가? 국민 세금으로 혜택 주는 건데, 철저하게 해야 한다. 장애등급이 그렇게 싫으면 장애인 등록하지 마라.
남투사 : 혜택이라는 말은 하지 마세요. 복지제도가 혜택인가요? 마이너스(-) 상태로 사는 사람들을 남들과 비슷한 상태로 살도록 하자는 걸 혜택이라고 부를 수는 없겠죠. 비정규직 되면 혜택받나요? 직장 잃으면 혜택받나요? 가난한 집에서 아이 낳으면 혜택받나요? 실업급여 같은 것은 혜택이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이라고 불리는 거예요. 없으면 사람의 목숨과 사회의 유지가 힘들 정도로 절망적인 세상이 된다는 것이죠. 국민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인데 철저하게 해야죠. 철저하게 장애인의 삶에 필요한 것이 뭔지 따져봐야죠. 철저하게 따지기 싫어서 대충 등급 매겨놓고 1급이면 오케이, 2급이면 안 돼요 하는 게 무슨 철저한 복지입니까?
장애등급 매기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정도인데, 그나마 일본조차 등급으로 복지서비스를 제한하지 않으며, 등급제 자체가 유명무실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장애등급을 매겨서 획일적으로 서비스를 제한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답니다. 힘없는 사람들 앞에서 내 세금이라고 큰소리치지 마시고, 정부 공무원도 국민 세금으로 일자리 준 거고, 청와대 높은 분도 국민 세금으로 일가친척, 연인들 뒷돈까지 챙겨주고 있는데, 그런 것에 좀 철저하면 어떨까요?
누리꾼 : 우리나라가 예산이 넘쳐나는 것도 아닌데, 부족한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려면 등급제가 필요하다.
남투사 : 예산이 없다고요? 예산이 왜 없을까요? 맨날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을 자랑하고 선진국 어쩌구 하면서 정작 복지수준은 비교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복지예산이 OECD 국가 중 꼴찌라는 불편한 진실을 숨기면서 예산 없으니 어쩔거냐 하고 장애인에게 묻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없는 예산을 효과적으로 쓰기 위해 장애등급제가 있는 게 아니라 거꾸로 예산을 줄이기 위해 장애등급제가 있는 겁니다. 장애등급제가 없어진다면 활동보조는 활동보조가 필요한 35만 명에게로 갈 겁니다. 예산 때문에 5만 명으로 잘라낼 근거가 없어지겠죠.
장애인연금을 예로 들어 보죠. 다른 나라들은 장애등급제가 없으니 장애인연금은 장애인 중 경제적으로 빈곤한 사람들에게 지급됩니다. 한국은 1, 2급 장애인으로 신청 자격을 제한했지요. 뜻밖에 그 합리적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장애등급이랑 장애인연금이랑 무슨 상관입니까? 1, 2급 장애인만 가난하거나 1, 2급 장애인만 취직 못 하는 게 아닙니다. 장애인연금은 얼마나 경제적으로 어렵고, 얼마나 돈을 벌 기회가 없는지를 따져야 합니다. 활동지원제도는 일상생활에 거동이 얼마나 불편하고 어떤 형태로 자립생활을 지원할지를 따지면 됩니다. 그런데 왜 장애등급을 가지고 이런 걸 다 정합니까?
누리꾼 : 사람마다 장애 정도가 차이가 나는데, 등급에 따라 지원하는 게 맞지 않나? 중증장애인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려면, 등급이 잘 나뉘어 있어야 한다.
남투사 : 사람마다 장애 정도와 환경이 다릅니다.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과 IQ(지능지수)가 낮은 사람이 무슨 근거로 같은 1급 장애인, 2급 장애인이 되나요? 비슷한 정도의 몸 상태라고 해도 선천적인 사람, 중도에 장애인이 된 사람, 혼자 사는 사람, 가족과 함께 사는 사람, 장애가 중복인 사람 등 다 다른데, 장애등급 같으면 장애인의 상태가 비슷하다고 믿어야 하나요? 그래서 의사소견은 필요하겠지만 다른 나라처럼 장애등급제 없애고 복지제도를 신청하고 이용할 때 다른 환경들을 함께 고려하라는 거예요.
누리꾼 : 1, 2, 3, 4… 등급으로 나누는 게 싫으면 가나다라…로 해라.
남투사 : 장애등급제가 한국에만 있는 수치스런 제도니까, 내가 대통령이라도 외국사람 못 알아보게 한글로 가나다라로 부르고 싶을 겁니다. 혹시 이글 청와대에서???
누리꾼 : 1~6급 나누는 게 문제면 중증, 경증 정도로만 나누자.
남투사 : 현실적인 개선책으로 검토되고 있는 줄 압니다. 장애등급제를 하루아침에 폐지하기 어려우니 일단 중증, 경증으로 나누어 기존 복지제도를 유지하자는 의견이 학계에서도 많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애등급제가 있는 한 정부는 마음만 먹으면 등급 떨어뜨려 예산 줄일 수 있고, 장애인은 언제나 몇 점짜리 몸으로 인식될 뿐입니다.
누리꾼 : 장애등급제가 없어지면 너도나도 장애인 하려고 하지 않겠나? 장애인 혜택을 받으려고 사기 치는 인간, 가짜 장애인이 많아질 것이다. 이러다 전 국민이 장애인등록 하는 날 온다.
남투사 : 그 반대입니다. 장애등급이라는 획일적인 분류에 따라 복지제도가 정해져 있으니 소위 ‘가짜 장애인’도 나오는 거죠. 장애등급만 있으면 복지를 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정부가 장애등급 심사 강화하고, 심사 기준 어렵게 해서 등급 떨어뜨려서 예산 줄이고 하는 악순환이 계속된 거죠. 등급제가 없으면 등급에 관한 논란 자체가 없어지고, 의사소견뿐 아니라 개인의 환경과 욕구까지 면밀하게 파악해서 개인별 지원을 하는데 가짜 장애인 같은 건 거의 불가능해집니다. 그런데요, ‘전 국민이 장애인등록 하는 날’ 기다려지는데요. 장애인등록제와 등급제를 모두 없애려면 전 국민이 장애인등록 하는 방법이 있겠네요. 장애인차별이 없어지겠네요. 님 너무 멋지십니다.
누리꾼 : 등급제 폐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장애인복지 혜택이 더 많아져서 처우부터 개선돼야 한다.
남투사 : 우리나라 복지제도요. 이제 근본부터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예산도 중요하고, 복지제도 확대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도가니’ 같은 사태는 양적 확대로만 해결이 안 되는 문제입니다. 한국의 복지 제도의 근본적 문제가 ‘장애등급제’로 상징되는 행정편의주의, 그리고 ‘도가니’로 상징되는 시설보호중심의 복지제도가 아닐까요? 복지를 행정편의를 위한 장애등급 기준이 아니라 장애인의 생활환경에 맞추어 제공하자는 것, 시설에 격리수용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남들처럼 살도록 하자는 것이 지금 장애인운동의 핵심입니다.
* 이 글은 <노들바람>에 기재되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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