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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_철학.사회

[봄날엔 맑스] 충돌하는 사회들

[봄날엔 맑스]



충돌하는 사회들

- 칼 맑스, <부르주아지의 반혁명>, 1849.



전주희/수유너머N 회원





독일 3월 혁명


1840년대 독일에서는 알콜 소비가 크게 늘어났다. 자본주의 발전이 영국과 프랑스에 비해 더디게 진행된 독일에서 재빠르게 산업자본가가 되지 못한 대다수 영세 부르주아지들은 죽을 맛이었을 게다. 하물며 노동자들의 삶이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예나 지금이나 술은 미래로 난 출구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의 ‘하루’를 넘길 수 있게 해준다.

막막하기만 한 독일의 프롤레타리아트에게도 1848년 프랑스 혁명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게 되었고, 기꺼이 혁명의 시대와 함께 출렁거렸다. 독일의 3월 혁명은 그렇게 시작 되었다. 혁명은 1848년 3월 베를린에서 시민 폭동이 발생한 것으로 시작되었지만, 4월부터 시작된 반혁명의 기도는 그해 12월 혁명을 무화시킬 정도도 맹렬했다. 당시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마치 혁명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이는 것인양 입헌군주제를 도입하고 스스로를 입헌군주로 셀프임명하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정치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었다. 







반혁명의 혁명


반혁명이란 무엇인가? 통상 새로운 질서를 원하는 세력들이 혁명을 일으켰을 때, 혁명에 불만을 품은 구세력들이 혁명을 무화시키려는 정치행위를 반혁명이라고 한다. 때문에 반혁명은 혁명에 반하는 모든 것이다. 그런데 맑스는 이러한 반혁명을 혁명이라고 한다. 

혁명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단 한번의 단절이 아니다. 혁명은 난폭하면서도 매끈한 절단면을 가지고 있지 않다. 혁명은 반혁명을 불러들인다. 반혁명의 운동이 개시되었다는 것은 여전히 혁명이 종료되지 않았다는 것의 반증이다. 맑스는 1848년 당시 혁명의 기운이 무참하게 진압된 12월의 상황 속에서 혁명은 패배한 것이 아니라, 혁명의 지반위에 여전히 있음을, 혁명이 운동 중임을 말한다. 그리고 진행 중인 ‘혁명의 운동’을 분석한다. 그는 혁명이란 늘 반혁명이 뒤따른다는 혁명의 일반 법칙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독일의 반혁명이 구체적인 조건 하에서 어떻게 운동하고 있는지를 검토한다. 


맑스는 왜 독일의 반혁명을 분석하려고 하는가? 

독일의 혁명은 1648년의 영국 혁명과 1978의 프랑스 혁명과 비교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맑스는 영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은 결코 영국의 혁명, 크랑스의 혁명이 아니라 ‘유럽적 규모의 혁명’이었다고 말한다. 왜? “그 혁명들은 새로운 유럽 사회를 위한 정치 질서의 선언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혁명은 부르주아지 혁명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나? 맞다. 맑스는 이 혁명들에서 승리한 것은 부르주아지라고 말한다. 맑스는 부르주아지 혁명들의 양상을 검토하면서 ‘혁명’이라고 불릴 수 있는 싸움의 특수성을 추출한다. 혁명은 국소적 분쟁이나 당파들간의 투쟁과는 다르다. 싸움의 범위나 양적인 규모면에서의 차이가 아니라 그 싸움의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다. 

혁명이란 새로운 질서의 창출이자, 낡은 질서에서 숨막혀하는 ‘세계의 욕구’를 표현하는 보편성의 획득이다. 영국이나 프랑스 혁명이 유럽적 규모의 혁명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혁명들의 파급력이나 성공여부가 아니라 ‘세계의 욕구’를 담아내는 새로운 질서의 선언들이었다는 점에서이다. 

영국과 프랑스의 부르주아 혁명을 분석하면서 맑스는 독일의 3월 혁명을 평가한다. 안타깝게도 독일 혁명에는 “이 모든 것들 중 아무 것도 없었다.”



“3월 혁명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새로운 사회를 건립하는 것이 아니라 파리에서 죽어 버린 사회를 베를린에서 재생시키는 것이었다.”

-맑스, <부르주아지와 반혁명>, 맑스엥겔스 선집 1권, 489.



독일 부르주아지의 무능력함은 여기에 있다. 그들은 1789년의 프랑스 부르주아지들과는 달리 낡은 사회의 대표자들인 왕권, 귀족에 대항해 사회 전체를 대변하는 계급이 아니었다. 독일의 부르주아지는 왕권과 대립하고 있었지만 인민들에 대해서도 대립하고 있는 하나의 ‘신분’에 불과했다. 

그들은 왕권을 중심으로한 지배세력에 대항해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기 위해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지도, 자신들의 세력아래 인민들을 포섭하지도 못한 무능력함으로 혁명기간 내내 동요했다. 그리고 그 무능력함은 왕권과 교섭하고 타협하려 함으로써, 이미 과거의 세력이 되어 버린 왕권을 다시 불러들임으로써 혁명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리려는 몰염치함으로 나타났다. 









법적 지반과 혁명적 지반


이러한 취약한 혁명에도 불구하고 혁명 중인 상태는 1848년 내내 지속되었다. 독일의 이러한 상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맑스는 1848년 <신라인신문>에 연재한 기사 <부르주아 혁명과 반혁명>에서 ‘법적 지반’과 ‘혁명적 지반’을 대립시킨다. 그리고 왕권 세력의 반혁명적 기도를 혁명적 지반위에 올려 놓는다. 



“우리의 지반은 법적 지반이 아니라 혁명적 지반이다. 이제는 정부쪽도 법적 지반이라는 위선을 포기했다. 정부도 혁명적 지반위에 섰다. 왜냐하면 반혁명적 지반 역시 혁명적인 것이므로”


-맑스, <부르주아지와 반혁명>, 맑스엥겔스 선집 1권, 480.



이에 따르면 반혁명은 혁명의 꺾인 고갯길이 아니다. 반혁명은 혁명이 진행 중에 있다는 구체적인 표현이다. 이것은 혁명의 방향을 다른 방향으로 틀어버리려는 또 다른 힘이 개입한 운동이다. 혁명의 다음 순서에 오는 반혁명은 혁명 이전을 그대로 반복할 수는 없다. 절대왕정은 혁명을 경유해 겨우 입헌군주제로 되돌아 왔을 뿐이다.  


반혁명이 여전히 혁명의 지반위에 놓여있다면, 혁명의 반대편에는 ‘법’이 놓여있다. 반혁명은 혁명의 지반위에서 운동하고 있지만, 혁명의 운동을 중단하기 위한 반동적인 운동이라는 점에서 ‘법적 근거’라는 외피를 뒤집어쓰고 운동한다. 그리고 법적 근거에 기반해 ‘안전’을 구호삼아 군대를 동원하고 혁명세력을 사회로부터 분리한다. 

맑스가 반혁명을 혁명의 지반위에 놓으려고 했던 두 번째 이유는 ‘법적 지반’의 외피를 쓰고 운동하는 반혁명의 성격을 규명하기 위해서이다. 즉 그들이 근거하는 법적 지반은 허위이다! 지금은 여전히 혁명이 운동 중에 있다! 혁명이란 무엇인가? 낡은 권력은 부서졌고, 새로운 질서는 선언된 상태. 아직 새로운 질서가 구축되기 전, 그래서 부단히 운동 중인 상태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이란 존재하는가? 낡은 법은 무효가 되었고, 새로운 질서에 걸맞는 법은 마련되지 않았다. 인민에 의한 헌법 제정 의회는 반혁명 세력들에 의해 노골적으로 무시되고 있고 봉건 세력을 대표하는 지방 의회가 ‘법의 지반’을 따지며 혁명세력을 몰고 있는 것이 맑스 앞에 펼쳐진 1848년 12월 독일의 상황이다. 



"법적 지반은, 마치 혁명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고 연합 지방 의화가 혁명 없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라고 한 것처럼, 3월 이후에도 3월 이전과 마찬가지의 입장에서 부르주아지가 왕권과 교섭하려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법적 지반’은 인민의 권원인 혁명이 정부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사회 계약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


-맑스, <부르주아지와 반혁명>, 맑스엥겔스 선집 1권, 494.






양립할 수 없는 두 사회의 충돌


맑스는 혁명이 종료되었다고 선언하고 왕권과 타협한 반혁명 세력의 시도에 대해 혁명이 벌려놓은 간극이 돌이킬 수 없고 봉합될 수 없다는 점에서 ‘사회적 심연’이라고 말한다.

앞서 말한 대로 혁명은 새로운 욕구의 보편적인 표현이다. 그런데 새로운 욕구는 어떻게 등장했을까? 

중세적 생산양식은 토지의 소유와 그에 따른 욕구들의 체계이다. 하지만 공업과 상업이 중세적 생산양식의 바깥에서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욕구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욕구는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물질적 생산양식을 필요로한다. 이 때문에 혁명이 일어난다.

농촌의 삶과 도시적 라이프 스타일은 다르다. 이 둘은 한 사회안에서 타협하고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적인 생산양식하에서 둘 중 하나가 포섭되어 재구성된 것이다. 즉 중세의 농민과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농민의 욕구 사이에는 봉합될 수 없는 ‘심연’이 놓여있다. 

지배적인 생산양식과 그에 따른 새로운 욕구의 출현. 이는 혁명이 무화되거나 ‘화해’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닌 물질적이고 구체적인 조건이다. 따라서 혁명은 법으로 중재될 수도 없고, 세력들 간의 협정서로 타혐될 수 없다. 맑스는 혁명이 양립할 수 없는 두 사회의 충돌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하고자 한다. 혁명이 반혁명에 의해 공격당하고 혁명세력들이 내분에 휩싸여 있을 12월의 독일에게 맑스는 다시금 혁명이 벌려놓은 심연을 확인하고자 한다. 반혁명의 목소리는 혁명을 아무것도 아닌 헤프닝으로, 수습되어야 하는 재난으로 만들고 싶어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