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경영’이라는 무한궤도
- 한국형 호모 에코노미쿠스에 대한 단상 -
지영/수유너머N 회원
1. ‘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이 강동원과 송혜교 주연으로 영화화되었다.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영화의 원작인 소설 속에는 ‘조로증’에 걸려 죽음을 향해 전력 질주해 가는, 의연한 소년의 모습이 등장한다. 17살 때 아들을 낳고 지금은 34살이 되었지만 ‘여전히’ 철이 없는 부모의 고통과 자라기 전에 늙어 버리기 시작한 소년의 이야기가 작품 속에서 교차한다. 작품은 소년이 죽음을 맞는 것으로 끝나고 있지만 천진함과 낙천성을 지닌 소년의 성격으로 인해 이 작품의 제목은 기대감의 표현인 ‘두근두근’ 내 인생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우리의 시대 현실과 연결시켜서 생각해 보면 여기에서의 “두근두근”은 기대감의 표현이 아니라 두려움의 표현을 지닌 것으로 바뀔 수 있다. ‘두근두근’이라는 말은 심장의 움직임과 관련되어 기대감과 두려움을 모두 표현할 수 있지만 전자와 후자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전자가 죽음 앞에서도 버릴 수 없었던 삶에 대한 희망을 나타낸다면, 후자는 이 시대 청년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대변한다.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이 작품의 주인공을 “자라기 전에 늙어버린” 이 시대 청년들에 대한 은유라고 볼 수 있다면 말이다.
2. 근대적 규율 주체의 탄생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근대적 규율 주체가 만들어지는 방법에 대해 상술하였다. 푸코의 논의에 따르면 규율 주체는 학교, 공장, 감옥, 군대, 병원 등의 공간에서 주로 만들어지는데, 그 중에서 우리가 가장 보편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은 학교이다. 학교는 인간의 신체를 부분 동작으로 끊어서 관리하고, 시간표와 일람표를 매개로 분절된 시간 속에서 적응하는 주체들을 생산해낸다. 그리고 시험이라는 권력 장치를 사용하여 학교에서 배운 것을 주체가 내면화하게 만든다.
이처럼 인간 개개인의 신체에 작동하는 미시권력을 통해서 근대인들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원하는 인간형으로 변모해 나간다. 정해진 시간표대로 움직일 수 있고, 기계의 속도에 따라 작업할 수 있는 규율 주체는 이렇게 탄생하였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규율 주체의 특성을 자신의 몸 안에 새긴 채 오늘도 학교에 나가 교육을 받고, 직장에 다니며 일상을 살아간다.
3. ‘스펙’, 자기 관리의 힘!?
그런데 이 글에서 주목하는 것은 수많은 규율 주체 중 스펙을 쌓기 위한 계획에 치중하는 대학생들이다. 이들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근대적 교육을 통해 규율 주체로서의 면모를 체득했을 뿐 아니라 그 규율의 메커니즘으로 자신의 삶을 구성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학교에서 감시의 방식으로 작동하던 미시권력의 장에서뿐 아니라 자신이 혼자 있는 순간에도 끝없이 자기 관리를 하는 인간형들이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 고3 학생들은 수능을 한 달쯤 앞 둔 이맘때가 되면, 수능이 끝나면 무엇을 할지에 대해 고민한다. 이 학생들의 계획은 대개는 비슷한데, 여학생의 경우라면 아르바이트, 성형수술, 다이어트, 배낭여행 등을 수능 후의 계획으로 잡아 놓는다. 이러한 항목으로 구성되는 계획은 대학교 1학년 학생들도 예외가 아니다. 다만 대학생들에게는 영어 공부나 인턴십 등 취업을 위한 준비 과정이 주요한 계획으로 자리 잡는다. 이제 대학은 취업을 위해 ‘스펙 쌓기’를 해야 하는 산업 예비군의 훈련장 같은 곳이 되었다.
4. ‘취준생’이라는 새로운 직업군
토익 900점이 넘지 않으면 취업이 안 되고, 어학 연수 경력이 없으면 자신의 이력서가 초라하다고 느끼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나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처럼 불가능한 일은 아니더라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이루기에는 요원한 일이 되었다. 이와 같은 사회의 분위기는 직업란에 ‘취준생(취업준비생)’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취업 포털 사이트 ‘인크루트’의 광고에 등장하는 것처럼 취준생 중 95% 가까이가 불안 증세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이 회사의 광고에는 취준생들의 아버지를 뉴스에 초청하고 그 화면을 취준생인 자녀들이 보게 함으로써 감동을 자아내는 전략이 나타난다. 광고는 취업하기 어려운 사회적 현실에 대해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가족들의 위로를 감동 코드로 전환하는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짜인 광고에서 보여주는 핵심은 ‘취준생=위로가 필요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5. 한국형 호모 에코노미쿠스
2014년 9월을 기준으로 20대의 실업률은 8.6%(통계청 자료)로 조사되고 있지만, 통계 제작의 한계를 감안할 경우 실질 실업률은 훨씬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히려 대학을 졸업한 후의 취업률에서 나머지에 해당하는 부분이 실업률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지 모른다. 2013년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문대학 졸업생의 취업률은 61.2%이고, 대학 졸업생의 취업률은 55.6%이다. 이 비율은 졸업생 중 절반 가까이는 본격적인 경제 활동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푸코의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에는 ‘호오 에코노미쿠스’, 즉 ‘경제적 인간’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인간형이 등장한다. 푸코는 신자유주의가 막 출현한 순간에 이미 자기 자신을 기업처럼 경영하는 인간형에 대해 포착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등장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미시권력을 통해 구성되는 개개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푸코가 후기 저작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집단적 주체, 즉 ‘인구’이기 때문이다.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특수한 개인의 성향에 의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거시권력의 작동 방식에 부응하는 인구에 붙일 수 있는 이름이다.
푸코의 논의를 현재의 한국 상황에 대입해 보면, 아직 경제 활동의 장에 진입하지 못했기에 ‘스펙 쌓기’에 몰입하고 있는 ‘취준생’이야말로 가장 비극적인, 그리고 아직 예비적인 호모 에코노미쿠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자녀에게 투자할 수 있는 어머니의 관심과 시간이 아이들이 미래에 지니게 될 경제력의 주요 인자가 되었다. 그에 반해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스펙 쌓기’라는 미명 아래 자신의 취향과 활동을 모두 취업을 위한 요인으로 재구성해야 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6. 무한 경쟁과 ‘자기 경영’
요즘 대학생들과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된 그들의 스펙은 내가 생각했던 것을 훨씬 웃돌았다. 높은 영어 점수, 제2외국어 급수, 그 외의 자격증, 인턴십 경험, 어학 연수 등등. 현재의 나보다 그들의 스펙은 훨씬 훌륭하다. 비교적 어린 시절부터 대입에 대한 불안뿐 아니라 취업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아야 했던 이들의 ‘자기 경영’은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철저한 시간 관리, 꾸준한 외국어 공부, 더불어 외모 관리까지.
하지만 자신을 관리하고, 계발하고, 경영하는 것의 가장 큰 난점은 이 지난한 작업이 끝없이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무한 경쟁’으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의 모토가 바로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유지시키는 메커니즘 속에 녹아 있다. 이 회로 속에서 학생들은 경험을 통해서 삶을 터득하는 성장의 과정 대신에 자기를 소진시키면서 ‘노쇠’를 경험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두근두근 내 인생』의 주인공이 안고 있는 ‘조로증’이라는 고통스러운 병마를, 많은 이들이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겪고 있는 시대가 바로 지금,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참고 문헌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창비, 2011.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오생근 역, 나남출판, 2005.
미셸 푸코,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오트르망 역, 난장, 2012.
'칼럼_철학.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슈_사회와 인간형성] 기호에 의한 소비는 왜 권력적 현상인가? (0) | 2014.11.10 |
---|---|
[이슈_사회와 인간형성] "당신은 '자유'롭습니다!" (0) | 2014.10.29 |
[이슈_사회와 인간형성] '강요된 (필요)취향'으로서의 빈곤 (1) | 2014.10.15 |
[이슈_사회와 인간형성] 미래를 저당 잡힌 노동자들: 새로운 코너 [사회와 인간 형성]을 시작하며 (0) | 2014.10.10 |
[봄날엔 맑스] 마트에 갔다가 맑스를 만났어 (0) | 2014.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