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에 의한 소비는 왜 권력적 현상인가?
- 조원광, 「한국소비사회의 등장과 미시권력의 변화」
고승환(수유너머N 회원)
1. ‘소비사회’란 무엇인가?
현대사회를 ‘소비’사회로 규정할 경우 ‘소비’란 다른 시대, 동시대라 하더라도 다른 형태의 사회와 구분되는 특징이 된다. 그리고 그 소비의 양상은 개개인에게 공통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친다. 「한국 소비사회의 등장과 미시권력의 변화」의 저자 조원광은 한국에서 1980년대부터를 소비사회라 규정하고, 이 사회가 이전의 사회와 어떻게 다른지 연구하였다. 논문에 담긴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 보면 다음과 같다. 1980년대 이후의 한국사회를 ‘소비사회’라고 한다면, 현대 한국사회는 소비를 통해 풍요롭고 행복한가? 그렇다고 할 수 없다. 사람들은 소비사회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압력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럼 왜 소비활동은 긴장을 동반하는가? 논문에 따르면 상품이나 서비스의 소비는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욕구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기호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문제는 상품의 기호는 개인이 마음대로 조작할 수 없고, 사회적인 상황과 장소에 따라 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소비는 일종의 권력 현상이다. 또한 생리적인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표준적 기호를 생산하라는 사회적 압력에 따라 일어나는 활동이라는 뜻이다.
2. ‘기호에 의한 소비’의 역사적 맥락
그렇다면 왜 소비는 필요가 아니라 기호에 의해서 이루어지는가? 저자는 기업의 전략, 정부의 정책변화, 그리고 중산층의 확대가 이러한 현상의 주요 원인이라고 파악한다. 1960~70년대 박정희 정권은 경제 성장을 위해 대기업을 중점적으로 지원했고, 수출을 증대하기 위해 근로자, 즉 소비자들에게 근검절약을 강조했다. 반면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전두환, 노태우 정권은 경제 주체간의 균형과 안정을 위해 물가를 안정시키려고 했다. 사실 안정화 정책은 경기를 위축시키기 마련인데, 국제적 환경 변화에 따른 호황 덕분에 경기가 좋아졌고, 중산층이 두터워졌다.
그렇게 늘어난 중산층은 자신의 정체성을 소비를 통해 표현하려고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이 사회의 기준에서 괜찮은 위치에 있고 정상적이라는 것을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표현하는 것이다. 논문에 따르면 이러한 기호가 구체적으로 만들어지는 데는 기업의 역할이 크게 작용한다. 기업은 광고를 통해 사회에서 인정하는 그럴듯한 기호와 상품 이미지를 결합시켜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그러면 여러 가지 기호 중에서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은 상품이 살아 남는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새로운 삶의 표준이 되는 상품의 기호를 소비해야만 하는 사회적 압력을 받는다. 그리고 그것을 따를 수밖에 없는 사회적 조건이 형성된다.
3. 소비사회의 출현에 대한 기존의 논의
한국의 소비사회에 대해 분석한 연구들은 이 논문 이외에도 많다. 그렇다면 소비사회를 다룬 수많은 논문들 중, 이 논문에서 특히 부각되는 부분은 무엇일까? 기존의 논문들은 주로 소비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특징이나 계급/계층별 소비양상을 자료를 통해 설명하는 정도였다. 이들은 사회에서 발견되는 현상을 보다 구체적인 자료로 보여주는 것에 그친다. 그러한 현상이 어떻게 일어났고, 왜 일어났는지, 문제점은 어떠하고 그 문제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적극적인 고민은 담겨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러한 고민의 일환으로 나온 것이 바로 조원광의 논문이다. 즉, 한국의 소비사회가 자연적이고 역사적인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 어떠한 권력의 메커니즘이 작동해서 출현했을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다.
<1980년대 현대 포니 엑셀 광고>
<2000년 형 카렌스 광고>
자동차 광고는 ‘기호에 의한 소비’의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이다.
4. ‘기호에 의한 소비’에 대한 본질적 사유
그렇지만 논문이 설명하는 것에 대해 100% 동의하긴 어렵다. 기호에 의한 소비가 이루어지는 분위기는 왜 조성되는 것일까? 논문의 주장처럼 이 과정에서 작동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기업의 판매 전략이기만 한 것일까? 논문이 기호로서의 소비를 설명하기 위해 기업의 판매 전략을 중점에 두는 것에는 일정 부분 의구심이 든다. 기업의 전략을 말하기 전에, 사회에서 인정받는 기호라는 것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기업이 판매전략을 세우기 위해 사용한 사회적 기호 또한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설명이 없다는 것은 소비의 주체인 대중들이 수동적인 상태로 사회 안에서 위계적으로 서열화되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있으려는 욕망을 자연스럽게 갖게 된다는 사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는 말이다.
오히려 대중들 혹은 그들의 취향은 위계화되어 있지 않고 다양하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실 아닐까? 그렇다면 왜 대중들은 사회 안에서의 서열화를 인정하고, 그 서열 안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욕망을 당연한 것처럼 느낄까?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아마도 자본주의가 내면화되면서 대중들이 자본의 욕망에 충실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자본주의가 바라보는 기본적인 관점은 질적으로 다른 가치들에 값을 매겨 양적인 가치로 전환하고, 그 양적 가치에 따라 가치를 위계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00만 원짜리 노트북은 3만 원짜리 책보다 값어치가 높다. 구체적으로 책의 33배 이상의 가치를 노트북은 가지고 있다. 이러한 양적 가치의 교환방식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질적 가치가 양적 가치로 바뀌는 과정에 대해서 의문을 던지기가 쉽지 않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미 사회가 그러하고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모두 그 시스템에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가치를 양적으로 서열화하는 방식이 개개인에게 내면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당시 기업의 전략이 대중들의 호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논문에서는 기호로서의 소비와 소비사회가 권력적 현상임을 우선적으로 언급하려다가, 소비 대중의 내면이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구성되는 것에 대해서는 간과하였다. 이러한 논의 진행 방식은 어떤 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탐구하는 것을 소홀하게 만들 수 있다.
5. 낯선 시선으로 소비사회 바라보기
이와 같은 맥락에서 소비사회의 히스테리, 즉 타인의 시선에 집착하고 불안해하는 사회적 압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우선 소비사회에서 나타나는 기호의 압력에서 벗어나 있는 사회가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에 속한 개인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상황과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소비사회가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특수한 상황 속에서 구성된 산물임을 깨닫고 그 사회를 낯설게 바라보는 것이다. 낯설게 본다는 것은 내가 아는 것이 세상의 전부가 아님과 반드시 옳은 것이 아님을 깨닫는 과정이다. 이미 자본주의 시스템이 세계적인 현상이 된 오늘날 자본주의에서 벗어난 사회, 즉 표준화되고 위계화된 기호가 없는 사회를 찾는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비사회를 낯설게 바라보기 위해 현실적으로 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적합한 방법은 자본화가 최근에 이루어진 국가나 공동체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개인의 기호를 드러내기 위한 소비에서 한걸음 멀어지기 위해 마음에 맞는 사람과 직접적으로 연대하여 고유의 정신을 실현할 수 있는 공동체를 구성해보는 일일 것이다.
'칼럼_철학.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슈_사회와 인간형성] 전세계적 자유주의 무역과 호모에코노미쿠스 (0) | 2014.11.26 |
---|---|
[에세이] [이철교2-5] 자본의 가치법칙을 넘어서는 관계를 생각해본다 (1) | 2014.11.24 |
[이슈_사회와 인간형성] "당신은 '자유'롭습니다!" (0) | 2014.10.29 |
[이슈_사회와 인간형성] '자기 경영'이라는 무한궤도 (0) | 2014.10.20 |
[이슈_사회와 인간형성] '강요된 (필요)취향'으로서의 빈곤 (1) | 2014.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