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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 고통에 깊이 연결되게 했던 문장 내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문장들.. 이 문장은 오래도록 내 마음과 머리에 남아 계속 생각나게 만들고 겹겹히 둘러쌓인 미로 속의 내 기억들을 들추게 만들었다. 스틸 사진처럼 남아있는 장면들.. 같은 반 친구들의 얼굴들.. 그 표정들... 존재감도 없이 숨죽이고 있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일찍이 두각을 나타내 보지 못한 사람들, 머리도 좋지 않고 어떤 특별한 능력도 없고, 인정도 결코 받아 보지 못한 사람들은 나의 관심주제이다. 어떻게 그들은 특별하고 독특할 수 있었던 능력을 모두 상실한 채 가족 안에서는 군식구처럼, 밖에서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에 억지로 자신을 끼워 맞추며 살까? 그들은 얼굴에서나 몸 전체에서 흐르는 불행을 걸친 채 눈을 들어 세상을, 상대방을 보지도 않은 채 시간에 떠밀려서 그 시간을 .. 더보기
[책리뷰] 아베코보, 모래의 여자 읽는내내 입안에 모래가 까끌거리는 느낌이 들게하는 소설이었다. 몸에 달라붙은 모래 알갱이들을 털어 내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혹시 나도 모래구덩이에 있지는 않은지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탈출을 꿈꾸는 주인공. 그가 꿈꾸는 탈출은 구속을 전제로 한다. 숨막히는 도시 생활로 부터의 탈출. 그 탈출의 동력은 '숨막히는 도시생활'에 대한 반응적 힘이다. 나 또한 그것이 자유인줄 알았다. 혹은 지금도 그런 자유를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자유를 꿈꾸는 동안, 나는 결코 을 강행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은 탈출과는 다른 힘을 필요로 하는듯 싶다. 주인공은 변종을 찾고 싶어 했다. 변종 벌레를 찾는 그 소소한 업적속에서 이름을 남기고 싶어했다. 어쨋든 그가 을 강행할 수 있었던 동력이 된 것은 도시생활.. 더보기
[영화리뷰] <혜화,동>이 선택한 것 한 번은 울고, 한 번은 웃고 을 두 번 봤다. 첫 번째 볼 때에는 ‘동일시’가 잘 일어나 눈물도 찔끔 흘렀는데, 두 번째 볼 때에는 ‘반동일시’가 일어나면서 화가 났다. 을 다시 보기까지는 두 달 정도의 기간이 있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이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머리 혼자 멋대로 이 양가감정에 대한 원인을 파헤쳐가기 시작했다. 영화는 감독의 ‘선택과 결단’에 의해 만들어지는 예술이다. 영화를 만들 때에 감독은 소재에서부터 시나리오, 콘티, 카메라의 위치, 쇼트의 크기, 빛의 양, 사운드, 편집에 이르기까지, 매 순간 순간을 ‘감독’으로서 선택하고 결단한다. 이러한 ‘감독의 선택’과 결단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무엇을’ 에 대한 것이고 다른 .. 더보기
러시아와 들뢰즈, 혹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사유 * 러시아어판 최근 러시아를 다녀온 선배의 블로그를 통해 들뢰즈와 가타리의 (Tysyacha plato : kapitalizm i shizophreniya)이 작년 말 러시아어로 완역되었음을 알게 되었다(Yakov Svirsky 옮김, U-Faktoriya, 2010). 코뮨에서 생활하며 부딪혔던 사유와 삶이라는 문제 외에도, 박사 학위 논문을 제출할 때 들뢰즈와 가타리는 중요한 인용 전거 중 하나였다. 그때 “혹시나 이제라도 러시아어로 번역된다면 직접 번역하는 수고를 덜 수 있을 텐데...”하며 기다렸는데, 늦었지만 반가운 감이 들었다. 이제 이 러시아어로 출판됨으로써, 들뢰즈의 거의 모든 저술들을 러시아 도서관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된 듯하다(* 만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들뢰즈와 러시아는 대체.. 더보기
[이슈] "세상은 아름다워(Die Welt ist schon)" 아이패드2가 출시된 11일, 뉴욕 피프스 애비뉴 애플스토어는 밤 늦은 시간까지 인산인해를 이뤘다. 두 시간 넘게 줄을 서야 매장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인파는 계속 몰려들었다. 애플에 따르면 일부 매장에서는 아이패드2를 사기 위해 늘어선 줄이 지난해 아이패드 출시 때보다 두 배 이상 길었다고 한다. 이날 아이패드2를 가장 먼저 구입한 사람은 러시아에서 온 정보기술(IT) 전문가였는데, 그의 행운이 단지 우연은 아니었던 것이, 사실 그는 전날 낮부터 비를 맞아가며 28시간 동안 줄을 선 결과였다는 후문이다. 애플을 선두로 하는 디지털 아이템들에 사람들이 미친 듯이 열광하고 있다. 그 작고 앙증맞은 기기들은 가볍고 편리한데다가 또 어찌나 섹시한지! 콤팩트한 디자인, 쉽게 흠집이 나지 .. 더보기
메시아의 도래와 진정한 예외상태 - 조르조 아감벤의 <남겨진 시간>에 관하여 은밀한 계보 우리에게 주권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전개하는 사상가로 알려진 아감벤에게 영향을 미친 사상가는 매우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단연 주목해야할 이름은 발터 벤야민일 것이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아감벤의 사유는 슈미트의 주권론과 대결 속에서 전개되고 있으며, 이 대결의 과정에서 벤야민은 아감벤에게 끊임없이 사유의 영감을 제공하는 원천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감벤은 정치에 대한 사유에서 벤야민의 계보에 서있는 것이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벤야민이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8번테제에서 언급하고 있는 ‘진정한 예외상태’라는 문구이다. 아감벤에 따르면, “진정한 예외상태를 도래시키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는 벤야민의 구절은 사실상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라는 슈미트의 테제를 직접.. 더보기
[에세이] 서울의 1. 교회 낮은 데로 임하오셔 이 도시와 꼭 닮은 집에 거하시지 2. 골목길 이 길에선 한 번도 부대낀 적이 없어 3. 거대도서관 불편하게 만드는 곳. 걷고 뒤지고 찾고 헤매는 곳 생산성을 강제하는, 그러나 바로 그 거대함 때문에 비효율적인 곳 붉은 구조물이 동선을 가로지르는 비합리적 공간 배치의 극치 국립중앙도서관 정보봉사실을 나는 좋아해, 싫어해? 걷고 뒤지고 찾고 헤매기 위해, 바로 그 불편함 때문에 내 발로 거길 또. 4. 철물점 과거, 현재, 미래의 조각들. 고철들? 무엇에 쓰이는 지 문외한의 눈으로는 절대 몰라 자질구지레한, 하드한, 서울 도처에 중심의 원소들 5. 상점 봉천동 구멍가게 할머니는 허리가 아프셔서 일어나 레종팝을 꺼내줄 수가 없으셨어 구멍가게에선 박카스를 팔지 않고 박카스 유사품.. 더보기
<곰에서 왕으로> 인디언의 삶을 통해 본 사랑의 기술 1. 굴다리 밑의 눈이 녹았다. 얼었던 지면이 물기를 빨아들이고 있다. 며칠 전 시원하게 쏟아 붓던 빗줄기도 모두 어디론가 스며들어 길을 적셨다. 한겨울 같았으면 생각도 못했을 일이다. 지난 겨울, 자전거라도 탈라치면 날리는 바람에 얼굴은 깨질 듯했고, 입김은 목도리에 성에를 남기곤 했다. 그때 땅은 얼어붙어 무엇 하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개의 오줌도, 자동차 바퀴가 지나간 아스팔트의 잿빛 물도, 지면은 천천히 빨아들인다. 나는 문득 사랑을 떠올렸다. 2. 성년이 되기 위해 사냥 훈련을 나간 인디언 남자가 있었다. 어느 날 그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 그는 어떤 여성을 만나 사랑을 하는데, 이 여성은 염소 가죽을 둘러쓰자 염소가 되었다(!) 남자도 염소 가죽을 뒤집어써보니 그도 염소가 되었다.. 더보기
[음악이야기] 구원의 노래| Bob Marley 'Redemption Song' 울음으로 시작된 노래 50대의 영국군 장교와 18세 자메이카 소녀 사이에서 태어난 한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홀어머니와 함께 자메이카 킹스턴의 빈민가, 트렌치 타운에서 자라났다. 폭력과 살인이 빈번하던 빈민가에서 아이는 살인 사건을 목격하기도, 얼굴에 칼을 맞기도 한다. 학교보다는 축구가, 공부보다는 음악이 좋았던 아이는 결국 열네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용접 공장에 취직한다. 그리고 바로 그 용접 공장 앞마당에서 운명처럼 훗날 스승이 될 ‘조 힉스(Joe Higgs)’를 만난다. ‘조 힉스’는 ‘힉스 앤 윌슨’이라는 듀오의 일원으로, 천편일률적인 사랑 노래가 자메이카 음악계를 지배하고 있던 그 시절, 간자(대마초)와 라스타파리즘으로 대표되는 흑인 해방 운동을 통해, 빈민가 사람들을 옥죄고 있던 극단적인 소.. 더보기
이 시대의 리얼리즘 - 편혜영의 <아오이가든> “썩은 돼지 사체가 퍽 소리와 함께 땅 위로 솟았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며칠 전 컴퓨터를 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기사 제목이다. 만약 몇 년 전쯤 이 기사 제목을 봤다면 어땠을까. SF영화나 장르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나 이 문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안다. ‘구제역으로 파묻은 돼지 사체가 따뜻한 날씨에 부패하면서 가스가 차 매몰지에서 솟아올랐다’는 설명을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말이다. 2월의 마지막 일요일인 지금은 하루 종일 비가 오고 있다. 이 비에 매몰지가 붕괴할지 모른다는 우려들이 쏟아지고 있고 어디선가 침출수로 의심되는 폐수가 쏟아졌다는 소문도 들린다. 연구실에서는 매주 월요일 문학 세미나가 열린다. 이 세미나에서는 주로 ‘.. 더보기
[책리뷰] 체게바라를 잃어버리다 | 뜨거운 여행 여행이란 일종의 거대한 ’아이러니’와의 조우가 아닐까 싶다. 여행자는 늘 자신의 일상이 아닌 바깥을, 존재해왔던 그대로 보고자 꿈꾸며 떠나기 마련이지만, 여행지가 일상인 현지인들은, 다름아닌 바로 그 여행자들때문에 닥쳐오는 변화들에 온 몸을 부딪쳐야만 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의사소통이 힘들면 힘들수록 더욱 더 ‘수줍은 신비’를 지닌 타자일 수 밖에 없는 이 양자는, 그래서 늘 서로에게, 어느 쪽으로든 변용의 계기를 선사하기 마련이다. 이 변용의 과정에서 ‘자신을 무너트리지 않은 채 꾸역꾸역 버티는 자’가 있는가 하면, ‘어느 순간 밝은 빛에 눈이 노출된 후 눈이 멀게 되는 자’도 있다. 박세열, 손문상의 은 이 중에서도 후자들의 경험담이라 할 만하다. 1951년의 체게바라가 산 파블로 나환자 .. 더보기
[영화리뷰] <경계도시2>, 다큐멘터리를 넘어선 다큐멘터리 다큐멘터리에 대한 오해 다큐멘터리는 허구가 아닌 현실을 직접적으로 다루면서 현실의 허구적인 해석 대신 현실 그대로를 전달하는 영화장르다. 그러나 다큐멘터리에 현실을 담기 위해서는 현실을 선택하고 자르고 붙이는 허구적인 해석을 해야만 하고, 이 역할은 감독이 한다. 다큐멘터리는 어쩌면 극영화보다 감독의 자리가 더 중요한 장르다. 미국의 의료보험제도에 대한 뚜렷한 비판적 관점을 가지고 있는 마이클무어감독은 에서 수익을 위해 환자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제도의 폐해를 그 특유의 직설화법과 블랙코미디적 방식으로 낱낱이 파헤친다. 마이클무어감독은 영화 속에 직접 등장하여 본인이 의도한 바를 적극적으로 이끌어 간다. 한편 10만 관객을 동원해냈던 에서 논란을 빚었던 ‘누렁이 눈물 씬’은 극영화 못지않은 감동의 순간이.. 더보기
다케우치 요시미와 루쉰의 만남 다케우치 요시미의 “루쉰"을 읽고 작년 중순부터 노들 현장인문학에 합류했다. 내가 합류하기 전에 맑스의 자본을 읽었다고 했고, 내가 결합할 즈음에는 푸코의 저작을 열심히 읽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고 나서 작년 말경부터 '루쉰'의 소설과 잡감을 비롯해서 그의 전기를 읽고 있다. 물론 노들의 활동가분들과, 노들 야학학생들, 그리고 수유너머가 함께 세미나를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사실 루쉰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이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소개 받은 책이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사람의 평론집이었다. 그런데 이 분이 말하는 '루쉰'이라는 사람이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작년에 연구실에서 하는 “국제워크숍”에서 다니가와 간이라는 노동운동가이자 시인을 공부했었는데.. 더보기
[영화리뷰] 정확한 거리두기가 성취한 영화미학 <아무도 모른다> 는 1988년 일본에서 발생했던 ‘나시 스가모의 버림받은 4남매 사건’을 실화적 모태로 하는 영화이다. 한 엄마와 각기 다른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4명의 아이들, 출생신고가 되어 있지 않아 공식적으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 그나마 어렵게 마련한 전셋집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큰아이를 제외한 나머지 세 아이는 말 그대로 그곳에 없는 아이들이 되어야 한다. 어느 날 엄마는 새로운 사랑을 위해 그 아이들을 떠나버리고, 아이들은 끝내 비극적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 6개월 동안 아무도 모르는 그들만의 삶을 살아낸다. 그곳에 있지만 그곳에 없었던 아이들의 유령 같은 삶. 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는, 한동안 일본 열도를 떠들썩하게 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 떠들썩함 속에는,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연민, .. 더보기
[이슈] 불편하다, 7080 코드 - 세시봉 콘서트에 대한 단상 불편하다, 7080코드 ‘세시봉’ 지난 설 연휴 인터넷 포털 사이트 인기 검색어이다. 이와 함께 지식인에는 ‘세시봉특집 보고 감동 먹은 1인입니다. 세시봉 특집에서 나온 노래 가사 좀 알려주세요~’ 등등 세시봉 관련 질문들이 올라왔다. 가히 전 국민적인 열풍. 갑자기 우리나라 사람들이 1960·70년대 포크 음악 역사를 공부하고 있나. 그럴 리가 없다. 이렇게 인터넷 포털이 시끄럽다면 전국민의 교육 매체인 방송이 뭔가 한 건 크게 터뜨린 것이다. 이번 대박 강의는 바로 M사의 놀러와 였다. 세시봉 특집 콘서트를 1, 2부로 나눠서 편성한 것인데 40년 전 불렀던 그 시절 그 노래를 그때 그 친구들과 우정의 하모니로 선보였다. (물론 나는 본방 사수는 안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운로드해서 봤다.) 그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