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 시대의 리얼리즘 - 편혜영의 <아오이가든> “썩은 돼지 사체가 퍽 소리와 함께 땅 위로 솟았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며칠 전 컴퓨터를 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기사 제목이다. 만약 몇 년 전쯤 이 기사 제목을 봤다면 어땠을까. SF영화나 장르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나 이 문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안다. ‘구제역으로 파묻은 돼지 사체가 따뜻한 날씨에 부패하면서 가스가 차 매몰지에서 솟아올랐다’는 설명을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말이다. 2월의 마지막 일요일인 지금은 하루 종일 비가 오고 있다. 이 비에 매몰지가 붕괴할지 모른다는 우려들이 쏟아지고 있고 어디선가 침출수로 의심되는 폐수가 쏟아졌다는 소문도 들린다. 연구실에서는 매주 월요일 문학 세미나가 열린다. 이 세미나에서는 주로 ‘.. 더보기
[책리뷰] 체게바라를 잃어버리다 | 뜨거운 여행 여행이란 일종의 거대한 ’아이러니’와의 조우가 아닐까 싶다. 여행자는 늘 자신의 일상이 아닌 바깥을, 존재해왔던 그대로 보고자 꿈꾸며 떠나기 마련이지만, 여행지가 일상인 현지인들은, 다름아닌 바로 그 여행자들때문에 닥쳐오는 변화들에 온 몸을 부딪쳐야만 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의사소통이 힘들면 힘들수록 더욱 더 ‘수줍은 신비’를 지닌 타자일 수 밖에 없는 이 양자는, 그래서 늘 서로에게, 어느 쪽으로든 변용의 계기를 선사하기 마련이다. 이 변용의 과정에서 ‘자신을 무너트리지 않은 채 꾸역꾸역 버티는 자’가 있는가 하면, ‘어느 순간 밝은 빛에 눈이 노출된 후 눈이 멀게 되는 자’도 있다. 박세열, 손문상의 은 이 중에서도 후자들의 경험담이라 할 만하다. 1951년의 체게바라가 산 파블로 나환자 .. 더보기
[영화리뷰] <경계도시2>, 다큐멘터리를 넘어선 다큐멘터리 다큐멘터리에 대한 오해 다큐멘터리는 허구가 아닌 현실을 직접적으로 다루면서 현실의 허구적인 해석 대신 현실 그대로를 전달하는 영화장르다. 그러나 다큐멘터리에 현실을 담기 위해서는 현실을 선택하고 자르고 붙이는 허구적인 해석을 해야만 하고, 이 역할은 감독이 한다. 다큐멘터리는 어쩌면 극영화보다 감독의 자리가 더 중요한 장르다. 미국의 의료보험제도에 대한 뚜렷한 비판적 관점을 가지고 있는 마이클무어감독은 에서 수익을 위해 환자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제도의 폐해를 그 특유의 직설화법과 블랙코미디적 방식으로 낱낱이 파헤친다. 마이클무어감독은 영화 속에 직접 등장하여 본인이 의도한 바를 적극적으로 이끌어 간다. 한편 10만 관객을 동원해냈던 에서 논란을 빚었던 ‘누렁이 눈물 씬’은 극영화 못지않은 감동의 순간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