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글] 침묵 한 걸음 앞의 시 -자코메티와 김수영 (1)
침묵 한 걸음 앞의 시 (1) -자코메티와 김수영 금은돌 / 시인, 화가 1. 자코메티, ‘시선’이라는 깨달음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어느 강좌를 듣고 나오는 길에, 혜화역에 올라탔다. 마침 옆에는 그날 같이 수강했던 한 남성이 있었다. 그와 나는 강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지하철 인파 속에 문득, 응시했다. 눈빛 하나. 찰나. 남자. 반짝. 아무렇지 않게, 시선을 거두고 나는 다시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다. 뒤에서 누군가, 정수리를 가격했다. 시선 속 남자가 타원형을 그리며, 내 뒤로 다가왔고, 지하철 안의 사람들은 밀물처럼 빠져나갔다. 단지, 모르는 남자를 바라봤다는 이유만으로, 당했다. 묻지 마, 폭력을. 시선이 무섭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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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읽는 목요일] 처음 읽는 시집- 김혜순, <또 다른 별에서>
처음 읽는 시집- 김혜순, (문학과지성사, 1981) 이혜진/수유너머 104 회원 말 3. 字 처음 피어나는 소리 김혜순 우리 물 속에서라도 말을 해 봐. 초록색 뱀장어 한 마리 물 뱉는 소리 들리지? 우리 뱀장어처럼 속삭여 봐. 죽은 사람들의 대답을 듣고 싶어. 죽은 사람들의 말이 불을 켜고 떠나며 우리들을 간질러, 물 먹은 그 말들이 세모만 만들며 뛰어다니면 파도가 높아. 진초록 세모벽은 갯벌에 부서지고, 부서지는데 우리들의 목울대는 터지지 않아. 초록색 뱀 한 마리 물 속에 우두커니, 우리를 봐. 우리, 불을 켜고 돛단배라도 띄울까? 어서 입을 벌려 봐. 파도 소리, 돛단배 떠나는 소리. 초록, 초록 물 한 방울, 말 한마디. 초, 록, 뱀, 한 마리. 세모꼴 부서지는 소리. 입이라도 벌려 봐.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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