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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의 문학] 주소 없는 편지― 2018년 신인들의 시적 감응에 대하여 주소 없는 편지*― 2018년 신인들의 시적 감응에 대하여 최진석_문학평론가. 수유너머104 회원 1. 리듬과 감응, 유물론의 시학 유물론적 미학의 선구자로 알려진 게오르기 플레하노프(Georgii Plekhanov)는 예술의 오래된 기원 중 하나로 리듬에 대한 감각을 꼽은 적이 있다. 그의 예술론을 모아놓은 『주소 없는 편지』(Pis’ma bez adresa, 1899)에 따르면, 원시사회에서 노동이란 파편화된 각자의 힘을 단일한 집합성으로 끌어모으는 과정이고, 그 최초이자 가장 중요한 동인(動因)은 다수의 인간을 하나로 엮어내는 몸의 감각 즉 리듬이라는 것이다. 플레하노프가 유물론적 혁명가이자 정치철학자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주장이 새롭거나 놀라워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이채롭게 보아야 .. 더보기
[장자로 보는 삶] 2. 장자는 왜 논쟁하지 않고 이야기 하는가? 2. 장자는 왜 논쟁하지 않고 이야기 하는가? 담 연(수유너머104 장자세미나 튜터) 확실성의 신, 젊은 비트겐슈타인 석사 20대 후반은 온통 비트겐슈타인 생각뿐이었다. 당시 지도교수님은 비트겐슈타인 영독본을 교재로 매주 토요일 아침 강독을 하셨다. 세미나는 학부 마지막 학기부터 박사과정을 그만 둘 때까지 6년 정도 이어졌다. 이 때문인지 비트겐슈타인의 는 마치 성경처럼 정신을 지배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7)’는 그의 경구에 억눌려 나는 확실성 없는 인간사에 침묵하기로 했다. 말을 잃은 시간 속에서 30대가 된 어느 날 문득 너무도 어눌해져버린 내 말에 스스로 놀라고 말았다. 불변하는 세계, 진리의 언어 장자의 어법을 말하면서 왜 비트겐슈타인을 꺼내는가. 내 안에서 이들 사.. 더보기
[그림이 있는 글] 침묵 한 걸음 앞의 시 -자코메티와 김수영 (2) 침묵 한 걸음 앞의 시 (2) -자코메티와 김수영 금은돌 / 시인, 화가 3. 작품, ‘그’를 바라보는 일 누구든지 매혹되었을 때, 그는 그가 보는 것을 사실은 보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이것은 즉각적 인접성 속에서 그를 만지고, 비록 이것이 그와 절대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음에도 그를 사로잡고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매혹은 근본적으로 중성의 비인칭적 현전에, 미정의 그 누구에게, 얼굴 없는 거대한 어느 누구에게 관련되어 있다. 매혹은 시선이 맺고 있는 관계, 시선 없고 윤곽 없는 깊이와, 맹목적이기에 보게 되는 부재와 맺고 있는 그 자체로 중성의 비인칭 관계이다. 동생 디에고의 얼굴을 그리거나 조각으로 만들 때, 자코메티는 포즈를 취하는 순간부터 대상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다고 고백한다. 작업을 진행하는 .. 더보기
[대화의 반려들] 해러웨이와 울프의 대담 - 사이보그의 시작1 [코너소개] 이글은 2016년에 출판된『Manifestly Haraway』에 실린 것으로 캐리 울프(Cary Wolf)가 다나해러웨이를 인터뷰한 것이다. 캐리 울프는 “미네소타 출판”의 “포스트휴머니티(Posthumanities) 시리즈의 편집자이고, 최근에는 동물연구, 생명윤리, 그리고 포스트휴머니티의 입장에서 중요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다나 해러웨이는 이 시리즈물에서 『When Species Meet』을 썼다. 이 인터뷰는 2014년 5월 11일~13일, 사흘간 다나 해러웨이와 그의 파트너 러스틴 호그니스의 산타크루즈의 집에서 이루어졌다. 이 인터뷰에는 다나 해러웨이의 중요한 선언들인 ”사이보그 선언“과 ”반려종 선언“을 둘러싼 이야기들과 뒤에 2016년에 발표된 “Staying with the t.. 더보기
[시읽는 목요일] 처음 읽는 시집- 김혜순,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 처음 읽는 시집- 김혜순, (문학과지성사, 1985) 이혜진/수유너머 104 회원 敵 2 김혜순 깊은 밤 우리는 서로 없애주기로 언약했었다그리고 엎드렸었다.타앙, 네가 한 방 먼저 먹였다.나는 갈가리그러나 순간적으로 찢어졌다.타앙 탕, 이번엔 찢어진 내가사력을 다해 두 방 먹였다.너도 나처럼 너덜거렸다.순간적으로 너덜거렸다. 깊은 밤, 우리는 서로 없애주기로 언약했었다.그리고 엎드렸었다.그 다음 무서웠다.우리들 사이에 침묵이 서 있었다.침묵의 더러운 이마침묵의 거대한 아가리침묵의 가랑이그 가랑이 아래로 소리없는 별들이우 수 수.침묵은 우리의 심장을 꺼내갔다.허파도 하나쯤 가져갔다.깊은 밤 우리는 서로없애주기로 언약했었다.그런데 이 한밤우린 침묵에게 당했다. 빈 들판에허수. 아비. 김혜순의 두 번째 시집,.. 더보기
[강의후기] <수유너머104 겨울강좌>[ 바깥의 문학] 1강 후기: 나는, 내 글은 ‘어디서’ ‘오는가’? 나는, 내 글은 ‘어디서’ ‘오는가’? 성아라(수유너머104 세미나회원) 가끔 어린 시절을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럴 때 꽤 자주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여섯 살인가 일곱 살 때였을 것이다. 유치원 벽 한 쪽 구석에 머리를 박고 ‘나는 버림받았어, 나는 버림받았어’ 하고 중얼거리던 내가 있었다. 그렇게 중얼거리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고, 그 후에도 그 생각을 증명하기라도 하겠다는 듯 벌어지는 사건들이 있었다. 버림받았다는 문장을 중얼대며, 비로소 나는 내가 버림받았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 말이 세포가 되어 몸속을 뚫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팔다리가 다 있는데 불구자 같고 말하고 웃고 떠들며 사는데 유령 같았다. 준비 없이 맞닥뜨리게 된 몇몇의 사건들이, 수십 번의 말들이, 수백 번의 눈빛들이.. 더보기
레비나스&화이트헤드_<타인의 얼굴> 5,6,7장 후기 [레비나스&화이트헤드 읽기 세미나] 영진(수유너머104 세미나회원) 애초에 호기롭게 달려들었던 세미나 였지만 평일 빡빡한 일정에 지레 겁을 먹고 하차할 뻔 했으나 종헌 반장님의 아량과 넝구쌤의 한결같은 환대와 유혹 속에 드디어 세미나에 첫 참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앞서 책 표지 속에 희미하게 웃고 있는 대빵 만한 레비나스 선생님의 미소를 차마 외면할 수가 없어 몰래 야금야금 읽으며 5장에서 6장을 읽어나가는 찰나에 이건 반드시 제대로 읽고 나누어야 돼! 하는 생각이 섬광처럼 번뜩 였더랬죠! 덕분에 이 명저의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게 될 수 있어서 매우 기쁜 마음입니다 간략하게 함께 공부했던 내용을 나누자면, 5장에서는 책임과 대속의 주체에 대하여, 그리고 6장 에서는 고통과 윤리에 대하여, 7장에서는 레.. 더보기
<삶을 위한 철학 수업>의 '삶과 자유', '만남과 자유' 후기 의 '삶과 자유', '만남과 자유' 후기 알라(수유너머104 세미나회원) 안녕하세요.A조의 2주차 후기를 맡은 안라영입니다.2주차는 책 '삶을 위한 철학 수업'의 '삶과 자유', '만남과 자유'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1. 삶과 자유 영진님의 발제문을 읽는 것으로 세미나를 시작했습니다. 각 장의 핵심이 되는 내용을 꼼꼼하게 정리해주셨고, 인상적이었던 건 책에서 활용된 사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영화나 신화의 내용을 잘 모르는 게 많았는데, 발제문을 통해 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감사합니다!!) 또한 생각해볼 만한 질문을 곳곳에서 제시해주셔서, 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계속 나누었습니다.질문을 공유해보자면, 1. 당신에게 일생일대의 사건은 어떤 것이었나요? 2. 에이허브.. 더보기
장자세미나_잡편 33.천하편 - 조정현 [장자세미나-세미나후기] 잡편 33.천하편 조정현(장자세미나 회원) 장자는 도(道)를 이야기 한다. 장자가 말하는 도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무엇을 가리키는가 아니면 개별적이고 특수한 무엇을 가리키는가. 어떤 대상이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것인지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인지 구별하기 위해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살펴보는 것이 유용하다.다음은 논어 선진편의 한 대목이다.子路問 聞斯行諸. 子曰 有父兄在 如之何其聞斯行之. 자로가 여쭈었다. 들으면 곧 실천하리까? 선생님 말씀하시다. 부형이 살아 계신데 어찌 들은 대로 실천하겠느냐? 冉有問 聞斯行諸. 子曰 聞斯行之. 염유가 여쭈었다. 들으면 곧 실천하리까? 선생님 말씀하시다. 들으면 곧 실천해야지!"들으면 곧 실천해야 한다"는 명제가 있다. 공자에게 이 명제는 일반적이고.. 더보기
장자세미나_인간세 편 - 조정현 [장자세미나-세미나후기] 인간세편 조정현(장자 세미나회원) 인간세 편은 공자와 공자의 제자 안회사이에 대화로 시작한다. 안회가 위나라로 가려고 마음을 먹고, 스승에게 이야기를 하는 중 다음 이야기가 나온다.回嘗聞之夫子曰 : 저는 일찍이 선생님께서, 이르기를 治國去之 : '잘 다스려지는 나라는 떠나고 亂國就之 : 어지러운 나라로 들어가라,"잘 다스려지는 나라는 떠나고, 어지러운 나라로 들어가라. " 이 대목은 논어의 내용과 상충이 된다논어 태백편에서 공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였다. 危邦不入 亂邦不居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말고 어지로운 나라에 머물지 마라.장자 인간세에 나오는 공자의 이야기와 논어 태백편에 나오는 공자의 이야기는 서로 모순된다. 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장자가 공자의 말을 잘 못 옮긴.. 더보기
[가게모토 츠요시] ‘전후 일본’이데올로기의 근원에서 부각된 비-일본인들의 목소리들 ‘전후 일본’이데올로기의 근원에서 부각된 비-일본인들의 목소리들 사카이 아키토, 『‘야케아토’의 전후 공간론』, 세이큐샤, 2018, 354쪽, 3400엔+세금.(원서 정보 : 逆井聡人, 『<焼跡>の戦後空間論』, 青弓社, 2018.) 가게모토 츠요시 이 책의 제목에 들어간 ‘야케아토’를 설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보자. 번역하기 난감한 말이기 때문에 일본어로 남겼다. 말 그대로 해석하면 ‘타버리고 원래 있던 것이 없어진 장소’정도로 말할 수 있다. ‘폐허’이기도 하며 ‘초토’이기도 하다. 미군의 폭격으로 인해 모든 것이 파괴된 공간이다. 저자 또한 이 용어가 “제국이라는 과거 잔영이 만드는 비장감”(21쪽)이 내포되어있다고 지적하며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흔히 이 단어는 전후 일본의 ‘부흥’의 근원으로 .. 더보기
[그림이 있는 글] 침묵 한 걸음 앞의 시 -자코메티와 김수영 (1) 침묵 한 걸음 앞의 시 (1) -자코메티와 김수영 금은돌 / 시인, 화가 1. 자코메티, ‘시선’이라는 깨달음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어느 강좌를 듣고 나오는 길에, 혜화역에 올라탔다. 마침 옆에는 그날 같이 수강했던 한 남성이 있었다. 그와 나는 강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지하철 인파 속에 문득, 응시했다. 눈빛 하나. 찰나. 남자. 반짝. 아무렇지 않게, 시선을 거두고 나는 다시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다. 뒤에서 누군가, 정수리를 가격했다. 시선 속 남자가 타원형을 그리며, 내 뒤로 다가왔고, 지하철 안의 사람들은 밀물처럼 빠져나갔다. 단지, 모르는 남자를 바라봤다는 이유만으로, 당했다. 묻지 마, 폭력을. 시선이 무섭다. 시.. 더보기
[바깥의 문학] 염려하는 주체와 언어의 형식―김복희와 안태운의 시 염려하는 주체와 언어의 형식―2010년대 한국시의 경향과 특이점: 김복희와 안태운의 시 돌들은 땅 위에 깔려 있다,물 한 방울 짜낼 수 없는 돌들,목덜미를 연상시키는 보통 돌들,보통 돌들, ―비문 없는 돌들.―이오시프 브로드스키 송승환_시인. 문학평론가 1. 새로운 언어 없이 새로운 세계는 없다 지난 2016년 10월 29일부터 시작된 촛불집회는 2017년 3월 11일 20차 촛불집회까지 매주 토요일, 서울 광화문 광장을 비롯한 전국의 광장에서 열렸다. 헌법에 기초하지 않은 소수의 권력 남용과 부정부패에 대한 문제제기로서 촉발된 촛불집회는 시민들의 평화적이며 지속적인 참여로 직접민주주의를 실천하였다. 특히, 19차 촛불집회까지 세대와 성별을 가르지 않고 참여한 시민들의 최종 누적 연인원은 1,500여만 .. 더보기
[니체와 춤을] MeToo사건과 위버멘쉬의 타자성 MeToo사건과 위버멘쉬의 타자성 류 재 숙 / 수유너머104 회원 [1] 위버멘쉬는 타자로부터 온다 나 너희들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노라. 사람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너희들은 너희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 보라, 나는 항상 스스로를 극복해야 하는 존재이다. _『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위버멘쉬(Übermensch, overman)는 ‘자기극복으로 정의되는 존재’이다. 그것은 흔한 오해처럼, 인간을 초월한 ‘초인’이나 ‘완전한 인간’ 같은 특별한 인간유형이 아니다. ‘인간을 넘어섬’ 혹은 ‘인간을 극복함’을 뜻하는 위버멘쉬는 ‘결과로 주어지는 존재’가 아니라, ‘과정으로 구성되는 존재’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위버-멘쉬하기’ 혹은 ‘위버멘쉬-되기’로 읽어야 한다.. 더보기
[시읽는 목요일] 처음 읽는 시집- 김혜순, <또 다른 별에서> 처음 읽는 시집- 김혜순, (문학과지성사, 1981) 이혜진/수유너머 104 회원 말 3. 字 처음 피어나는 소리 김혜순 우리 물 속에서라도 말을 해 봐. 초록색 뱀장어 한 마리 물 뱉는 소리 들리지? 우리 뱀장어처럼 속삭여 봐. 죽은 사람들의 대답을 듣고 싶어. 죽은 사람들의 말이 불을 켜고 떠나며 우리들을 간질러, 물 먹은 그 말들이 세모만 만들며 뛰어다니면 파도가 높아. 진초록 세모벽은 갯벌에 부서지고, 부서지는데 우리들의 목울대는 터지지 않아. 초록색 뱀 한 마리 물 속에 우두커니, 우리를 봐. 우리, 불을 켜고 돛단배라도 띄울까? 어서 입을 벌려 봐. 파도 소리, 돛단배 떠나는 소리. 초록, 초록 물 한 방울, 말 한마디. 초, 록, 뱀, 한 마리. 세모꼴 부서지는 소리. 입이라도 벌려 봐. 시.. 더보기